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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8권[3]
[본인 화상] 本仁
동산洞山의 법을 이었고, 고안현高安縣에서 살았다. 선사가 처음에는 절서浙西에서 머물렀는데, 잠깐 사이에 법석이 가득해졌다. 나중에 대중을 피해 제방으로 행각行脚하면서 현묘한 말씀을 속으로 숨겼으나 참도들은 가는 곳마다 뒤를 따랐다. 천복天復 연간에 고안현高安縣의 백수선원白水禪院에서 몇 해를 지내는 동안 대중이 2백 혹은 3백에 이르렀다.
경청鏡淸이 행각하다가 선사에게 이르렀는데,
선사가 물었다.
“날씨가 매우 춥구나. 도자道者여.”
“그렇습니다.”
“깔고 덮고 할 것은 있는가?”
“설사 있어도 펼 재주가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물방울이 얼음 방울로 변한다 하더라도 다른 것과는 상관이 없다.”
“방울 물이 얼음이 되어도 서로 넘나들지 않습니까?”
“그러하니라.”
“이 사람의 뜻이 어떠합니까?”
“이 사람은 뜻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 사람이 뜻에 떨어지지 않았단 말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높은 산마루 위에서 그대와 겨룰 이가 없구나.”
홍주洪州 서산西山의 여러 행자들이 와서 물었다.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스님의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들 모두 가르침을 구하는가?”
“그렇습니다.”
“나더러 분부해 달라 하는데, 누가 받겠는가?”
선사가 열반에 들 즈음에 먼저 여러 곳의 사람들에게 하직을 고하니, 사람들이 모두가 슬피 울면서 “그 분이 떠나신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에 공양을 마련하여 공양을 마치자 종을 쳐서 대중을 모아 놓고 향을 피웠다. 승속僧俗이 둘러싼 가운데 선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는데, 향이 다 타자 단정하게 입적하였다.
[청림 화상] 靑林
동산洞山의 법을 이었으며, 강서江西에 머물렀다. 선사의 휘諱는 사건師虔이며, 처음에 청림靑林에서 살다가 나중에 동산에서 살았다. 평생 동안 높은 절개를 간직하니, 그 명성이 천하에 드날렸다. 선사가 스승인 동산의 회상에 있을 때, 소나무 한 그루를 심은 뒤에 한 수의 게송을 지었다.
짧디 짧아 겨우 한 자 남짓이나
여리고 여려 푸른 풀을 덮는도다.
어느 세상 사람이
이 솔의 늙은 자태 보게 되려나.
선사가 이 게송을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은 30년 뒤에 이 산에 머물면서 향기로운 밥으로 스님들에게 공양하리라.”
과연 30년 뒤에 동산에서 살면서 날마다 부드러운 밥과 음식을 스님들께 공양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삼라만상을 다 거두어도 스승을 만나지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외로운 봉우리가 홀로 우뚝하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곳의 일은 어떠합니까?”
“두 사람이 대위大潙를 손바닥으로 치느니라.”
선사가 스승인 선사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작고하신 스승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요즘 사람들이 비슷해지지 못하는 것은 단지 마음을 써서 배우려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와 비슷해지려면 마치 죽은 사람의 호흡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야 하는데, 어느 누가 그와 같겠는가?’ 하셨느니라.
그때에 궤서軌誓라는 상좌가 나서서 묻기를,
‘바야흐로 일색一色일 때에도 위로 향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니,
스승께서
‘없다’ 하셨느니라.
이때 그 스님이 당장 하직 인사를 하고 승당僧堂으로 돌아가서 백추白槌하기를,
‘5백 명 대중이 와 여기에서 위로 향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당두 화상께서는 없다고 말씀하시니, 지닐 것이 못 된다.
이곳은 죽어야 할 곳과 맞먹으니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나로서는 여기에서 허송세월을 할 수가 없다’ 하니,
이로 인하여 대중이 모두가 보따리를 쌌다.
