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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가인(歌人) 웅산
가끔 레코드 숍에 가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여기 진열되어 있는 대부분의 연주들이 1950~70년대의 것들로 채워져있다. 모두 과거형의 녹음들이다. 어차피 녹음이란게 저장 맻에 담겨지는 순간 과거형이 되어버리지만, 이건 좀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재즈는 심각해서, 아직도 마을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등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재즈 자이언트니 레전드니 하면서 칭송하고, 필자 역시 이들의 음바을 신주 모시듯 간직하고 있지만,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만일, 1960년대에 필자가 젊은 날을 보냈따면, 음반 콜렉터로서 꽤나 행복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비틀즈나 스톤즈나 마일스의 신보를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렌 굴드도 있고, 켐프나 아라우도 만날 수 있따. 번스타인과 카라얀도 정정했따. 그러나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타임 머신을 타고 가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꼭 음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집에서 CD나 LP로 들은 음악을 직접 공연장에 가서 보는 재미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마을시느 비틀즈가 좋아도, 그들을 무덤에서 끄집어내서 연주하라고 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음반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지금, 그래도 제대로 된 음악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뮤지션의 존재가 귀정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웅산이라는 뮤지션과의 만남은 꽤나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6션 전인 2002년 겨울, 모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님과 술 한 잔 하다가 꼭 이 가수의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면 끌려간 곳이 청담동에 있떤 <야누스>, 원래 클래식을 즐겨하고, 술에 취하면 영시를 흥얼거리는 인텔리 중의 인텔리인 교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가수가 대체 누구인가 궁금해서 갔다가, 이내 필자도 포로가 되고 말았따.
당차고 다이나믹한 음성도 음성이지만, 속삭일 땐 속삭일 줄 알고, 내리깔 땐 내리깔 줄도 아는 기교도 아울러 갖고 있었다. 무대 위에 섰을 때의 포스도 대단해서, 참 멋진 여가수가 출현했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듬해에 홀연히 혼자 뉴욕에 날아가더니 베니 그린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Love Letter> 사실 별로 녹음 경험이 없는 신인이 처음부터 재즈의 수도이자 난다긴다 하는 고수들이 즐비한 뉴욕에 홀몸으로 들어가 이런 음바을 낸다는 발상 자체는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백이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녹음의 퀄리티도 뛰어나서 필자가 오디오 평을 쓰거나 할 때 한동안 레퍼런스 음반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어서 직접 작사 작곡도 하고, 프로듀서도 하면서 자신의 밴드를 운용하는 위치에 이를 만큼. 지난 6년간 그녀가 보여준 성장과 발전은 눈부실 지경이다. 그에따라 2년 터울로 <The Blues> <Yesterday> 등의 음반이 차례로 나왔다. 점차 대준의 시선을 사로잡아, 특히 3집은 꽤 판매량이 높았다고 한다. 거의 꺼져가는 한국 재즈의 불씨를 그녀가 혼자 고군분투하며 끌어안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재즈 평론을 하는 필자 입장에선 상당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글도 록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재즈를 하는 덕분에 다양한 형태의 음악에 열려있는 마음이 느껴져, 2년에 한 번씩 그녀의 신보를 받아보는 재미는 일종의 행사가 되었다. 과연 이번 음반에선 어떻게 변시을 했을까 혹은 어떤 시도를 했을까, 여간 궁금하지 않았고 또 듣고 나면 높은 만족도도 주었다.
그런 차에 , 이번에는 1년만에 4집을 낸다고 연락이 왔다. 직접 라이너 노트까지 쓰라고한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었지만, 그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으르도 큰 기쁨이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따. 그리고 이제 막 마스터링이 끝난 따끈따끈한 CD를 받아 감상에 임했다. 스피커 사이에 나른한 긴장감이 느껴진 것도 꽤 오랜만의 일이다. 일서 과거의 명반만 찾아 헤매는 애호가들이 딱한 것이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이런 시나는 이벤트를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첫 트랙 <Feel Like Making Love>를 듣자 갑자기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두 개의 스피커 사이의 공간이 확 부풀면서 자연스럽게 악단이 눈에 잡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홀연히 그녀가 등장해 조용히 속삭이듯 노래를 시작한다. 녹음의 퀄리티나 밴드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3집에서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보컬을 들려줬다.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박수가 나왔다. 마치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아졌따.
본 앨범에는 총 13곡이 수록되어있따. 이중 제일 마지막 곡은 일종의 보너스 트랙으로, 진작의 히트곡 <Yesterday>를 이번에는 피아노 트리오 반주로 바꿔서 부르고 있다. 매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주에 다소 힘을 뺀 근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보너스 트랙이란 일종의 공짜인데. 공짜라 보기엔 황송할 정도다.
