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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문화의 교차로 튀르키예(Türkiye/터키)
튀르키예 전도(全圖) / 튀르키예 국기(國旗/아이 일디즈)
♦ 튀르키예 국기(國旗/Ay Yildiz/달과 별)
♤초승달: 마케도니아군이 비잔티움(이스탄불) 성벽 밑을 뚫고 들어오려 했으나 초승달이 비쳐 발각.
♤빨간색: 튀르키예 건국에 희생된 피. ♤흰 초승달과 별: 이슬람 상징
♦ 튀르키예 개관(槪觀)
♤면적: 78만 5천㎢(우리나라 남한의 8배) ♤수도: 앙카라 ♤인종: 튀르크족 80%, 쿠르드족 20%
♤인구: 8천 3백만 ♤언어: 튀르크어, 아랍어, 쿠르드어 ♤종교: 이슬람 99.8%
♤1인당 국민소득: 8.500 달러(USD)
아시아의 최서단, 소아시아 반도의 튀르키예(터키)는 동남부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Kurd)족의 잦은 독립 시위가 골칫거리라고 한다. 쿠르드족은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한 최대 민족(4천 만)이라고 하는데 튀르키예 뿐만 아니라 시리아(Syria), 이란(Iran), 이라크(Iraq)에 걸쳐 광범위하게 살고있는 단일민족이다.
1. 개인 관광 안내(Private Guide)
비행기로 아테네에서 한 시간 남짓 날아 터키의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늦은 밤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면서 잠깐 관광 안내소에 들렀다가 아무래도 터키에서의 개인관광에 자신이 없어 개인 가이드(Private Guide)를 쓰기로 하였다. 2박 3일 동안 교통과 입장료 및 점심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200유로를 지불하기로 하였다. 대충 30만 원 정도인데 덕분에 편하고 알뜰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30대 중반의 골수 이슬람인 이 친구 덕분에 여러 가지 이슬람의 문화와 터키 역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여행 내내 이슬람과 터키의 역사를 좀 더 많이 공부하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특히 술탄과 이 지역을 내내 괴롭혔던 그리스 정교회 및 종교 분쟁에 관하여....
가이드의 조언으로 관광은 몇 개의 모스크, 바자르, 토프카프 궁전과 돌마바체 궁전, 보스포러스해협 크루즈와 저녁 식사대를 우리가 지불하는 조건으로 벨리 댄스관람, 보카치키 다리 관광 등으로 짜여졌다. 호텔은 별 네 개의 비교적 쾌적한 환경과 좋은 식사로 만족할만 하였고 가이드가 가지고 온 차는 벤츠 레저용 차로 넓고 쾌적하였으며 운전기사는 영어는 못하였지만 친절하여 이틀 동안 기분이 좋았다.
2. 대도시 이스탄불(Istanbul)
이스탄불은 BC 8세기, 그리스인들이 비잔티움(Byzantium)제국을 세우고 수도로 정한 곳이며 AD 4세기에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명명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스탄불은 인구가 1,500만이 넘는 대도시이다.
이곳은 AD 15세기, 투르크인들이 세운 오스만(Osman)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923년,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를 앙카라(Ankara)로 옮기고 도시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스탄불은 위치상 흑해(黑海:Black Sea) 입구 삼각형 모양의 반도(半島) 요충지에 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통로로 옛 실크로드(Silk Road)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유명하였던 오리엔트특급(Orient Express)의 종착점이기도 한데 첫 출발점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스탄불의 시르케지(Sirkeci) 역까지 한 달 정도 걸렸다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배경이 되면서 초호화 유럽횡단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유럽 부호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운행되었으나 항공기의 발달 등으로 지금은 일부만 운행된다고 한다.
이스탄불(Istanbul)의 첫인상은 엄청나게 큰 대도시라는 것이었다.
복잡한 도로와 수많은 인파, 그리고 명랑하고 활기찬 얼굴들과 아무렇게나 사람들을 비집고 다니는 자동차들과 레일 위를 달리는 트램(Tram/전차와 비슷)들로 무척 혼잡하였다.
이스탄불 전경 / 동서양을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 / 길거리에서 맛본 케밥(kebap)
터키는 국토의 대부분이 서남아시아이고 작은 부분인 이스탄불 시내 일부분만 유럽에 속해 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보카치키(Boğaziçi) 다리를 중심으로 유럽 쪽에 인구의 3/4이, 아시아 쪽에 1/4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동서 문화가 만나는 이곳은 고대 히타이트(Hittite) 제국으로부터 페르시아, 헬레니즘, 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사산제국, 오스만투르크 등이 세력을 떨치던 역사와 문화의 요충지였음은 누구나 아시는 바이다.
