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통치를 수용한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시 비교 - 한국문학의 정체성을 찾아서 -
* 김영수 1. 들어가는 말 2. 일본 식민 통치를 수용한 한국 시 3. 일본 식민 통치를 수용한 말레이시아 시 4.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면, 타민족의 식민 통치에 대해 그 것을 받아 드리는 피 식민 민족의 양태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양태를 대별하여 보면 수용과 저항으로 나눌 수 있겠다. 그리고 수용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수용과 소극적인 수용, 저항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저항과 소극적인 저항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한국과 말레이시아에 있어서도 이러한 수용과 저항이 있었음을 양국의 역사에서 우리들은 볼 수 있다. 즉 타민족의 식민통치에 직접적인 협력 제공을 통하여 반대급부적인 다양한 혜택을 피 식민자가 입을 경우 이를 적극적인 수용이라고 볼 수 있으며, 피 식민자로 전락한 상황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드리면서 그 체제에 적응하는 과정을 소극적인 수용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또한 저항에 있어서는 무력 등 물리적인 힘과 대중의 저항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수단과 매체를 이용하여 식민통치에 대해 끊임없이 대항하는 것을 적극적인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중에는 문학작품을 통한 저항도 포함될 수 있다. 한편 적극적인 저항의 중심에서 유리되어 간접적으로 참여한 양태를 소극적인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와는 완연하게 다른 식민통치를 경험하게 되는 피 식민자들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수용과정과 저항과정을 거치면서 식민통치를 경험하게 되는 데 문학인들 역시 그 경험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본다. 특히 자연과 사람을 관조하는 시인에게 있어 피 식민자로의 위치 전락은 식민통치에 대해 저항 아니면 수용 중 하나를 노래 부를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게 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KBS 국제방송 인도네시아어방송 팀장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에서는 35년여라는 장기간 동안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과 상대적으로 짧은 3년여라는 기간 동안 일본제국주의자들로부터 동일한 식민통치를 경험한 말레이시아에 있어서 그 기간 동안 두 나라의 시인들 작품 중에 그들이 어떻게 식민통치를 수용하고 동조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양국의 시 작품 중에 일본식민통치에 동조한 작품들을 임의로 선택하여 그 내용을 상호 비교했고 이러한 비교를 통해 한국과 말레이시아 시 문학역사를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2. 일본 식민통치를 수용한 한국 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5년여 동안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에 있어 많은 시인들은 식민통치에 대해 수용과 저항이라는 극단적으로 양분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러한 시 작업을 통해 치열한 저항정신을 고취한 시인들의 작품은 아직도 한국인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등을 들 수 있겠다.
한편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수용한 일단의 한국 시인들이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며 그들은 이러한 시 작업을 통해 개인의 구차한 안위를 유지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한국에 있어 194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친일적인 시 또는 소설 등 문학작품이 많이 발표가 되었으나 일제 식민통치 말기인 1940년도부터 1945년도까지 더욱 많은 친일작품이 발표되었다. 이러한 친일문학작품은 대부분이 ‘내선일체’, ‘황도사상’ 그리고 ‘대동아공영권 구축’을 지속적으로 고취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였고 특히 한국인에 대한 인력동원 즉 징병, 징집을 미화시키는 도구로서 이용되어졌다. 그 하나의 예로서 김동환의 “비울빈 하늘 위에 일장기”라는 시를 들 수 있겠다.
