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글 / 김인수
일년에 한번 맞는 휴가 어떻게 사용할까 아님 나만을 위해 육신의 즐거움을 맛볼까라는
별의 별 생각을 다하다
언젠가 죽음에서 나를 건저 주신 주님을 생각했다 몇일을 설레임으로 휴가를 기다렸는데 그래도 주님께서
기뻐 하시는 길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나서려니 조금은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가족들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나는 주님의 아름다운 도구로 사용 되도록 내 삶과 내 시간을 잘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던 시퍼런 날들을 생각했다
먼저 인근 순천시에 있는 성가롤로 병원으로 나서려니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나는 참 소심한 성격에 무슨 일 앞에서 많이도 생각하는 편인데
그래도 용기를 내어 내가 사는 곳에는 꽤 큰 병원인
성가롤로 병원 10층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다 시린 시간을 걷고 있는 환자들의 아픔과 애환을
익히 알고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에게 하나님을 소개 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가슴에 설레임이도 했다.
먼저 병실 앞에서 긴장감과 떨림이 있지만 잠간 묵상하고 병실을 들어 간다 주로 1인실이나
2인실인 경우가 많다
병실을 들어서며 나는 진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다가가 나의 소개를 한다
나도 여기 계신 환자님들 만큼 아픔을 감내하며
고난의 길에 섰노라고 말한후 목을 보여주며 구멍을 뚫고 수없이 쎅션을 했다는 이야기와
콧줄을 끼고 미음을 넣어 살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말도 못했다는 말을 하며 나를 소개했다.
냉찬 눈으로 바라보던 환자들은 그제사 동질의 고통을 공유한 동지를 만난듯
나를 따스하게 받아주며 간병하는 가족들도 애잔하게 친근감으로 바라보아 주었다
그때 환자를 바라보며 손을 꼭잡고
"우리끼리만 하는 시퍼런 하늘 하나를 보았지요" 그러면 금방 내손을 잡으며
내면에 멍울 같은 아픔을 소소한 얼굴로 이야기 한다
암이라는 말만 들어도 하늘이 노래지는데 여기 오신분들은 거의 말기 암환자들이다
나는 다시 나도 말기 암환자 였다는 것과
주님께서 치료하여 주셔서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다는 기쁜 소식과
그리고 전남 광양시에 살고 있으며 광양중앙교회 다니는 김인수 장로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환자분이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한다
신앙인이 아닌경우 조심히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그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내 심장이 타들어 가도록
간절함으로 기도 드리고 나면 환자 가족분이 환한 얼굴로 드링크 음료를 주신다
대개 거의 다 주시는 편이다
나는 정중히 거절을 하고 한분 한분 병동을 다니는데
어떤 곳은 냉차게 거절을 하며 나를 위 아래로 훑어 보는 분도 계시다
나는 밤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오늘 병동 방문에 대해 준비 기도를 하고 오지만
막상 병원에 오면 위축되기도 한다 그럴때면 밖으로 나와 늘 즐겨 부르는 찬송을 혼자 부른다
가슴 뜨겁도록 찬송하고 기도하고 나서 다시 병실로 들어 간다.
언젠가 서울대학병원 암쎈타에서 죽음처럼 살던 적이 있었다.
그 병동 내가 있던 병실에는 여섯명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힘들게 살고 있었다
내 옆자리 환자도 위급한 상황이였다.
바람앞에 촛불 같은 호흡으로 시간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데 은행 지점장 이였다고 했다
여러 가지 상항으로 보면 참 부유했던 모습을 읽을수 있었다
아내와 그분의 아내가 같은 처지의 환자를 놓고
간병하면서 친밀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수술하고 15일동안 다 10분도 잠들어 본적이 없다 그만큼 위급했다.
1분을 넘기기 힘든 호흡으로 목구멍에 막힘을 열어주는 쎅션을 계속해야 했다
그렇치 않으면 호흡이 막힌다
비몽사몽 간이였을까
세상의 마지막날이 왔다 온세상은 다 죽음 같은 시간이 왔다 내 근처
사람들이 죽음의 아가리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내 곁에는 피난처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피난처였다.
나는 순간 그 은행 지점장 하셨던 환자를 온몸으로 끌어다 내 피난처로 데리고 왔다
세상은 죽음의 아우성이였는데
내가 있는 피난처는 참으로 평온한 세상이였다 다행이 우리 둘은 살아났다
그 후로 나는 더 치료의 진전이 없어
서울대학교병원 10층 이비인후과 별동에서 8층 재활의학과로 내려 갔다
그렇치 않으면 콧줄을 끼고 목을 뚫은채로 퇴원을 하라고
나를 수술했던 교수님과 주치의가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내 성대를 수술하고 목구멍으로 10cm 가 넘는 철 관을 넣고 목구멍으로 숨을 쉬라고 했다
나는 강렬히 거부했다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일 하실 거라고
큰소리 치며 의사들의 주장을 거부했다
주님은 내 말을 들었을까
재활의학과로 간 뒤 열흘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났다
나를 수술하신 교수님은 나는 말할수 없을 것이고 밥을 먹을수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열흘만에 밥도 먹고 말도하고 콧줄도 빼버렸다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과장님 이철희 교수님 그 근엄하신 분은 놀라운 일이다고 했다
그리고 "김인수씨 대단하십니다" 라고 극찬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도
내게는 기적을 일으켜 주시는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이 엄청난 빚을 갑을 길이 없어
나는 일년만에 한번 오는 휴가를 주님께 바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밤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린다.
그날들의 그 주님만 생각해도 감동과 감격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면서 하루종일 그 일에 점방 보는 일에 매달리며 살고 있다
주일이면 다시 성가롤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 나를 눈이 아프게 기다리는
환자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게를 정리하게 되면 주님의 아름다운 도구가 되어 생명의 향기가 진동하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말기 암환자 같은 멀쩡한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분들에게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분들을 하나님의 피난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뻔히 죽어가는 그 영혼들을 살려야 합니다 내가 욕을 먹고 빰을 맞고 서라도
그들을 흔들어 깨워야합니다 너무 불쌍하십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첫댓글 장로님~~~~~~!
감사합니다.
흐릿한 눈망울로 다 읽고 갑니다.
주님의 그크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장로님 댓글 때문에 다시 이글을 읽습니다
그날들이 생각나고
주님이 생각되어
저도 눈가에 호수가 생겼습니다
길가에 폐지 같은 나를
그렇게도 보듬어주시고 하나 하나 간섭하신 그 사랑
언제나 감동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서 누리는 위로와 평안
모두가 누릴 수 있오록 안타깝게 걸음을 채촉하시는
장로님의 사역에 늘 함께 하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히 다녀갑니다.
그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에
감동으로 살아가는게지요
부족한 글에 들꽃 선생님의 따스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서울대학병원은 생사를 넘나들던 사지였습니다
시험적 개복술이라는 듣도보도 못하는 병명으로 9시간의 대수술
그리고
기적의 삶과 하나님의 부르심
돌이키면 죄인을 향한 놀라운 은총이건만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살아계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 자리 찍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