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 출발지는 마랑고 게이트
드디어 킬리만자로의 출발지인 마랑고에 도착했다. 해발 1,970m인 마랑고 게이트엔 킬리만자로 국립공원관리본부가 있어 등산객을 통제하고 안내한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은 2,700m 이상부터이지만 자연자원의 보존과 관리,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이곳에 있었다. 공원 안내판에는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만다라(Mandara)산장까지 3시간, 해발 3,780m의 호롬보(Horombo)산장까지 5시간, 4,703m의 키보(Kibo)산장까지 5시간, 5,681m의 길만스(Gilmans)까지 5시간, 최정상인 5,895m의 우후루 피크(Uhuru Peak)까지 1시간30분 걸린다고 소개하고 있다.
입구에는 독일인 한스 마이어(Hans Meyer)의 동상이 있다. 1889년 유럽인 최초로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바로 그 옆 동판엔 한스 마이어가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가이드 요하나 라우워(Yohana Lauwo)와 포터 맘바 코웨라(Mamba Kowera) 등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스 마이어는 킬리만자로가 케냐가 아닌 탄자니아령이 되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마이어가 아프리카 최고봉을 등정하자, 독일 황제 빌헬름2세는 킬리만자로가 탐이 났다. 빌헬름2세는 영국령 케냐에 속해 있던 킬리만자로를 독일령 탄자니아로 넘겨 달라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간청했다. 이에 빅토리아 여왕은 흔쾌히 받아들여 킬리만자로를 탄자니아로 넘겼다. 독일의 빌헬름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큰 딸인 제1왕녀 비키의 아들이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자인 빌헬름2세에게 엄청난 생일선물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직선으로 된 국경선이 킬리만자로에서 곡선으로 돌아가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마랑고 입구에서 통과절차를 밟고 있는 동안 안개가 자욱했고, 비는 오락가락했다. 우의를 입어야 할지, 그대로 가야 할지 애매한 날씨였다. 마침 통과절차가 끝나고 만다라산장을 향해 일단 그냥 출발했다.
숲속 길이다. 포터들이 다니는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길이었지만 등산객들은 부드러운 화산흙으로 복토한 숲속 길로 안내됐다. 숲은 울창했다. 아프리카의 밀림 모습 그대로였다. 무성한 이끼가 낀 상태의 거의 50m는 될 법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성인 몇 사람이 겨우 둘러쌀 만한 덩치 큰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킬리만자로 지형은 대략 해발 1,000m마다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저지대는 경작(Cultivation) 지형이다. 이곳에서 농작물과 과일을 재배한다. 바로 그 위의 지형이 숲으로 우거진 산지(Mantane Forest)로 1,800~2,700m까지 해당되는 지역이다.
얼추 4,000m까지는 킬리만자로 관목과 황무지(Moorland)의 모습을 띤다. 5,000m까지는 고산사막(Alpine Desert 또는 High Desert) 지형이다. 관목도 사라지고 풀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자란다. 그 이상은 만년설(Ice Cap) 또는 빙하 지형이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열대와 한대기후 모두 거치는 것이다.
마랑고 게이트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다라산장까지 7.1㎞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등산로는 밀림 속 오솔길처럼 한적했고, 타잔과 원숭이나 동물들이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숲 구경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지대는 조금 높지만 마치 거대한 ‘산소저장고’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아프리카는 남미의 아마존 다음으로 많은 양의 산소를 배출하는 세계 제2의 밀림지역임을 실감케 했다. 지금 그 속에 들어앉아 있다. 여태 경험하지 못한 멋진 신세계, 그 자체다.
마랑고~만다라산장 약 10㎞
점점 높아지는 고도로 인해 낮아진 기압이 귀를 압박하는 듯했다. 귀가 잠시 멍해졌다. 천천히 걸었다. 올라갈수록 나무의 모습과 형태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원시 밀림의 굵은 나무에서 그 굵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우리 참나무 같은 굵기로 변했다. 나무에 기생하던 짙푸른 이끼들도 색이 많이 바래 있었다.
출발한 지 5시간쯤 지나 만다라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2,720m로 적혀 있었고, GPS로 측정해보니 2,716m로 거의 근사치다. 마랑고 게이트에서부터의 거리는 9.3㎞가 나왔다.
산장 주변엔 텐트를 친 외국인이 많았다. 그 중 서울에서 온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부부 모두 60세를 넘긴 퇴직한 분인 듯했다. 케냐에 살고 있는 딸집에 들렀다가 킬리만자로 등산이나 갔다 오라고 해서 등정하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부인은 머리가 아파 오르지 못했지만, 남편은 거뜬히 올랐다고 자랑했다. 부인은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 오색코스보다 훨씬 쉬운 길”이라고 전했다. 기자는 이 말로 인해 킬리만자로를 쉽게 봤다가 그후 고소증세를 심각하게 두 번이나 겪는 곤욕을 치렀다.
만다라 산장은 밀림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숙소는 숲과 가장 가까운 외곽이었다. 실제로 바로 옆 숲속에서 흰꼬리원숭이들이 살짝 모습을 비쳤다.
