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처럼 마음을 적시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와 비슷한 감정변화가 일어난다. 산란한 마음이 가라 앉고, 가끔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싶은 나약한 기질도 진정된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일상에서도 음악은 '힘겨움'을 '희망'으로 변용시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용기를 심어준다.
음악은 진정 끝끝내 지칠줄 모르는 인생의 '벗'이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피곤에 휩싸일 때 가수 오지총의 노래를 듣는다. 잠 못 이루는 밤 똑딱똑딱 하는 시계소리만이 정적을 가를 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따라 한밤의 정적을 센다. 손이 떨려올 때에도, 긴장감이 편두통을 부를 때에도, 괜시리 마음이 위축될 때에도, 역시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초조한 가슴을 누그러뜨린다.
오지총의 노래는 요란하게 긁어대는 세상사를 살살 돌려가며 위로하는 일상의 '친구'다.
가수 오지총을 만나러 간다. 사방팔방으로 길게 뻗은 도시만큼이나 머리 속에서 웅성거리는 추억들이 조심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보지만, 그의 존재감은 더욱 의기양양하게 뇌리에서 되살아난다.
오지총 2집 앨범에 수록된 '구름의 노래' 때문에 20여일을 혹독하게 앓았다. 세상이 환한지, 어두운지도 모른 채 앞만 보며 달려왔던 세월을 이 노래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구름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서정성 때문이었지만, 이 노래에 끝까지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노랫말이었다. 독백처럼 들려오는 이 노래는 쌀쌀하고 사나운 삶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고 따사로운 불빛을 향해 걸어가야한다는 의연한 자세를 배우게 했다. 그래서 숙연하고 부끄러웠으며, 슬프고 아련한 선율이었지만, 아름다웠다.
요즘은 '이공(異空)'이라는 노래에 푹 빠져있다. 이 노래는 하늘에 거대한 먹구름이 가득 낀 것처럼 몽환적이고 리듬감이 매우 충실한 곡이다. 맥없이 으스러지는 것 같으면서도 강한 리듬으로 되돌아오는 이 전율은 마음의 빗장을 풀어내고 이완시킨다. 야심하고 적적한 밤, 빠끔히 열린 문 사이로 절친한 친구의 얼굴이 나타난 것처럼.
화접몽 한의원. 진료를 마치고 나온 가수 오지총이 놀란 눈으로 기자 일행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몸 전체에 피로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지만, 사람 좋아하고, 예의 바른 성격이 어디 갈 리 없다. 여지 없이 "먼 데까지 오느랴 고생했다"고 먼저 악수를 청한다. 이런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만나도 즐겁고 편안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오지총 씨는 성격이 참 차분한 것 같다고, 오히려 메니저인 송은영 씨가 더 급한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 반대"라고 일축했다.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이겠지만, 자신을 아래로 낮추고 포복자세를 취하는 그의 겸손함에는 웃음부터 난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가수 오지총은 성격이 매우 급하다.
가수 오지총은 한의사다. 올 초에 기자는 '한의사 오지총보다 가수 오지총이 더욱 좋다'고 커밍아웃 비슷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한의사는 몸을 치유해주지만, 노래는 마음을 치유해주기 때문'이라는 토도 달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어엿한 한의원 원장이 됐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줄었는지,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오해가 생길만하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해 한의원을 개원했다"면서 "은행 대출이 없었다면 이번 앨범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업실, 병원, 음반 등 모든 게 은행 꺼"라며 웃어버렸다. 그는 빚이 무려 4억 4천만원에 이른다.
"한의사라는 타이틀을 자연스럽게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한의사라는 선입견부터 갖는 분들이 많거든요. 제가 '가수'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래도 당신은 한의사잖아요' 라고 말해요. 한의사가 거리에서 노래를 한다고 색안경을 쓰는 분들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고맙다'라는 얘기까지 듣습니다. 마음이 닿아 집회에 참여하는 것인데도요."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낌 없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먹고 살만하니까 가수를 한다고 비틀어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옆에 앉아 있던 메니저도 속이 상했는지 한마디 거든다.
"어떤 분들은 배 나온 한의사가 트롯트 음반이나 낸 줄 알아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한의사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노래부터 들어보라고 말합니다. 직접 들어보면 아주 따뜻한 노래들이거든요. 사람들도 노래를 들어보고 다들 놀랩니다."
