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성차별하는 경찰은 국민을 지킬 수 없다
: 서울성동경찰서 성차별 사건 징계 촉구 기자회견
박OO 경위(이하 박경위)는 16년차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경찰이라는 이유로 상관인 전 금호파출소장의 점심식사에 동석하여 파출소장의 식사를 ‘챙겼다’. 파출소장은 개인적인 업무나, 취미생활에도 끈질기게 동행을 요구했고, 지역 유지를 만나는 사적인 식사 자리에도 동석을 요구했다. 박경위가 이를 거절하면 다른 ‘여경’에게 동석을 요구했다. 파출소장 요구로 만난 80대 지역 유지 이모씨는 박경위에게 “‘파출소장 비서’가 과일 한번 깎아보라” “500만원 주고 승진 시켜주겠다”는 발언을 일삼고, 박경위를 강제로 끌어안는 추행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개입할 책임이 있는 관리감독자 파출소장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이모씨와 사진을 찍으라 하고, “(개인)전화번호를 알려드려라”며 부추기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박경위는 소속 성동경찰서 청문감사실에 파출소장의 문제행동을 진정하고 조직에 해결을 호소했다.
문제제기 이후 박경위의 고통은 더욱 심각해졌다. 파출소장과 1미터 거리에서 일하는 것을 견딜 수 없던 박경위는 감사실에 분리조치를 요구했으나 진정 한 달이 지난 뒤에야 겨우 얼굴을 가릴 정도의 파티션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병가를 쓸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파출소장은 버젓이 출근하며 박경위의 흠집을 찾기 위해 파출소 내 CCTV를 불법적으로 열람하고, 동료 직원에게 허위 진술을 지시하여 박경위를 상대로 역진정을 제기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제제기 이후 경찰 동료들은 ‘파출소장님이 박경위를 너무 믿었다’, ‘(병가 다녀와서) 얼굴만 좋네’, ‘계속 문제 만들면 너만 어려워질 거다’ 등의 말로 지속적으로 박경위를 괴롭혔다. 아직도 5만 명 경찰 내부 구성원이 볼 수 있는 사내 웹게시판에는 박경위가 ‘을질’로 파출소장을 괴롭히고 있다는 2차 피해를 야기하는 발언이 난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이 박경위 한 개인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물리력 행사=남성”이라는 경찰 스스로 만들어온 도식 속에서 경찰 조직은 전통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고, 직군별 성별 분리, 조직 내 성차별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경찰은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를 발족하여 ‘경찰 조직 내 성평등 제고방안’을 권고하였다. 이를 집행하기 위한 전담 부서로 성평등 정책 담당관실 설치, 성평등위원회 출범, 성평등 기본계획과 이행점검 등 조직 내 성평등 제고를 위한 유의미한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아직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받은 익명 제보에 따르면 아직도 조직 내 성희롱, 성차별로 고통 받는 여성경찰이 다수 존재한다.
