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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버지 유류품
김 익 하
1
소식조차 뜸했던 류창현이 전화하긴 그해 초복 하루 앞서였다.
대뜸 내일 당장 만나자는 거다. 까닭을 묻자 대충 귀띔하곤 내일 자세히 들으란 궁금증만 남겼다. 뭔 바람이 불었던지 삼십오 년이나 살던 서울을 떠나 영흥도로 갈 작정이라 귀띔한 게 고작이었다. 그는 제 말마따나 삼십 년 동안 눈칫밥 먹던 직장에서 해방되듯 정년퇴직한 처지였고, 노년 삶을 풍 껍데기처럼 싸구려로 대고 말고 허비하지 않겠다면서 마땅한 소일거릴 찾으러 분주하게 가을 청설모처럼 나대던 참이다.
그러기에 앞서, 류창현은 그동안 직장생활에 얽매어 포기하다시피 했던 시를 쓰려고 관할구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시 창작강의를 수강한 다음, 이름을 대며 알만한 스승을 만나 시인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린 뒤였다. 늦깎이 문단등단에 벌충이라도 하듯 그는 부지런히 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나와 인연 닿기는 월간 문예출판사가 주관하는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나 수인사를 건넨 다음, 금세 서로 각별한 관계로 진전해 어느 고장 사람들처럼 담박 ‘형님 아우’라 호칭까지 오고 건넬 사이로 발전했다.
그가 전화로 일러준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야 비싼 삼계탕 전문집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고, 다시 그날이 초복이라는 사실도, 북적이는 인파를 보고서야 알아챘다. 나이 들면 모든 사물 인지감각이 그렇게 피동적으로 변했다. 노년에 이르러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많이 내려놓아 관심사가 줄어들기도 했고, 또 하찮은 일에는 시시비비를 피하려고 시빗거리에서 외면하기도 했던 탓으로 이제 세태 흐름에 감각이 무뎌짐을 자인하면서 체념하는 게 상수라 여겼다. 딴은 나이를 먹을수록 눈을 가늘게 뜨고 귀로 들어오는 말도 대충대충 듣고 넘겨야 심기가 편했다. 또한, 예전과 달리 크게 입맛 당기는 음식이 없고 보면, 한 끼 식사도 때워 넘긴다는 의무행위에 가까웠다. 그러니 점심 한 끼를 놓고 질량에 연연하지 않은지도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러함에 집착하여 음식점마다 주린 들개처럼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포성 들리는 눈길을 걷는 전장 피난민처럼 애처롭게 보여 연민까지 느껴 외면해 왔다.
상호로 내건 <착한 삼계탕>, 그런 집 음식 맛. 평소 체열 높은 체질이라 인삼 제품과 꿀 든 음식을 선호하잖았는데, 그 집 음식 맛은 ‘이 집 음식이 그런대로 먹을 만해요.’ 그런 토까지 다는 류창현 평판 이상으로, 아니 마치 반생 내 입맛에 간을 맞춰 온 아내 손맛처럼 묘하게 들어 맞았다. 나트륨 함량에 신경 쓰이는 요즘 식습관에도 부합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 마음에 맞는 사람과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공동 관심사에 얘기가 오간다면 분명 정복 가운데 정복이지 않겠는가. 정년퇴직을 마감한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얘기는 나라를 뒤엎을 역모를 꾸미잖은 한, 사전에 조율하잖아도 거의 엇비슷하기 마련이다. 우선 IT기기에 모래밭 반지 찾듯 한참 더듬어 가며 헤매니 손전화기 카톡이나 인터넷상으로 떠도는 이슈보다, 신문지상이나 티브이 모니터를 어지르는 사건은 보고들은 소문에다 자기 주관을 이리저리 보태 가며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게 통례다. 고위직에 오른 사람 비리 전력이 찬란할 땐 창자가 뒤틀리는 통증을 느끼며 시궁창을 뒤지는 잡종견보다 못한 ×××로 가혹하게 깎아내리면서 낄낄대야 엔도르핀이 팍팍 솟아나고, 체내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비닐 호스 물줄기 내쏘듯 좍좍 풀리는데, 그게 노년 대화 정석이며 젊을 때 이바지했던 국가관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현상을 바라보는 자의 깊은 아픔이라 항변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화제를 입에 올리기를 삼가기 시작했다. 정치 흐름이나 세속 흐름이 반드시 심산유곡 청산녹수처럼 항상 맑기를 바랄 수야 없지만, 오가는 말이나 행위가 하수구로 흐르는 폐수처럼 하도 잡되고 속되다 보니, 그것을 입에 올려보면 지레 혀가 썩고, 구취마저 날까 두려우므로 경계코자 묵계했다. 모든 돌탑이 쌓인 형세를 살펴보면, 반듯한 것과 모난 것으로 두루 섞여 이루어져 있다. 그럴 듯 사회인 구성요소도 모두 반듯하기를 바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온통 모난 것들이면 바람직한 방향의 사회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데, 우리는 말 없는 가운데 서로 동의했다.
우리는 화제로 올리고 싶지 않은 게 또 있었다. 자식들 이야기가 바로 그거였다. 예전에는 코앞에서 팔불출이란 소리로 손가락질받더라도 자식들 얘기를 입가에 거품 묻도록 뱉어내면서까지 골몰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식들 얘기가 노인들 사이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 자식에게 외눈박이 사랑밖에 모를수록, 노인들은 제 곁을 떠난 자식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는 정황을 맞았다. 세상 복판으로 흐르는 풍속을 보면, 노후를 떠맡을 의지에 가망도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신문지상으로 오르내리듯 골방에 처박힌 채, 이리저리 구박받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자신 노후 끝을 자식에게 의지하는 게 긍정적으로 예단만 할 수 없다는 불안감도 원인에 한몫했음이 분명했다.
그런 화제들을 이제 입에 올릴 수 없으니 당연히 건강에 관한 것, 소일거리에 관한 것, 먹성에 관한 것으로 대화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날도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어설 무렵 마지막으로 묵직한 화두,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김 형, 저는 이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영흥도로 이주할까 합니다.”
나로선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반사적으로 쥐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를 찾으려 눈길을 들었다. 나를 놀려 보려는 농담처럼 들렸던 탓에 진언을 요구했다.
“영흥도라니요? 인천 웅진군에 있다는, 그 영흥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흥도 선재리입니다.”