이에 주사主事가 화상께 말씀드리기를,
‘대중이 화상의 불법을 긍정하지 않고 모두가 떠나려 합니다’ 하니,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를 따르도록 내버려 두어야 내 일이 비로소 행해진다’ 하시고는 주사主事를 시켜 승당의 문을 잠그라 하셨느니라.
주사가 분부대로 시행을 마친 뒤에 소다각燒茶閣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기를,
‘그 한 떼거리의 중들이 다 떠났다. 그러나 도로 올 것이다’ 하셨는데,
과연 돌아와서 모두가 통곡을 하였으나 선사께서는 승당의 문을 열어 주지 않으셨느니라.
이에 대중이 주사主事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실로 범부로서 화상의 뜻을 잘못 알아서 화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화상 앞에 나아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하니,
주사가 곧 방장으로 갔으나 화상은 방장의 문을 꼭 닫고 벽을 향해 누워서 열어 주지 않았느니라. 주사가 간곡히 열어 주기를 청하자, 그제야 비로소 문을 열어 주기에 주사가 위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화상께서 대중들로 하여금 승당에 들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대중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울면서 상당해 주기를 청하니, 그제야 선사께서 법좌에 오르셨느니라.
이때 수좌이던 궤서가 나서서 절을 하고 일어나 빌기를,
‘화상이시여, 저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저는 광대한 겁 동안 부처님 몸에 피를 나게 하고, 화합한 대중을 깨뜨렸는데, 오늘에 와서는 화상의 존귀한 뜻을 잘못 헤아렸으니, 만약 이렇게 마음을 바꿔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은 다시 돌아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니,
선사께서 슬픈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로부터 손을 들어 다른 사람을 가르친 적도 없는데, 어찌 경솔하게 누구에게 벌을 내리겠는가?
무릇 일색에는 나눌 수 있는 이치와 나눌 수 없는 이치가 있다.
그러기에 그대가 나에게 묻되, 한 빛이 되었을 때에도 위로 향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였을 때, 내가 ’없다‘ 하였다.
그것이 무슨 허물이겠느냐?’”
이에 물었다.
“말을 아끼었으나 알기는 쉬운 것을 화상께서 한마디 해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석가가 방문을 닫고, 정명淨名)이 입을 다물었느니라.”
선사가 임종할 때, 태워서 바람에 날려 보내되, 무덤이나 탑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하시고는단정히 떠났다.
[소산 화상] 疎山
동산洞山의 법을 잇고, 무주撫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광인匡仁인데, 행록行錄을 보지 못해 그 시종을 알 수 없다.
선사가 행각行脚할 때 대안大安 화상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 물었다.
“무릇 법신法身이란 것은 그 이치가 너무나도 현묘하여 시비의 경지境地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것이 법신의 극칙極則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법신의 위로 향하는 일입니까?”
대안이 대답했다.
“그저 그것일 뿐이니라.”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법신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도 하니라.”
또 향엄香嚴에게 가서 물었다.
“자기를 따르지도 않고 다른 성인을 존중하지도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향엄이 대답했다.
“만기萬機를 모두 쉬어 버리니, 천 성인이 이끌어 주지 않느니라.”
이에 선사가 긍정하지 않고 물러 나와 구역질을 하면서 말했다.
“뱃속에 더러운 것이 들어갔다.”
어떤 사람이 화상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화상이 다시 부르기에 선사가 올라갔다. 향엄이 말했다.
“다시 물으라.”
선사가 물었다.
“만기萬機를 쉬어 버림은 그만두고, 천 성인이 이끌어 주지 않는다 함은 무슨 말씀입니까?”
향엄이 말했다.
“이것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깊이 긍정하기는 하나 완전히는 아닙니다.”
향엄이 말했다.
“그대의 말에 도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와 같다면 뒷날 산에 머물면 땔나무가 없을 것이고, 강변에 머물면 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설법을 할 때면 반드시 구역질을 해서 더러운 것을 토하게 되리라.”