가수로 활동하는 동안 뜻하지 않는 복명이 나타나 얼떨떨했다는 눈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고, 마음이 닿는데로 노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한의사라는 수식어가 가수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다. 하지만 오지총은 그런 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예전에는 음악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많은 것을 담고 싶었는데, 이제는 버리고, 비워내게 된다"며 사람들의 이목보다 음악의 깊이를 채우는 데 더욱 고민하고 있음을 내비췄다.
그러면서 그는 "늦어도 연말에는 콘서트를 한 번 하고 싶다"면서 "계획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평생토록 창작에 게으르지 않고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봐도 한의원 원장 이전에 천상 '가수' 맞다.
쓸데없이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뒷 담화를 즐기는 우리 시대의 가벼움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수 오지총의 미소에는 달착지근한 냄새가 가득하다. 캐러멜향이 느껴지기도 하고, 머리위에서 빙빙 돌다가 사라지는 새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처럼 호기심도 느껴진다. 수줍게 고개를 숙이면서 웃을 때는 은비늘처럼 빛이 나고 곱다. 가수 오지총은 고운 사람이다. 음악하는 사람에 대한 편애 때문인지 더욱 정이 간다. 하지만 기자와 비슷하게 처음 사람을 만나면 어려워하는 성격인 것 같다. 소주 한 잔이 들어가야 그 다음부터 마음이 오고 가는...
가수 오지총은 왜 가수가 됐을까. 부모님의 영향도 있을 듯 싶고, 남들과 달리 음악이 자신에게 있어 매우 큰 '하나의 상'일 수도 있다.
가수 오지총은 초등학교 시절 '콘트라베이스'를 배웠다. 하지만 관현악에 흥미가 없었던 그는 부모님께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악몽과도 같은 연습을 그만 뒀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 시절 락밴드를 결성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음악활동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원인은 공부였다.
드디어 그는 한의과 대학에 입학하면서 일종의 '해방'을 경험했다. 부모님께서도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아 음악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그는 메탈리카, 스키드로우, 건스앤로지스, 본조비 같은 유명한 헤비메탈 그룹의 노래를 연주했다. 하지만 그는 "괜히 락커라고 하면 근거 없이 반항해야한다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괜히 폼잡는 게 싫었다는 얘기겠다. 그래서 그는 밴드 생활을 그만두고 민중노래패를 만들었다. 한의대 재학시절 한약분쟁을 겪고 1년 유급하면서다.
하지만 본과 4학년 여름, 그는 다시 한 번 어머니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뤄야했다. 국가고시를 준비할 시기에 앨범을 냈던 까닭이다. 그는 "국가고시를 앞두고 여름에 대학로에서 한 달동안 공연을 했다"면서 "어머니를 피해 늦게 집에 들어가고 일찍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할 일을 미뤄놓으면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상 국가고시를 포기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1집 공연을 마친 뒤 공부에 전념해 한의사가 됐다. 이러한 성격은 환자를 돌보는 한의사로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음악에 열중하면서도 환자들에게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한의사가 된 뒤 그는 끝이 없는 바람처럼 음악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음악은 나의 감정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음악은 숙명처럼 인생의 길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됐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님은 어떠하실까.
그는 "지금 어머니는 제가 음악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며, 힘들 때 격려도 해주신다"고 말하면서 노래를 잘 하셨던 아버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10년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버지를 보면서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저도 죽을 때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참 어려운 일이에요."
숨을 쉰다는 것처럼 허망한 것이 있을까. 현대 의술로 삶을 연장시키는 세상이라지만, 숨이 끊어져가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일. 음악을 하면 할 수록 더욱 욕심을 비우게 된다는 그의 말이 더욱 사무치는 순간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몸이 뻘겋게 달아올라 열꽃이 피고, 팔 하나 쓸 수 없어 무용지물의 인간이 되더라도 병원에는 눕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른쪽 옆구리를 심하게 저미며 헐떡거리더라도.
"아버지는 단칸 셋방에 살 때 어머니가 모아 놓은 돈을 가지고 이틀 동안 잠적한 뒤 전축을 사들고 나타나셨습니다. 음악을 사랑했지요. 노래도 아주 잘 불렀고요."
