야들아~!!! 내가 가슴이 뛴다....
동창회에 자주참가하지 못했는데.....6월달에 열리는 동창회에 참석할려고 한다...
그런데..오늘도 혼자 역사공부하면서....지도를 보다가 소백산 풍기온천쪽 지도를 보니....앗...창락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유명한 창락리가 여기였다니....전에는 대충 풍기근처로 감만 잡았는데....ㅠㅠㅠ
창락리는 우리집안하고 관련이 있다....나한테 16대조가 박눌(朴訥)할배인데....바로 창락도찰방을 지내신 것이다...종6품의 외관직이고....대간(臺諫)이나 정랑직(正郎職)에 있는 명망 있는 문신을 차출해 지방 주현에 파견하여 내려 보냈다는 기록이 보이는군...(아래 사진 밑에 자료)
창락도는 오늘날 풍기 일대에 있었던 역원(驛院)으로 순흥, 영주, 봉화, 예천, 안동, 예안의 간이역을 거느린 경상도 북부지역의 큰 역이었다. 찰방(종육품)은 곧 역장을 말한다.아마도 오늘날치면 경찰서장과 검사를 합친 권한을 가진 직위일것 같다...
창락도찰방을 지내신 행정공 박눌할배는 안동김씨중 유명하신 보백당 김계행공의 첫째 사위다....김씨할머니는 자식농사를 잘지으셨다.5형제를 낳았고...5형제가 대과에 급제하여 정부인으로 증직되셨다고 한다.5형제중에 막내인 박종린할배가 사화등으로 머리가 아파서 10승지중의 한곳인 예천 금당실마을에 처가로 낙향했고 ...후손이 번창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예조, 공조판서를 지낸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1491~1570)은
세상에 아들 다섯 낳기도 어렵고:세지생오자난(世之生五子難)
다섯 아들이 급제하기도 어렵고:오자등과난(五子登科難)
다섯 아들이 문과에 급제하기도 어렵다:오자구문난(五子俱文難)
삼난가(三難家), 즉 하기 어려운 일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한 집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위의 보백당 김계행공의 둘째사위가 풍산류씨 류자온이고...바로 서에 류성룡 선생의 증조부이고 안동김씨 할매가 증조모이시다.
아래 사진에 소백산 풍기온천이 잇는 지역이 바로 창락리이다.옛날엔 관청(역원)도 있었겠고....주막거리도 있었겠군....
'김계행 유자온'을 검색하니...아래 자료가 보인다.
http://cafe.naver.com/tdkimoldboy/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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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는 경기·충청·전라도에 각 3인씩, 경상도에 찰방 5인과 역승 6인, 강원도에 각 2인씩, 황해도에 찰방 2인과 역승 1인, 영안도에 찰방 3인, 평안도에 찰방 2인으로 법제화되었다. 1535년(중종 30)에는 역승이 완전히 폐지되고 찰방체제로 전환되었다
찰방은 역리(驛吏)를 포함한 역민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역정(驛政)의 최고책임자였다. 또한 유사시에 북방지역에서는 합배(合排 : 함경·평안도 연안에 설치한 군사적 성격의 역촌)를 순행하면서 부방(赴防)의 임무도 수행하였다.
행정면에서는 대간(臺諫)이나 정랑직(正郎職)에 있는 명망 있는 문신을 차출해 지방 주현에 파견하여, 수령의 탐학과 민간의 질병까지도 상세히 고찰하게 함으로써 민생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네이버 검색 자료-
첫댓글 선조를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밎는 말씀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