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5월 23일자 8면(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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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13〉
‘삼국사기’가 아니라 ‘삼국사’라고 해야 한다!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김부식이 삼국사기가 아닌 ‘삼국사’를 지어 임금에게 바쳤으며, 현전하는 ‘삼국사기’ 세 판본 모두 표지에는 ‘삼국사’라고 적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모든 국사교과서는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삼국사기’라 기술하고 있으며, 문체부에서 보물로 지정하면서 ‘삼국사기’라 했고,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책의 이름을 ‘삼국사기’라고 한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하면서 원문이 ‘삼국사’인데 ‘삼국사기’라고 번역하기까지 했다.
누구도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 것이 문정창의 지적대로 일본인들의 농간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
정부 측의 허위 내지 불충분한 답변
국사편찬위원회에 ‘책 표지가 삼국사인데 삼국사기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 질의를 하자 수차에 걸쳐 답변했으나 납득이 될만한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
한국사DB ‘삼국사기’ ‘자료소개’ 첫 화면

첫째, 표지의 제목은 후대에 붙인 경우가 많으므로 원래의 책 제목이 아닐 수 있다고 했는데 증거 자료가 전혀 없다.
둘째, 목차에 ‘삼국사기 제 몇 권’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결정적 이유가 될 수 없다.
셋째, 1478년 출간된 ‘동문선’(東文選)에는 ‘김부식의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라고 되어 있어, 김부식 스스로 ‘삼국사기’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지만, 조선초에 김종직이 펴낸 『동문수(東文粹)』와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1921년, 왕성순)에는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라고 표기돼 있다.
넷째, 고려사, 세조실록 등 조선초기의 기록에도 ‘삼국사기’가 보인다고 했는데, 고려사에는 그런 기록이 없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삼국사’라는 기록이 57회 나오는 데 반해 ‘삼국사기’란 기록은 세조실록과 성종실록에서 4회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섯째, 일반학계에서 이견이 없고 교육부 편수자료에도 ‘삼국사기’로 되어 있다고 했지만, 문정창 등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교육부 편수자료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므로 그것을 이유로 내세울 수는 없다.
여섯째, 판심제는 원본에 있는 대로 붙였다고 했으나 판심제에는 ‘삼국사’로 되어 있다.
일곱째, 학문적 편의를 위해 ‘합의한’ 사항으로 이해해 달라. 문제가 된다면 학계에서 논의하여 고쳐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학문적 편의’와는 무관하며 학계 논의도 자신들이 주도해야 할 일인데, 전혀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DB의 ‘고려사’ 인종 23년 기사, 조선왕조실록 중종 37년 기사, 1394년 옥산서원본을 발간한 김거두의 발문 등의 원문에 나와 있는 ‘삼국사’를 ‘삼국사기’라고 번역을 해놓고,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고려사 기사 원문(아래)와 국사편찬위원회의 번역문(위)

조선왕조실록(중종) 원문(위)과 번역문(아래)

김거두 발문 원본과 국역문

문화재청에도 같은 질의를 하자 “표지는 후대에 붙인 것이라 믿을 수 없으므로 일본이나 중국처럼 ‘으뜸정보원’의 순위에 따라 1순위인 권수제(卷首題·)를 따라 ‘삼국사기’라고 표기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원칙은 책만 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므로 책의 제목이 기록된 다른 자료들이 있으면 이들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교육부에서는 “고려사나 실록은 모두 조선 초ㆍ중엽의 시각이므로 따르기 어렵다.”는 답변도 했다. ‘삼국사기’라 이름붙인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사 기록까지 믿을 수 없다고 몰아가는 데는 어이가 없다.
결국 정부 측의 어떤 답도 표지에 ‘三國史’라고 적혀 있는 책의 제목을 ‘삼국사기’라고 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하고, 자기 정당화에 도움이 되는 자료만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던 조선총독부를 닮아 있다. 이렇게 억지를 쓰면서까지 ‘삼국사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문정창의 설명이 정곡을 찌른다.
조선총독부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문정창은 『광개토대왕훈적비문론』(백문당, 1977)에서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본국의 역사는 ‘紀’(기), 제후국이나 속국의 역사를 ‘記’(기)라 했던 중국의 사례에 따라 본국의 역사인 ‘日本書紀’(일본서기^720년)의 ‘紀’에 대한 제후국의 역사책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記’를 붙여 三國史記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는 “이마니시가 처음으로 ‘삼국사기’라 부른 것이 아니어서 문정창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근대에 ‘삼국사기’라는 명칭의 역주본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4년 일본 조선연구회에서 일본어로 번역한 『삼국사기 역』이고,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와 최남선ㆍ이병도로 이어졌는데, 한국사DB ‘삼국사기’ ‘자료소개’의 참고 도서 11개 중 일본인의 ‘삼국사기 역’과 1940년부터 나온 이병도 역주본 5권이라는 점은 오히려 문정창의 말에 무게를 더해 준다. 이마니시 류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다수 기록이 ‘삼국사’인데도 일본서기의 하부 사서인 것처럼 폄하하려는 목적에 따라 소수 자료를 내세워 ‘삼국사기’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학계는 잘못을 정당화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객관적인 확인 절차를 밟아 잘못을 바로잡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사실이 명확해질 때까지는 올해 나올 국정교과서부터 표지대로 ‘삼국사’라는 이름을 쓰기를 기대한다.
<보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