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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세품경 제6권
[법문의 마무리]
보현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보살행정대법도문(菩薩行淨大法道門)이라고 하는 불자(佛子)입니다.
내가 지금 법문의 요의를 대강 들고 모든 것에 견주어서 펼쳐 말하였는데, 여래ㆍ지진께서 기리고 펴신 뜻은 한량없고 밝은 지혜[明智]의 모든 보살행을 기뻐하며 모두 큰 서원[大願]을 이어받되 일찍이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가령 사람이 듣고 기뻐하고 믿는 이는 마음에 믿음이 생기고 이것을 익히고 받들어 행하여 이 이치를 성취하면 모두가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속히 이루어 최정각이 되니, 그 이유는 보살도를 헤아려 그 행으로 요목(要目)을 삼아 일찍이 그 행을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대사는 마땅히 이 행에 머물러 그로써 이 보살의 공훈을 능히 행하여야 하며,
이치를 분별해 들어가면 연꽃과 같이 아름다우니 곧 온갖 법문의 끝없는 성스런 집[聖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세간의 경로(徑路)를 건너고 성문이나 연각의 작은 길[小路]을 여의며 모든 중생을 교화하면서 좁은 생각을 품지 않고 온갖 법과 경[法經]의 법문을 비추며 모든 중생에게 권하여 더욱더 크고 이익되게 하며 세간을 건너가게 하는 법문인 것이니,
마땅히 지성스런 마음으로 이 도세법품(度世法品)을 듣고 받아 지녀 읊고 외면서 일심으로 사유하여야 하며 도목의 문[道目門]을 닦고 서원을 받들어 좇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하면 보살이 구하는 것은 끝내 얻기 어렵지 않게 되며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속히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경을 설할 때에 널리 설한 법문이 도세법품을 연설한 것이므로 시방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가 크게 진동하였으며,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威神)으로 일어나고 변화하며 이 법을 밝히게 되었으니, 이 경전을 얻은 온갖 부처님 국토는 저절로 동요하면서 큰 광명이 빛나지 않는 데가 없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각각 몸을 나타내어 멀리서 보현보살을 찬탄하셨다.
“장하고도 장하며, 가장 뛰어난 제자로구나.
때에 따라 보살대사의 공훈의 덕을 강설하였고 바른 뜻을 분별함이 어찌 그리도 통쾌하냐?
세간을 건너는 법품[度世法品]을 열어 넓히고 차례대로 펴 말하였구나.
그대와 같은 불자야말로 본래 참된 이치[眞諦]를 배웠고 이 법을 환히 통달하여 이제 경의 위덕과 광명이 청정함을 받들어 경전의 요의(要義)를 잘 연설하였으니, 우리들도 잘 이해하였고 모든 부처님 또한 그러하다.
우리들도 또한 이 경을 함께 찬양하니 지금 현재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장차 오는 세상의 모든 보살들도 배우거나 아직 듣지 못한 이를 위하여 인자한 은혜를 베풀어 광대하기 이와 같으리라.”
[게송]
이에 보현보살대사는 부처님의 거룩한 뜻[聖旨]를 받들고 시방의 뭇 성인들의 접호(接護)로 시방을 관하고 모인 대중들을 살피며 법계를 두루 살펴보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천ㆍ억ㆍ조의 겁(劫) 동안 닦아
셀 수 없이 부지런히 받들며
천(千)ㆍ재(載)ㆍ해(姟)의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로 인해 모든 법의 종자 생겼다네.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하고
도(道)를 세움이 끝이 없으니
모두 함께 일심으로 들어라.
부처님도 비할 데 없음을 찬탄하시네.
부처님께 공양함이 한이 없으면서도
부처님 도에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들의 많은 욕심을 잘 알면서
사람[人]이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네.
부처님의 공덕을 보면서도
그 이름과 공훈에 의지하지 않으며
그 높으신 행을 찬탄하면서
세간을 기쁘게 함이 높고 뛰어났다네.
죄와 진로와 악마를 제거하여
3세에 널리 나타내었고
그 덕은 뭇 성인에서도 뛰어났으니
기이한 힘과 행(行)을 드러냈다네.
어리석음과 애욕의 행을 다 태우고
뜻과 성품을 고요함[寂寞]에 두며
행으로 뭇 제한(齊限)을 나타냈으니
이제 그 공훈을 찬탄하노라.
으뜸가는 성인은 건넜지만
중생의 갈래[趣]는 요술과 같으니
그들 위해 여러 가지 변화를 보며
사람들의 자만심을 없애 주노라.
마음을 일으키는 그 동안에
모든 것을 두루 환히 아니
이제 그 공훈을 찬탄하면
중생들이 받들면서 공경하리라.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중생들의
다섯 갈래 길[五徑]에서 나고 늙는 우환을 보건대
끝내 죽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위험한 것과
애욕으로 상처받고 해를 얻네.
이들을 가엾이 여기면서 제도하려고
짐짓 넓고 높은 지혜를 세우니
마땅히 이런 공훈 기뻐하면서
다 함께 일심으로 들으시오.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일심(一心)으로 스스로 즐기며
선권[權]과 지혜[慧]의 도무극(度無極)으로
끝없이 인자함[慈]을 베푸시네.
비(悲)와 희(喜)로 법을 즐기고
백천 겁 동안 행을 수호하였으므로
이제 이 행을 찬탄하리니
말한 바의 공덕을 들으시오.
부처님의 도를 구한 까닭에
천ㆍ억ㆍ해의 몸을 소멸하면서
몸과 목숨 탐내거나 아끼지 않으니
이 모두 도의 진실함을 위해서라네.
중생을 위하여 부지런히 힘쓰면서
항상 보호하고 자신도 안온하게 하려고
능인(能仁)의 초월한 행과
가엾이 여기고 인자함을 품은 뜻 찬탄하리라.
