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난 글들에서 다룬 물리상식으로 펼쳐본 과학적 상상
» 트라피스트-1 항성과 그 둘레를 도는 일곱 행성의 모형들을 표면 위의 궤도 선에다 올려두고 찍은 영상. 출처/ NASA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 지구와 크기가 비슷한 외계행성 7개를 관측했다는 천문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었다.[1] 지구에서 약 39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트라피스트-1’(TRAPPIST-1)로 명명된 별의 둘레를 도는 행성들이다. 연구자들은 생물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인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2]
이번 글에서는 최근 천문 애호인들 사이에서 큰 관심 대상이 된 ‘트라피스트-1’ 별과 그 행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자. 아마도 그동안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의 ‘물리상식 마당’에 연재했던 글들을 읽어주신 독자들이라면, 이번에 발견된 일곱 행성들에 관한 과학적 상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아래의 연재들에서 다루었던 ‘물리상식들’을 직접 응용해 일곱 행성의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참조하면 좋을 이전 글들]
▒ 우주선과 우주여행
‘빛속도 99.999999%’ 우주비행, 에너지는 얼마나 필요할까
▒ 특수상대성 이론
우주여행과 특수상대성이론: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 빛과 색깔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파장 다른 빛들의 조화
▒ 중력
무중력-저중력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느낄까?
‘빛속도 99.999999%’ 우주비행, 에너지는 얼마나 필요할까
» 그림 1. 트라피스트-1 별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크기 비교: 별의 크기는 태양계의 목성과 비슷하고, 행성들의 지구의 크기와 비슷하다. (출처: NASA)
빛과 색깔: 강렬한 백열전등의 빛과 비슷할 트라피스타-1 별빛
‘트라피스트-1’은 지름이 우리 태양 지름의 12% 정도로 작은 목성 만한 크기의 왜성(dwarf star)이다. 이번에 발견된 행성들 중에서 ‘트라피스트-1’ 별에 가장 가까운 행성은 약 170만 km 떨어져 있고, 가장 먼 행성은 950만 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인 1억 5000만 km와 비교하면, 90 분의 1에서 16 분의 1에 불과한 짧은 거리다. ‘트라피스트-1’의 지름과 행성까지 거리를 고려하면, 이들 행성에서 보이는 ‘트라피스트-1’의 크기는 지구에서 보이는 태양보다 2배에서 10배 정도 더 크게 보일 것이다.
별이 비추는 빛의 색깔은 별 표면의 온도에 달려 있다. 우리 태양처럼 그 표면 온도가 절대온도 5800도(5800 K) 정도인 별은 하얀색 빛을 낸다.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의 별은 푸르스름한 색감의 빛을 내고, 이보다 더 낮은 온도의 별은 노르스름한 색감의 빛을 낸다. 이런 별들의 빛은 검은 물체가 뜨거워졌을때 내는 빛, 다시 말해 ‘흑체복사’ 자체가 사람 눈에 비치는 색깔과 유사하다. 전구에 표시된 색깔 온도는 전구가 내는 빛의 색깔이 어떤 온도의 흑체복사 빛 색깔과 비슷한지를 나타낸다.
‘트라피스트-1’의 표면 온도는 절대온도 2560도(2560 K), 섭씨로는 2300도 정도다. 노르스름한 색감의, 또는 따뜻한 색감의 하얀색을 내는 백열전구의 색깔온도가 2800 K이니까 ‘트라피스트-1’이 내는 빛의 색깔도 이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트라피스트-1’ 주위를 도는 행성의 대낮은 백열등 빛과 같은 누르스름한 햇빛이 비추는 환경일 것이다. 만약 지구와 비슷한 대기가 있다면, ‘트라피스트-1’이 뜨거나 질 때의 노을은 더 붉게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절대온도 2560도의 흑체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보면 가시광선보다 적외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그림2]. 트라피스트-1에서도 많은 에너지가 적외선을 통해 행성에 도달할 것이다.
참조: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파장 다른 빛들의 조화, http://scienceon.hani.co.kr/476866
» 그림 2. 트라피스트-1의 표면온도 2560K에 해당하는 흑체복사 스펙트럼: 스펙트럼 곡선의 색깔은 별이 비추는 색깔로 나타냈다. 전체 빛에서 적외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우주여행: 빛속도에 가깝게 날면 우주선 안에선 39년보다 짧아져
먼 미래에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트라피스트-1’의 행성까지 가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구에서 그 거리가 39광년이니, 지구에서 행성까지 빛이 날아가는 데에도 39년이나 걸린다. 빛 속도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는 우주선을 타고 간다고 해도, 39광년 거리를 날아가려면 39년보다 조금 더 긴, 약 40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생각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상대성이론 때문이다.
지구 시간으로 보면 약 40년이 걸린다는 말이 맞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 안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더 천천히 흐른다. 시간 지연(또는 시간 확장: time dilation)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물론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 단지 지구에 정지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주선 안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른다. 이를 고려하면 우주선의 시간으로는 40년보다 짧은 시간에 목표한 행성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주선의 속도가 빛 속도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시간 지연 현상은 더 강해져,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목표 행성에 도달할 수 있다.
