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와 산문 27 끝없는 시 / 예후다 아미하이
끝없는 시 / 예후다 아미하이
새로 지은 박물관 안에는
오래된 유대 회당이 있다.
회당 안에는
내가 있다.
내 안에는
마음이.
마음 안에는
박물관이.
박물관 안에는
회당이,
회당 안에는
내가,
내 안에는
마음이,
마음 안에는
박물관이 (김상환 국역)
Poem Without an End / Yehuda Amichai
Inside the brand-new museum
there's an old synagogue.
Inside the synagogue
is me.
Inside me
my heart.
Inside my heart
a museum.
Inside the museum
a synagogue,
inside it
me,
inside me
my heart,
inside my heart
a museum (Chana Bloch 영역)
[단상] 예후다 아미하이(Yehuda Amichai, 1924~2000. 본명 루트비히 포퍼)는 유대계 독일 태생의 이스라엘 시인이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수 차 오른 바 있는 그는 일상적인 구어체 사용으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히브리어 특유의 다층적 의미와 역사적 은유로 이렇다할 배경지식이 없으면 행간의 깊이를 느끼기 힘들다. 그의 시는 ‘소리의 놀이’로서, 소리들이 ‘음성적 친족성’을 통해 통사 사슬에서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 지난 세기 가장 크고, 가장 필수적이며, 가장 오래 지속되는 시적 목소리로, 가장 영리하고 견고한 시적 지성으로 세계 언론과 유수 비평가의 주목을 받았다. 《사이프러스 같지 않다》, 《예루살렘의 시》, 《열림 닫힘 열림》 등의 시집이 있으며, 히브리어로 쓰인 그의 시는 영어, 프랑스어 등 세계 37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텍스트를 보면, 새로 지은 박물관 안에는 오래된 유대 회당이 있다. 그 회당 안에는 나-자아가 있고, 그 안에는 다시 나의 마음이 있다. ‘박물관-회당-나(자아)-마음’의 동심원 구조로 이루어진 이 시의 마음 안에는 예의 새로운 박물관이 있고, 그 안에는 끈끈한 유대(紐帶)의 오래된 유대 회당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시 나와 내 마음이 있고 완전 새로운 박물관이 있다. 사물과 마음의 질문은 입자 속 입자의 ‘마트료시카’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안으로 파고든다. 그러고보면, 새로운 박물관 안의 오래된 회당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사물-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새로움의 내부는 이렇듯 전통(성)에 대한 기억과 비전을 간직하고 있으며, 내외(內外)의 사이와 세계를 오가는, 끝없는 나선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에는 ‘개인-신체-신앙-역사-건축’이란 서로 다른 층위가 겹쳐 있어 정체성이란 것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와 순환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이란 장소성과 개인의 내면을 겹쳐 놓은 것도 상자 속의 상자, 세계 속의 세계가 무한 반복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 시가 갖는 새로움과 아름다움의 깊이는 사물과 마음의 대칭 구조와 리듬에 있다. 시의 무한과 영원은 어떤 소용돌이, 앵무조개처럼 내부를 파고드는 힘과 신비에 있다는 생각. 문제는 시의 내부가 (마크 C. 테일러의 말처럼) 내면화도 통합도 동화도 불가능한 외부와 이어져 있으며, 이 내부성은 외부에서 침투할 수도 없고. 내부에서 표현할 길도 없는 침묵에 둘러 싸여 있다는 사실. 알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명명할 수 없는 것은 지하 묘지처럼 우리의 내부에 있다. ‘without’와 ‘into’를 잇는 순간이다. 새로운 세기를 사는 우리들 마음 안에는 여전히 시간의 사원寺院이 있고, 흰 달빛과 뜬 그림자의 불국이, 토가 있다.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 (박목월, 「불국사」 전문)
첫댓글 예루살렘이란 장소성과 개인의 내면을 겹쳐 놓은 것도 상자 속의 상자, 세계 속의 세계가 무한 반복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 이 시가 갖는 새로움과 아름다움의 깊이는 사물과 마음의 대칭 구조와 리듬에 있다. - 부분이 전체를 닮는 프랙탈 구조의 시로 읽힌다. 한 행이 한 편의 시를 닮는다. 하나의 이미지가 끝없이 증식한다. 반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다. 작은 것 속에 우주가 있다. 동양의 미학으로 말하면,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다. 한 개의 언어에서 무한한 의미를 피워 올리는 양자역학의 중첩이라고나 할까.
♻️김상환 선생님 좋은 시와 해설,
회장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