수없는 천(千)ㆍ억(億)ㆍ재(載)의
겁수(劫數) 동안 그 명칭을 찬탄한다 하여도
하나의 터럭으로 바닷물을 찍어 내어
오히려 큰 바닷물을 다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 행한 정진(精進)의 덕은
이보다 뛰어나서 비유할 수 없으니
또한 부처님 경계와
중생을 가엾이 여긴 일을 들으시오.
중생들을 위하여
맑고 깨끗한 덕의 근본 자라게 하고
뜻과 성품이 급하지 않으며
도법(道法)의 즐거움을 싫어하지 않는다네.
중생의 처소에 지혜의 강과 못과
지혜의 나무를 세우며
세존은 마치 하늘과 땅 같아서
중생이 언제나 받들며 우러른다네.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을 뿌리로 삼고
금계(禁戒)를 지킨 어짊을 줄기로 삼으며
높은 공훈과 지혜는 꽃과 잎을 삼으니
계향(戒香)이 매우 청정하다네.
모든 깨치지 못한 뜻을 깨친지라
중생이 그 행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집착이 없음은 연꽃과 같으므로
중생들이 보고 귀명(歸命)한다네.
해탈(解脫)은 기장[稷]을 심는 것이 되고
몸의 본 성품에는 인자한 생각 있으니
지혜와 선권방편의 방법[術]
다섯 가지[五枝]로 피안(彼岸)을 건너네.
선정의 잎과 신통의 꽃과
온갖 지혜의 열매와
신족의 높은 법의 나무로
삼계(三界)를 널리 덮었네.
본래부터 청정한 자취[跡]를 닦아
넓은 지혜의 뜻을 오래 기르며
사자(師子)의 목처럼 생각[念]을 기르고
지혜의 청정함으로 머리를 꾸미네.
공한 지혜의 뜻을 첫 번째로 하고
자비[慈愍]는 세간을 제도하는 광명이며
무아(無我)는 마치 사자와 같아서
외치며 뭇 악마를 항복하게 하네.
나고 죽음[生死]의 헛됨을 뛰어넘고
백성들의 삿된 진욕[塵欲]을 뛰어넘으며
모든 세간의 일[家業]을 건너서
종요로운 행[要行] 받들며 어리석음을 제거하네.
미혹한 이에겐 바른 길을 보이고
부처님의 위없는 도를 나타내며
뜻을 세우되 두려움이 없으니
뛰어난 길잡이[導師]이네.
중생들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어두운 번뇌의 여러 가지 폐단으로
온밤 내내 유위(有爲)를 따르면서
부모를 괴롭히며 번뇌한다네.
중생들이 이렇게 내는[出生] 것을 보고
가엾이 여기면서 애욕을 치료하며
8만 4천 법문을 강설하여
많은 병을 다스리고 버리게 한다네.
이것을 뭇 악마와 번뇌를 항복받고
법으로 중생을 가르치며
악(惡)을 버리고 익히지 않으면
장엄한 부처님 덕을 구한다네.
법을 환히 아는 두루 구족한 제왕[兩足帝]이며
일체지(一切智)의 존귀한 분께서는
현성(賢聖)의 재보(財寶)로써
어두운 무리들을 널리 깨우치시네.
계(戒)와 삼매로 스스로 즐기고
성스럽고 청정한 지혜로
밝게 통달한 칼날로써
번뇌를 제도하되 두려움이 없다네.
법을 요술로써 변화 지으면서
그로 인해 으뜸가는 법륜(法輪)을 굴려
물러나거나 되돌리지 않는
온갖 이학(異學)의 뜻을 되돌린다네.
깊고 다한 지혜[深盡慧]를 깨달아 알아서
그 법의 맛[法味]을 널리 내며
각의(覺意)와 보배로운 신족(神足)으로
교화하기 어려운 백성들을 깨우친다네.
천 가지로 통하는 지혜의 힘에 머물러
세 가지를 청정하게 장엄함을 임금으로 삼으니
이것은 큰 지혜의 바다여서
짝할 이 없고 설하여도 다함이 없다네.
세속을 뛰어넘어 제도함으로써
3처(處)의 무리에 집착하지 않으며
선정과 신통을 이룩함으로써
지혜는 산과 같아 동요하지 않는다네.
그 어떤 종류가 청정하다 하여도
지혜의 밝음에는 미치지 못하니
덕은 성스러워 수미산보다 뛰어나고
가엾이 여기는지라 중생이 우러르네.
성품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이 강건하고
모든 것을 견고하게 닦으며
그 마음은 무너지지 않게 하여
법을 중히 여기고 넓은 지혜 받드네.
뭇 악마나 진욕(塵欲)에 노닐면서
세간에 있되 두려움이 없는 데 머무르고
은애(恩愛)의 활활 타는 불을 꺼 없애며
세속의 사람들을 모두 다스리네.
인자함의 비를 널리 내리고
가엾이 여김의 불꽃을 널리 펴며
4신족(神足)으로 내는 천둥소리는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능인(能仁)의 소리.
4분별변(分別辯)의 비를 내리고
여덟 가지 도[八品道]에 청정하게 어울리며
이 큰 구름으로 내리는 비로
뭇 진로를 소멸시키네.
지혜의 담[垣牆]과 부끄러움[恥]의 참호[塹]에
법의 당기 우뚝 세워 번기[幡]로 삼으며
거룩함은 마치 담을 열게 하는 문과 같고
뜻과 생각[意念]은 문을 지키는 사람[守門者]이라네.
4제(諦)로 지름길 만들고
청정한 신족으로 자취를 장엄하며
법의 요술[法幻]은 성곽(城郭)을 삼아
삼계의 임금 되어 악마의 항복을 받는다네.
마음으로는 일체지(一切智)를 세워
다리는 굳게 머무르고
새와 같이 날아 홀로 다니면서
자비로써 밝게 빛나게 한다네.