그는 이미 이리저리 따져보고 결심을 굳힌 듯 목소리가 담담하면서도 분명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었습니까?”
“뭐, 특별난 일은 없고, 그곳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조금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스물다섯에 뭍으로 아예 나왔잖습니까? 그 주변에 못이라기엔 좀 뭣하고, 조금 너르다 싶은 늪지 하나가 있지요. 그런데 얼마 전 강화를 지나는 길에 음식점을 찾아 점심 먹었는데, 그때 그곳에서 연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도 강화도에서 그것을 맛보았는데, 풍미가 있더군요.”
“아, 그걸 느꼈군요. 저는 그 연밥을 먹으면서 영흥도 늪지를 떠올렸습니다. 어릴 때도 그곳에다 연을 상업목적은 아니지만 기르긴 했지요. 문득 그곳으로 돌아가 연을 기르겠다고 작심하자, 이제야 나에게 알맞은 소일거리를 찾았다는 확신까지 들었습니다.”
“갑자기 서울생활을 접고 떠나면, 그곳 고생이야 각오하시고 가실 테지만, 갑자기 바뀐 생활에 불편한 게 한두 가지 아닐 텐데……. 자신은 있으시지요?”
“그동안 내색은 안 했지만, 시를 쓸 때마다 느꼈지요. 직장생활 하면서 시를 쓰기엔 현실 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는 느낌에 늘 부담스러웠습니다. 그 부담감은 좋은 시를 쓰자면 우선 뭐보다 사물을 보는 마음과 시선을 더 정화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시인은 언행이 일치되어야 그의 마음으로 쓴 시가 사람들 영혼에 감동을 줄 거라 믿기 때문이지요. 마침 안사람도 저세상으로 갔기에…….”
“연꽃이 진흙탕에서 정화로 길러지는 상징적인 식물 꽃이니, 심신을 정화하겠다는 의지에 공감이 가긴 합니다. 그것으로 심신이 정화된다면 가장 부합되는 소일거리라고 언뜻 감이 잡히긴 합니다만.”
“딴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직장에서 퇴직했으니 우선 싫어도 마주쳐야 하는 잇속 관계 구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또 조금 부당하더라도 회사를 위하여 양심을 저버리는 짓을 하잖아도 이제 되니까, 더욱 좋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취향에 딱 들어맞을 것 같아서, 작심한 김에 당장 옮기기로 했지요. 그래서 오늘 뵙자고 한 겁니다. 식사 한 끼라도 나누고 떠나야 흉은 면할 게 아닙니까?”
“하 이런, 그리 빨리……. 연을 기르면서 좋은 수양을 하신다는데, 제가 달리 말리겠습니까? 그나저나 잘된 일일 것 같습니다.”
그의 자유로운 선택이 현실에 단단히 옭아 묶인 내 처지에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올해야 당장은 어렵겠지만, 연이 어지간히 퍼져 자라면, 연락을 드릴 테니 영흥도로 꼭 한번 오시기 바랍니다. 연밭 오두막에 앉아 먹는 연밥도 좋지만, 연잎 차도 나름대로 좋을 겁니다.”
“아, 그러니 생각납니다. 언젠가, 중국 청나라 화가 심복 자전적 수필 ‘부생육기浮生六記’를 우연히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에 연꽃이 처음 필 때는, 꽃들이 저녁이면 오므라들고, 아침이면 활짝 피어난다고 해요. 운이陣云라는 그의 처는 작은 비단 주머니에 엽차를 조금 싸서, 저녁에 화심에 놔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그것을 꺼내서 샘물을 끓여 차 만들기를 좋아했다는데, 그 차 향내는 일품이었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김 형이 그런 연잎 차를 원하시면 제가 만들어 드려야 하겠네요.”
“그리되면 한 번만 가겠습니까? 툭하면 영흥도로 가는 배를 탈 겁니다.”
“하하하. 예, 언제든 부담 없이 오십시오.”
그렇게 영흥도로 떠난 지 이태가 지날 때까지 류창현은 나에게 수시로, 그곳 생활의 소회를 적은 짧은 메일과 사진들을 보내왔다. 대체로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사진촬영에 나름대로 수준에 올랐다고 자신하는, 그런 자랑하려는 냄새마저 풍겼다. 사진은 그가 늪을 정비하는 모습을 담은 것, 연자육을 묻는 사진, 둑에서 제초하는 모습과 조망대에 앉아 점심을 먹는 장면들이 간혹 있을 뿐, 대부분 연꽃이 피고 지는 사진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보내온 연꽃에 관한 것들은, 그의 우애처럼 소중하게 컴퓨터에다 지정파일을 만들고, 그곳에다 엔실리지처럼 저장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
“저어, 소설을 쓰시는 탁경호 선생님이세요?”
내가 그런 전화를 받은 때는, 류창현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도 훨씬 지난 뒤였다. 내게 전화를 건 여성 목소리는 귀에 생소했는데, 상대방 감정을 흩트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성이 묻어났다. 나 역시 처음 듣는 여성의 생소한 목소리를 경계하면서 선뜻 대꾸도 못한 채 잠깐 지체했다. 요즘 보이스 피싱이다, 뭐다 하는 세상에 며느리조차 ‘아버님, 낯선 전화는 늘 조심하셔야 해요. 전화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쁜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네요.’ 하는 판국인데, 선뜻 응대하긴 내키잖아서 조심스럽기만 했다. 자신 의사와 무관하게 어떤 술수에 휘말려 들지 않기를 늘 경계를 하면서 참새 간덩이로 살아가는 세상이 그저 야속할 따름이다.
그런데요. 누구신데, 저를 찾습니까? 또 무슨 일로…….”
“저는 류인희라고 부르는데, 혹 류창현 씨를 아세요?”
“아예, 영흥도에 사시다 돌아가신 분 아닙니까? 제가 알고말고요.”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인사드려요. 제가 바로 그 류창현 막내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전화를 드리게 된 건 다름 아니라 선생님께 전해 드릴 아버지 유류품이 있어서입니다.”
“저에게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아니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를 분명 제게 일렀습니다. 선생님께 전하라고 말씀 남겼는데 제가 깜박 잊고 있다가 며칠 전에야 비로소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어제 영흥도에 들어가서 가져와 오늘 전해드리려고 지금 전활 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흥도에서 같이 지내지는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곳에 혼자 사셨어요. 전 직장 때문에 인천에 있었고요. 전해 받을 장소와 약속 시각을 주시면, 제가 그리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난 기억에 없는데, 무슨 물건이던가요?”