머뭇거리며 띄엄띄엄 얘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뼈를 깎는 사랑이 느껴진다. 그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는 베이스, 드럼, 피아노 등 작곡에 필요한 모든 악기들을 조금씩은 다룰 줄 안다. 그렇지만 그는 "남들 한테 보여줄 만한 악기는 역시 '기타'"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그러한 음악적 감성을 바탕으로 전체의 곡을 제어하는(편곡)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는 힘든 일. 선천적으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섬세한 그의 성격에서도 이러한 점은 금방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음악은 일상의 하나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악상이 떠오르면 작곡을 한다.
오지총의 새 앨범이 나왔다. 앨범 제목은 '화접몽'. 풀어 쓰면 '꽃과 나비의 꿈'이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정규앨범이 아니라 0.5집이라고 굳이 밝힌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니, 0.5집을 발표해야겠다고 마음먹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앨범을 내면 무조건 손해입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정규앨범이 좋은데, 이번 앨범은 정규앨범이 아닙니다. 정규앨범은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죠.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이번 앨범을 내게 됐습니다. 제가 사라질 것만 같았거든요. 매너리즘에 빠진다고나 할까요. 일은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매달 디지털 신곡을 발표하려고 했는데, 잘 못하고 있네요."
오지총의 2집에 실린 '구름의 노래'는 가수 안치환에게 준 노래인데, '네가 부르는 게 낫겠다'라는 선배 말을 듣고 앨범에 넣게 됐다. 2.5집에 실린 노래 '화접몽'도 안치환이 공연 때 부르려고 연습까지 들어간 곡이었지만, 그는 "안치환 선배 형수님이 지총이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린다"는 한마디에 결국 자신이 부르게 됐다.
화접몽은 7년 전에 시골에서 만든 노래이다. 이 곡은 룸바, 차차차 리듬으로 편안한 느낌이지만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노래는 그 당시 그가 알고 지냈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만든 곡이다. 그는 "화접몽은 트롯트 박자와 비슷하지만, 그런 느낌이 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자도 동감한다. 창작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특히 이 앨범에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는 '기타를 팔고 오는 길'이다. 이 노래는 스튜디오를 차린 뒤 월세를 내지 못해 악기를 팔아야 했던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낸 곡이다. 그가 한의원을 차린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렇지만 그는 "병원을 찾아오는 단 한 명의 환자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한의사로서의 본분도 열심히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은 바빠서 경제적인 부담감 같은 것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 오지총의 2.5집 앨범 '화접몽'은 5월부터 음반 쇼핑물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음반 가격은 7,500원이다.
"가수가 주입하려는 노래가 아니라 100명이 들으면 100명이 모두 다르게 느꼈으면 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려고 합니다. 좋으면 듣고, 싫으면 듣지 않으면 되잖아요. 제작자의 의도를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용자의 입장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획일화 되는 것은 싫거든요."
기다란 흑갈색 머리결, 검정색 뿔테 안경과 갈회색 와이셔츠. 한결 도드라져 보이는 연보라색 넥타이와 이지적이고도 낭만적인 눈빛. 그러면서도 지칠지 모르는 열정. 그에 대한 감정이 모두 뒤죽박죽 섞이며 작은 더미를 이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잠시 쉬는 동안 여러가지 공상을 하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사뭇 단호한 그의 얘기 때문이다.
"제 음악은 '어른들의 동화'입니다. 전쟁도, 사랑도, 이별도 모두 어른들의 이야기잖아요. 제 노래는 삶이 아닙니다. 한번 걸러낸 동화죠."
그랬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이런 얘기쯤은 하고 살아야 기쁘지 않겠는가. 기자는 어떠한가. 제법 성깔이 드러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Ozzychong Episode #1’이라 이름 붙여진 새 앨범은 그동안 틈틈이 작업하여 라이브 무대에서 불러왔던 노래들로 엮어졌다.
타이틀곡인 ‘花蝶夢(화접몽)’은 꽃과 나비의 꿈이란 뜻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웠지만 슬픈 꿈일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봄 햇살 같은 따뜻함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아련한 애틋함이 넘치는 사랑스런 노래이다.