마치 봉황새와 같이 교화하니
미칠 수 있는 중생이 없으며
생사의 바다에서 구제하여 주고
뜻을 세워 열반[泥洹]에 오르게 한다네.
계율과 선정의 도량(道場)으로
지혜의 화만(華鬘)을 청정하게 일으키고
광명[明]으로 진로를 녹이며
은애(恩愛)의 흐름을 바짝 말리네.
약 뿌리의 힘[藥根力]으로 더욱 자라게 하여
부처님의 으뜸가는 도[上道]를 청정하게 하며
법의 햇빛을 떨쳐서
중생의 세계에 비추네.
법 경계의 도량[法境場]은 평등하고 청정하여
중생을 똑같이 버리지 않으며
모든 배울 것 있는 이[學]인
성문이나 연각승을 비추네.
마음은 3세를 널리 보면서
생각에 더하거나 덜함을 녹이고
뜻과 성혜(聖慧)는 기이하고도 뛰어나
중생은 허공[空]과 같음을 널리 펴네.
법에 있어서 자재함을 얻어
대중에 있으면서 덕의 형상[德像] 장엄하고
금강(金剛)을 들고 광명을 일으키며
언제나 법의 땅[法地]에 서 있다네.
몸의 여러 형상[相]은 좋고
모든 세간 중에서 뛰어나게 청정하며
대중을 위하여 경전(經典)을 쌓으니
중생에게 으뜸가고 높은 법이라네.
3세에서 애욕의 그물과
여러 가지 진로를 뛰어넘고
모든 세속을 사랑하여 가엾이 여기며
법을 좋아하여 사랑하고 보호하네.
3세에 몸을 나타내어
법음(法音)으로 온갖 중생에게 알리되
청정하기 마치 범(梵)과 같고
사견(邪見)을 좋아하지 않고 구제하네.
청정하여 생사를 제도하고
경계와 법은 높고 뛰어나니
다시는 물러나지 않고
큰 뜻으로 꿈틀거리는 중생을 섭수한다.
법은 높아서 세간을 뛰어넘고
지혜로써 대중을 위로하며
온갖 공훈은 으뜸가니
세간에 널리 유포함을 크게 칭찬하노라.
마치 허공과 같이 있는 그대로[自然]이고
온갖 뒤바뀜을 제거하며
대중에 있을 때는 보다 더 뛰어나
모든 경계에 영원히 집착하지 않는다네.
청정한 행에 널리 들어가고
또한 중생을 이룩하여 세우며
그 지혜 지극히 깊고 묘하니
이 지혜는 청정하고 또 청정하다네.
선권방편은 마치 땅과 같이 광활하고
다섯 갈래 중생에게 두루하니
그 인자함 마치 물과 같아서
뭇 번뇌와 욕망을 씻어 없애네.
지혜로 애욕을 소멸시키고
여러 가지 결점[穿漏]을 뽑아내어 구제하며
세존은 끝이나 다함이 없이
바람과 같이 삼계에 노니시네.
이런 것들 마치 보배와 같아서
모든 가난하고 모자란 길에서 구제해 주며
마치 금강(金剛)이 비할 데 없이 뛰어나듯이
3처(處)의 모든 소견 버리시네.
여러 가지 품류의 음성과
넓은 덕으로 삼계를 장엄하며
마치 밤에 빛나는 구슬과 같이 존귀하여
그 행은 정수리에 우뚝 서네.
공훈(功勳)은 마치 여러 가지 꽃과 같고
각의(覺意)로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니
마치 화만(華鬘)과 같은 이들은
세간을 초월하는 바른 서원(誓願)이라네.
계향(戒香)은 청정하고
완전히 갖추어서 새는 곳[缺漏]이 없으며
청정함으로 법의 향[法香]을 바르니
지혜가 세 곳[三處]에 퍼지네.
그 행(行)은 마치 높은 일산과 같아서
진로의 애욕을 가려 버리며
지혜의 당기[幢]를 우뚝 세우니
뜻을 붙잡아도 두 자취[二跡]가 없다.
행(行)으로 여러 가지 번기를 수놓고
혜(慧)를 닦아 지(智)에다 걸며
진리[諦]는 부끄러움[羞恥]의 의복이니
덕으로 중생을 덮어 주네.
한량없는 세계에서 수레[乘]를 타고
삼계를 달리고 노닐며
마치 용이나 코끼리를 고요하게 하듯이
그 마음은 항상 견고히 머무네.
신족(神足)으로 3세에 노닐면서
크고 무거운 짐을 뛰어 건너는 것은
마치 큰 용왕이
법의 물[法水]을 구름으로 덮는 것 같네.
또 마치 우담바라[靈瑞華]와 같이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우며
이들은 마치 용감한 모습을 한 이와 같이
악마를 항복케 하고 진로를 없애는 것과 같네.
또한 마치 구름이 없는 법륜과 같아
길잡이[導師]로서 널리 펴며
중생들에게 처음에서 끝까지 나타냄이
마치 어둠 속의 횃불과 같이 한다.
그 덕은 마치 강과 같고
길을 따라감은 마치 흐르는 물 같으며
이들은 마치 다리[橋梁]와 같아서
언제나 모든 것을 싣는다네.
마치 장엄하고 청정한 배와 같아
지혜와 서원으로 깊은 못을 건너며
또한 뱃사공과 같아서
밝은 자리[明地]에 머무름을 으뜸으로 하네.
밤의 즐거움을 관찰하여
중생을 위해 참된 즐거움을 나타내니
지혜의 법과 해탈의 문으로
지혜를 장엄하고 궁전을 청정하게 하네.
또한 여러 가지 약과 같아서
진로의 병을 녹여 없애며
마치 설산(雪山)의 여러 약[雜藥]과 같아서
미묘한 지혜로 집[屋室]을 삼는다네.