기쁘다 기쁘구나 오늘 이 날은 비울빈 하늘 위 일장기 날려 사백여 년 긴 치욕 피로 씻으니 태평양에 새날이 멀지 않구나
라고 일본이 필리핀을 무력 점령한 사실을 미화 시켰고 스페인의 영향을 4백여 년 받아 온 필리핀을 일본이 해방 시켰다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지금도 서정 시인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는 여류 시인 노천명은 “싱가폴 함락”에서라는 시에서
얼마나 기다렸던 아침이냐 동아민족은 다 같이 고대했던 날이나 오랜 압제 우리들의 쓰라린 추억이 다시 새롭다
일본의 태양이 한번 밝게 비치니 죄악의 몸뚱이를 어둠의 그늘 속으로 끌고 들어가며 신음하는 저 영미를 웃어줘라
라고 노래했다. 위의 친일적인 작품과 그가 남긴 대표적인 서정 노래인 ‘사슴’과 비교해 보면 한 시인의 노래가 시대 상황에 따라 어떻게 극단적으로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한국문학의 태두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이광수는 그의 시 “새해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성수 무강 하옵시고 황실이 안태 하시옵소서 문무백관이 심신 청정하여 멸사봉공의 충성을 효하고
출정 장병이 백전백승하여 2년에 적을 격멸하여지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하여 일본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태평양전쟁에 총알받이로 내 몰린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일본장병들의 무운을 빌고 있다.
주요한은 “첫 피”라는 작품에서 한국과 일본의 혈맹관계를 터놓고 노래하고 있다.
보아라 너들의 피 내 핏줄을 통해 여기 뿜는다 2천 3백만의 뜨거운 피가
1억의 피로 한 덩어리가 되는 처음의 피가 지금 내 핏줄에서 콸콸 솟는다.
또한 한국 문학계에 있어 비중 있는 여류문학인으로 아직도 평가되고 있는 모윤숙은 그의 시 “동방의 여인들”에서 대동아 건설의 기치 아래에서 전승을 기원하며 새 날을 맞이하는 감격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새 날 아래서 상 차려 즐기지 않겠습니다 입던 옷 그대로 먹던 밥 그대로 달가와 새 아침을 맞이하렵니다 ------- 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 우리는 새 날의 딸 동방의 여인입니다
한국 시 세계에서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정주는 한국인이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에 참가하여 전사한 마쓰이 히데오의 죽음을 그의 시 “마쓰이 오장 송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어 벌이는 고은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군함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른 우리의 하늘이여.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소위 ‘가미가제’라고 명명된 자폭항공기를 조정해서 미국 군함에 충돌, 사망한 한 한국인을 애도하고 있다.
한편 최남선, 김동인, 박영희 등 좁게는 한국문학계에서 넓게는 모든 한국인들로부터 아직까지 그 위상이 존중되고 있는 소설가들 역시 일제식민통치자들의 강요, 회유 또는 자발적인 문학창작을 통해 자국인인 한국인들에 대한 일제의 총력전 동원 선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작품의 대부분을 일본어로 저술하였으며 이를 통해 한국인들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친일 한국문학가들의 사상은 제국주의적 논리로 포장된 채 시로서 또는 소설로서 나타내게 되었다. 당시 일본 식민통치 시대 상황 아래에서 지식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친일 문인들의 이러한 행각은 피 식민지 아래에 있었던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크나 큰 공백감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친일문인들과는 다르게 강압적인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의 작품을 통해 치열한 저항 정신을 노래한 반일 한국시인의 시가 아직까지 한국인들이 애송하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한민족의 독립을 노래했고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원했다.
아직까지도 일제식민통치를 수용하고 동조한 친일 한국문인들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문학계는 과거 일제 식민통치에 대해 친일과 반일이라는 서로 다른 양면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는 한국의 문학계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 모두가 언젠가는 풀어내야 할 지난한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3. 일본 식민 통치를 수용한 말레이시아 시
일제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그들의 치하에 두게 되었으며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지역까지 하나로 묶어 공동의 통치 지역으로 관할하게 된다. 일제는 이를 통해 소위 “대동아공영권” 건설 정책 중 동남아지역의 완성을 획책하게 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제는 다양한 활자매체를 동원하여 현지인들에 대한 선전, 선동을 강화하게 된다.
