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아직 여러모로 시원찮던 1977년의 일입니다. (그 전 해에 양정모란 레슬링 선수가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 1936년 손기정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이후 처음이자 대한민국 수립 후 처음이었으니까, 올림픽이 열리면 금메달 열 개쯤은 따야 본전으로 생각하는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홍수환이란 권투선수가 멀리 파나마까지 나가서 1974년에 이어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더 멋지게…….(대한민국의 첫 번째 세계챔피언은 1960년대 미들급 김기수이고 홍수환은 사상 2, 3번째입니다)
그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는 2회에만 네 번이나 다운되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이야 얼떨결에 당한 거겠거니 하고 숨을 죽이면서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세 번, 네 번…… 잇따라 큰대(大)자로 뻗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이젠 다 끝났다며 하나 둘 텔레비전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3회가 시작되자마자 이번에는 홍수환 선수가 상대편을 느닷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젠 끝내아겠다며 별다른 방어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서던 어린 선수는 뜻밖의 공격에 어리벙벙해졌는지 숨도 못 돌리고 무수히 얻어맞다가 마침내 바닥에 완전히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방송마다 그 장면을 몇 날 며칠을 두고 골백번쯤 되풀이해서 방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싫증내기는커녕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신바람 나는,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더 극적인 경기였습니다. 그 무렵처럼 권투가 인기 있었던 적도 없었을 겁니다. (지금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역시 재미있습니다. 세계 프로권투 사상 가장 극적인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경기이니, 못 보신 분은 한번 보세요.
http://tvpot.daum.net/mypot/View.do?clipid=75889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