그 행은 마치 정각(正覺)과 같아서
지혜로 모든 잠에서 깨어나게 하며
그 도(道)는 평등하게 깨달은 것이어서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환히 아네.
이것이 온 곳은
마치 수승한 행과 성실한 믿음 같은 곳이며
마치 일체지(一切智)와 같아서
넓은 문 지혜의 방[普門慧室]에 들어가네.
이들은 많은 교화로
여러 중생들을 제도하니
자유자재한 부처님의 지혜로
온갖 지혜의 경계에서 노니네.
그 힘은 헤아릴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당해낼 수 없으며
그 지혜에는 두려움이 없어
해혜(解慧)로 중생을 환히 아네.
온갖 백성들의 형상과 얼굴 모습과
이름은 넓고 멀어서 끝이 없으며
모든 색(色)에 있어서
문자[字]와 음성은 모두 평등하다네.
색의 형상[色像]을 다 제도하고
이름과 음성의 여읨을 능히 나타내니
온갖 중생의 무리로서는
그 덕의 빛남을 펼 수 없다.
이러한 공훈을 닦고
그릇되게 건립한 법을 버리며
현재에는 지혜의 아버지[慧父]가 되어서
유제(有際)와 무제(無際)를 멀리한다네.
이것이 곧 일체지(一切智)이고
지혜에 있어서 가장 밝으며
집착 없는 행[無著行]에 들어감을 찬탄하고
따르고 공경하면서 세간을 기쁘게 한다네.
모든 법문(法門)은 마치 요술과 같고
언제나 공(空)하면서 고요한 줄 아니
옛날의 서원과 행과 가엾이 여김으로
부처님의 거룩한 뜻[聖旨]을 이어 받았네.
만(慢)을 여의고 지혜의 문[惠門]을 드러내며
여러 가지 변화 나타내니
다 함께 한마음으로
보살의 공훈을 들으시오.
곧 한 몸[一身]의 형상으로
널리 수없는 덕을 나타내고
마음과 뜻[心意]이 없는 경계이니
중생이 그 마음을 보지 못하네.
하나의 음성을 널리 펴낼 적에
모든 말의 경계를 뛰어넘으니
온갖 중생들의
언어를 따르면서 차례대로 펴네.
중생의 몸을 버림으로써
행할 바의 몸에 보답하려 하니
음성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
소리의 가르침[聲敎]을 펴네.
마음은 적막하면서 밝게 빛나고
진리는 마치 허공과 같은 줄 깨달으며
중생의 세간에서는 저마다 다르므로
그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를 보이네.
구경에는 몸이 없는데도
오히려 또 형상이 있음을 나타내며
중생이 나는 데에 따라
보응(報應)의 과보를 세우게 된다네.
나는 데[所生]에 들어가되
나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허공과 같이 여기면서
어떤 사람임도 생각하지 않네.
그 몸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임을
밝은 지혜로 모두 나타내면서
천인존(天人尊)을 받들어 공경하고
세간의 일체지[世一切智]께 귀의하네.
꽃과 향과 섞인 향ㆍ가루 향과
기악과 비단의 번기ㆍ일산으로
스스로 몸과 목숨을 다해 땅에 대고
으뜸가는 성존[上聖尊]께 공양하네.
한분의 가장 수승한 이 아래에 머무르고
모든 부처님 앞에 서서
모든 대중의 집[衆舍]을 보면서
언제나 비할 이 없음을 여쭙네.
법을 듣고서는 삼매(三昧)와
하나의 대(臺)인 한량없는 문[無量門]을 체득하며
본래부터 배울 바에 머무르되
뜻이 용맹하여 한량없음을 나타낸다네.
선권(善權)과 지혜의 업으로
피안을 건너며
중생은 마치 요술과 같은 줄 알면
저절로 부처님 도에 이르게 되네.
따로따로의 다른 마음과
한량없는 빛과 음성을 두루 보며
구하고 바라는 생각에 들되
집착이 없으면서 대중에게 널리 나타낸다네.
혹은 또 첫째가는 것을 나타내면서
중생을 위하여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혹은 어떤 도(道)를 행한 이는
한량없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며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로
혹은 맑은 자취의 행[梵跡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으뜸가고 묘한 행[上妙行]을 나투기도 하네.
혹은 어떤 이는 행이 원만하게 되어
성냄을 참을 수 있기도 하며
한 번으로 구경(究竟)을 생하게 하여
혹 아유안(阿惟顔) 부처님이 되기도 한다네.
혹은 성문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또 연각이 되기도 하며
억(億)ㆍ재(載)의 나라에서 멸도하면서도
또한 다시는 멸도하지 않기도 한다네.
혹은 이 도리천(忉利天)의 제석이나
아수라나 범천왕이며
옥녀(玉女)와 모든 권속이 되기도 하고
혹은 또 홀로 머물며 거닐기도 한다네.
비구의 마음은 적막(寂寞)하면서도
혹은 다시 국왕이 되기도 하고
법의 그물[法網]과 지혜의 경계에 들며
혹은 묘한 색의 형상[色像]을 나타내기도 한다네.
천상으로부터 내려와
혹은 여인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끝없는 데를 건너기도 하며
혹은 노정(露精)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네.
혹은 넓은 욕선(欲禪)에 있기도 하고
또는 인욕의 업을 쌓기도 하며
참된 이치의 자리[眞諦地]를 알고 체득하여
눈으로 심행(心行)을 보는 것도 나타낸다네.
혹은 태(胎)에 들어감을 보이기도 하고
태 안에서 정각을 이루기도 하며
다시 법륜을 굴리기도 하고
혹은 났다가 멸도를 나투기도 한다네.
혹은 또 기술을 배우고
여인 가운데서 삼매에 들기도 하며
뭇 업이 이미 다 갖추어 있는데도
나라를 버리고 왕을 버리는 일을 나타낸다네.