특히 말레이시아에 있어서 위에 언급한 선전, 선동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기구는 잡지와 신문을 이용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서 ‘스망앗 아시아’ (Semangat Asia), '화자르 아시아‘ (Fajar Asia) 잡지 등과 신문인 '브리따 말라이’ (Berita Malai)를 들 수 있다. 당시 말레이시아 시인들의 작품은 이러한 활자매체를 통해 발표 되었다. 3년여에 걸친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창작된 말레이시아의 시들의 면모를 말레이시아 문예진흥청의 연구원 2명이 수집하여 1974년 책자로 발간된 자료에서 밝힌 105편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상기 105편의 시를 ‘까마루자만 압둘 가디르’ (Kamaruzzaman Abdul Kadir)는 다음과 같이 그 주제를 분류하였다. 즉 105편의 시중 80편의 시 주제를 ‘민족주의 고양’으로 대분류했으며 소주제로서 80편의 시를 다시 분류하였는데 그 중 15편을 ‘조국애의 함양’, 7편을 ‘민족의 운명’, 51편을 ‘투쟁의 열기’, 7편을 ‘민족의 선도’로 구분하였다. 위의 분류를 통해 우리들은 일제 식민통치기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창작된 시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으며 특히 그 주제를 통해 일제 식민통치와 직결되고 있는 이 80편의 시를 통해 말레이시아 시인들이 어떤 시각으로 일제를 바라보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들은 말레이시아인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또는 저항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 중 발표된 말레이시아 시 중, 주제를 민족주의로 잡은 시들 대부분이 친일의 성격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의 저항 시와 또는 말레이시아와 거의 같은 시기 동안 일제 식민통치를 받았던 인도네시아 저항 시 주제와 비교하면 매우 독특한 결과로 평가될 수 있다.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레이시아 시 대부분이 친일의 성격을 보이는 배경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다음과 같이 개괄적으로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첫째, 다 민족으로 이루어진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단일화되고 성숙한 민족주의의 토대를 한국과 인도네시아와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마련하지 못했고 둘째, 대다수의 말레이시아인들은 일제의 출현을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주는 구원자로서 인식하였으며 셋째, ‘아시아를 위한 아시아’를 주창한 일제를 통해 말레이시아인들은 나름대로의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함양되기를 희망했으며 넷째, 말레이시아에 대한 일제의 경제 침탈이 인도네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규모로 진행된 결과와 이슬람을 중심으로 한 종교 자유를 방임한 일제에 대해 말레이시아인들의 반일 감정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다섯째, 저항을 주제로 한 반일의 시가 말레이시아에서 나타나기에는 일제의 말레이시아 식민통치 기간이 한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짧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일제 식민통치기간 동안 친일 성격이 강한 말레이시아 시들이 창작되었으며 그 하나의 예로서 마수리 (Masuri)는 ‘브리따 말라이’를 통해 가장 많은 15편의 시를 발표하게 된다. 특히 그는 필명을 ‘마따하리’ (Matahari) 즉 ‘태양’이라고 칭했으며 그 필명의 배경으로서 우리들은 그가 일본의 국명에서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말한 105편의 시를 창작한 시인들의 작품은 대부분 쉬운 어휘를 사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쉽게 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시의 주제는 대부분 새로운 시대, 즉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말레이시아 젊은 세대들이 적극 동참하기를 권유하는 내용과 일본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중 몇 편의 예를 들면 ‘뿌뜨라 멀라까’ (Putera Melaka)는 '태양의 빛‘ (Sinaran Matahari)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이른 아침 태양은 멀라까 중심에 빛나고 거대한 멀라유 그리고 보물스러운 말라까를 위해 대동아공영을 위해 시간은 도래했다 나의 민족이여 하나로 뭉쳐 새로운 변화를 ‘ 맞이하자 일본을 등불 삼아
또한 ‘후싸이니 라팁’ (Hussaini Latiff)은 그의 시 ‘대동아공영을 위해’ (Lingkungan Kemakmuran Bersama di Asia Timur Raya)에서
이제야 동녘은 밝아온다 모든 세상만물을 밝히면서 대 동아 번영을 위한 하나의 상징으로 아시아의 청년들이여 일어나라 일어나 같이 힘써 일해보자 대동아공영을 위해 대 아시아의 젊은이들이여 모두 뭉쳐 일을 하자 대아시아 공영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의 일본왕국 그늘 아래에서 기쁘지 않은가 자 같이 일하자 대동아공영을 위해
한편 ‘마수리’ (Masuri)는 그의 시 ‘사꾸라 꽃’ (Bunga Sakura)에서
----------- 아침 해가 빛친다 아름답게 우리 마음을 빛친다
아! 장병들의 꽃, 사꾸라 무성하게 활짝 피어났구나
‘암살’ (Amsal)은 그의 시 ‘한밤의 묵상’ (Permenungan di Tengah Malam)에서
청소년들이여 주인을 맞이하자 우리 모두 마음을 합쳐 손을 내밀자 아시아를 이끄는 대 일본 주인을 따라 가자
라고 노래했다.
