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생물 지리학의 창시자 , 에드워드 윌슨 - 최재천 교수글

내 박사학위 자격시험에서 윌슨 교수는 나도 어려서 외톨박이였냐고 물었다. 미처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위대한 자연학자들은 대개 어렸을 때 혼자 있길 좋아하여 자연스레 자연을 벗삼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 퍽 사교적이었고 친구도 많았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위대한 자연학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은 1929년 6월 10일 미국 앨라버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한 근무처에서 2년 이상 머문 적이 없는 아버지를 따라 줄곧 떠돌아다닌 관계로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그는 무려 16개의 학교를 다녔다. 형제도 없고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어야 했던 그는 자연스레 자연을 벗삼게 되었다. 앨라배마의 숲 속과 늪지대를 누비며 온갖 곤충, 뱀, 개구리 등을 채집하고 관찰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의 명예교수인 윌슨은 칠순의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을 줄 모르는 학구열에 지금도 연구와 집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윌슨은 우리나라에 사회생물학의 태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학문적 뿌리는 개미학에 있다. 그는 열살 때부터 개미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개미 연구의 일인자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몇 시간씩 연구실 문을 닫아걸고 개미들을 관찰한다. 일단 유명해지면 자신의 연구는 미련 없이 접는 우리 주변의 많은 학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는 윌슨이 개미 연구만으로도 위대한 학자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석학으로 만든 것은 역시 1975년에 발표한 명저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이었다. 이 책은 무려 2000개가 넘는 참고문헌과 50만 단어 이상을 함유하고 있는 방대한 저서로서 학문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대한 역할을 했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을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한다.그가 말하는 ‘체계’는 바로 다름 아닌 진화생물학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40억 년 전 원시의 바다 속에서 우연히 자신을 복제할 줄 아는 분자인 DNA가 만들어진 이후 오늘날 이 엄청난 생물다양성이 창조될 때까지 생명의 모든 현상은 진화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이론에 기초한다. 유전자로 하여금 더 많은 복사체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형질은 성공적으로 살아 남아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고유의 본성에서 정신 및 감정,또 예술,종교,도덕성에 이르기까지 인간 문화의 모든 것들은 다 과거에 인류의 생존과 번식에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된 특성들이다.
윌슨은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복제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태초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개체란 잠시 태어났다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이고 자손 대대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유전자뿐이다.그래서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생물학자 도킨스(Richard Dawkins)도 생물체를 ‘생존기계’와 유전자,즉 DNA를 ‘불멸의 나선’이라 부른다.지금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모든 생물체들의 몸 속에 태초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존재는 바로 다름 아닌 불멸의 나선 DNA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의 역사는 DNA의 일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생물학’의 첫 장과 맨 마지막 장에서 윌슨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사회생물학적 방법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회성 동물들을 조사하러 어떤 다른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동물학자에게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분야는 인간이라는 한 영장류에 관한 사회생물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궁극적으로 생물학의 소분야들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인문사회과학자들의 비판이 거셌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윌슨의 학문적 야망은 그의 최근 저서 ‘학문의 대통일(Conscilience, 1998)’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우주의 기원에서 인간의 본성에 이르기까지 자연계는 하나의 통일된 원리에 의해 움직이며 오로지 자연과학적 방법론,즉 물리주의만이 그 비밀을 캐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윌슨에게 있어서 삶이란 결국 하나의 물리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모든 주제들은 인지과학 내지는 신경과학으로 분석될 것이고,또 그 같은 두뇌 반응은 유전자의 메커니즘,즉 물리학적 원리에 의해 설명될 것이라는 이론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윌슨은 사회생물학에 대한 그의 꿈을 잠시 접고 환경보호의 최전선에 뛰어든다. 오늘날 환경위기와 더불어 학문의 최첨단에 서게 된 보전생물학에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한 것이 바로 1960년대에 윌슨이 제안한 ‘섬생물지리학 이론(The Theory of Island Biogeography)’이다. 섬생물지리학은 윌슨이 뉴기니를 비롯한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채집한 개미 분포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42세에 요절한 천재 생태학자 머카서(Robert MacArthur)와 함께 개발한 학설로서 최근 생물다양성 보전에 가장 중요한 이론으로 인정되어 다시 한번 활발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1978)’와 ‘개미(The Ants, 1990)’로 두 번의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상이 주어지지 않는 분야를 위하여 마련한 크러퍼드상(Crafoord Prize)을 비롯,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들을 수상했다.이렇듯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뒤에는 늘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 윌슨이 있다. 집단생물학계의 거물로 꼽히는 그는 교수가 된 후에 학부 학생들과 함께 강의실에서 수학 공부를 다시 했고 작문은 개인 수업을 받기도 했다.어려운 과학 이론을 누구보다도 쉬운 말로 간단 명료하게 서술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저술가는 이같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노력의 산물이다.그는 학문이 좋아 늘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정한 학자다.(글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이두현<두리쌤> 글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