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텅 비어 있는 본래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온갖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있는 마음이다.
지각 기관으로의 마음은 본래는 텅 비어 있는 허공과 같은 것이다.
[불경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허공과 같다고 한다. 마음도 그러하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허공과 같은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런 마음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본래의 마음에 관하여 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바로 지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본래의 마음이 아니다. 나의 마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공하고 나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탐욕을 일으키고 집착한다.
지금 ‘나’와 ‘나의 마음’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비어 있는, 비어 있다는 생각조차 비어 있는 그런 마음이 본래의 마음이다.
본래의 마음은 다른 비유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허공에 떠 있는 청정한 해와 같은 것이다. (잡아함경_1183. 채신경(採薪經))
그런데 보통의 인간의 마음은 어떤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온갖 것들로 채워져 있다.
온갖 것들이란 위리의 몸과 마음의 작용으로 생겨난 것들인데, 예컨대 빛깔ㆍ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ㆍ애욕ㆍ기억ㆍ번뇌 등이다.
이 온갖 것들도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공하고 나가 아니다. 잡아함경의 비유로는 그것들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으며, 물방울 같고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으며, 가시와 같고 종기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탐욕을 일으키고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들은 서로 뒤엉켜 본래의 마음을 가리고는 이리저리 어지럽히고 있다.
불경에서 비유한 것처럼, 그것들은 해와 달을 가리는 구름과 같은 것이다.
온갖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에 사로잡혀 묶인 마음들을 가리켜 예컨대 ‘어리석은 마음, 더러운 마음, 성내는 마음, 산란한 마음’ 등이라고 한다.
이러란 마음들을 묶어 ‘떼 묻은[오염된]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오염된 마음이다.
[그런데 본래의 마음은 실제로는 오염되지 않는다. 비유하면 해가 구름에 가려진 것과 같고, 금강이 홁 속에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오염된 마음이란 용어는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본래의 마음과 대비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2.
우리가 오염된 마음을 채우고 있는 온갖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고 떠날 수 있다면, 텅 빈 본래의 마음이 환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텅 빈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어 보게 되면, 세상의 본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앞의 것은 정(定)과 지(止)이고, 뒤의 것은 관(觀]이다.]
여기서 텅 빈 마음은 오렴된 마음에 대비하여 해탈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본래의 마음과 해탈의 마음은 같은 것을 가리키지만, 그 뜻은 다르다. 본래의 마음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란 뜻이고, 해탈한 마음은 오염된 마음에서 오염된 것들을 제거한 상태의 마음이다. 곧 해탈한 마음은 오몀된 마음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마음이다.]
텅 빈 마음의 비침으로 드러난 세상에서는,
나는 내가 아니고 내 것은 내 겻이 아니다. 태어남은 태어남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이 아니고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니다. ...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어리석음도 없고 괴로움도 앖다. ...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그러한 것과 같이, 몸도 그러하다.
[반야심경의 내용과 같다]
3.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의]은 6내입처[6근]이라 하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현상]은 6외입처[6경]이라 한다. 6내입처는 지각의 주체이고, 6외입처는 지각의 결과물이다.
6인식은 6내입처로 6외입처를 아는 것이다. 6인식은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인식과 마음의 인식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6내입처와 6외입처를 12(입)처라 하고, 12입처와 6인식을 묶어 18계라 한다.
빛깔은 땅ㆍ물ㆍ불ㆍ바람의 4계[4대]로 구성된다. 이 4계에 허공을 더하여 5계라 하고, 5계에 인식을 더하여 6계라 한다.
6내입처와 6외입처, 그리고 6인식이 화합하는 것을 6접촉이라 한다.
[6내입처와 6외입처, 6인식은 동시에 함께 생겨나는 것이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어느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6빛깔ㆍ6느낌ㆍ6생각ㆍ6의도ㆍ6애욕은 6접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6기억ㆍ6번뇌는 6외입처에 관한 것이다.
[6외입처는 6내입처 및 6인식과 동시에 함께 생겨나는 것이니, 6기억과 6번뇌도 결국은 6접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빛깔ㆍ느낌ㆍ생각ㆍ의도ㆍ인식을 5음[5온, 무더기]라 한다.
4.
이것들은 나와 세간/세상/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다. 그리고 12연기법의 구성 요소이다.
이 모든 구성 요소들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공하고 나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면서 탐욕을 일으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세계를 생겨나게 하는 것은 오염된 마음이며, 본래의 마음이 아니다. 본래의 마음에는 생겨나는 법이 없기에 세계는커녕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염된 마음이 작동하여 나와 세계가 생겨나는 과정이 바로 12인연법이다. 본래의 마음은 인도 없고 연도 없다.
[본래의 마음은 가장 공한 법(第一義空法)에 속하는 마음이고, 오염된 마음은 세속의 법에 속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법의 두 측면(1), 가장 공한 법 & 세속의 법, 잡아함경_335. 제일의공경)]
오염된 마음에 채워진 온갖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제거하는 방법이 아함경의 수행법안 37도품이다.
본래의 마음이 비록 지금 오염된 마음에 가려져 있다 하더라도, 가끔씩 그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드러나기도 한다.
비유하면 해가 구름에 가려져 있다 하더라도, 때때로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드러나는 본래의 마음으로써, 오염된 마음을 채우고 있는 온갖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마음, 나까야(나 아함경)과 아비달마[논]의 견해의 차이’에 관련하여 이어서 작성된 것이다.
(2023.10.10.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