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高등고 / 신석정
산에는 허옇게 눈이 쌓였었다
흰돛 그리메 황해에 은은하고
따뜻한 햇볕 노령산맥의 수려한 얼굴에
말긋말긋 흐르는
오후-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향그러운 솔씨를
하나
둘
하나 둘
까먹었다
나는 갑자기 산새처럼 가뜬하여지고
나는 갑자기 산새처럼 날아보고 싶었다
저 평온한 푸른 하늘을....
못 견디게 평온한 저 하늘 아래를....
신석정 문학관에 갔었습니다.
위의 <등고>는
1960년도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동양의 시를 소개하는 3편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중국의 <노신>과 우리에게도 익숙한< 타골>의 시와 함께 실렸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일본은 신석정 시인을 한반도의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아시아의 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가로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저평가 하고 있는 동안 밖에서 더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이 어떤 나라입니까?
창씨개명과 언어말살을 시도하며 시인들에게 일본 찬양시를 짓도록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이 대목에 오면 서정주 시인도 떠오르지요?
<마쓰이오장 송가>로 일약 친일파 거장으로 등극한 서정주시인은 후에 전두환찬양시도 썼다지요?
이런 지경에
신석정 님은 유일하게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고, 일본말로 시를 지어달라는 당국의 집요한 설득에 절필로 항거한 요샛말로 하면 일본 입장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시인일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교과서에 노신과 타골의 시와 함께 신 시인의 시를 실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랜 유명인이 되면 모름지기 권력이나 금력을 탐하는 경우가 흔한 일이 되어버리지만 선생은 일생을 교육계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연의 세계에서 꿈꾸는가 하면 삶의 현장에서 신음소리를 뱉어내기도 하고
<이 밤이 너무 어둡지 않으십니까> 하고 울부짖기도 합니다.
위의 <등고>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그 때 중학생이던 히타야마 아유스키는 이 시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신석정 탄신 100주년 기념식에서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이 시를 읽고 시인이 될 꿈을 꾸었으며 오사카대학 국문학과를 지원했고 졸업도 했으며 현재는 <동아시아 현대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고 지금도 신석정 시인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또 신석정 시를 일본에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합니다.
아무래도 선생은 우리 시단에서 저평가 되었다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선생은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실력을 인정받은 시인입니다.
비근한 예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번역가인 정인섭 님이 선생의 시<님께서 부르시면>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 있는데
아일랜드의 시인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에이츠>가 재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았답니다.
에이츠가 누구입니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인정한 시라니....
너무 영광입니다.
그래선지 2016년 대산문화재단에서 신석정 시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리긴 하던데.....
님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님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님께서
부르시면.......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님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조가 노래하고
이른밤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님께서
부르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