오락가락하던 비는 만다라 산장에 도착하고 마운디분화구(Maundi Crater)까지 갔다 와서야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새 계속 내렸다. 내일은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만다라의 빗속의 밤은 훌쩍 지나갔다.
다행히 이튿날 아침에 날씨가 갰다. 이날은 3,780m 높이의 호롬보산장까지 가야 한다. 길은 순탄했다. 키 큰 교목들은 사라지고 관목과 초본식물들이 평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허브향을 내는 들국화 같은 식물들도 여기저기 만발했다. 등산로는 허브향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잠시 어찔한 순간을 느끼면서 상큼한 분위기에서 신체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참 걷는 와중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면서 비틀했던 것이다.
순간 ‘아, 고소증세인가’ 싶어 GPS를 꺼내 고도를 확인하니 3,196m였다.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평소 습관대로 조금 빨리 걸은 결과였다. 그때까지도 탄자니아 말인 ‘뽈레 뽈레(Pole Pole, 천천히 천천히)’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심조심 걸어야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무사히 호롬보산장에 도착했다. 만다라에서 호롬보까지 GPS로 11.9㎞다. 호롬보는 킬리만자로를 찾는 많은 등산객이 오르내리는 중간 기착지였다.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고,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음성다중 스트레오 방송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3,000m 지나 처음 어찔한 순간 느껴
모시에서 출발할 때 잠시 만났던 미국인 여자 메간 (Meghan)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남한인지 북한인지 다시 물었다. “북한 사람을 여기서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전혀 없다고 했다. “아마 이런 곳에서 북한 사람을 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젊은 여자가 이렇게 높은 산에 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Because there(거기 있기 때문에).” 서로 한바탕 웃고 성공적인 등산을 기원하며 각자 팀으로 돌아갔다.
셋째 날은 호롬보 주변에 있는 마웬지산장 중간쯤의 지브라록(Zebra Rock, 얼룩말 바위)까지 고도를 4,000m까지 높여 고도적응 시간을 가졌다. 등산 내내 비가 오락가락, 안개가 잔뜩 끼었다가 순식간에 개는 상황을 반복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우뚝 솟은 봉우리라 지나가는 구름이 쉬었다 가는지 일기변화가 더욱 심한 듯했다. 10㎞ 남짓 걸어 고도적응훈련을 하고 돌아왔다. 오후엔 산장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 때 뜻하지 않은 등산객 한 명이 우리 숙소의 빈 자리를 찾았다. 거의 사색이 된 얼굴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처음에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동료들이랑 같이 왔는데 고도적응 시간 없이 그대로 올랐다가 심한 구토와 두통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이크,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녀를 일단 자리에 눕히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침낭과 짐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였다. 따뜻한 침낭을 내주며 한숨 자라고 권했다. 약도 먹였다.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리며 잠을 청하는 듯했다.
넷째 날인 다음 날 조금 안정을 되찾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은 도모미 다카다(Tomomi Takata), 일본 도쿄 인근의 가나카와현 중학교 지리교사였다. 케냐의 국립공원에 올 기회가 있어 멀리서 바라본 킬리만자로를 동경하고 있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실제 경험한 뒤 이론을 전달하는 게 훨씬 교육적일 것 같아 킬리만자로를 찾게 됐다고 했다. 매우 훌륭한 교사라고 칭찬했더니 더없이 고마워했다.
그녀는 동료를 기다리다 두바이로 갈 거라고 했다. 덕담을 주고받은 후 마지막 산장인 키보(Kibo Hut)로 향했다. 길은 순탄했고 주위는 황무지와 같은 대평원이었다. 만나는 등산객들은 서로 “헬로” “잠보(탄자니아 인사말)” 등을 주고받았다.
6㎞ 남짓 거리 7시간 이상 걸려
일행은 일제히 헤드랜턴으로 컴컴한 킬리만자로의 밤길을 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려 한숨도 못 잔 탓인지 잠이 쏟아졌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조금 휘청거리자 불안한지 포터가 한 명 따라붙었다.
일행과의 거리가 점차 벌어졌다. 길은 전날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경사도 급했고, 완전한 눈길이었다. 호흡은 더욱 가팔라졌다. 이제는 절실히 깨달았다. 처지더라도 절대 서둘러 따라붙지 말자고. 심호흡을 계속했다. 정신 차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포터에게 자고 가자고 했다. 영하의 날씨에 컴컴한 킬리만자로 만년설 바로 아래서 잠시 쪼그려 앉아 얼굴을 팔에 기댔다. 5분이나 흘렀을까. 포터가 흔들어 깨웠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주저앉았지만 그때마다 포터가 깨웠다. 너무 고마운 포터였다. 그의 이름은 리보(Libo). 혹시 킬리만자로를 찾는 등산객이라면 꼭 그를 찾아보라.
