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오월 아침
비 개인 5월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즈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香薰)이 어찌
이 맘 홍근 안 젖었으리오마는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麝香) 냄새도 잊어버렸대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 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하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이고
내사 불혹을 자랑턴 사람.
이 시는 새벽에 우는 두견이의 피어린 흐느낌과 같은 울음과 아침에 혼란스럽게 우는 울음에 흔들리지 않는 자랑스러운 사람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월 어느날 이슬비가 새벽을 적실 때에 두견의 가슴 찢는 울음소리가 피어린 흐느낌으로 들린다. 비가 개이고 아침이 되자 혼란스런 꾀꼬리 울음소리가 찬엄(燦嚴)한 햇살과 함께 퍼진다. 나의 마음은 옛날에 피웠던 향훈(香薰)에 흥건히 젖었지마는 이 아침에 새로 비추는 아침빛에 하늘거리는 어린 속잎들이 저리 부드럽고 발목을 덮을 정도로 자란 풀들이 포실포실 나의 접힌 마음과 구겨진 생각이 어루만져진 것 같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날라올라서 햇빛으로 인해 자랑이 가득 찬 새 하늘을 사치스럽게 만든다. 나는 여인의 사향(麝香) 냄새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잊었다면 내 마음이 두견이의 소리와 꾀꼬리의 소리에 불혹된 것이 나의 자랑이 될 수 없다. 나는 아침에 꾀꼬리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혼을 가졌고 새벽에 두견이의 울음소리가 잡지 못하는 마음을 가졌다. 한낮이 정밀하다고 나를 흔들리게 할 수 없다. 나는 꾀고리와 두견이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자랑하던 사람이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 개인 5월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가 개인 5월의 어느 날 아침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꾀꼬리 소리가 찬엄한 햇살이 퍼지는 하늘로 오른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즈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香薰)이 어찌
이 맘 홍근 안 젖었으리오마는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보오
새벽에 이슬비가 만물을 적실 때에 두견새의 피어린 흐느끼는 가슴을 찢는 소리 울음이 들린다. 이 소리에 나의 마음은 한 그릇 정도의 조금인 옛날의 향훈(香薰)을 느끼며 붉게 젖었지만, 이 아침에 이슬비를 맞고 햇빛에 빛나면서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이 저렇게 부드럽게 내 발목에 포실거리어 나의 접힌 마음과 구겨진 생각을 이제 다 어루만진 것 같아 접힌 마음이 펴지고 구겨진 생각이 펴진 것 같다.
‘향훈’은 향그러운 냄새로 3연 3행 ‘사향 냄새’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근’의 의미는 알 수 없다. 이는 ‘사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향’은 여인이 사용하는 것이므로 ‘홍근’은 ‘옛날 향훈’으로 인해 흥분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접힌 마음 구긴 생각’은 과거에 ‘사향’을 사용하는 여인과 가슴이 찢어진 것 같은, 피어린 흐느낌을 운 마음의 상처를 말하는 것이라 본다. ‘포실거리어’는 ‘포근하고 편안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침 새 빛’은 아침에 비추는 햇빛을 말한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麝香) 냄새도 잊어버렸대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 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하오
꾀꼬리는 다시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창공을 흔드는 것 같다. 이 모습은 아침 햇빛이 비추는 것만으로 충분히 자랑할 만한데, 하늘을 날는 꾀고리의 모습은 하늘을 사치스럽게 만든다고 느낀다. 옛날에 맡던 사향(麝香) 냄새를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아침에 우는 혼란스런 꾀꼬리의 소리에 혼이 불려가지 않고, 새벽에 피어린 흐느낌으로 우는 두견새 소리로도 내 마음을 잡을 수 없는 것이 불혹의 혼과 마음이 자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낮이 고요하고 편안하다고 한들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는 꾀꼬리가 푸른 하늘을 다시 날아오른 모습을 ‘흔’든다고 표현한 것이다. ‘자랑찬 새 하늘’은 비가 갠 뒤의 푸르고 맑은 하늘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치스레 만드오’는 꾀꼬리가 하늘을 날지 않아도 ‘자랑’할 만큼 좋은 하늘인데 거기에다가 꾀고리까지 날아오르니 ‘사치스’럽게 보인다는 화자의 느낌을 말한 것이다. ‘사향(麝香) 냄새’는 1연 3행의 ‘옛날 향훈’을 말하는 것으로 이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불혹’의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거의 여인과의 사연을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불혹이 자랑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불혹’이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화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불혹’은 이 시를 썼을 때의 시인의 나이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는 아침에 우는 꾀꼬리 소리에 유혹되지 않는 자신의 ‘혼’을 말한다.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는 새벽에 우는 두견새 소리도 자신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하오’는 ‘한낮이 정밀’함도 자신의 ‘혼’과 ‘마음’은 유혹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정밀하다’는 ‘1. 정이 깊다, 3 고요하고 편안하다’(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가 있다. 이 시에서는 3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또 무얼하오’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로 무엇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이고
내사 불혹을 자랑턴 사람.
‘저 꾀꼬리’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무던히 소년’으로 생각되고 새벽에 울었던 ‘두견’새는 ‘중년’이 된 지 오래된 사람인 것같다. 나는 ‘불혹을 자랑’하던 사람이다.
‘꾀꼬리’를 ‘무던히 소년’으로 본 것은 꾀꼬리가 ‘혼란스’럽게 울고(1연) ‘창공’을 ‘다시’ 날아오르는 흔드는 힘찬 모습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저 꾀꼬리’의 ‘저’는 화자가 조금 멀리서 ‘꾀꼬리’를 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새벽 두견’은 아침이 되기 전에 깨어 있는 것과 ‘꾀고리’와 달리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점에서 즉 움직이지 않는 점에서 ‘오-랜 중년이’라고 비유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사’는 ‘나는’을 말한다.20210105화후0152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