그런데 나중에 소산의 주지가 되고 보니, 과연 향엄의 예언과 같았다.
협산夾山에 가서 물었다.
“문지방을 표시하지 않았으니, 스님께 치우치지 않는 법을 청합니다.”
협산이 대답했다.
“비슷하지 않은 구절은 눈앞의 법이 없음이니라.”
선사가 다시 물었다.
“비슷하지 않은 구절은 잠시 두고 눈앞의 법이 없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다시 석 자를 더한다면 천하의 사람들도 어쩌지 못하리라.”
이에 선사가 말했다.
“지금은 어찌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가르침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물속에 구슬이 있음을 믿지 않고 하늘가로 가서 태양에게 물으려 하는구나.”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나에게 보배로운 거문고가 있어
광야에 맡겨 두었네.
퉁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지음知音이 없기 때문일세.
“화상께서 돌아가신 뒤에 누가 스님의 지위를 계승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네 발을 하늘로 뻗으니, 등 밑에 풀이 우거지느니라.”
어떤 사람이 제삼第三 백장百丈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등 밑에 풀이 우거지는 것입니까?”
백장이 대답했다.
“존귀하지 않은 지위는 계승하지 않느니라.”
경청鏡淸이 이르니,
선사가 물었다.
“깊이 긍정하기는 하나 완전히는 아니라고 한 말을 생각하는가?”
경청이 대답했다.
“완전하여야 깊이 긍정하는 것에 돌아갑니다.”
“완전하지 못한 것은 어찌하겠는가?”
“거기에는 긍정할 길이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비로소 병든 중의 뜻에 맞는구나.”
고산鼓山이 와서 물었다.
“소산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건만 와서 보니, 겨우 씨앗 크기만 하구나.”
선사가 말했다.
“살덩이는 천 근인데 지혜는 한 푼도 없구나.”
고산이 말했다.
“그러시다면 학인學人은 절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누가 그대더러 그 고기 산을 넘어뜨리라 하던가?”
고산이 위음왕불威音王佛의 계보를 말하는 것을 보고,
선사가 물었다.
“위음왕불의 스승은 누구이신가?”
고산이 대답했다.
“뻔뻔스럽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렇게 말하면 되겠지만 병든 스님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위음왕불의 스승입니까?”
“존귀하지 않은 지위에는 앉지 않느니라.”
누군가가 물었다.
“떠날 때, 모두 떠났는데 무엇 하러 재삼 다시 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당나라에는 세 번째 기둥이 될 만한 나무가 없다.”
“멀리서 보면 둥글고 가까이서 보면 모난 것이 무슨 자字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동해에 고래가 한 마리 있는데, 머리도 잘리고 다리까지 부러졌다. 그 등에서 뼈를 한 토막 빼내면 바로 그 자가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중생을 제도하셨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는 어떤 사람이 중생을 제도합니까?”
“소산이 하느니라.”
“아직도 다 제도하지 못한 중생이 있습니까?”
“다 제도하지 못한 중생은 없느니라.”
선사가 말을 타고 길을 가는데,
조대措大가 물었다.
“말을 타고는 어찌하여 발걸이를 밟지 않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말을 타는 것은 발을 쉬기 위한 것인데 발걸이를 밟으면 걸음을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선사가 임종할 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나의 길 푸른 허공 저쪽에
흰 구름 한가로울 곳 어디에도 없네.
세상에는 뿌리 없는 나무 있어
노랑 잎 바람에 보내고 돌아오네.
[용아 화상] 龍牙
동산洞山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의 묘제사妙濟寺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거둔居遁이요, 속성은 곽郭씨이며, 무주撫州의 남성 사람이다. 14세에 길주吉州 포전사蒲田寺에서 출가하여 나이가 차서 숭악嵩岳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처음에 취미翠微ㆍ향엄香嚴ㆍ덕산德山ㆍ백마白馬 스님에게 참문하여 간곡히 물었으나 모두 인연이 맞지 않더니, 나중에 동산의 언사가 유달리 현묘하고 말을 시기 적절히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 길을 떠나 그의 회상을 찾아갔다.
