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덧 없는 줄 알았건만
한 마디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너를 보니
가슴 미어지는구나.
어느 이른 겨울 아침,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 같이
우리는 같은 가지에서 태어났지만
흩어지면 찾을 길 없어라
아 !
그러나
깨끗한 그 곳에서,
극락 세계에서 다시 만날 너 이기에
나는
도 닦으면서 기다릴 밖에 없구나
사랑하는 누이여 !
제망매가
신라 35대 경덕왕19년, 서기 790년에 월명사라는 승려가 쓴 詩입니다.
사랑하는 누이를 잃은 아픔을 노래한 내용이지요.
찬기파랑가와 함께 불후의 명작으로 전해지는 이 글은 향가입니다.
향가(鄕歌)란
이두로 표기된 신라시대의 노래로, 삼국 유사에 14 수, 균여전에 11 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향가는 대체로 불교적인 내용으로 작가층은 승려, 귀족 평민에 걸쳐 다양합니다.
삼국유사의 작가는 승려 일연(1206-1289), 본명은 김견명입니다.
그는 청도 운문사 주지였습니다.
그는 왕에게 법을 가르쳤습니다.
삼국유사를 기록했습니다.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고대 신화와 설화 및 향가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한밤중 달빛 보며
자리 잡고 있으니,
몸에 걸친 옷
바람부는 대로 반 남아 날도다.
거적자리에 가로 누워도 단잠 들 것이니
티끌 세상,
꿈 속에서도 가지 않으리라.
젊은 시절, 수도하는 승려로서 의지를 다짐하면서 쓴 詩,
우리 고향 청도 운문사에서 8년을 수행한 일연의 작품입니다.
코미디 학교도 좋고,
청도 추어탕도 일품입니다.
청도 반시, 한재 미나리, 와인 축제 ,소 싸움 경기장 다 좋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 당연히 좋지요.
청도 운문산의 정기를 이어 받은 원광법사가 세속오계, 화랑정신을 일으킨 곳,
아무리 진귀한 물건이 길에 떨어져 있어도 내 것 아니면 줍지 않는다는, 도불습유(道不拾遺)의 고장 청도, 우리의 고향.
고려 왕조의 국사(國師), 삼국 유사를 기록한 일연을 배출한 땅, 우리 고향 청도 !
유서 깊은 화양읍성의 모습입니다.
고려 때 축성(築城), 선조 때 왜군에 대비해서 보강을 했답니다.
임진년 전쟁 때 소실되고, 일제 강점기에도 수난을 당했으나 광복 후 수 차례 개축했으며 지금도 복원 중에 있답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신라 3대왕 유리왕 14년(서기 37년) 이서국이 금성을 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례 이사금 왕 14 년 (서기 297년)에 이서국이 신라에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서면에 가면 지산서원, 금호서원과 충렬사가 있으며,
화양에는 청도 읍성과 더불어 향교와 석빙고가 있습니다.
고대사에 길이 남을 수 있는 우리 고향인데 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서 아쉽네요.
높이 30m의 낙대 폭포.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약수 폭포라고도 합니다.
1956년 여름, 엄마 손 잡고 교회 여 집사님들과 함께 이 폭포에서 물줄기를 맞은 기억이 납니다.
대륙 진출을 꿈꾸던 일본 제국은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얻게 되고
일본은 남한에서 가장 긴 남성현 터널을 건설(1896년-1904) 하고 1905년부터 경부선 열차를 운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성현 이 터널은 경사가 심하고 거리가 멀어서 1937년, 현 경부선이 개통하면서 통행이 중지됩니다.
지금은 와인 터널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길이 1015m, 연중 섭씨 15도, 60-70%의 습도 유지,
다량의 음이온 방출......
이 남성현 터널은 Wine 숙성에 있어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통행이 중지된 터널 모습입니다.
터널 입구에 대천성공(代天成功)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성공하자'는 뜻이랍니다.
일찌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섬나라 일본, 배짱 한 번 대단합니다.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 고향.......
한 시대를 풍미하던 우리 나라 최고의 배우 최무룡의 노래.
이 노래는 청도 군민의 노래가 된 지 오래입니다.
최무룡 씨 부인 강효실 권사는(최민수 모친) 내가 오래 전 우리 교회에 모셔다가 '내가 만난 예수' 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해서 온 교우들에게 큰 은혜를 끼친 적이 있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고 인심 넉넉한 우리 고향 청도.
우리를 길러 준 어머니 품 같은 송서교회.......
이런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