혹은 또 불수(佛樹) 아래에서
으뜸가는 정각을 이루기도 하며
혹은 법륜을 굴림을 나타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나타낸다네.
혹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면서
억천의 국토를 두루 다니시며
물러나지 않는 행을 나타내 보이시지만
부처님께는 고요한 업[寂業]도 없다.
도무극에 들어가고 생각하면서
억천 겁 동안 노니시며
일심으로 나타내는 바의
그 경계도 백천 겁 동안입니다.
모든 생각[想]에도 생각함이 없고
중생을 위하여 겁수(劫數)를 나타내며
의심도 없고 설한 바도 없으면서
일을 해결함[周旋]을 나타낸다네.
유(有)를 보고 고요한 업[寂業]을 지으면서
중생을 두루 항복하게 하니
모두 항복함으로 말미암아 수승해져
그 처소가 깨끗하게 된다네.
부처님 국토와 중생의 세계에서
모든 법의 보응(報應)에 들어가며
구경(究竟) 백억 겁 동안에
널리 편 것은 다할 수 없다네.
중생의 이와 같은 데 들어가서
넓은 지혜로 뭇 사람을 깨달아 알며
곧 한 사람의 몸[身]으로
한량없이 많은 형상으로 변화하네.
또한 하나의 요술[幻術]로써
언제나 모든 것에 두루하며
이것으로 도무극(度無極)을 설하면서
모든 배우지 못한 이[不學者]를 가르친다네.
모든 근성[根]이 통하고 영리함을 알면서
중간에서 그 근본을 고요하게 하며[調定]
모든 근성에 자재(自在)함을 얻고서도
중생에게는 한 일[業]이 없다네.
한 근성[一根]으로 모든 근성에 들어가고
각각 탐냄과 의지함[貪猗]을 품으며
선정의 멸[禪滅]은 심히 미묘하여
모두 근성에 들어감에 머무르게 된다네.
해탈과 믿음과 보시의 성품은
진욕의 행[塵欲行]에 머물지 않으며
과거나 장차 오는 세상의 마음과
현재도 역시 그러하다네.
중생을 피안(彼岸)으로 건너게 하되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참된 이치의 행[眞諦行]을 모두 다 알면서
중생 위해 으뜸가는 법[上法] 연설한다네.
마음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이나
마음의 행은 티끌[塵]의 샘[漏]이 없으며
일심으로 바른 도[正道]에 들어가서
일체지(一切智)를 아주 잘 안다네.
마음은 부처님의 무심(無心)에 있고
제일의 으뜸가는 지혜에 머무르며
한 번 마음을 일으키는 동안에
있는 그대로의 지혜[自然慧]를 알고 분별한다네.
신족(神足)과 도무극으로
온갖 성인을 알고 분별하며
신통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동안에
무량재(無量載)의 국토에 이르네.
두루 노니는 데도 역시 그와 같아서
억백 나술(那術) 겁 동안
지혜를 선설함이 한량없으며
움직이지 않는데도 그 힘은 널리 통하네.
요술쟁이가 재업(財業)을 구함은
대중 안에서 모든 형상 보는 것
색(色)이 없는 데서 색을 보게 되나
요술로 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방편 지혜[權慧]도 역시 그와 같아서
넓은 의미의 환술[廣法幻]에 들어가
여러 가지의 변화를 나타내면서
세간에 두루 들어간다네.
마치 허공에 있는 해는
청정하여 조그만 가림도 없는 것과 같으며
마치 맑고 깨끗한 물에서
밑에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네.
법계의 도량[場]은 청정하고
지혜의 광명은 멀리 비추게 되며
사람의 경계도 청정함을 보고
마음은 사견(邪見)에 머무르지 않는다네.
마치 꿈에서 갖가지를 생각하다가
깨어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으며
수없는 억(億)ㆍ재(載)의 해[歲] 동안
오랜 세월에도 다할 수 없다네.
있는 그대로 법[自然法]도 평등하고
온갖 이치를 널리 나타내면서
마침내 백천 겁을 머무른다 하여도
일시 동안에 지혜를 다하네.
세간의 방속(方俗)에 처하는 것은
마치 산꼭대기나 문지방과 같으며
널리 펴는 온갖 음성에도
생각함 없이 지혜를 말하네.
보살은 이러한 모든 법이
저절로 그러한 줄 환히 아니
중생의 언설과 음향을 따라
법음(法音)을 나타내되 생각함[想]이 없다네.
비유하면 마치 봄이나 여름날
아지랑이에 생각을 일으킨 사람이
물이 있다고 여겨 달려가지만
갈증만 더욱 심해지는 것과 같네.
중생이 진여[如]를 일으키고자 하여
뜻하고 구하면서 해탈을 세우면
지혜 얻어 사람이란 생각[人想] 없어지고
자비[慈愍]가 더욱더 일어난다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색(色)은 큰 물거품과 같고
느낌[痛痒:受]은 작은 물거품과 같으며
생각[想]은 모두 아지랑이와 같고
지어감[行]은 마치 파초와 같으며
그 마음[心]은 마치 요술과 같고
의식[識]은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며
5음(陰)도 이와 같다고 설하셨으니
통달한 이[達者]는 집착이 없다.
모든 입(入)은 공하여 있는 그대로인데
자기 자신에 따라 짓는 바가 있으니
법계에 대하여 평등하므로
중생을 여읜 땅[土]을 나타낸다네.
여섯 가지 일[事]은 고요한 참 이치[眞諦]인데
여러 가지 고요하지 않음[不定]을 말하면
이것이 분별하는 알음알이[解]이며
모든 법에 의지하고 집착한 것이라네.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또한 항상 머무르는 곳도 없고
은혜와 사랑의 보응(報應)과
죄와 복으로 3세를 유전한다네.