단편영화 ‘위대한 시인’의 삽입곡인 ‘거울’은 오지총 특유의 시원스런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다. 올해 부천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인 ‘위대한 시인’을 통해 음악감독으로는 첫 데뷔를 하게 되었지만 첫걸음답지 않은 완성도 높은 곡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열두시 넘긴 신데렐라’와 ‘기타를 팔고 오는 길’은 다분히 자전적인 사연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한 사람으로서의 오지총의 숨겨진 면모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즐거움과 함께 아픈 사연에 가슴 한편이 아파지기도 한다.
마지막 곡 ‘노을’은 이미 지난 해 디지털 싱글로 발표되어 대학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로 제2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동요 ‘노을’의 락버전이다. 정식으로 음반에 담기기를 고대하신 많은 분들의 뜻으로 이번 음반에 수록하게 된 ‘노을’은 보컬과 편곡의 재작업을 통해 보다 완성도를 높였다.
정직함과 실력으로 세상을 꾸미고 싶은 뮤지션 "진정한 노래꾼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위해 얼마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느냐는 것이지요. 이번 앨범을 계기로 저의 진정한 음악성을 보이도록 열정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2006년 3월, 2집 앨범발표 1여년 만에 2.5집 Ozzychong Episode #1을 발표한 오지총의 뮤지션다운 정확한 표현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화접몽(花蝶夢)’의 가사는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으며, 곡 또한 그의 독특한 미성으로 뱉어지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고등학교 때 기타와 인연을 맺고부터다. 공부보다 음악이 우선이었던 오지총은 주경야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적 또한 우등생이었다. 보편적으로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잘 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오지총은 예외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음악에 심취되어 있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한의대에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정식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 어려운 한의대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동아리 형식의 밴드그룹에 들어가 축제 때마다 무대에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음악성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이때부터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대학가에서 그를 사랑하는 팬클럽까지 결성될 정도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1999년 1집 앨범 ‘이봐요 아저씨’를 탄생시켰다. 이후 자우림, 안치환, 풍경, 이정열 등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각종 행사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렇지만 당시 오지총은 한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터였기에 활동을 잠시 멈추고 국가고시준비에 들어갔다. 마침내 각고의 노력 끝에 정식으로 한의사가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한의사로서 병원에 근무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의 불길을 억제할 수가 없어 미래에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위해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목이 쉬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연습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단장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려는 순간 군복무라는 또 다른 임무가 그에게 주어졌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공중보건의로 군복무를 무사히 마쳤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쉬지 않고 음악전문 웹사이트의 객원 가수 겸 작곡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2집 앨범발표가 늦어지다가 2006년 3월 마침내‘Ozzychong 2nd’를 발표, 그의 따뜻하고 파워풀한 가창력을 인정받으면서 대학가에서 인기를 누렸다. 2집 앨범은 오지총 자신이 작사․ 작곡하여 불렀으며, 편곡과 기타연주와 프로그래밍까지 그의 손끝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집 앨범을 준비하던 기간은 평화롭지 않았다. 당시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분쟁으로 한참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른 시기였다. 애국심에 불탄 그는 독도를 지키고 사랑한다는 취지에서 ‘외롭지 않은 섬’을 작곡, 평소 친분이 있던 선배 안치환에게 동의를 얻어 함께 녹음까지 마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2집 앨범에는 이 곡이 수록되지 못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2집 앨범 발매 직후인 4월에 이 곡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ozzychong.com)에 발표했다. 그 결과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처럼 박수갈채를 받았던 이유는 그의 노래가 형용사들로 가득 찬 미사여구로 꾸며진 것이 아닌 초지일관 정직함과 순수성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클럽 DGBD, Sound holic 외 홍대클럽 등에서 공연했으며, 2007년 단편영화 ‘위대한 시인’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명실공이 만능엔터테이너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노래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상파방송의 쇼․ 오락프로그램이 아닌 뉴스를 통해서였다. 그것은 그가 불렀던 노래 ‘헌법 제1조’와 ‘대한민국을 위하여’가 2004년 3월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과 전국 10만 인파에게 불렸기 때문이다. 이후 주한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확정되면서 이전반대집회가 열리는 현장에서 Rock으로 편곡된 ‘노을’(작사 이동진, 작곡 최현규, 편곡 오지총)이 주제곡으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것은 그가 민중가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중가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열성팬이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오지총은 타이틀곡 ‘화접몽’을 앞세운 대형 뮤지션으로써, 또 한편 생명을 다루는 한의원 화접몽의 한의사로써,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오늘도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에서 새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글:김철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