“무슨 문서와 같은 건데 아버님이 직접 봉한 거라서, 선생님께 전해드리기 전에, 제가 함부로 열어보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대로 전해드리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종로 인사동 부근에서 밀봉된 봉투를 그의 막내딸에게서 넘겨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밀봉된 봉투를 수류탄 안전핀을 뽑듯 조심스럽게 열자, 채련곡採蓮曲을 A4용지에다 프린트로 인쇄된 열넉 장 종이와 연꽃에 관련된 자료 몇 장, 그리고 일기인지, 수기인지, 또는 작품을 습작한 듯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글을 적은 노트 한 권이 나왔다. 그것이 류창현에게는 유류품이라면 유류품인데, 굳이 나에게 전한 그 깊은 속내는 모른 채, 그것을 무턱대고 살펴봐야 할 책무까지 떠맡는 처지가 되었다.
3
류인희에게 받은 류창현 유류품을 일별한 뒤, 나는 우리나라 최초 연 재배지로 알려진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219번지 관곡지 연꽃 테마공원을 찾았다. 그가 남긴 것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불현듯 연재배지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탓이다. 하늘에 걸리는 태양을 몇 며칠 보지 못한 채 줄곧 우기에 갇혀 주소를 구글 지도로 검색한 뒤 벼르다 못해 무턱대고 떠나고 봤다. 그날도 날씨는 귀가할 때까지도 소나기구름들이 바삐 하늘로 헤엄쳐 다니면서 우르릉우르릉 얼러대고 소나기를 퍼부을 궁릴 하고 있었다.
연을 처음 길러낸 관곡지 연못은 강희명 재실 마당귀에 자그마한 모양새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이미 연꽃이 져서 고요한 채 연잎만이 푸름을 자랑하듯 무성하게 자라 좁붓한 못을 가리듯 덮고 있었다. 강희명은 당대 문장가로 금양잡록衿陽雜錄이라는 농업 관련 책을 저술해낼 만큼 농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관리로 알려졌다. 그가 세조 9년인 계미년[1463]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진헌부사 신분으로 중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가 중국 남경 전당지錢塘池에서 연자를 몰래 가져와 관곡지에 심음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연을 길러내는 업적에 공헌했던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육백 년에서 조금 모자라는 오백오십칠 년 일이다.
그런 기록에 어긋남이 없다면 그에 앞선 시대, 모든 구조물이나 벽화에 재현된 연꽃 그림이나 부조물들은 외국에서 유입한 문서에 의존해서 그려졌거나, 여행지에서 본 실물 형상을 머리에 담아와 표현했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런데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신라나 일찍 숭불정책을 폈던 고려에서가 아니라 조선조에 처음으로 이 나라에 들어왔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도입 시기가 늦었다.
강희명 사위인 권만형에게 넘겨진 재실은 지금 안동 권씨 문중에서 관리를 맡았는데, 개인사유지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 연꽃 테마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뜩이나 연재배지가 질척거리는 곳인데, 못 둑으로 옮겨놓는 발이 푹푹 진펄에 파묻혀 걸음을 더디게 했다. 그러나 연복은 있어 연꽃을 구경하는 철이 조금 지났지만, 아침 일찍 부지런을 피운 덕에 개화한 연꽃들과 조우할 수가 있었다.
그날 저녁, 연꽃을 본 기분 탓인지 내가 류창현이 영흥도로 가고 난 뒤 처음 찾아 읽은, 연에 관한 글은 황견의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린 주무숙 수필 애련설愛蓮說이다. 그는 송나라 사람인데, ‘주돈이’라고 부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을 옮겨보면 그가 연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짐작게 했다.
물과 뭍, 초목에서 피는 꽃들 가운데는 사랑할 만한 것은 심히 많다.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 씨의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만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맑은 물결에 몸을 씻었으나 요염하지 않고, 줄기 가운데는 통해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곧아 덩굴이나 가지도 뻗어나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퍼지면서 더욱 맑은 채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 함부로 완상할 수 없는 점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대로 말하라면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이며,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고,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아! 국화를 사랑함은 도연명 이래, 그 소문마저 드문 한 데, 앞으로 연꽃을 사랑하는 이, 나만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란만을 사랑하는 이런 세태에서.
일명 연시 대명사로 알려진 채련곡도 몇 수 읽어 보았다. 본디 '연 캐는 노래'의 뜻을 가진 채련곡은 노동요로 불렸는데, 연밭에서 남녀 감정이 얽히다 보니 그것이 곧 연시로 상징되었던 모양이다. 그런 까닭으로 시인 묵객들은, 아니 시를 나타내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 번쯤 채련곡을 지어 남녀 정회를 더 깊게 나타내고자 애썼을 테다. 내가 읽었던 것은 국내 작가 것에는 허난설헌 채련곡이, 중국 시인 것에선 당연 이백 시가 마음에다 깊은 서정을 얹었다.
4
류창현이 영흥도로 내려왔을 때, 거처할 가옥은 번뜻하게 개수하진 않았으나 텃밭을 가꾸거나 연밭을 일궈가는 덴 불편을 느끼지 못할 만큼 정돈되어 있었다. 처음 옮겨 살겠다는 작정하고 왔을 땐 폐지를 겨우 면한 곳에 낡은 집이 삼십오 년 동안 비바람에도 용케 버텨내고 있었다. 일찍부터 옆집에 살던 노인에게 일 년에 한 번, 수고비라고 조금씩 관리비를 보내주면서 관리를 부탁한 결과였다. 노인이 감당할 만큼 그럭저럭 집을 간추려 오다가 근년에 들어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관리했다. 아들 손으로 관리가 넘어가자 그저 마지 못해서 처삼촌 묘지 벌초나 하듯 마당에 잡초가 우거질 만큼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시간을 내서 섬으로 들어가 보면, 잡초들이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길을 비워두고 마당 가득 길길이 자라났다가 마른 채 산 것 사이로 허리를 꺾어 황잡하게 퇴락해 갔다. 정작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모를 만큼 돌보기를 게을리하고 있었다.