인연(因緣)을 분별하여 태어나되
머무르지 않고 번뇌를 없앤 이는
본말(本末)을 구하여 이루기에 이르고
의지하면서도 있는 바가 없다네.
3세가 하나요 평등한 줄 알면
일시에 여러 가지를 나타내게 되며
욕계와 무색계에 있으면서도
경토(境土)를 널리 나타낼 수 있다네.
행(行)으로부터 세 가지 가호[護]에 이르고
3처(處)를 제도하고 해탈하며
3승(乘)을 널리 찬탄하고 선설함도
하나의 일체지(一切智)에 돌아간다네.
법의 곳곳마다 분석하고 판단하여
모든 근원을 건너가게 하니
이미 진로의 경계를 알면
자재하게 널리 놀며 거처하네.
과거의 일을 기억하여 알면서
밝은 눈으로 진로를 없애니
넓은 지혜의 부처님의 10력(力)도
또한 모든 힘을 얻지 못하네.
모든 것의 공한 뜻[空意]을 깨닫고
중생의 법을 현전에서 관하면
애욕이나 천루(穿漏)도 없고
또한 구차함이나 다함[盡儻]도 얻지 못한다네.
모든 생한 것[所生]에 들어가서
지혜는 넓어 중생을 잃지 않으며
여기에 용감하게 머무름을 수승하게 알아
선택된 행[選擇行]으로 잘 베푸네.
도(道)에 이지러지지[缺] 않고 동요하지 않으며
그 뜻을 한순간도 잊지 않으면서
정의(定意)로 잘 정진하여
지혜로 모든 더러움[穢]을 소멸한다네.
지혜의 법[慧法]을 지어 수호하여
지금 3세(世)에 드러내고
자비의 법으로 중생의 도반이 되어
함[爲]도 없고 얻는 바[所得]도 없다네.
이런 법문을 행하여
덕을 널리 드러내어 떨치기에 이르며
그 공훈을 조금만 들어도
지극한 뜻[至義]을 모두 장엄한다네.
그의 행을 찬탄하자면
억재(億載) 겁으로도 다할 수 없으니
그 중요한 은혜[要惠]를 조금만 들어도
땅에서 티끌 하나를 취한 것과 같다네.
부처님의 거룩한 지혜에 의지하여
생각 없는 데에 머무르며
정진으로 자비의 마음[慈心] 견고하여
온갖 업을 뛰어넘고 따르네.
중생을 권유하여 교화하고
선정과 계율은 동요함이 없으며
바르게 결단하는 행을 체득한지라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佛子]라 하네.
부처님의 공훈에 들어가서
국토와 중생의 행을 생각하며
둘이 없다는 생각[無二想]에 들어가서
은혜가 뛰어나고 어려움[難]을 싫어함이 없네.
변재(辯才)의 힘과 총지(總持)를 얻어
참된 이치의 뜻[眞諦義]으로 제도하며
견줄 데 없는 마음 찬탄하면서
으뜸가는 정각 이루게 된다네.
어진 공훈과 명칭을 널리 생각하고
높고 미묘한 행을 맹세코 서원하며
가엾이 여기는 인연으로 인자함 닦으면서
높은 이께 친근하여 미묘한 도 청정하게 하네.
청정한 도무극을 알고
구경(究竟)에는 방편[權]으로 열반[滅度]하며
식별(識別)로 세력을 얻어
최상의 도[最上道]를 이루게 된다네.
넓고 평등한 지혜[晋等惠]에 이를 줄 알면서
최상의 법을 널리 펴며
뛰어난 덕으로 성인의 갑옷[聖鎧]을 입고
도(道)에 있으면서 법의 지위[法位]를 따르네.
구경에는 성인의 뜻[聖旨]에 머무르고
평등한 마음으로 천둥소리 제거하며
지혜로 제어하여 아만의 자취[慢跡] 교화하고
부처님 도에 이를 수 있게 한다네.
지혜로 생각 없음[無想] 이룩하여 세우고
어루만져 기르는[撫育] 집[堂]에 이르며
깊은 데 머무르고 용맹함에 의지하여
중생들의 의심을 덜어 없애네.
생각하는 지혜[思慧]의 차제법(次第法)으로
도무극(度無極)에 잘 보응하며
아래로는 평등한 자취에 들어가고
일부분의 지혜로 넓은 지혜[普智] 깨닫네.
번거롭고 자잘한 지혜[雜碎智]를 건너고
신통으로 스스로 즐기며
진로에서 벗어나 밝게 비추어
중생의 동산[苑囿]이 되어 준다네.
청정한 행의 궁전(宮殿)으로
여러 가지 미묘한 행을 나타내며
중생에게 청정함이 없음을 보이면서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네.
지성(志性)의 밝음을 충분히 통달하여
도무극을 잘 연설하며
장엄하고 청정한 도의 소견[道見] 가운데서
지혜의 광명 떨치네.
대적할 이 없고 겁내거나 허약함도 없고
그 뜻은 마치 태산(太山)과 같으며
덕행(德行)은 끝없는 데에 이르렀으며
지혜는 마치 다함없는[無盡] 바다와 같네.
마치 보배 방에 있는 금강과 같고
큰 덕의 갑옷[大德鎧]에 굳게 머무르며
베푼 것이 지극히 넓고 크며
잘 아는지라 파괴할 수 없네.
수결(授決:授記)로 지극한 도(道)에 이르고
광대한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부처님의 다함없는 갈무리[無盡藏] 얻고
일체지(一切智)를 깨달아 이루네.
지혜가 자재하도록 항상 수호하여
변화 나타냄을 환히 깨달아 알며
중생의 국토나 법계에서
지혜에 머물러 권변(權變)을 나타낸다네.
몸의 서원으로 노닐고 다니며
지혜의 변화도 역시 그와 같아서
억(億)ㆍ재(載)ㆍ무량(無量)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즐겁게 하네.