한스 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았고, 정신도 없어 지나칠 뻔한 것을 포터 리보가 가르쳐줘서 알았다. 등산객들의 쉼터다. 조그만 동굴에 50㎝ 가량 길이의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틈만 나면 잠을 청했다. 이보다 더한 고통도 없지 싶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직 ‘포터 이 친구가 너무 고맙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동이 틀 무렵 포터 리보 덕분에 마침내 길만스포인트에 올라섰다. ‘당신은 지금 5,681m의 길만스포인트에 있습니다’란 탄자니아 이정표가 반겼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외국인이 반갑게 맞이하더니 캔디 반쪽은 먹고 반쪽을 건넸다. 입에 넣고는 서로 성공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포옹으로 자축했다. 포터도 매우 기뻐했다.
최정상 우후루 피크까지는 2㎞ 남짓. 길만스포인트 바로 맞은편에 있다. 중앙이 빙하가 있는 ‘킬리만자로의 눈(eye)’이다. 옆에서는 보이질 않고, 상공에서만 보일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만년설 위로 걷는 무난한 길이다. 사방이 트여 시원하게 느껴졌다. 잠은 여전히 쏟아졌고, 이젠 허기까지 느껴졌다. 어느덧 해가 바로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팀에게 간식을 얻어 요기하고 몸을 이끌었다.
드디어 아프리카의 최정상 우후루 피크에 우뚝 섰다. 길만스포인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정표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5,895m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이며,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세계 최정상 봉우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마주친 외국인들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축하했다. 키보에서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루 피크까지 약 6㎞를 무려 7시간이 걸렸다. 하산은 올랐던 길로 되돌아서 왔다.
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 도전의식과 성취감, 아름다운 풍광, 느림의 미학, 인내 등등.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에게 무심코 가르쳐준다. 그게 바로 산이다. 고산일수록 더욱 그렇다. 고산에서의 느림의 미학과 인내를 이번 등산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트레킹Guide
킬리만자로 산 이름의 유래
킬리마와 은자로의 합성어…정확한 개념 정립 아직 안 돼
많은 탐험대가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올랐지만 아직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한 어떠한 합의가 없는 상태다. 킬리만자로에 살면서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해온 와차카(Wachagga????) 부족은 킬리만자로의 두 봉우리를 키푸(Kipoo)와 키마웬지(Kimawenzi)로 불렀지만 전체 산 이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은 킬리만자로란 이름의 유래를 킬리마(Kilima)와 은자로(njaro), 두 단어의 어원에서 찾고 있다. 킬리마는 키스와힐리(Kiswahili, 탄자니아와 케냐의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산을 뜻하는 음리마(mlima)에서 유래했다. 키(ki)는 스와힐리어로 작은 것이기 때문에 킬리마는 작은 언덕(혹은 작은 산, 작은 봉우리)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전체의 거대한 산에 대한 조그만 봉우리의 개념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은자로(njaro)란 이름은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다.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인 키차카(Kichagga)어로 은자로는 대상(caravan, 隊商)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캐러밴들은 국경 경계선으로 산을 사용했다. 은자로는 추위를 유발시키는 귀신의 이름이기도 했다. 무역상과 포터들은 국내외를 드나들 때 고산의 매서운 추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은자로란 단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즉 높은 산을 넘나들 때 고산에서 혹독한 추위를 겪은 상황을 은자로(njaro)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두 단어를 합쳐서 킬리만자로란 말이 나왔고, 그 뜻은 혹독한 추위를 일으키는 귀신이 있는 산이라는 것이다.
이 설명은 탄자니아국립공원 당국에서 발간한 책에 언급돼 있다. 그 외에 ‘백색의 캐러밴’‘빛나는 산’‘위대한 산’이란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으나 그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킬리만자로 가려면
황열병 예방주사 맞고 반드시 접종카드 소지해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부에 있다. 적도에서 남쪽으로 약 330㎞쯤 떨어진 곳이다. 산행의 기점이 되는 도시는 탄자니아 북부의 ‘모시’이며,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이곳까지 차량으로 6시간 가량 소요된다. 비행기로는 1시간 정도.
킬리만자로 가기 전에는 2주 전까지 반드시 황열병(Yellow Fever)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예방접종은 국립의료원이나 각 지방 검역소에서 한다. 말라리아 예방주사도 맞는 것이 좋지만 킬리만자로만 등산한다면 굳이 맞을 필요는 없다. 나이로비와 모시가 해발 1,700m 고지대로 모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물릴 염려도 별로 없다. 단,‘동물의 왕국’ 아프리카 사파리를 할 경우엔 다르다. 저지대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즐비하다.
출국하기 전에 접종한 황열병 예방접종 노란 카드를 어디든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아프리카를 입국할 때는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출국했을 경우 경유지이든 도착지이든 엄격히 황열병 예방접종카드를 출입국관리소에서 확인한다. 실제로 방콕 출입국관리소에서 나이로비에서 온 한 외국인이 황열병 접종카드가 없자 모든 서류를 돌려주고 출국심사를 중단하는 경우를 직접 목격했다. 그 외국인이 “내가 지금 어떻게 하면 되나”라고 물어도 공항 직원은 묵묵부답이어서, 그 외국인은 매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아프리카 여행은 절차나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혼자서 가는 배낭여행은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전문 여행사를 통해서 하는 게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