4. 나오는 말
지금까지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에 한국과 말레이시아 시인들이 창작한 친일 성격이 강한 몇 편의 시를 비교해 보았다. 이를 통해 양국의 시인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일제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며 식민통치 과정을 수용하고 미화했는지를 파악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통해 한국과 말레이시아 문학역사 중,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을 시인들은 무엇을 노래했는지를 알아보았다.
아직까지도 여러 분야에 걸쳐 서로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교류가 부족한 한국과 말레이시아 관계에 있어 과거 일제 식민통치를 받았던 공동의 경험은 두 나라간 문학에 있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받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제 식민통치라는 공동의 주제에 대해 두 나라의 문인들이 어떻게 인식했고 표현했는지를 파악하는 작업은 좁게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문학교류에 밑거름이 될 것이며 넓게는 양국의 제반 분야 협력 증진에 하나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동남아 지역문학의 중심에 있는 말레이시아와 극동 지역문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국 간에 비교문학의 교류라는 구체적인 문학연구 활동이 현실화 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특히 한국과 말레이시아 문학 작품의 비교, 연구는 한국문학 정체성을 찾는 일련의 노력에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발표 : 말레이시아 국립국어학회 (Dewan Bahasa dan Pustaka) 2002년 세미나,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 (2002년 8월 19일)
(말레이시아어 원문)
Perbandingan Puisi Korea dan Malaysia Pro Imperialis Jepang - Mencari Identitas Kesusasteraan Korea -
* Kim Young-soo
1. Pendahuluan
Apabila kami menengok kembali sejarah pada masa silam, menemukan pelbagai aksi bangsa yang akan dijajah terhadap proses penjajahan oleh bangsa lain. Aksi itu, dapat dibagi dua, secara garis besar, yakni 'penerimaan' dan 'protes'. Sementara itu, sifat penerimaan dan protes itu dapat dibagi dua sifat, yakni secara progresif dan secara pasif.
Di Korea dan Malaysia yang pernah dijajah oleh Imperialis Jepang pada masa silam, dalam sejarahnya, kami dapati aksi penerimaan atau aksi protes tersebut. Kami dapat mengevaluasi aksi seseorang yang menerima pelbagai prioritas dari penjajah sebagai imbalannya atas penyerahan bantuan dan dukungan secara langsung kepada penjajah, sebagai penerimaan progresif. Sedangkan, proses penyesuaian diri pada sistem penjajahan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Ketua Siaran Bahasa Indonesia, Radio Korea Internasional, KBS (Korean Broadcasting System)
bagaikan nasib dapat dikatakan penerimaan pasif. Sementara itu, protes dengan cara kekuatan fisik termasuk cara kekerasan dan pemanfaatan cara dan sarana termasuk kesusasteraan untuk membangkitkan semangat perjuangan masyarakat umum dapat dikatakan sebagai protes progresif. Selain itu, protes secara tidak langsung dapat digolongkan dalam sifat protes pasif.
Sebagaimana diketahui, masyarakat yang dijajah termasuk golongan sasterawan mulai mengalami penjajahan oleh bangsa lain yang mengakibatkan perubahan segala aspek drastis. Khususnya, penyair yang selalu memusatkan perhatiannya pada alam dan manusia, menghadapi jalan alternatif untuk menyanyi situasi penjajahan antara 'penerimaan' atau 'protes' terhadap penjajahan bangsa lain.