힘을 나타내고 신통으로 날면서
즐기는 힘 충분히 통달하며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경계[覺境界]에 이르게 하네.
용맹하여 두려워함이 없고
엄한 지혜로 언사(言辭)가 없으며
온갖 부처님의 제자를 위하는
그 몸은 크고도 청정하네.
몸의 업[體業]은 매우 넓고도 길며
입의 말도 또한 맑고 깨끗하며
지혜 세우기 좋아하고 성취하기에 이르면서
가장 수승한 열 가지 업(業)을 짓네.
마음과 마음으로 일으키는 그 마음은
두루하고 가장 으뜸임을 나타내며
정의(定意)로 모든 근성을 가르쳐서
모두 수승한 근원에 굳게 머무르게 하네.
청정하게 하면서 아첨을 제거하고
성행(性行)은 언제나 질박하고 정직하며
해탈에 이르고 들어가게 함으로써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낸다네.
머물러 있는 데[所止處]를 버리고
상품의 업[上品業]을 지니며
그곳에서 선(善)을 이루면서
일체지(一切智)를 통달하여 아네.
적연(寂然)하게 머무름을 버리지 않고
으뜸가는 깨끗함에 머무르며
명호[號]와 공훈(功勳)을 나게 하면서
대도(大道)를 잘 배우네.
마음으로 한량없는 업을 구하여
집착 없이 받들어 행하면서
도(道)의 여러 흐르는 못[淵]을 나타내어
중생에 들어가도록 굳게 세우네.
행함을 손[手]으로 삼고
배[腹]는 강한 지혜를 가장 으뜸으로 하며
그 뜻은 마치 금강과 같고
가엾이 여김의 갑옷[愍鎧]은 성인의 청정한 모습[狀]이네.
지혜의 머리로는 법을 관하고
도의 행[道行]을 알면서 널리 들으며
계율의 향기[戒香]로 청정함을 삼고
움직임과 고요함[動靜]을 최상으로 삼네.
몸과 마음은 언변(言辯)에 노닐고
마음의 지혜는 가장 수승하며
행하는 바는 부처님 도에 이르고
사자의 자리[師子床]에 앉네.
범행(梵行)의 자취에 누워 잠자고
으뜸가는 공(空)으로 무위(無爲)를 행하며
밝음[明]은 안온한 경계로 가고
빛[光]이 비추는 바도 그와 같다네.
중생을 자세히 살펴보아 알고
여러 가지 행하면서 자주자주 펴며
보시하여 간탐(慳貪)을 여의고
금계(禁戒)를 업신여기지 않네.
인욕하면서 성냄을 버리고
정진하는 일을 맨 첫째로 하여
선정과 지혜로 자재함을 얻고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네.
가엾이 여기면서 법에 싫증냄이 없고
청정하여 진로(塵勞)를 없애며
뜻[義]이 고요하여 도법을 수순하고
복으로 중생에게 베푼다네.
성혜(聖慧)의 예리함은 마치 무소[犀]와 같고
밝은 지혜로 넓고 멀리 비추며
견문을 넓힘에 만족함이 없고
두려움 없음[無畏]으로 망상(妄想)을 없애네.
자기를 제어하고[制己] 행을 세워 살피면서
악마의 경로(徑路)를 벗어나며
부처님의 지혜 업을 닦아
지성(志性)으로 머리 조아려 받드네.
자만심을 버리고
언제나 도의 뜻[道義]에 따르면서
악마에 구속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힘쓰며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따르네.
큰 뜻으로 법의 가르침 따르고
뜻[義]을 한데 합쳐 위없는 데 이르며
일을 짓고 나서 몸을 돌이켜 보고
도무극을 장엄하여 나아가네.
태어남으로 높고 뛰어남을 나타내고
처음 탄생하자마자 일곱 걸음 걸었으며
모든 기술(伎術)을 널리 나타내고
후궁(後宮)에 처함을 보였다네.
집을 버리되 그리워하지 않고
도를 닦아 으뜸가는 근본[上本]에 이르며
공(空)의 광명을 가까이하고
넓고 지성스런 업을 닦았다네.
악마를 항복받고 상도(上道)를 체득하여
법륜(法輪)의 자취를 굴리며
부처님 도의 지위[佛道地]에 있음을 보였으니
대사(大師)에 대적할 이 없네.
이런 행은 끝이 없어서
조금만 나타내도 광대하고 요원하며
억(億)ㆍ재(載) 겁 동안 쌓아 온 행으로
즐거움을 삼게 된다네.
억백천의 중생들은
정진하여 닦으면 부처님 덕(德)에 머무르니
법(法)에는 사람도 없고
온갖 행에 집착하는 것도 없네.
이런 행은 지혜의 뜻과 계합하며
억천의 모든 국토와
만백천재(萬百千載) 겁 동안에
신통으로 스스로의 즐거움을 삼네.
손바닥에다 억ㆍ재의 국토를 놓고
두루 돌아다니면서도 고달파하지 않으며
다시 본래의 자리에 되돌아와 보니
중생들이 고뇌하지 않네.
모든 부처님 국토는 장엄하고 청정하니
나타낼 적에는 마치 한계가 있는 듯하나
모든 중생의 무리를
털구멍[一毛孔] 하나에 들어가게 하네.
그 네 개의 큰 바다[大海]도
하나의 털구멍에 들어가게 하며
늘지도 않고 또 줄지도 않으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괴롭힘도 없네.
억(億)ㆍ해(姟)나 되는 대철위산(大鐵圍山)을
마치 티끌[一塵] 하나처럼 손바닥에 놓고
억 개의 강물의 모래흙을 옮겼다가
다시 본래의 자리에 놓기도 하네.
나라와 그리고 그 흙을 취하여
혹은 파괴하는 이가 있다 하여도
무심(無心)으로 항복받으면서
들이는 바[所入]가 다할 수 없다네.
