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南) 프랑스의 풍광(風光)<1>
프랑스 전도 / 피레네 산맥 / 산티아고 순례길
<남프랑스(Provence)의 역사 요약>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은 3차에 걸쳐 벌어졌던 페르시아전쟁(BC 5)과 포에니전쟁(BC 2~3)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페르시아전쟁은 그리스(Greece)와 페르시아(Persia)의 대결이고, 포에니(Poeni)전쟁은 지중해 연안의 패권을 놓고 벌인 로마(Rome)와 카르타고(Carthago)의 대충돌이다. 페르시아전쟁은 소아시아반도에서 벌어진 인류 최초 동서양(東西洋)의 충돌이라 보겠는데 저 유명한 마라톤(Marathon) 전쟁, 살라미스(Salamis) 해전 등이 그것이다.
또 제3차에 걸쳐 벌어졌던 포에니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카르타고는 멸망하고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는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역과 히스파니아 지역(스페인)의 패권을 놓고 벌인 쟁탈전으로 위대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이 등장하는 전쟁이다. 포에니(Poeni)는 페니키아인(Phoenicia)이라는 뜻인데 BC 3천 년부터 지중해 연안에 살기 시작한 고대문명(셈족)이다. 당시 프랑스 전 지역은 울창한 산림지역으로 갈리아(Gallia) 지방이라고 불렸고 게르만, 노르만 등 북유럽의 소수부족이 흩어져 살았는데 기원 전후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에 의해 정복되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AD 5세기에 접어들어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서로마제국이 붕괴하자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정권을 잡고 메로빙거(Merovingian) 왕조가 시작되며 프로방스(프랑스)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되는데 뒤를 이어 카롤링거(Carolingian) 왕조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프랑크왕국이다.
AD 10세기, 프랑크왕국이 와해(瓦解)되고 뒤를 이어 오토 1세(Otto I/오토대제)가 독일지역 여러 게르만 소수왕국들을 연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후 교황과 손을 잡고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다는 명분 아래 나라 이름을 신성(神聖) 로마제국으로 바꾸고 초대황제에 즉위한다.
그러나 15세기,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Ottoman Turk/오스만투르크)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함락시키고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삼으며 도시이름을 이스탄불(Istanbul)로 바꾼다. 수도를 빼앗기고 서쪽으로 밀려나 명맥만 유지하던 신성로마제국은 프란츠 2세(1802년)에 이르러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된다. 그 이후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쟁탈전 등 극도로 혼란해진 틈에 사라예보 사건(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피살)으로 세계 1차 대전 발발 등... 오늘에 이른다.
1. 피레네(Pyrenees)산맥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랑스 국경 부근에 오면 거대한 피레네(Pyrenees)산맥이 나타난다.
이 산맥이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이 되고 이 산맥 속에 인구 7만의 작은 왕국 안도라(Andorra)가 있다.
나는 원래의 여행일정에 안도라의 수도 안도라베야(Andorra-Vieja)에서 1박을 하는 것으로 짰었으나 모로코 일정이 두 배로 늘어나는 바람에 들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어디가 국경인가 버스 차창으로 눈여겨보았는데 어느새 훌쩍 국경을 넘어버리고 프랑스 땅이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도 졸다가 언제 넘었는지... 유럽은 국경을 넘을 때 아무런 신고 초차 없는 것이 이상하다.
나는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를 두 번 갔었는데 다리를 건너 캐나다로 가면 꼭 여권검사를 한다.
프랑스 남단 몽필리에(Montpelier)에서 1박을 하였는데 멋진 해변의 휴양도시였다. 바다 쪽으로 나가면 널찍한 호수들이 여러 개 보이고 수백 척의 요트들과 보트들이 부두 가득 정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만약 휴식을 취하러 오는 관광객들이라면 좋은 장소겠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하룻밤 묵어가는 곳일 뿐...
가톨릭 신자들이 평생 꼭 한 번 방문하고자 하는 곳이 스페인 북서쪽 이베리아반도의 끝부분에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예수의 제자 야고보(James)는 즉시 실천에 옮기는데 당시 땅끝은 동쪽은 히말라야, 서쪽은 이베리아반도였다고 한다. 야고보는 당시 황무지와 다름없던 이베리아반도 끝자락 갈리시아(Galicia) 지방까지 수만 리를 걸어와 복음을 전파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데 하필 기독교 박해가 일어나 도착하자마자 잡혀서 십자가형을 당하는, 예수의 12제자 중 첫 번째 희생자(순교자)가 된다.
성 야고보를 중세 스페인어로 “성 이아고(Saint Iago)”라고 했는데 이 말이 합쳐져서 산티아고(Santiago)가 됐다니 스페인어 ‘산티아고’는 곧 ‘성 야고보’이다. 또 일명 산디에고(San Diego)로 표기되기도 한다.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러 오던 길을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하는데 남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따라가면 갈리시아지방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하는데 총 길이는 800km(2천 리)정도이다.
젊은 사람들은 25일 정도,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한 달 반 정도 걸린다고 하며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내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을 갔을 때 특히 한국 순례객들이 많아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