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교(宗敎)
◆ 세계 3대 종교
<2> 카노사(Canossa)의 굴욕
1077년, 교황이 주최한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회의에서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Heinrich IV)를 추방하기로 결의하자 하인리히는 교황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발표하지만,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왕비와 왕자,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몇몇 신하들을 데리고 추운 겨울, 라인강을 건너고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교황에 용서를 빌러 직접 간다.
마침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Canossa)성에 머무르고 있던 교황은 절대로 만나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황제는 카노사의 성문 앞에서 모자도 없이 맨발에 얇은 겉옷만 걸친 채 3일 동안을 꼬박 눈 속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교황은 마침내 접견을 허락하고 모든 것은 교황의 허락을 받는다는 조건을 수락받은 후 파문(破門)을 취소했다는..... 웃지 못 할 희극이다.
<3>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충돌 - 십자군 전쟁(Crusades)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예수의 탄생지와 성묘(聖廟)가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는데 예루살렘의 위치가 중동지방, 즉 이슬람의 중심지인 메디나와 메카에서 멀지 않다 보니 이 지역의 소유권을 이슬람 세력이 주장하면서 벌어진 분쟁이다.
이것을 참지 못한 유럽의 그리스도교(중심지 로마 교황청)는 예루살렘 탈환 등의 목표를 내세우며 군사를 조직하여 10여 차례의 원정을 하는 것이 십자군(十字軍) 전쟁(Crusades)인데 수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약탈행위에 고대 유물유적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이 전쟁이 근 300여 년간 걸쳐 되풀이 되었고(1095년~1456년) 어찌 보면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중 4차 십자군 전쟁(1202년~1204년)은 중동지방 이슬람을 치러 간다고 조직된 십자군이 갑자기 가톨릭(舊敎)의 중심인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는데 전쟁을 주도한(십자군을 조직한) 베네치아 공화국 국왕의 비열한 욕구로 빚어진 사건으로, 결국 계획대로 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이 엄청난 부를 쌓게 되었다고 한다.
<4> 개신교(改新敎)의 등장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인 로마 교황청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듯 오르고 권력과 부(富)의 쟁취, 가톨릭 성직자들의 타락(墮落) 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보다 못한 개혁파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데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Calvin)이었다. 이 시기, 영국에서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헨리 8세가 세운 것이 성공회(聖公會)이고 곧이어 청교도(淸敎徒:Puritan) 혁명이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 가톨릭을 앞세워 정권을 휘두르던 영국 국왕 찰스 1세(Charles I)는 개혁파(改革派)들에 의해 사형을 당하는 등 종교개혁의 중심은 영국이 된다.
17세기 초 신구교(新舊敎:가톨릭 성공회)의 갈등에 염증을 느낀 기독교인들은 오월의 꽃(May Flower)이라는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그리스도교(기독교)를 전파하게 된다.
이후 개신교도 또다시 교리해석을 놓고 다양한 교파로 갈려 독립하는데 장로교(長老敎), 감리교(監理敎), 침례교(浸禮敎), 제7일 안식일교(安息日敎) 등 30여 교파(敎派)가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