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자기몸무게의 5000배 이상을 운반한답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그들이 만든 3D 모델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개미의 목 관절은 개미 몸무게의 5000배에 달하는 무게까지도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그런데 이런 실행은 뇌의 명령에 의해 시작된답니다. 오늘 같은 일요일, 너무 좋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아침기온은 11도, 오후3시 현재 25도입니다. 이런 날 현장에서 썩기가(?)너무 아쉽네요^^
뇌섹남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뇌섹남: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뇌섹남은 국립국어원이 2015년 3월 발표한 2014년 신어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럼 “뇌미인”이란 말을 아십니까? 책을 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뇌미인” 저자: 나덕렬(신경과교수)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아요” 라는<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처럼 우리 몸에는 겉으로 보이는 기관보다 보이지 않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 행동에 관여하여 결국 인생을 바꾸는 우리 몸의 CEO “뇌”라는 기관이다. 우리는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외모에 많이 사용해왔지만 국어사전에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라고 나와 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마음 또는 생각, 행동을 관장하는 “뇌”를 표현하는 수사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가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자에 따르면 “뇌미인”은 스스로 적절한 뇌 관리를 통해 자기안의 꿈과 목표를 세우고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꿈을 추구해나가고, 그 가운데서도 남을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년간 치매를 연구해온 저자는 “뇌미인”은 치매라는 질환도 잘 예방할 수 있고 설혹 걸려도 ‘예쁜치매’ 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뇌가 미인이면 외모도 미인이 된다. “뇌미인” 은 자기의 태어난 외모를 바꾸려는 소모전을 치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카워 나간다. 그러므로 “뇌미인” 은 개성적인 외모를 갖게 되고 얼굴에 평안함, 행복감, 자신감의 건강함이 풍겨난다. 또한 당신의 뇌 관리는 신체의 수려함으로 나타난다.
예쁜치매환자들의 공통적인 평소성격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았다고 했다.
긍정적인 언어사용에 인색하고,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에 인색한 현대인일수록 “뇌미인”이란 단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 바레인(Bahrain) -
1987년5월 바레인(Bahrain)행 비행기를 탔다. 이란에서 2년, 사우디아라비아 6개월 그리고 바레인에서 2년 반을 있게 되는 세 번째 중동생활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바레인 담수화공장” 대우중공업과 영국의 [위어 웨스트거스(Wier West Girth)]사가 4000만 파운드(당시 환율(650원/1불)로 400억원=약6,200만불)에 공동수주(Consortium)한 해수를 담수화하는 공장 건설공사다. 위어사는 EPC(공장설계, 기자재구매조달, 감리업무)를, 대우는 시공을 맡았는데 대우 수주금액은 약600만불(약40억원)이었다. 아무리 30년 전 수주금액이라 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공사금액이다. 그래서 대우는 많은 적자를 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공사는 대우중공업에서 대우엔지니어링으로 이관되어 진행된 것이다.
해수를 담수화하는 공정은 두 공법이 있는데 하나는 바닷물에 열을 가해서 수증기를 발생시킨 후 신선한 물을 얻는 전통적인 방법과 다른 하나는 세포막(Permeator)에 강한 압력을 가해 짠물과 민물을 분리하는 역삼투압 즉 RO(Reverse Osmosis)방법이 있는데 바레인 담수화공장은 역삼투압방식이었다.
바레인은 인구가 약100만명, 해안선길이가 161km, 넓이는 665km2 정도로 서울(605km2)보다 약간 큰 도시국가이다. 바레인은 한 때 중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두바이 등에 밀려 쇠락한 상태이다. 수도는 마나마(Manama)로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 마나마시가지를 지나갈 때는 중동의 작은 나라라는 선입견을 일축하듯 고층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잠시 후 고속도로에 올라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 같은 풍경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한가한 모래벌판과 드문드문 시골풍경이 전개된다.
내가 여천금호EP고무공장 건설이 끝나고 대우엔지니어링본사(그 당시는 여의도 SBS방송국 옆 신한빌딩)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바레인으로 나가란다. 그때도 바레인 담수화 프로젝트는 회사 내에서도 날이 갈수록 적자폭이 커져서 골칫거리라는 말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원인이 뭔지는 모르나 현장은 3개월 동안 소위 Work Slow Down되고 있어서 직원들이 모두 놀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었다. Work Slow Down이란 일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하는 흉내만내며 공정(Progress)진척이 없는 일종의 사보타주(Sabotage)인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파트너인 위어사에서 공급해야 되는 기자재들이 제때 들어오질 않아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외국인노동자들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인근로자가 약70명에 스태프가 15명인 현장이 논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현장은 수도 마나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닷가에 있었다. 나는 참 일복이 많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세상에, 그렇게 놀면서 오후론 바다낚시만 다닌다며 오라고 빨리 오라고 했던 현장인데 내가 도착한 그 이튿날부터 공사재개란다. 그런데 바레인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5월 중순인데 기온이 50도 가까이 오르더니 트렌치를 파던 외국노동자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면서 오후작업 중지명령이 내려졌다. 현지신문은 어제더위로 양계장 닭이 몇 만 마리가 폐사했다는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같은 중동이라도 예전에 있었던 동광산현장은 남부이란의 고원에 있어서 거의 사계절을 느꼈었다. 그리고 사우디 알바틴(Albatin)현장은 북쪽고원지대에 있어서 가끔 샌드스톰(Sand storm=모래폭풍)이 몰아치긴 했지만 많이 덥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당시 바레인의 더위는 참 대단했었다.