터키를 상징하는 모스크(Mosque)와 미나레트(Minaret-모스크 귀퉁이의 첨탑)는 가는 곳마다 우뚝 솟아 있었고 나지막한 구릉(丘陵)들로 연이어져 있는 도심은 활기로 넘쳐 보인다. 다양한 문화의 소용돌이를 겪다 보니 모스크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들은 이슬람, 기독교, 그리스 정교회 등의 영향을 받아 한마디로 어느 종교의 건물이라고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1> 성 소피아(St. Sophia) 성당
성 소피아성당(핑크 모스크)
성 소피아 성당은 외부에서 보면 분홍빛으로 빛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건물은 AD 360년, 콘스탄티우스가 세운 성당이 모체라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AD 537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비잔틴제국 때에는 그리스정교(正敎)의 대성당으로, 15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 이후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20세기 들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2층에 있는 그리스도를 안은 성모와 황제 가족의 모자이크가 유명하며 다른 벽면에는 이슬람의 코란 구절과 초대 칼리프의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는 등 역사의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2> 블루 모스크(Blue Mosque)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사원)
푸른 타일로 내부를 꾸며서 블루(Blue)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블루 모스크(Blue Mosque)는 원이름이 술탄 아흐메드(Sultan Ahmed) 사원으로 터키 최대의 사원이다. 1609년 술탄 아흐메드 때 짓기 시작하여 1916년에야 완공되었다는 이 모스크는 첨탑 미나레트(Minaret)가 6개로 술탄 권력의 상징이라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Mecca)의 모스크만 미나레트가 9개이고 나머지는 그 이하인데 미나레트의 수로 모스크의 규모와 권위를 나타낸다고 한다.
블루 모스크는 지금도 하루 다섯 번 기도가 이루어지는 이슬람 사원이며 내부로 들어가면 푸른빛과 녹색의 타일로 정교하게 건축된 엄청나게 높고 큰 둥근 돔(Dome)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모스크의 내부는 텅빈 공간이고 설교대만 메카 방향을 향해 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웅장한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넋이 빠지게 한다.
블루 모스크에서는 기도를 하기 위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이 모스크 바깥에 빙 둘러 설치되어있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찬물로 손발과 얼굴을 씻고 있었는데 한겨울에도 찬물로 씻는다고 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잘 씻지 않는 중동 사람들이 마호메트의 가르침에 의하여 하루 다섯 번의 기도 때마다 씻으니 기막힌 청결 위생교육이요, 또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은 덥고 습한 날씨에 동물성 지방이 쉽게 상하므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막힌 과학적 근거라고 주장하는 등 이슬람에 대한 예찬이 끝이 없다.
<3> 토프카프(Topkapi) 궁전과 돌마바흐체(Dolmabahçe) 궁전
토프카프 궁전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황제)들이 살았던 성으로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데 그 화려한 장식들과 유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술탄들의 사치와 권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별채 부분인 술탄의 여자들이 기거하였던 할렘도 내부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제31대 술탄 압둘 마지드(Abdul Majeed)가 1853년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대리석으로 짓기 시작한 제2의 궁전으로 유럽풍으로 지었는데 보스포루스 해안에 있어 기막힌 풍광을 자랑한다.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수많은 술탄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영국 빅토리아여왕이 보냈다는 750개의 전구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황제의 방 천정에 매달려 있다.
토프카프 궁전 / 진귀한 술탄의 보물들 / 천정에 달린 진자(振子)
돌마바흐체 궁 앞에서 / 정원 분수대 / 궁전으로 가는 길
빅토리아여왕이 보낸 샹들리에 / 아타튀르크 국왕의 내빈 접견실 / 정원의 탑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가 1938년 서거한 방이 있는데 그 방의 시계는 그가 죽은 시각인 9시 5분을 가리킨 채 멈추어 있다. 가이드 녀석이 이 궁전을 안내하다가 딸랑 둘만 데리고 다니며 설명하는 것이 지겨웠는지 20여 명의 여행팀을 인솔하는 다른 가이드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더니 우리더러 저 사람도 영어로 하니 그 뒤에 붙어 다니다가 나중 만나자고 한다. 그래서 미국인들로 보이는 단체여행객들 두어 발짝 뒤에서 뻘쭘히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어야 했다.
<4>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그랜드 바자르 입구 / 화려하고 미로와 같은 바자르 내부
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는 15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끝을 알 수 없는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높다란 돔 천정으로 덮여 있어 길을 잃기가 쉽다. 가이드는 입구에 데려다주면서 돌아 나오는 길을 수도 없이 확인시키고는 헤어졌다.
5.0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는 이 시장은 카펫, 가죽 제품, 금속 세공품 등의 터키 특산품을 비롯하여 온갖 제품들로 들어차 있고 활기가 넘치고 있으며 가지가지 이국적인 물건들이 넘쳐난다. 한국 사람들도 제법 있는지 ‘언니, 이리와요, 싸요,’ 등의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구경을 마친 후 가까스로 입구를 찾아 나와 양념시장인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r)로 들어갔다.