Dengan pandangan itu, dalam makalah ini, kami ingin mengemukakan keadaan penyair Korea dan Malaysia yang pernah dijajah oleh Imperialis Jepang masing-masing selama sekitar 35 tahun dan 3 tahun khususnya aksi penerimaan mereka yang dituangkan dalam puisi.
Untuk itu, kami memilih secara sepihak puisi Korea dan Malaysia pro Imperialis Jepang untuk membandingkan isi puisinya agar memberikan kesempatan untuk merenung kembali bersama-sama terhadap sejarah kesusasteraan kedua negara.
2. Puisi Korea Pro Imperialis Jepang
Selama dijajah oleh Imperialis Jepang mulai tahun 1910 hingga 1945 selama sekitar 35 tahun, sejumlah besar penyair Korea mau tidak mau berada dalam keadaan terpaksa antara 'penerimaan' atau 'protes' terhadap penjajahan Jepang. Dalam keadaan itu, penyair-penyair Korea, misalnya Han Yong-wun, Lee Yuk-sa, dan Yoon Dong-ju melaui penciptaan karya, berusaha keras untuk membangkitkan semangat patriotisme dan nasionalisme yang bertujuan mencapai kemerdekaan bangsa Korea dan puisi-puisi itu masih dilestarikan di dalam kalbu bangsa Korea.
Sementara itu, ada juga penyair Korea yang diterima penjajahan Imperialis Jepang secara progresif atau pasif untuk menyelamatkan diri di bawah naungan penjajahan Jepang. Sebelum tahun 1940, kami menjumpai beberapa karya sastera Korea pro Imperialis Jepang, termasuk puisi dan novel tetapi memasuki tahun 1940 hingga 1945, sasterawan Korea menciptakan lebih banyak lagi karyanya pro Imperialis Jepang. Karya-karya sastera serupa itu selalu menekankan arti penting antara lain penyebab penggabungan antara Korea dan Jepang, kebaktian terhadap kaisar Jepang dan pembentukan Kemakmuran Asia Timur Raya. Ditambah lagi, karya itu sering digunakan
sebagai alat propaganda untuk mengindahkan proses penyiksaan Imperialis Jepang termasuk pengumpulan calon tentara dan tenaga kerja Korea secara paksa. Sebagai salah satu contoh, dalam puisi berjudul 'Bendera Jepang di Bawah Langit Pilipina', penyair Korea, Kim Dong-hwan melantunkannya ;
Gembira, sangat gembira hari ini Mengibarkan bendera Jepang di bawah langit Berhasil mengucikan kesengsaraan empat ratus tahun lebih Tidak lama waktunya untuk membuka fajar baru laut Pasifik
Dalam puisi tersebut, penyair ingin mengindahkan invasi militer Jepang terhadap Pilipina dan memutarbalikkan fakta sejarah bangsa Pilipina yang mengalami pengaruh dari Spanyol dalam kurun waktu 400 tahun lebih. Sementara itu, Noh Chon-myong, serorang wanita Korea sebagai penyair lyricism yang terkenal, dalam puisinya 'Penaklukkan Singapura', melantunkannya ;
Berapa lama menanti-nanti pagi hari ini Seluruh bangsa Asia menunggu-nunggu hari ini Mengingatkan kembali kesengsaraan kita yang panjang di bawah Imperialis
Matahari Jepang sekiltas menerangi Seluruh kejahatan lenyap ke dalam kegelapan Sambil tertawa keluruhan Amerika dan Inggeris
Apabila membandingkan puisi tersebut dengan puisinya berjudul 'Rusa', salah satu puisi unggul yang berhasil menggambarkan lyricism dunia kesuasasteraan Korea, kami dapat menyadari perubahan wajah penyair secara drastis sesuai dengan situasi zaman masing-masing.