바레인생활 2년 반을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숙소 내 교회 입당예배였다. 그 당시는 해외근무 1년 하면 25일간의 휴가를 줬었다. 첫 휴가를 마치고 바레인공항에 도착하던 날이었다. 도착예정시간보다 약1시간 늦은 저녁7시경,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직원들이 납치(?)를 한다. 모두 기다리고 있다고 왜 이리 늦었느냐고 난리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사태파악을 하고 달리는 차안에서 경과보고 할 내용을 잡았다.
숙소 내 우리근로자들이 지은 작은 교회에는 주 바레인 한국대사내외, 마나마 한인교회 목사님과 한인교포교인들 그리고 현장 동료들로 초만원을 이룬 가운데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작은 교회는 지난 5개월간 우리 직원들이 벽돌 한 장씩 쌓아서 지은 우리들의 교회입니다. 누가 모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우리직원들은 일과 후에 모여서 톱질과 망치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감격스러운 입당예배를 올리게 됐습니다” 대략 하나님께 감사를,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곁들인 내 경과보고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요일이면 현장은 교회 가는 봉고차를 배차해주었고 어떤 때는 한대로 부족해서 두 대씩 마나마시내의 한인교회로 운행을 했다. 예배에는 생각보다 많은 한인교포들이 참석을 했고 특히 바레인주재 대사는 거의 빠짐없이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현장 동료들은 매주일 예배시간에 앞에 나가 특송을 했고 교회에서 필요한 비품들을 조달도 했다. 목사님은 일주일에 한번 현장을 방문해서 예배를 주관해 주셨다. 그러던 언제인가 숙소 안에 교회를 짓기로 했고 필요한 자재는 현장에서 대주기로하며 그 추진위원장(?)을 내가 맡았던 것이다.
내 인생의 롤 모델(Roll Model)로 가끔씩 소개하는 ‘미스터 브레스웨이트(Mr. Braithwaite)’ 란 토목엔지니어를 만난 것도 바레인현장이다. 그 당시 알려진 바로는 ‘담수화공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상으로 바레인에 지어주는 공장이라고 했다. 공사감독은 사우디의 다국적 감리회사인 ABC였으며 브레스웨이트는 ABC소속의 현장감리부단장이자 토목감독을 맡고 있었다. 기계공사 감독은 무하마드(Muhammad)라는 인도인이었다. 처음 상면 때 무하마드라는 이름을 듣고 이슬람교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이슬람교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도인은 다 힌두교도가 아니라 인구 중 약12퍼센트는 이슬람교도라고 했다. 40대중반의 무하마드는 가족(부인과 장성한 두 딸)과 함께 수도 마나마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가끔 그의 초청을 받아 그의 집으로 놀러갔던 기억이 있다.
사우디와 바레인 간에는 ‘킹파드코즈웨이(King Fahd Causeway)’ 라는 25km길이의 유명한 연육교가 있다. 이 다리는 세계에서 4번째로 긴 다리로(한국의 인천대교는 18.25km로 세계에서 6번째 긴 다리) 1986년 완공됐으며 다리건설을 처음 제안한 사우디 제5대 국왕 King Fahd Bin Abdul Aziz Al Sasud의 이름을 따서 킹파드코즈웨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왕복4차선(넓이23m)인 이 다리 중간국경지점에는 움나산(Umm an Nasan)이란 인공섬도 만들어놓았다. 사우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사우디동부에서 제일 큰 항만 석유도시 담만에서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까지는 이 킹파드코즈웨이를 이용하면 불과 1시간 남짓밖엔 안 걸린다. 음주 가무에 돼지고기가 허용되는 바레인으로 주말이면 수많은 사우디인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외국인들이 이 다리를 건너 바레인으로의 탈출을 시도해 들어온다.
바레인과 사우디 중간의 인공섬에 있는 국경초소
킹파드 코즈웨이인지 인천대교인지 잘 모르겠네요^^~사진을 다운받아서 모니터화면으로 옮겨 왔는데
요새 정신머리가 영~^^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바레인의 추억은 거의 매일 회를 먹었던 기억이다. 대구경 해저배관 RTR(Reinforced Thermosetting Resin Pipe)Pipe가 설치된 Sea Water Intake 끝단지점 바닷속에 설치한 그물에서 하루 한차례씩 그물을 올려 잡아온 고기로 매일저녁 회를 떠먹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