- “오빠라고 한 번만 불러주면 소원이 없겠다” “은근 글래머다” 등 성희롱 발언
- (회식자리에서 동료 남경에게 서로 잘 해보라며) “경찰부부가 생활하기 좋다, 사고 한번 치고 양 손에 한우, 홍삼 사들고 찾아가라” 등 성희롱 발언
- 체포술을 가르쳐준다며, 팔과 어깨를 주무르는 (체포술과 전혀 무관한) 신체 접촉
- 출산 후 돌아오니 ‘애기 엄마니까 이제 이런 얘기 편하게 해도 되지?’ 라며 여성 신체와 출산에 대한 불쾌감을 주는 언동을 반복함
- “여성 경찰관은 야간근무를 안하려고 한다” “육아휴직 그렇게 여러 번 다녀오고 남자 경찰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등 성차별 발언
이밖에도 경찰청이 발표한 ‘2020 성희롱 고충 실태조사’를 보면 경찰청 소속 여성 직원 3명 중 1명은 경찰 내부에서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여성경찰의 55.5%가 ‘주요 핵심업무는 특정 성별이 담당한다’고 응답했고 43.6%가 ‘여성 직원과 일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응답, 55%가 ‘성차별이나 성희롱 고충을 제기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 27.3%가 ‘차 심부름 등을 여성 직원에게 시키는 경향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여전히 경찰 조직 안에서 ‘여자경찰’은 성적 대상, 혹은 핵심 업무에서 배제된 대상, 동등하게 일을 함께 하기에는 불편한 대상이다. 여성경찰은 스스로 조직 내에서 배제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조직 내의 위태로운 위치 때문에 조직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워 문제제기 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조직문화는 한 조직의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 신념, 이념과 관습, 규범과 전통, 행동양식 등을 총칭한다. 또한 조직의 목적, 계획, 조직 내 의사소통, 조직구조, 배치, 승진, 비전 등 조직과 조직 구성원 제반행동에 관한 방향과 근거를 제공한다. 즉 조직문화는 바로 그 조직을 말해주며, 조직 구성원의 근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박경위가 경험한 성차별과 성희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잘못된 해결과정은 경찰의 조직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여경에게 ‘과일 한번 깎아보라’는 언행이 아무런 제지 없이 방치되고, 조직 내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용기 내어 문제제기 했을 때 동료들은 가해자 비호에 급급하여 사건을 무마시키려한 것, 감찰 진행 상황을 악의적으로 피해 당사자에게 공유하지 않아 피해자를 고립시키려 한 것, 본청까지 가져와 엄중하게 조사하겠다고 한 사건을 단순히 파출소장의 혐의만을 협소하게 인정하여 마무리 한 것, 조직의 이 모든 결정은 절대 박경위 혼자만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최초 사건이 발생한 금호 파출소 경찰과 이를 감찰한 성동경찰서, 서울청, 본청 경찰, 그리고 이제는 경찰 사내 웹게시판을 통해 사건을 접한 5만 명의 경찰이 공유하는 사건이 되어 경찰의 조직문화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조직이 누구를 지키고,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며 앞으로 경찰 조직문화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갑질’ 경찰을 비호하여 형식적 징계로 마무리 한다거나 박경위가 겪고 있는 2차피해를 단지 ‘관련 규정 없음’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계속되는 경찰 내 성차별적 조직문화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의 인식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스스로 겪는 부당한 대우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역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몇 년 사이 크게 성장하였고 성희롱과 2차피해에 대한 이해 역시 점점 예리해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기대에 경찰 조직이 응하지 못한다면 경찰은 스스로 도태되는 선택을 거듭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10월 18일, 본 사건에 대한 경찰청 결과가 통지되었다. 그러나 ‘파출소장의 갑질을 인정하고 서울청에 징계할 것’을 제외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어려움을 가중시켰던 ‘서울청 감찰 조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행위자에 대한 경징계’, ‘가·피해자 간 분리조치 미흡 및 명예훼손 등 2차피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한계가 확인되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경찰청은 서울청이 적극적으로 징계절차와 결정을 통해 가해 행위를 엄단하고, 피해회복에 힘쓰는지 끝까지 확인하고 점검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2. 어렵게 용기 낸 피해자의 문제제기에 부적절한 언행과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통해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정신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등 2차피해를 야기한 감찰 부서 관계자와 동료들의 언행을 엄중하게 재조사하라.
3. 약자의 위치에서 용기 내 문제제기한 피해자에게 보호조치란 가해자와의 실질적 분리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겨우 얼굴을 가릴 정도의 파티션’을 분리조치를 인정한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경찰청은 형식적인 분리조치로 인해 2차피해가 지속되도록 방치하였던 서울 성동서에 대해 재조사하라.
4. 본 사건을 통해 확인된 경찰 내 여경에 대한 성차별/성희롱 사건을 적극 기획 감찰하고,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및 조직 내 성인지 감수성 교육 강화하라.
성차별하는 경찰은 국민을 지킬 수 없다. 우리는 경찰청과 서울청이 본 사건 해결을 통해 경찰 내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성찰하고 개선하는지, 어떻게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조력하는지 피해자와 연대하여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그리하여 박경위의 안전하고 성평등한 일터로의 복귀를 관철할 것이다.
2023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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