선사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막야검鏌鎁劍을 뽑아 들고 스님의 머리를 자르려 할 때는 어찌하십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베는 것은 잠시 두고, 그대는 어떤 것을 노승의 머리라 하는가?”
선사가 가는 곳마다 이 질문을 가지고 물었으나 모두 계기에 계합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홀연히 동산의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는 못했으나 마침내 섬기려는 뜻이 있어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이미 행각行脚의 길을 그만두었는데, 질문할 것이 무엇 있으리오.
동산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현기玄機라 합니다.”
“어떤 것이 현묘한 근기인가?”
또 대답이 없었다. 동산이 3일 동안 시간을 주었으나 끝내 대답을 못했으므로 이로 인해 선사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도를 배우려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한가로워졌나니
없음 가운데 길이 있어 세상에 숨노라.
사람들 모두가 천 권의 경론을 강하는데
때에 이르러서는 한 구절도 대답하기 어렵네.
이에 동산이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고쳐 주었다.
“한 구절 교리도 입에 올리기 어렵네.”
이로 인해 선사의 이름을 고쳤다.
선사가 동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동산 골짜기의 물이 거꾸로 흐르거든 그대에게 말해 주마.”
선사가 이 말에 현묘한 뜻을 단박에 깨닫고 대중을 피해 숨어살기 7, 8년 동안날마다 정묘精妙한 경지를 파고들었다.
초왕楚王 전하가 선사에게 묘제선원妙濟禪院에 머물기를 청하여 그곳으로 옮기니, 공부하는 대중이 5백여 인이 되었다. 이에 장복章服을 하사하도록 위에 품주하였고, 호를 증공證空 대사라 하였다.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무릇 참선해서 도를 배우려는 이는 모름지기 조사와 부처의 경지境地를 초월超越해야 한다. 그러기에 신풍新豊 화상이 말하기를,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을 서로가 원수같이 생각해야 비로소 배울 자격이 있다’ 하였다.
그대들이 만일 조사와 부처님의 경지를 초월超越하지 못하면 조사와 부처님께 속임을 당하리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님도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강과 호수가 사람을 막으려는 뜻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선사가 또 말했다.
“강과 호수가 사람을 막으려는 뜻은 없으나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장애가 되니, 강과 호수가 사람을 막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조사와 부처님에게는 사람을 속이려는 뜻이 없으나 사람들이 초월超越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을 속인 것이 되니, 조사와 부처님이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와 같이 조사와 부처를 초월하게 되면 이 사람은 조사와 부처의 뜻을 체득하여 비로소 향상인向上人과 같아질 것이지만, 만일 초월하지 못하고 그저 부처와 조사를 배우기만 하면 만 겁 동안에 벗어날 기약이 없으리라.”
어떤 이가 물었다.
“달마達磨가 오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련하였느니라.”
“그렇게 떠나실 때는 어떠합니까?”
이에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2조祖는 무엇을 얻었는가?”
운거雲居가 동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운거가 말했다.
“저의 허물입니다.”
어떤 스님이 이 말을 선사에게 전하면서 물었다.
“동산이 대답한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동산은 대답하지 않았고, 운거는 얻지 못했느니라.”
“얻지도 못했다면 어째서 운거라 부릅니까?”
“동산의 뜻을 체득했기 때문이니라.”
“동산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운거가 들은 것이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이는 육신肉身으로 성불하는 법문이니라.”
“한마음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느 때 마음이 일어나지 않던가?”
“그러할 때에는 새의 길과 어떤 구분이 있습니까?”
“바로 그때에는 새의 길을 가느니라.”
“어떻게 가립니까?”