가령 백천 개의 해와
온갖 달이 중생을 비추고
명주(明珠)의 큰 불길 같은 광명으로
모든 하늘들과 아수라를 비춘다 하여도
하나의 털에서 놓은 광명이
그보다 억ㆍ재나 더 뛰어나게 빛나며
위없는 법을 연설하니
세간의 악취(惡趣)를 모두 소멸하네.
여러 가지 언어와 음성이지만
중생에겐 그 밖의 언사가 없으며
한 음성을 펴서 가르친 뒤에는
두루 모든 가르침에 들어가네.
부드러운 음성을 얻어 들으면
거억(巨億)의 대중들은 다 기뻐하면서
부처님께서 강설한 법음을
모두 함께 듣게 되네.
지나간 겁 동안의 일을 헤아리고
장차 오는 세상의 일을 보며
또는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도
과거의 행을 나타내게 된다네.
모든 부처님 국토의 한계를 보이면서
위험하고 무너져도 다시 회복되게 하며
억이나 되는 모든 중생을
모두 하나의 털구멍에 들여 놓네.
시방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뛰어날 수 있게 이룩하여 세우고
모두 당신 몸을 진실로 나타내어
감동(感動)하고 변화를 나타낸다네.
밝은 이[明者]는 아만이 없는 데에 머무르고
중생의 마음을 깨달아 알며
그 몸을 따라 나타내 보이고
때[垢]를 여의면서 제 몸을 탐내지 않는 것과
모든 사람의 몸과
입으로 말하여 귀착하는 바와
제석과 범왕과 사천왕과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과
성문이나 연각승은
모두 부처님의 몸으로부터 나오니
부처님 도를 받들어 행함을 보이면서
일체지(一切智)에 이르네.
모두 사상(思想)의 그물과
청정한 가운데의 더러움[瑕穢]에 들면서도
넓은 지혜[普智]를 이룩하여 세워서
항상 부처님 도의 국토를 나타낸다네.
기억[念]과 분별(分別)과 생각[思想]은
모든 세간에서의 자재한 지혜[自在智]이며
본래 행하는 도(道)를 따르면서
나라로 닦는 것을 나타낸다네.
이와 같이 감동하며
좋고 넓고 지극하여 으뜸[上]임을 나타내며
세속에서는 미치지 못하는
이러한 가르침을 나타내게 된다네.
나타냄에는 나타나는 것이 없고
그보다 더 뛰어난 것도 없으니
사람들의 성행(性行)으로 인하여
참된 이치의 업[眞諦業]을 나타내게 된다네.
그 몸은 평등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고
그 이름은 3세에 있어 널리 들리며
계향의 옷[戒香衣]으로 스스로 훈습하여
적연(寂然)한 덕으로 장엄한다네.
법으로 때[垢]를 여읜 비단옷을 입고
넓은 지혜는 여의주(如意珠)이며
밝은 지혜를 빠짐없이 갖추고
공훈으로 넓은 지혜에 머무르네.
도무극의 수레바퀴 체득하고
언제나 으뜸가는 신통을 베풀며
지혜와 신족으로 막힘이 없으니
지혜의 상명주(上明珠)에 이르네.
그 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인[淨妙女]이며
수승하게 네 가지 은혜[恩]를 섭수하며
선권(善權)으로 제창하며 인도하니
덕은 선의 근본[善本]이며 법륜이라네.
공한 정의[空定意]의 존귀함에 머물며
자비의 갑옷으로 성(城)을 삼으며
궁노(弓弩)의 지혜로 뜻을 베풀고
모든 근성의 밝음[根明]으로 화살을 삼으며
세간을 위해 일산[蓋]을 세우고
성혜(聖慧)로 당기ㆍ번기를 우뚝 세우며
모든 악마의 세력을 항복하게 하고
인욕의 힘으로 조복하네.
토지로는 총지(總持)를 섭수하고
혜를 행하는[行慧] 못과 지(智)의 나무와
각의(覺意)의 꽃과 삼매는
신족으로 장엄하여 즐거워하네.
공(空)을 앎을 목욕하는 못으로 삼고
해탈문은 긴요하고 깨끗한 아내[妻]이며
법을 앎을 감로(甘露)의 밥으로 삼으니
3승(乘)으로 즐거이 유희하네.
이런 행은 가장 높은 것이며
수묘(殊妙)하여 이보다 뛰어난 것 없으니
억(億)ㆍ해(姟)ㆍ백(百)ㆍ천(千)의 겁 동안
게으름을 내지 않았다네.
성인의 청정한 국토를 공경하고
중생을 깨우치되 머무름이 없음을 즐거워하며
지혜의 모든 묘한 즐거움을 세우고
일체지(一切智)를 완전히 갖추었네.
용맹으로 모든 국토를 헤아리고
하늘의 비로 모든 더러움을 소멸하며
묘함도 다할 수 있고
허공도 헤아릴 수 있으며
한순간 잠깐 동안에
중생의 마음속을 알 수 있어도
모든 불자(佛子)를 찬탄하는 것은
백천 겁 동안 하여도 다함이 없네.
청정한 공훈에 이르고자 하면
그 지혜 뛰어넘을 수 있는 이 없으니
괴로움과 우환을 제도하여
영원한 안락에 서게 되네.
그지없는 평등함에 이르고
몸과 입과 뜻에 편안히 머무르되
마땅히 그 마음 견고하기
마치 금강과 같은 행을 지어야 한다네.
보현보살이 이 말을 연설할 때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그 큰 광명은 시방세계를 널리 비추었으며 공후(箜篌)와 악기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고 모든 하늘과 사람들로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성문 제자들은 모두 와서 귀명하였고 모든 보살들은 다 그것이 진실임을 말하였으며 모인 대중들은 다 함께 기뻐하면서 모두 다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