Lee Kwang-su, yang dianggap tokoh utama yang dapat mewakili kesusasteraan modern Korea , dalam karyanya 'Doa Tahun Baru' mengungkapkan ;
Semoga panjang umur Semoga sehat walafiat kekaisaran Jepang Seluruh kaki tangannya tetap setia dan berbakti
Seluruh serdadu pasti seribu kali menang Menghancurkan musuh dalam waktu dua tahun
Dalam puisi itu, Lee Kwang-su menyampaikan doa yang mengharapkan kemakmuran kekaisaran Jepang dan mengindahkan perjuangan serdadu Imperialis Jepang termasuk pemuda Korea.
Dalam puisi berjudul 'Darah pertama', Ju Yo-han menyanyi hubungan darah antara Korea dan Jepang sebagai berikut ;
Lihatlah Darah mu Melalui nadi Dipancurkannya Darah panas 23 juta jiwa Menjadi darah 100 juta jiwa Bergabung Darah pertama Kini dipancurkan melalui nadi ku
Selain itu, Mo Yoon-suk, seorang sasterawati Korea yang berbobot dalam puisinya 'Wanita Asia Timur' menyongsong kemenangan mutlak Imperialis Jepang dan perwujudan pembangunan Asia Timur Raya.
Meskipun tibanya hari baru Tidak ingin menghidangkan makanan Biarkan baju Biarkan nasi Hanya menyongsong fajar baru --------- lupa mengenakan rok bagus Tidak berdandan Berusaha membangun bukit baru, yakni Asia Timur Raya Kini, terlepas dari segala perhiasan dan kebahagiaan Bebas Lepas
-------------- Kita adalah perempuan baru Wanita Asia Timur Raya
Di dunia puisi Korea, kami berjumpa seorang penyair bernama Soh Jong-ju yang berbakat. Dalam puisinya 'Balada Prajurit Matsui', dia ikut berduka cita ;
--------------- Anda, dengan tubuh sendiri, terbang dan terjun Bagaikan mekarnya sekumtum bunga yang indah Dengan senang hati, terjun Pecahlah kapal perang Amerika --------------- bangga, sangat bangga Ah! prajurit kita, Matsui Hideo Anda mengharumkan tanah air, semenanjung Korea Langit pun semakin membiru
Dalam puisi itu, So Jong-ju meratapi kematian seroang pemuda Korea yang diangkat sebagai pilot 'Kamigaje', setelah dia menubrukkan diri pada kapal perang Amerika bagaikan bom bunuh diri.
Sementara itu, pengarang novel Korea, misalnya Choi Nam-sun, Kim Dong-in dan Park Young-hee yang tetap dihormati oleh bangsa Korea, mau tidak mau ikut serta dalam proses persiapan perang total oleh Imperialis Jepang. Mereka menggunakan bahasa Jepang waktu menciptakan karyanya yang mengakibatkan goncangan fondasi identitas bangsa Korea. Ideologi mereka pro Imperialis Jepang dilandasi teori imperialisme dan dituangkannya dalam puisi atau novelnya. Pri laku sasterawan Korea tersebut, yang dianggap golongan elite mengakibatkan penderitaan atau kevakuman semangat bagi bangsa Korea lainnya.
Namun demikian, ada juga penyair-penyair Korea yang menentang keras melalui puisi terhadap penjajahan Jepang seraya membangkitkan semangat kontra Jepang dan puisi itu hingga kini masih dilantunkan oleh sejumlah besar bangsa Korea. Dalam puisi itu, mereka senantiasa berdoa untuk segera mewujudkan kemerdekaan dan pembebasan bangsa Korea dari penjajahan Jepang.
Tetapi, dalam kenyataan, evaluasi secara historis kesusasteraan terhadap sasterawan Korea pro Imperialis Jepang belum terealisasikan. Oleh karenanya, dunia kesuasasteraan
Korea mau tidak mau memiliki dua dimensi, yakni pro dan kontra terhadap Imperialis Jepang pada masa silam. Hal ini merupakan salah satu beban berat bagi kesusasteraan Korea yang harus dituntaskan terlebih dahulu.