한편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주선 밖의 모든 것이 우주선이 움직이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창밖을 볼 때, 밖의 풍경이 뒤로 움직이는 것과 유사하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짧아지는 ‘길이 축소’(length contraction) 현상이 일어난다. 이 말은 곧, 우주선 밖의 모든 것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와 외계행성 사이의 거리도 짧아진다. 지구에서 측정한 거리인 39광년보다 더 짧아진다는 얘기다. 이 현상 때문에 빛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39년보다 더 짧은 시간에 목표 행성에 도달할 수 있다.
참조: ‘빛속도 99.999999%’ 우주비행, 에너지는 얼마나 필요할까 http://scienceon.hani.co.kr/486051
중력: 우주선 안 사람을 위해선 인공중력 필수
발사된 우주선이 순식간에 빛 속도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속도를 높혀야 한다. 속도를 높히는 것을 ‘가속한다’라고 하고, 속도를 높이는 비율을 ‘가속도’라고 한다. 순식간에 빛 속도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없다는 말은 가속도가 무한히 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주선이 가속하면 우주선 안에는 인공중력이 생긴다. 우주선 안에 있는 모든 물체를 가속하는 방향으로 밀기 때문이다. 우주선에 사람이 타고 간다면, 가속하는 우주선 안의 인공중력의 크기가 문제가 된다. 인공중력이 지구 표면의 중력보다 더 크거나 작으면, 장기간 우주여행을 하는 우주인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지표면의 중력과 같은 크기의 인공중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주선이 목표 행성에 도착해 착륙하려면 행성에 도착할 때 우주선의 속도가 ‘0’이 되어야 한다. 감속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감속은 가속의 다른 말로 목표한 방향에 반대 방향으로 가속해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때도 가속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주선 내의 인공중력이 생긴다. 인공중력의 방향이 가속할 때와는 반대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사람이 타고가는 우주선이라면 감속할 때도 지구 표면의 중력과 같게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조:
[1] 무중력-저중력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느낄까? http://scienceon.hani.co.kr/268697
[2] 중력: 고전물리로 볼 때와 상대성이론으로 볼 때 http://scienceon.hani.co.kr/294393
특수상대성 이론으로 본 트라피스트-1 행성 우주여행은
지구 표면 중력가속도(1g)로 가속과 감속을 하면서 39광년 떨어진 곳에 가장 빨리 도착하려면, 어떻게 날아가야 할까?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은 지구와 목표 행성 사이의 중간 지점까지 19.5광년의 거리는 쉼없이 가속하고 그 이후 19.5광년의 거리는 계속 감속해 목표 행성에 도착할 때는 멈춰야 한다. 이렇게 먼 거리를 날아가는 동안 가속하면 우주선의 속도가 매우 커지기 때문에 특수상대성 이론을 적용해 계산해야 한다. 가속을 마쳤을 때 우주선은 가장 빠르게 날아가고 속도는 빛속도의 99.888%에 이른다. 목표한 행성에 도달하는 데는 걸리는 시간은 지구 시간으로는 41년이고, 우주선 안의 시간으로는 7.3년이다.
만약에 왕복 여행을 한다면 지구 시간으로는 82년이 걸리지만 우주선 안의 시간으로는 14.6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30살짜리 어른이 5살짜리 어린 아이를 지구에 두고 ‘트라피스트-1’의 행성에 가서 임무를 수행하고 지구에 다시 돌아오면 그 어른은 45살이 되지만, 지구에 있는 아기는 적어도 87살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된다.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는 셈이다.
» 그림 3. 지구에서 트라피스트-1의 행성까지 우주여행할때 걸리는 시간과 우주선 질량: 연료의 질량을 100% 빛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고, 완벽한 효율의 광자로켓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우주선이 이만큼 가속하고 감속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엄청난 연료가 필요하다. 현재 상용화된 로켓 에너지원으로는 어림 없고, 반물질과 물질이 결합할때처럼 질량이 대부분 에너지로 변환되는 극단적인 에너지 생산 방법이 필요하다. 물질의 질량을 100% 빛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고 (질량-에너지 등가원리: E=mc2) 이를 완벽한 효율의 광자로켓 추진체에 사용될 수 있다면, 행성에 도착하는 우주선 질량의 1800배에 이르는 질량의 연료를 장착하고 지구를 떠나야한다. 순수 우주선의 질량이 100톤이라면 무려 18만톤의 연료를 싣고 지구를 출발해야 한다. 행성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도 같은 질량의 연료를 싣고 떠나야 한다.
참조
[1] 우주여행과 특수상대성이론: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http://scienceon.hani.co.kr/150916
[2] ‘빛속도 99.999999%’ 우주비행, 에너지는 얼마나 필요할까 http://scienceon.hani.co.kr/486051 ◑
[주]
[1] Seven temperate terrestrial planets around the nearby ultracool dwarf star TRAPPIST-1, M. Gillon, et al. Nature, 2017, http://dx.doi.org/10.1038/nature21360
[2] These seven alien worlds could help explain how planets form, Alexandra Witze, Nature, 2017 http://www.nature.com/news/these-seven-alien-worlds-could-help-explain-how-planets-form-1.21512
윤복원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원(물리학)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알림] 함께할 '2017 사이언스온 필자'를 찾습니다
☞ http://scienceon.hani.co.kr/490422
[사이언스온의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