류창현은 섬으로 옮기기에 앞서 품을 사서 기둥을 보강하고 벽을 새로이 쳤다. 마당가 잡초를 거둬내는 김에 바깥채 곳간에 있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깥채는 소작인 생활을 했던 박재수 가족이 살았던 가옥인데, 왼쪽에 농기구와 잡다한 물품을 넣어두는 곳간이 붙어 있었다. 류창현은 바깥채는 그냥 둔 채 안채는 펌프를 박고 물탱크를 설치해 입식수도시설을 하고, 수세식 양변기로 교체하여 생활의 불편함을 줄이려고 곳곳을 수리했다.
5
강화댁. 바깥채에서 소작인으로 살았던 박은실 어미 택호였다. 물론 강화도에서 시집을 왔다. 어릴 때부터 거친 농사일했던 몸이라 가꾸잖아서 그렇지 찬찬히 살펴보면 볕에 그을려 검버섯이 살짝 피었는데도 몸 곳곳에 미태가 숨겨져 있었다. 그나저나 성품이 답답하도록 순덕해서 언뜻 봐서는 조금 모자라는 여자로도 보일 만큼 남과 싫은 소릴 하잖았다.
어느 날 강화댁이 밭일하다 오후 참을 가지러 안채로 들어오자, 텅 빈 집에 남았던 안채 바깥주인인 류길재가 주위 이목을 한 번 삥 휘둘러 본 뒤 주변에 인기척이 없자 은근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어이! 강화댁. 나 좀 보세나.”
그 소리에 역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핀 강화댁이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류길재 곁으로 쭈뼛쭈뼛 옆걸음으로 다가갔다. 잔뜩 겁을 먹은 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자, 이것 받으시게. 내 진즉에 챙겨준다 한 것이……. 그만 이리 늦었네.”
류길재가 두툼한 봉투를 잽싸게 건넸다. 그러나 강화댁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또 주위를 재빠르게 살피며 손사래를 쳤다. 먼 눈길을 경계하려 함인데, 마침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자 비로소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어드는 목소리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르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전 이것을 차마 받을 수가 없네요.”
“하, 이 사람아. 누가 보겠네. 얼른 챙겨 넣으시게. 그래야 내 맘이 편하네.”
“무슨 염치로 그걸 받습니까? 전 아주 싫구먼요.”
“하 참, 이 사람, 왜 그러나. 내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야 하네. 내민 손이 이렇게 부끄럽잖은가? 꼭 그 일 때문만도 아닐세.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네 처지엔 도움이 될 걸세.”
“그래도 제가 무슨 낯짝으로 그걸 받는데요. 전 받을 수 없구먼요.”
“언제까지 나와 자네가 이렇게 버텨 서 있을 건가? 보는 이목도 있는데……. 자, 자, 자. 받고 어서 밭에 나가봐야지. 모두 자네가 이고 올 참을 기다릴 게 아닌가?”
“이건 차마…….”
“내가 자네 맘 잘 아네. 그날은 아주 미안했네. 정말 미안했다네.”
순간 강화댁은 그에게 져주고 물러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애당초 우격다짐이라도 해서 이겨낼 상대가 아니었다. 한순간 일이 그렇게 되도록 정신 줄을 놓은 게 탈이라면 탈이고, 불찰이라면 불찰이었다. 일이 그렇게 된 게 모두 자신이 몸가짐을 조심하지 못해서고 모질게 거절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남편 박재수 제외한 외간남자 품에 든 것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척추 수술로 인천 소재 병원에 입원한 안채 안주인 병문안 갔다가, 그의 남편인 류길재와 귀갓길에 합류했고, 저녁상에 곁들인 한 잔 술과 그의 처지를 동정했던 말이 씨가 되어 멈추고 돌아서야 할 지점에서 멈추잖고 선을 넘는 끝장까지 가고야 말았다.
강화댁은 그일 이래, 남편에게 볼 면목이 없고 류길재를 보기도 민망해 뭍으로 달아나려고 여러 번 작심도 해보았지만, 의지할 곳 없는 남편을 버리고 자기만이 면피하러 간다는 게 더 큰 죄를 그에게 짖고 살 것 같아 모든 걸 가슴에다 꾹꾹 묻고 입 다물며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남편과 빈번한 관계에서도 변화가 없던 몸에 변화가 오자 가장 먼저 반기는 사람이 남편 박재수였다. 고아로 자란 그에게 자식 임신은 미래 빛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계집아이는 박 씨 성을 가지고 아버지인 박재수가 붙여준 ‘은실’이라는 이름을 얻어 자라긴 양순하고 야무지게 자라 성숙했다.
6
물안개로 가득했던 늪 위로 아침 햇살이 빈틈없이 깔리자 연잎들이 물방울을 인 채 무리로 드러나고, 홍련 백련들은 앞다퉈 꽃잎을 열었다. 초록 누리에서 펼쳐지는 홍백 향연이 연밭을 화사하게 했다. 그것들을 자세히 바라다보면 현기증으로 정신마저 아찔한데, 류창현의 눈길 어지럼 속에서도 그곳에서 번지는 조그만 얼굴이 보였다. 까만 눈동자가 빛나는 박은실의 솜털이 뽀송하게 일어선 어린 얼굴이다.
유독 얄따란 얼굴에 오독이 솟아오른 콧대에 비견하여 눈이 깊게 들어간 모습이, 사진으로 보여주듯 뚜렷하니 눈앞으로 압박해 다가들었다. 계집아이 박은실은 쪼그려 앉아 지붕그림자가 반쯤 가린 마당귀에서 질경이가 다문다문 돋아난 땅에다 사금파리로 금을 긋고 있었다. 네모도 그리고 세모와 동그라미도 그려대며, 말마디마다 웃음을 터뜨리듯 얼굴이 해맑았다. 자글자글하니 끓을 듯한 볕이 숫구멍 언저리에 매달려 있는데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반짝였다.
펼쳐놓은 지 오래된 소꿉장난감은 저쯤 돌계단에다 늘어놓은 채다. 솥도 걸려있고 풀물이 든 돌멩이도 보이며 병뚜껑에 국도 담겼다. 당장 신랑을 맞아 마주 앉아야 할 밥상이다. 그 나이 때로선 짝패에게 베푼 최대한 공경이었고 알뜰한 성의였다.
“은실아,”
“응?”
“누구랑 살 건데?”
“오빠랑.”
묻자마자 뱉어낸 말이 단호할 만큼 군티마저 없었다.
“오빤 지금 공부해야 하는데.”
“오빤 공부해. 오빠가 똑똑하면 새댁인 나야 더 좋지, 뭐.”