3. Puisi Malaysia Pro Imperialis Jepang
Imperialis Jepang berhasil merebut teritorial baik Malaysia maupun Singapura mulai tahun 1942 hingga 1945 bersama dengan penggabungan wilayah Sumatera sebagai satu zona yang dijajah. Melalui hal itu, Jepang mencoba penyempurnaan kebijakan apa yang dinamakan 'Kemakmuran Asia Timur Jaya' atau 'Asia untuk Asia'. Untuk itu, Jepang dengan sengaja menggunakan pelbagai media cetak setempat untuk membujuk dan mempropagandakan kepentingan mereka.
Untuk itu, di Malaysia, Imperialis Jepang memanfaatkan media cetak setempat, misalnya, majalah 'Semangat Asia', 'Fajar Asia' dan harian 'Berita Malai' sebagai alat propaganda mereka. Secara alami, puisi-puisi Malaysia pada waktu itu dimuat dalam media cetak itu.
Kami bisa menjumpai 105 buah karya puisi Malaysia yang diciptakan selama masa penjajahan Imperialis Jepang berkat ada usaha 2 orang petugas Dewan Bahasa dan Pustaka Malaysia untuk mengumpulkan dan meterbitkannya pada tahun 1974 lalu.
Kamaruzzaman Abdul Kadir pernah meneliti 105 puisi itu dan membagikan temanya masing-masing. Menurut penelitian, 80 dari 105, puisi bertema 'pembangkitan nasionalisme'. Tema pembangkitan nansionalisme itu dapat dibagi lagi sesuai dengan sub-tema, yakni 15 buah untuk cinta tanah air, 7 buah untuk nasib bangsa, 51 buah untuk semangat perjuangan dan 7 buah untuk pemimpin nasionalis.
Melaui evalaluasi tersebut, kami dapat memahami tema puisi Malaysia pada masa Imperialis Jepang serta menyadari cara pandang penyair Malaysia terhadap penjajahan, termasuk 'penerimaan' atau 'protes'.
Setelah membaca puisi-puisi itu, kami juga menyadari sejumlah besar puisi Malaysia pada waktu itu tetap berbau pro Imperialis Jepang. Kecenderungan serupa ini sangat berlainan dengan keadaan puisi baik Korea maupun Indonesia yang diciptakan pada masa Imperialis Jepang.
Mengenai latar belakang puisi Malaysia pro Imperialis Jepang kami dapat menyimpulkan penyebabnya sebagai berikut ; Pertama, bangsa Malaysia yang terdiri atas multi-nasional, relatif belum sanggup untuk menyempurnakan landasan nasionalismenya selama masa penjajahan Inggeris dibandingkan dengan perkembangan nasionalisme baik Korea maupun Indonesia.
Kedua, sejumlah besar masyarakat Malaysia menganggap kedatangan Imperialis Jepang ke Malaysia, sebagai juru selamat untuk mewujudkan pembebasan bangsa Malaysia.
Ketiga, bangsa Malaysia ingin mengembangkan nasionalisme secara mandiri atas keharian Imperialis Jepang yang selalu mempropagandakan motto 'Asia untuk Asia'.
Keempat, Penyitaan Jepang terhadap kekayaan milik bangsa Malaysia tidak seketat di Indonesia dan sikap Jepang yang membiarkan kehidupan keagamaan bangsa Malaysia mengakibakan relatif rendahnya emosi anti Jepang.
Kelima, kurun waktu Malaysia yang dijajah oleh Jepang, relatif singkat daripada Korea, mengakibatkan belum matangnya waktu untuk menciptakan puisi anti Imperialis Jepang.
Berdasarkan alasan tersebut, penyair Malaysia mau tidak mau melantunkan lagunya yang berbau pro Imperialis Jepang. Sebagai contoh, melalui harian 'Berita Malai', Masuri mendeklamasikan 15 buah puisi yang cenderung pada Imperialis Jepang. Dia menggunakan julukan 'Matahari' yang langsung diambil dari arti nama negara Jepang.