<5>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ar)
알록달록한 색깔의 가루들과 이름 모를 조미료들을 좌판 그득 내놓고 파는데 그랜드 바자르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구조는 그랜드 바자르와 마찬가지로 지붕이 덮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로로 얽혀있다.
큰 감동을 주었던 터키영화 ‘테이스트 오브 스파이스(Taste of Spice)’
우주의 행성들도, 인생살이의 모든 것도 조미료(양념)로 설명하던 주인공 할아버지의 심미안(審美眼)은 오랜 역사와 독특하고 향기가 강한 터키의 음식문화에 기인함을 알겠다.
스파이스 바자르(양념시장)와 그랜드 바자르
<6>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Cruise)
보스포루스 크루즈(Cruise) 안에서 만난 머리가 허연 서양 늙은이한테 말을 걸었는데 쉰다섯 살의 아일랜드 인으로 내가 환갑이 넘었다니 놀란다. 60년대 서울 YMCA의 ‘Sing Along Y’ 에서 전석환씨에게서 배웠던 기억으로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Molly Malone)’을 한국말로 흥얼거렸더니 무척 반가워한다. 같이 ‘Molly Malone'을 흥얼거리며 아일랜드 영감과 함께, 관광한 것도 추억이다.
동서양을 잇는 다리 / 길거리에서 맛본 케밥(아들) / 현지 가이드
우리를 태운 크루즈는 마르마라(Marmara) 해협을 바라보며 보스포루스 좁은 해협을 거슬러 올라 동서양을 잇는 보가치키(Bogaziki) 다리를 지나서 멀리 흑해가 바라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내려온다.
유럽 쪽 이스탄불은 무수한 모스크와 미나레트(첨탑)로 동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고, 아시아 쪽 이스탄불 또한 멋진 별장들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이스탄불의 집값은 우리나라 서울과 비슷할 정도로 비싸다고 한다. 멀리 아시아 쪽 남쪽으로 우리에게 노래로 익히 알려진 ‘우스크다르(Uskdar)’도 어렴풋이 보인다.
<7> 벨리댄스(Belly Dance)와 세마 춤
저녁에는 벨리댄스를 보러 다리를 건너 아시아 쪽으로 갔다. 극장식 식당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은데 몇 가지 식사코스 가운데 아들 녀석이 120유로를 주고 최고급으로 예약하였더니 무대 맨 앞자리로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그득 차려졌다. 고대 술탄의 할렘을 재현한 쇼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벨리댄스의 그 화려함과 신기(神技)에 가까운 허리 흔들기는 놀라울 뿐이었고 이슬람 수피파(Sufism)의 무아지경에 빙글빙글 도는 세마 춤(Sema whirling dance)도 인상적이다.
벨리댄스(배꼽춤) / 이슬람 수피파의 세마춤
최고급 식사를 하는 사람들만 계속 무대 위로 불러올려서 쇼에 참가시키는데 나도 수없이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나중에는 손님 중에서 술탄(Sultan)을 선정하는데 나와 뚱뚱한 독일 녀석 둘을 놓고 선정하는데 체중에 밀려(?) 독일녀석이 술탄이 되어 온갖 호사를 누린다. 나는 그 통에 음식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여기에서 한쪽 구석에 식사는 하지 않고 차만 마시는 한국 젊은 여성 관광객 10여 명이 있어서
‘선생님들이지요?’ 하고 물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놀란다. 선생님이 선생님을 모를까... ㅎ
귀국 전날 가죽 제품 가게와 토산품 점에 들러서 몇 가지 선물을 쇼핑하였다. 특히 질이 우수한 가죽 제품이 눈에 띄었는데 가격이 무척 싼 편이었다. 지갑 몇 개, 실크 스카프 몇 장을 샀는데 품질도 좋았고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그런데 무척 아름답기는 하지만 카펫은 조그만 것도 상상외로 비싸다.
카펫 가게 / 가죽 지갑 / 이스탄불 도심의 오벨리스크
관광을 하다보니 시내 광장 한 가운데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있기에 무심코 가이드한테 저거 모조품이겠지?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BC 1550년, 이집트 파라오(왕)가 메소포타미아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카르나크(Karnak) 신전에 세웠던 것인데 비잔틴제국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I) 황제가 이집트에서 옮겨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양고기 냄새가 나는 길거리의 즉석 케밥, 점심으로 먹었던 아담한 레스토랑의 깔끔한 식사,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골목길도 잊을 수 없다. 이스탄불에 국한된 터키 여행을 끝내며 무진장한 아시아 쪽 터키의 여러 관광지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터키는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동부 아시아지역의 터키를 골고루 보려면 적어도 20일 이상은 잡아야 한다고 한다.
꼭 다시 한번 와서 골고루 둘러보아야겠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모습 ♣
귀국길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한나절 시간이 있어 암스테르담의 그림 같은 건축물들과 운하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 도심을 흐르는 운하(運河) / 암스테르담 성당(?)
아기자기한 건물들 / 멋쟁이 착한 아들 / 미술관 광장의 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