바람에 머리를 내젓는 박꽃처럼 박은실은 하얗게 웃었다. 볼 솜털에 흙먼지가 묻어 뽀얗게 보이는 얼굴에서 유독 눈만 새카맣게 빛났다.
눈을 지그시 감고 졸던 류창현은 깜박 깨어났다. 식전에 연밭에서 일하고 조금 넘치다 싶게 먹었던 아침 식사로 덮친 식곤증 때문에 졸다가 그렇게 은실의 환상과 만났다. 장갑을 찾아 끼면서 쟁기를 찾아내야지, 그리고 해거름에 앞서 일을 마쳐야지-그런 몽롱한 생각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졸음이 깜박 덮쳤던 모양이다. 내처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박은실이 사금파리로 금을 그어나가던 마당귀 자리라 여길만한 곳으로 눈길이 갔다. 그곳엔 연잎들만 너른 모양새대로 햇볕을 넉넉히 받고 넘실거리는 환상만 있을 뿐, 박은실이 만들어낸 환영의 자취는 어디에고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7
선대부터 울타리로 노간주나무를 심었다.
해마다 우듬지를 쳐서 위는 바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밀밀히 우거졌으나 두 뼘 아래 밑동 주위는 닭들이나 고양이도 수월하게 드나들 만큼 틈새가 훤히 벌어져 있었다. 그 공간으로 울타리 바깥 길로 지나다니는 것들의 아랫도리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공간으로 아침과 오후, 정확히 얘기하면 박은실이 등하교할 때면, 교복 아랫단 밑으로 드러난 통통하고도 뽀얗게 빛나는 종아리를 볼 수 있었다. 등교 시각, 박은실의 종아릴 신호 삼아 류창현은 집 밖으로 나서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류길재의 감시 눈길이 그곳에서 번쩍였다. 그리고 관통하는 류창현의 눈길 행방을 쫓고 있었다. 박은실 몸매가 되럄직하니 드러나는 중학생이 되자마자, 류길재는 그녀의 안채 출입을 막았다. 오누이처럼 아무렇게나 뒤엉켜 놀던 둘에게는 서운하고 답답한 일이지만, 엄명을 거슬릴 수가 없어 숙여 들 수밖에 없었다. 거스르기엔 너무 나이가 어렸다. 설혹 하굣길에 같이 걸어오다 가도 마을 입구에서부터 앞뒤로 멀찍이 찢어져 걸었다. 지금은 노간주나무를 베어내고 블록 담장을 쌓았지만, 류창현 눈앞에는 지금도 그곳에는 우거진 노간주나무 아래 트인 공간으로 박은실의 새하얀 종아리가 지나가는 게 보일 듯 그렇게 눈길에 밟혔다.
류창현이 군 복무를 마치고 귀향했어도 박은실은 여태 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입대하자마자 섬에서 떠났다 했고, 행방 또한 묘연하다는 연락만 받았다. 이러나저러나 제대할 무렵에는 영흥도에 돌아와 기다리고 있어야 할 여자였다. 그런데 부모인 박재수 내외조차도 딸 행방을 모르고 있는 낌새였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물어보면, 그저 먼 산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이곳에서 났으니 언젠가 반드시 어떤 모습으로든 이곳으로 돌아올 테지……. 그러나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으니 아비 꼴이 사람이 아니라 나무토막이지.”
그런 투로 남들 자식처럼 기다림의 한 모서리만 슬며시 드러냈다. 더구나 요지부동으로 박은실을 내쳤던 아버지도 아들에게 한 번쯤 언급할 줄 알았는데, 그녀 존재를 아예 잊고 있는 듯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류창현은 여섯 달 동안 기다린 끝에 아버지도 모르게 박은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종래 소식 한마디도 얻어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섬을 이 잡듯 뒤지고, 인천에 나가 있을 만 곳을 두루 다니면서 입대하던 전날 밤을 떠올렸다. 내일부터 몸이 묶인 처지에 아버지로부터 내침을 당하는 그녀에게, 그동안 어떤 일에라도 참아내면서 기다리라고 정표를 건네주고 싶었다. 그는 생각 끝에 금반지를 박은실 손가락에 끼워주며 다짐받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제대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해. 여기에 내 마음을 묻고 입대하니, 알았지?”
“기다릴 거야. 난, 난 끝까지 기다릴 거야…….”
박은실은 가운데로 큰 별이 하나, 그 옆으로 양쪽에 새겨진 작은 별 음각 감각을 손끝으로 쓰다듬어가면서 참아내는 울음 속에다 그런 말을 또박또박 섞었다.
8
자식들 일로 류길재가 박재수를 안채로 불러들인 게 이번이 횟수로 세 번째였다. 초등학생 무렵 홍수 때문에 도랑물이 넘쳐 류창현이 박은실을 업고 왔다 했을 때,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뒤 둘이 인천 바닥에서 같이 밤을 패며 놀았다고 알려졌을 때, 그리고 입대하는 류창현을 동인천역까지 나가 배웅하느라 귀가가 늦었다고 박은실이 밝혔을 때다. 가능한 좋은 소리로 말려도 벗나가기만 하는 자식들 때문에 끙끙 속앓이 하던 류길재는 최후 수단으로 마지막 카드를 뽑아든 셈이다. 그로선 참자했던 결심도 이젠 한계에 왔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언성을 돋아 거친 말로 협박도 했다. 이제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온 울화가 그냥 두어도 폭발할 듯싶었다.
“내가 그렇게 틈 있을 때마다 얘기해서 기회를 줬건만, 아직도 못 알아채고 있으니 어떻게 이리 사람을 얕잡아 볼 수 있는가? 정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바깥채에 있는 짐들을 당장 싸서 이곳에서 떠나게.”
그 한마디에 박재수 몸은 얼음장처럼 경직됐다. 떠돌다 총각 몸으로 쥔 어른 류길재에게 의탁했던 처지, 주선 덕에 아내까지 얻은 터. 박재수에겐 류길재는 약한 씨족 우두머리가 폭풍우를 피할 동굴 같은 곳이라 외경심으로 감히 눈도 맞출 수 없었다. 꿈쩍하지 않은 바위 돌덩어리였고 집채만 한 큰 짐승이었다. 그런 신목과 같은 쥔 어른이 바깥채를 비우라니,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간신히 몸을 의지해 온 집 지붕을 걷어 버리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난감해서 무조건 빌어야 했다.