Para penyair Malaysia pro Imperialis Jepang menggunakan kata-kata yang mudah dimengerti agar membantu pengertian pembacanya. Sebagian besar tema puisi pada waktu itu, memusatkan perhatiannya terhadap 'pembukaan era baru', pembentukan Kemakmuran Asia Timur Raya', dan 'pujian terhadap Imperialis Jepang'.
Putera Melaka dalam puisinya berjudul 'Sinaran Matahari' memaparkan ;
Sinaran matahari Sudahlah menyinari Di waktu pagi Di Melaka jati
Untuk Melayu Raya! Oh, Melaka Negeri pusaka Inilah ketika Menunjukkan baka Kepada Asia Raya!
Kaum bangsaku Silalah bersatu Hendaklah dituju Perubahan baru Di bawah anjuran pemerintahan Nippon!
Sementara itu, Hussaini Latiff dalam nyanyian berjudul 'Lingkungan Kemakmuran Bersama di Asia Timur Raya' ;
Di langit Timur cahaya terbentang Menyinari alam seluruhnya Tanda kemakmuran sudah datang Bagi semua umat Asia Raya
Bangunlah, bangunlah pemuda Asia Marilah, marilah kita bekerja Mencapai kemakmuran Asia Raya
Wahai putera-puteri Asia Raya Bersatulah kamu dalam bekerja Di bawah kerajaan Nippon kita Bagi pembinaan kemakmuran Asia Jaya
Gembira, gembira kita semua Marilah, marilah kita bekerja Mencapai kemakmuran Asia Raya
Selain itu, Masuri dalam puisi 'Bunga Sakura' menggambarkan ;
----------------- Disinari matahari pagi Indah berseri menawan hati Ah! bunga Sakura pujaan perwira Berkembang semerbak ke mana-mana
Amsal dalam puisi 'Permenungan di Tengah Malam' ;
Pemuda pemudi insaflah tuan! Bersatu hati berpimpin tangan Dai Nippon pemimpin Asia sekalian Marilah kita ikut, ditiru dan ditauladan
4. Penutup
Hingga kini kami mencermati beberapa puisi pro Imperialis Jepang yang diciptakan selama masa penjajahan Jepang di Korea dan Malaysia sambil membandingkan isinya. Melalui penelitian ini, kami dapat menyadari pandangan penyair kedua negara terhadap penjajahan Jepang untuk menerimanya atau mengindahkannya. Dengan hal itulah, kami dapat memahami nada irama nyanyian penyair kedua negara pada masa kegelapan kesusasteraannya.
Hubungan kerjasama di segala bidang antara Malaysia dan Korea akhir-akhir ini nampaknya belum aktif bila dibandingkan dengan hubungannya dengan negara-negara lain. Oleh karenanya, pembagian dan penelitian bersama terhadap pengalaman yang sama pada masa silam, misalnya dijajah oleh bangsa Jepang, antara kedua negara khususnya di dunia kesusasteraan dapat dijadikan suatu jembatan baik untuk meningkatkan dan menyebarluaskan pengertian satu sama lain.
Khususnya, pekerjaan yang meneliti kesadaran dan ekpresi sasterawan Korea dan Malaysia terhadap penjajahan Jepang akan menjadi landasan kokoh untuk mengaktifkan pertukaran karya sastera kedua negara khususnya, dan meningkatkan hubungan kerjasama bilateral di segala aspek pada umumnya.
Melalui usaha tersebut, yakni studi banding terhadap karya sastera antara Malaysia dan Korea, kita dapat mewujudkan pengaktifan pertukaran kesusasteraan bilateral, yakni Malaysia sebagai poros kesusasteraan di wilayah Asia Tenggara dan Korea Selatan sebagai salah satu pusat kesusasteraan di wilayah Asia Timur Laut. Dan usaha sedemikian itu, dapat diwujudkan sebagai salah satu cara untuk menegakkan identitas kesusastera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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