그럼 총 12곡이 신곡인 셈이고 , 이를 나눠보니 스탠다드 재즈부터 블루스. 가요, 팝스 등 다양한 장르가 망라되어 있다. 물론 기본은 재즈이고, 이런 다양한 소재를 웅산식 재즈로 요리한 것이다. 식성도 좋지만, 소화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본 앨범의 재미라고 하면, 역시 한일 양국의 자존심 대결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본 앨범의 세션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이뤄져 있는데, 하느는 일본 뮤지션들과 일본에서 한 녹음이고 , 또 하나는 한국인들과 한 녹음이다. 이를 정확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일본녹음
녹음일자 : 2008년 6월 22 ~ 23일
녹음장소 : 도쿄 사운드 시티
뮤지션 : Shinji Akita(p) , Daiki Yasukagawa(b), Ryo Ogihara(g), Hisatsugu Suzuki(ss,ts), Hidenbu, 'KALTA'Otsuki(da)
수록곡 : <Feel Like Making Love> <My Heart Belongs to Daddy> <The Days of Wine & Roses> <Sweet Georgia Browm> <Baby, Won't You Please Come Home> <It Had to Be You> <Tell Me all about it> <Yesterday>
이 녹음에서 재미있는 것은, 가와사키라는 엔지니어의 존재다. 일본에서 톱 랭크로 인정받는 분으로, 수차례 최우수 녹음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따고 하다. 이번 세션에 대한 정보를 듣고, 뮤지션들의 라인 업을 확인하더니 자청해서 일을 맡았다. 덕분에 저렴하게 그 분의 솜씨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2) 한국녹음
녹음일자 : 2008년 7월 11~13일
녹음장소 : 서울 예음 및 쿠 스튜디오
뮤지션 : 박철우(ds) 최우준(g) 성기문(p) 오정택(b) 김정균(p)
수록곡 : <Don't Cry> <On a sunny Day> <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It Was You> <미소를 띄우며>
이 녹음에서 눈여결 볼 대목은 바로 웅산 밴드의 존재감.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함께 녹음하고 또 공연한 티가 잘 난다.
재즈뿐 아니라 록이며 가요를 수준 높은 연주로 승화시키고 있다.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연주인들이 가득해서 이래저래 귀가 즐겁다.
필자는 재즈뿐 아니라 오디오 평론도 하는 입장이고, 최근에는 이쪽 일을 많이 한 터라 녹음의 퀄리티나 상태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적 풍토와 음악적 배경을 가진 양국의 뮤지션들과 녹음 엔지니어가 동원된 음반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흥미로운 다큐멘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두 세션의 차이를 발견하거나 꼬집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물이 역시 한일 양국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해서 슬며시 미소가 나온다. 아무래도 일본쪽이 세련되고, 잘 조율된 음이라면, 한국쪽은 좀 거칠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결국 웅산이라는 가수 안에 이런 두가지 요소가 잘 섞여 있다고 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그녀는 <Don't Cry> 를 직접 작사 작곡했따. 워낙 재주가 많고, 감성이 풍부한 친구인지라, 그간 간간이 자신의 곡을 앨범에 넣곤 했는데, 이번에는 딱 한 곡만 수록했다. 그러나 이 곡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난다. 사랑과 실연에 관한 이야기로, 조금은 자조적인 뉘앙스가 풍겨 있지만, 전체적으로 눈물을 그치고 다시 일어서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혹시나 싶어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것이냐 물었더니 그녀는 그냥 씩 웃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팬들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네 곡의 스탠다드 넘버에서 웅산이 확실히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지 않았나 싶다. 일례로 <My Heart Belongs to Daddy> 는 빠른 박자에 쉽지 않은 멜로디인데도 상당히 여유있게 발성한다. 리듬에 치여 쫓기는 기색이 전혀 없다.
<The Days of Wine & Roses> 는 약간 템포를 늦추고, 관능미를 적절히 섞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이쪽의 편곡도 괜찮다. 원곡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런 해석도 나름대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It Had to Be You> 에서의 가벼운 웃음은 위트 만점, 재즈라고 하면 그냥 딱딱하고 진지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기본적으로 파티 음악이다. 다양한 형태의 파티에서 기원을 두고있다.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노래하는 재미도 있는 것이다.
한 때 그녀는 대단한 기세로 포효했던 록 뮤지션이었따. 그 피를 속일 수 없는 듯, 약간은 뜬금없게 퀸의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를 삽입했따.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ㅏ프레디 머큐리 식으로 부를 리가 없다. 역시 적절히 그루비한 리듬을 살려 멋지게 편곡해놨다. 만일 제목을 보지 않고 듣는다면 다른 곡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리라.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면 <Baby , Won't You Please Come Home> 을 들 수 있다. 기본저그로 블루스인데 여기서 그녀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고 있다. 블루스의 처연함과 나른함 리듬을 바탕으로, 맛깔 난 보컬로 다듬고 있다. 사려깊고, 따스한 노래다. 몇 번이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최근의 웅산을 보면 행보가 심상치 않다. 전속을 포니 캐넌으로 옮기면서, 일본에서는 메이저 스타급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고야의 블루 노트와 오사카의 빌보드 무대에도 섰고,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도 일본 못지 않은 재즈 팬과 층이 있었다면, 그녀의 존재감은 훨씬 이전부터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 점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최근에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최우수 앨범상과 보컬상도 받았고, 재즈피플 및 벅스 뮤직이 주관하는 음악상에서도 독자들이 뽑은 최우수 보컬상을 획득했따.
정말로 뛰어난 재능과 솜씨를 갖고 있다면, 아무리 감추려해도 결국에는 드러나는 법이다. 최근의 그녀에겐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번 4집 앨범을 계기로 보다 많은 팬들이 그녀의 존재를 인식해서 호응했으면 싶다. 그간 분투한 그녀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재즈평론가 이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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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뭐 내용이 있는건가요. 저는 않보여요
수정중입니다.. 시간이 많이 있지 않아서 올리느라고요.. 죄송해요
글 잘 읽고 느낀것이 많아요 저도 나름데로 홈오디오마니아 인데 테스트 음반으로도 훌륭하다고 자평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