“어르신, 제가 한번 타일러 보겠으니 조금 말미를 주십시오.”
“말미가 아니라. 당장이네! 이제 머리가 화통만큼 커졌는데, 타일러 될 일 아니야.”
아무런 댓거리도 못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박재수가 쫓겨나다시피 안채에서 벗어나 바깥채로 들어섰을 때, 온몸 안에 있는 뼈라는 뼈는 모두 추려낸 듯 박은실이는 맥을 놓고 주저앉아 있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감기듯 부어오른 채 핏발까지 서 있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박재수 마음에서는 살림이 어려워 남에게 의지하여 빈한하게 살아가는 현실에 천 불이 일었다.
“잊어라. 우리 모두 사는 길은 오직 그 길뿐이다.”
“아버지?”
“오냐, 안다. 내가 너 심정을 모두 안다.”
“아버지 이제 전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정 참을 수 없다면 인천으로 옮겨 가자꾸나. 설마 어디 가서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9
가랑잎 밑에 숨어 있어도 찾을 수 있다는, 너르지 않은 섬 안에서 박은실 행방을 두고 온갖 헛소문과 억측만 난무했다. 좁아터진 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미 뭍으로 빠져나간 게 분명하긴 한데 아침 첫배를 탔느니, 저녁 마지막 배를 탔느니 사람마다 의견도 분분했다. 그나저나 누가 딱히 봤다고 소신 있게 나서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저 들은풍월에도 그럴 거라는 추측으로 소문만 무성하게 키워서 마을 분위기를 흉흉하게 뒤흔들어 놓기만 했다.
그나저나 스물한 살 난 처녀애가 뭍으로 나간 일이 화근이 아니라, 그 일을 류길재가 뒷전에서 암암리에 뭍으로 빠져나가도록 일을 꾸몄다는 소문이 마을 안으로 돌고부터 마을 사람들 시선이 주인인 류길재와 소작인 박재수의 관계로 쏠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소문은 류길재의 멀쩡한 귀를 피해가지 못했다.
“소문이 더 커질까 봐, 뭍으로 보냈다는 말도 나오고…….”
“분명 그럴 수도 있을 테지. 아들의 앞길을 막는다면서, 펄쩍펄쩍 뛰던 양반이었으니까. 그리고 보면 그 말이 일리가 있긴 해.”
“당연하겠지. 집안을 반듯하게 일으킬 자식이라고 얼마나 자랑질해 왔는데……. 머슴 딸과 어울리게 그냥 내버려두겠어? 어림도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섬 안에 있다면야 지금쯤 나타났겠지. 그러니 일단 뭍으로 나갔다고 봐야지 않겠어?”
“하기야, 뭍에 나가 살면 어떻게 찾겠어? 그긴 양식장 그물 바깥인데…….”
“바른 소리지만 은실이 걔가 소작인 딸이지만 얼마나 똑똑한가. 아비가 재산이 없어 머슴으로 사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 재주를 보거나 인물로 보거나, 어디 류창현이에게 빠지기나 하는가?”
“누가 아니래? 애야 아비 처지로선 과하게 참하지.”
“그냥 눈감고 둘을 맺어주지그래.”
“그 말도 되지 않은 소리, 작작해! 류길재가 듣는다면 까무러칠 거야.”
“보기에 젊은것들이 안쓰러워, 내가 그냥 한번 해본 소리야.”
“말조심하소. 류길재 양반이 들으면 펄쩍펄쩍 뛰겠구먼.”
“그 수완이 좋은 류길재가 그냥 뭍으로 내쫓기만 했겠어? 아마, 지낼 만한 돈을 넉넉히 주어서 빼돌렸겠지.”
“그러잖아도 뭍에서 장정을 끌어들였다는 소문도 있어.”
“실어 보내려고?! 누가 봤다고 또, 그런 소릴 해?”
“말조심하소. 분란을 일으킬 말은 아예 하들 마소.”
“다 근거 있는 소리니까, 소문으로 번지는 게 아니겠소?”
류길재는 그런 소문을 듣자마자 짐작대로 발끈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언 놈이 고렇게 씨부렁거리는지, 내가 그놈의 주둥이를 찢어놓고 말 테다.’ 하면서도 겉으로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걸 못 들은 척하고 대범하게 넘기자니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기만 했다. 참아내다 못한 류길재는 안주를 먹음직하게 장만해놓고, 말썽을 일으킬만한 패거리들을 모아 술대접을 하면서 없는 소문을 내지 말라고 단속했다. 그나저나 온갖 추측과 갖은 소문이 난무해도 박은실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10
류창현은 바깥채에 붙은 곳간을 정리하다가 눈에 많이 익어진 물건에 시선이 머물렀다. 정확히 얘기해서 류길재 재산이지만, 박재수 유류품이기도 했다. 박재수가 평생 운명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그의 가속들을 먹여 살렸던 지게였다. 지금도 등에 맞닿았던 등받이가 그의 땀으로 번들거려 보일 듯 사람 기름때가 묻은 채 절어 있었다. 류창현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옛일을 되새겼다. 그 지게 머리에는 아직도 꼬임이 탄탄해 보이는 곱바가 8자 형으로 서려진 채 걸려 있었다. 류창현은 둘둘 서려 있는 곱바를 천천히 잡아 촉감을 느껴 봤다. 그 곱바에 연관된 그때 일을 류창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의 노기등등한 목소리가 지금도 우렁우렁 고막으로 찌르는 듯 울렸다.
“이 봐! 박 서방, 저기, 자네의 지게에서 곱바를 풀어 오게.”
아버지는, 추녀 밑을 반쯤 걸쳐 서서 노드리듯 퍼붓는 소나기를 흠뻑 맞고 선 박재수를 매섭게 몰아친 뒤 집 안의 온기가 달아나도록 냉혹하게 뱉어냈다. 격앙된 감정 탓으로 아버지 손이 소매 끝에서 후들후들 떨었다. 뭔가 끝장 보고야 말 기세였다.
“곱바를요? 어르신이 그것을 어디다 쓰시게요? 제게 시키세요.”
박재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큰 바위 덩어리처럼 냉엄한 아버지를 쳐다보며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엔 대거리도 하잖고, 한층 언성을 높여 달리 둘러쳤다.
“풀어 오면 내가 가르쳐 줌세. 그러니 자넨 어서 곱바를 풀어 오기나 하게.”