“모름지기 새의 길을 가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도 가운데의 작용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무심이 도 가운데의 작용이니라.”
“무심에도 작용이 있습니까?”
“무심의 작용은 천하에 두루 미치느니라.”
선사가 덕산德山에게 물었다.
“멀리서 덕산의 불법 한 구절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화상께서 불법을 한 구절이라도 말씀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덕산이 말했다.
“무엇이 불만스러운가?”
선사가 그때 긍정하지 않고 곧 떠나 동산으로 가서 단지 앞의 말을 물으니, 동산이 말했다.
“어찌 나를 탓할 수 있느냐?”
그러자 선사가 바로 그곳에서 머물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돌 거북이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그때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돌 거북이 말을 합니다.”
“그대에게 무어라 하던가?”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했다.
온갖 시설施設은 예사로움만 못 하나니
사람을 놀라게 하지도 않고 또 영원하도다.
예사로움이란 가을바람 같아서
사람을 시원케 할 생각 없으되
사람들이 시원타 하네.
“스님께서 옛사람을 뵙고 무엇을 얻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치 도적이 빈 방에 들어간 것 같으니라.”
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도에 나아가려면 먼저 자신을 세우라.
곧은 벗이 가는 곳에 먼지가 나지 않는다.
참 중은 방 치장을 할 필요 없나니
간 곳마다 무심해짐은 사람에 달렸다.
현묘한 도를 찾고 배움은 닦음으로 말미암지 않나니
배우는 데에서 모름지기 흑백을 가려야 하네.
모든 성인에겐 원래부터 다른 길이 없으니
반연을 잊은 지혜에 많은 지식이 있도다.
깨닫지 못했거든 친히 두루 참예할지니
단정히 앉아서 청빈淸貧만 지키지 말라.
설사 라후라처럼 밀행密行을 닦는다 해도
가섭의 듣지 않는 들음만 같으랴?
사람들이 만약 무심해지면 도정道情에 부합되고
무명無明을 알고 나면 도는 벌써 밝아졌나니
사람들은 도를 펼 수 있고 도는 드러날 수 있어서
도가 사람들에게 있으면 사람들은 저절로 평안하다.
선사가 세상에 나온 지 근 40년 동안 무릇 모든 가歌ㆍ항行ㆍ게偈ㆍ송頌이 더불어 세상에 널리 유통되었으나 여기에 다 수록하지 못한다. 용덕龍德 3년 계미癸未 9월 13일에 입적하였다.
[유서 화상] 幽棲
동산洞山의 법을 이었으며, 태주에 머물렀다. 실록實錄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기록할 수 없다.
경청鏡淸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젊은 어르신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표시가 없는 것이니라.”
“무엇 때문에 젊은 어르신이라 합니까?”
“무슨 허물이 있는가?”
“젊은 어르신이라 한들 또 어찌하겠습니까?”
“이 무슨 마음씀인가? 도자여.”
선사가 세상을 하직하려 할 때,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 백 년 뒤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선사가 말했다.
“초월하는구나, 초월하는구나.”
[상람 화상] 上藍
협산夾山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영초令超이다. 처음에 상람산上藍山에 머물렀는데, 종릉鍾陵 대왕이 관리들을 모두 거느리고 가서 선사를 영접하였고, 관부에 명하여 호국원護國院을 짓게 하였으며, 극진한 예로 선사를 대접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공양하길 시종일관 한결같이 행하였다. 그리고 황제에게 주청하여 자의紫衣와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하사下賜 받도록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두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면 어느 쪽이 얻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밝은 구슬은 거기서 구경할 수 없나니, 용이건 용 아닌 것이건 어찌 구슬을 얻으랴?”
대순大順 원년 정월 15일에 종을 쳐 대중을 모으고 유언을 한 뒤에 단정히 앉아서 세상을 뜨니, 시호는 원진元眞이요, 탑호塔號는 본공本空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