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이 막둥이고 애들이 모두 일곱이에요 다 대학 나와 잘 사니 감사하지요. 저 같은 게 뭐 아는 게 있어요. 머리에 임이고 안 해 본 일 안 해 본 장사 없이 다하며 서울 변두리에서 살았지요. 아니 도망치듯 살았지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해요. 마흔둘에 남편 보내고 이제 여든셋이요. 시집 안 간 딸이 둘인데 하나는 좋은 회사 다니다 사진 한다고 나왔고 하나는 홍대 미대 나왔는데 시집을 안 간 데니 어쩌겠어요. 오십이 넘었는데……. 버스를 타고 '하나님 이제 데려가셔도 돼요' 했는데 환상을 보았어요. 천사 둘이 흰옷을 입고 새처럼 벌린 내 팔을 잡고 날아올라서 하늘로 올라갔어요. 주변에도 나처럼 많은 사람이 올라가고요.“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이신 줄 알았는데 말씀을 조곤조곤 잘도 하셨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나를 보고 기도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 저 양반 병이 다 나아서 병원에 다시는 오지 말게 해주세요.” 기도하시는 자그맣고 쪼골쪼골한 할머니의 얼굴이 천사만 같아 부지불식간에 눈뜨고 ‘아멘’ 했다.
옆에 있던 할배가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누운 애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유. 집사람도 아프고 나도 아파요. 그러니 어떡하겠시유? 내가 병구완해야지 나도 옛날에 여기서 큰 수술을 받았시유. 어디 풍파 없는 삶이 있겠시유? 지가 젊었을 때는 대단했시유. 키가 백칠십구고 몸무게가 백육십이 넘었는데, 앉은 자리서 고기 열 근을 먹었지유. 소 장수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땅도 많이 샀어유. 그런데 사기꾼한테 속아 돼지고기 장사를 하다 다 털어먹었지요. 아직 산이랑 논은 좀 있지만유. 교회요? 온 가족이 사십 년 전에 한동안 다녔지유. 근데 우리가 초라해 보였던지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박대하는 것 같데요. 그때부터는 집에서 매일 혼자 기도하면서 살아왔시유.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들도 차별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시유.”
한 눈에도 젊었을 때 힘깨나 썼을 덩치의 얼굴이 검은 일흔은 벌써 넘어 보이는 할배였다.
“적으신 것 이리 주셔유. 제가 그 교회에 꼭 찾아 갈께유.”
내가 인타넷에서 검색하여 적어 드린 그 분 동네에 있는 교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였다.
“꼭 그러세요”
문득, 나는 보았다. 두 눈에 가득 측은의 눈물을 담고 저 늙은 할매, 할배를 내려다보고 계신 이가 있으심을......
* 8년전 서울대 병원 4501호 실에 입원하였을 때 쓴 글을 올려봅니다. 그런데 이제 읽어보니 이상합니다. 할머니는 분명히 마흔둘에 남편은 저 세상에 보냈다고 했는데 제 기억에는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말한 것으로 써있으니 말 입니다.
아마 피를 많이 쏟고 전혀 먹지를 못해 서 있기도 힘들던 때라 정신이 오락가락했는지, 글마저 이상하게 쓴 것 같습니다. 혹시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생각하고 쓴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글에는 제 맘이 담겼던 것 같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