박재수는 눈을 바로 뜨지 못할 만큼 머리로 흘러 내리는 빗물을 오른손바닥으로 훑어내 뿌리면서, 아버지 명령에 따라 곳간 벽에 기댄 지게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에서 흐르는 빗물과 발걸음에 차이는 마당 빗물들이 부딪치며 옆으로 튀겨 달아났다.
박재수는 곧바로 둘둘 사려진 곱바를 팔뚝에다 옮겨 걸었다. 그리고 지게에 맺은 첫 매듭을 풀려고 물 묻은 손으로 곱바 끝을 더듬어 찾았다. 그러나 비 오는 날, 꼴을 져 날랐던 뒤라 습기로 불어난 그것에서 매듭이 쉬이 풀리잖았다. 또한, 첫 매듭이라 오랜 세월 동안 힘에 당겨져 탄탄하게 굳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류창현이 보다못해 비속으로 가로질러가 거들자, 비로소 곱바는 지게에서 분리되어 박재수 팔뚝으로 온전히 넘어왔다. 그는 시퍼런 표정으로 서 있는 아버지 앞으로 다가가 거둬 온 곱바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내밀었다.
“어르신 곱바, 여기 있습니다만…….”
“박 서방, 자네는 이제 내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명심해서 잘 듣게나.”
“예, 어르신.”
“그 곱바로 이곳에서 달아 난 은실이를 묶어서 끌고 오든가, 그도 못하겠다면 자네 목을 묶어 걸든가,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내 말 알겠는가? 내가 말미로 열흘을 주겠네.”
아버지는 비 맞은 탓으로 몸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난 박재수에게 찬바람이 일만큼 냉정하게 내뱉었다. 그 울림은 쏟아지는 빗소리를 깔아뭉갤 만큼 마당 안으로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11
빛이 짙붉고 모양이 둥글 대로 둥근 백중 달이 구름에 단단히 갇혔다. 그나저나 바다로 나갔던 물은 기어이 되돌아오고 왔다. 한사리를 맞은 ‘들물’이 섬을 가득 에워쌌다. 섬이 술빵처럼 부풀어 오르듯 바다 위로 떠올라 보였다. 때를 기다린 듯 마침 폭우가 그 위로 구멍을 파듯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컴컴한 어둠이 아니라 껌정 칠하다 만 희뿌연 빛들이, 내리는 빗줄기에 얼룩져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덩달아 불어난 늪의 물이 연잎 모가지까지 가득 차올랐다. 암튼 연잎만 수면 위로 떠 있는, 그런 넉넉한 느낌까지 들었다.
야음을 틈타 뭍에서 바위게처럼 은밀하게 섬에 오른 두 사내가 박재수 살림집인 바깥채로 향했다. 흐른 시간도 잠깐, 사내들은 부댓자루를 둘러업고 허둥지둥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빠른 걸음으로 늪가에 당도했다. 그리고 일주일 앞서 둘러보면서 보아 둔 곳에서 천막쪼가리를 걷어내고 밧줄로 묶은 돌들을 찾아냈다. 사내들은 도상훈련을 마친 해병 특수부대원처럼 행동이 민첩했고, 그림자처럼 말이 없었다.
사내들은 망설이지 않고 부댓자루째 돌을 매달았다. 그리고 물속에서 한 뼘쯤 밖으로 드러난 장대 끝 지점까지 널빤지로 엮은 뗏목을 물소리마저 낮춰가며 저어 갔다. 간단히 부댓자루를 물밑으로 내려 앉힌 사내들은 혼자서 움직이듯 일사불란하게 늪가로 되돌아와 임시로 엮어 만들었던 뗏목을 해체해서 늪 둑에다 버렸다. 진작부터 질척한 연밭에서 발 받침으로 쓰였던 게 다시 제자리로 그렇게 멀쩡하게 되돌아 왔다.
“폭우로 위험하니 내일 첫 배로 나가시게. 수고했네. 어딜 간다고 묻진 않겠네.”
사내에게 검은 가방을 건넨 류길재는 목소리가 낮은 만큼 차분한 어조로 사내들에게 작별을 일렀다. 사내들은 눈알을 빠르게 굴리면서도 목소리마저 남기지 않으려는 듯 침묵을 지키며 고개만 까닥까닥했다. 이내 류길재 눈앞에서 종적 없이 사라져 갔다. 길을 따라 흐르는 빗물이 사내들이 남겨놓은 발자취를 서둘러 지워냈다. 그들이 사라져 간 곳으로 따르던 눈길을 거둬들인 류길재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소리로 중절 댔다.
“창현이, 그놈을 따라 뭍으로 나가면, 풀어놓은 망아지 꼴이지. 그러면 둘 사이를 막아설 방도가 나에겐 없지. 창현이 군에서 제대하기 전에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가장 확실하게 둘을 갈라놓을 수밖에……. 후유! 어쩌다 한 번 저지른 실수가…….”
류길재는 짐을 내린 하역부처럼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나저나 우울했다.
12
비록 연꽃이 진흙에서 피어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정결함 때문에 옛 선비들도, 그 고결함을 닮고자 발길 닿는 여러 곳에다 으레 크고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옆에다 정자를 지었다. 서울 궁궐은 물론이고, 지방 곳곳에 선비가 거처한 곳에선 가리잖았다. 창덕궁 애련정, 경복궁 향원정이나, 또 곳곳에 세워진 부용정, 익청정, 연정 등 정자 이름 붙은 곳이 그런 까닭으로 생겨났다. 글깨나 읽은 치들은 연꽃을 부용이라는 별칭을 부르고도 앎의 허기를 메우고자 다시 그걸 부거芙蕖니 함담菡萏이라고 불러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류창현에게는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둔 적은 없었다. 다만 박은실도 연을 보고 자랐으니, 혹여 그런 곳에 나타나 옛일을 생각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 곳에 갈 때마다 류창현은 우연에 기대를 걸다 못해 그런 곳까지 찾아 나설 작정하고 헤매고 다녔으나, 박은실 행방은 바람 자취처럼 묘연하기만 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여자라고 서서히 체념할 때, 먼 친척 형수뻘 되는 사람으로부터 아내로 살다 간 이미옥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운명이듯 받아드리면서 결혼식을 치러 아이들까지 두었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아버지 성화를 견딜 수 없으니, 사람을 고르기보다 결혼의식을 택하는 일로 치부했다. 고약한 발상이었으나 자신으로선 쫓기고 쫓기다 결심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한 남자 품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두 여자를 동시에 품어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을 한 뒤, 아이를 출산하고 살면서도 박은실에 대한 생각은 기억에서 말끔하게 지워내지 못했다. 행방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짐이 됐다.
그러나저러나 태생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아내는 첫째를 출산하고부터 막내를 낳을 때까지 잔병치레를 끊임없이 했다. 조금 넘치게 표현한다면 서 있는 날보다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사는 날이 많을 만큼 잔병에 묻혀 살았다. 약효가 좋다는 연자육, 하엽, 우절, 연방, 연수, 연자심까지 먹여 봐도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다가 끝내는 기신기신 펼쳐 놓고 살아가던 삶을 사주쟁이 돗자리처럼 거두고, 죽음 길로 저 혼자 먼저 갔다. 아내와 서로 만나 살았던 게 아니라 서로 스쳐 지나갔다는 말이 맞는,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 그동안이 짧았다.
13
류창현은 연근을 캐려고 처음으로 늪에 고였던 물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꽃이 지고 잎마저 누렇게 변한 지 오래였고, 장마를 끝낸 하늘이 갤 만큼 쾌청하게 개기를 달포나 되니 늪의 물빼기에도 적기였다. 아내가 살아 있다면 그런대로 도움을 받았을 테지만, 그도 잔병치레로 일찍 저승으로 떠나 이제 이승 사람이 아니니, 혼자서 열흘이 걸려서라도 해내야 할 일이었다.
류창현의 기대는 대단했다. 연근이 그로선 첫 수확이었다. 그는 물이 빠지자 서두르지 않고 한쪽에서 연근을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펄이다 보니 작업 속도가 느렸다. 일을 시작한 지 닷새가 지나도 한쪽에서만 직신거렸다. 그래서 사람을 부를까 생각도 했으나, 특별나게 여느 일이 없으니 쉬며 쉬어 가며 하자고 아예 작정하면서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혼자서 일을, 그도 느긋하게 하니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가장 뚜렷하게 남았다면 연밭에서 놀다가 박은실이와 연잎을 뒤집어쓰고 소나기를 피하려고 둑길로 뛰어 달아나던 일이었다. 비록 머리는 젖지 않았으나, 웃옷이 젖어 가냘픈 어깻부들기는 물론 양쪽 앞가슴에 도토리만 한 돌기도 선명하게 보였다. 입술이 한기로 파랗게 변해 파들파들 떨면서도 던지는 말이 귀 밖으로 흐르기만 했다. 나중 집에 와서도 연잎으로 그곳을 가려주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일을 시작한 지 열흘째, 오후 연밭에 들어선 그의 손끝에 연근과 촉감이 전혀 다른 물체가 잡혔다. 연근이나 나무뿌리는 둥글지만 부드러운 데, 이것은 아주 날카롭고 모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퇴적된 흙 속에서 골라냈다. 동물의 뼈라는 느낌과 동시에, 그것이 사람의 뼈임을 직감했다. 그것들은 그의 손길을 기다린 듯 한곳에 오롯이 모여 있었다. 불현듯 댐 붕괴를 막으려고 세웠던 받침목이 동강 나며,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흙더미가 눈앞으로 닥쳐들 듯 불길한 예감이 덮쳤다.
‘설마, 설마…….’
그 가설이 하나의 뚜렷한 진실로 형상화되는 두려움 때문에 전신이 옥죄여 왔다. 그는 정신없이, 그러나 끈질기게 진펄 속에 파묻힌 걸 골라내기 시작했다. 두개골이 드러난 곳에서 머리카락이 손끝에 걸렸다. 여자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이내 진펄을 세심하게 더듬던 손끝에 맞부딪치는 게 있었다. 아직 동그라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반지였다. 흙으로 닦고 물로 씻어내도 광택을 잃어버린 금반지에는 큰 별을 가운데로 하여 작은 별이 두 개가 양쪽으로 파여 있었다.
“은실이?! 은실이가…….”
류길재가 숨긴 유류품이 비로소 아들인 류창현 손에까지 닿았다. 자식으로선 물려받기는 너무 무거운 유류품이었다. 류창현은 괴성을 지르며 진펄에다 이마를 내리찍었다. 세상의 산 사람 숲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승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곳 진펄 속에 오래도록 이렇게 갇혀다가 해후 자리에서 주검으로 마주쳤다.
14
류창현은 박은실 유골을 입관례도 치르잖았다. 아버지 유류품인 그 뼈를 쓸어 묻고 싶잖았다. 그저 머문 자리를 잊도록 진펄만 알뜰하게 닦아내서 혼자서 느릿느릿 또 쉬엄쉬엄 묻었다. 분명 아버지 유류품이지만 터져 나오는 감정과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눈물도 같이 묻어 주고 싶었다. 반생을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없이 품어 왔듯 사람 눈에 띄잖는 평장으로 꾸며서, 세월이 가면 뭇사람 눈길에서 잊히도록 배려했다. 사태를 지켜내지 못한 멍청한 파수꾼으로서 위로해줄 말과 행동까지 모두 함께 묻었다고 여겼다. 그저 무슨 짓을 하든 한이 줄어들잖았다.
그는 연밭이 바투 보이는 언덕에 앉아 흙 묻은 채 아귀가 풀어진 손으로 술을 마시며, 아버지와 박은실의 환영이 교차하는 안채와 바깥채를 멀뚱하게 바라보면서 그녀만 생각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아버지와 연관되었다는 정황만은 분명해 보였다. 비록 그러하지만, 자신도 연관된 일이므로 그 죄에서 자유로 울 수가 없었다. 유전되어 몸속으로 흐르는 탁한 피는 끊임없이 사죄하고 또 가혹하게 자책한다 한들 늪의 침전물을 뚫고 올라와 꽃피우는 연꽃과 같이 정화된 사랑으로 개화할 수는 일로 여겨졌다.
류창현은 연밭에서 일손을 놓았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에서 해방되려고 뭍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이제 먹은 나이가 버거웠다. 한마디로 적절한 시기를 잃고 놓친 셈이다. 스스로 마지막 삶이 진펄에 빠졌다고 여겼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박은실이 진펄 밑에 숨어서 자기를 잡아끌 듯 밤마다 진땀 꿈을 꾸었다. 류창현은 또 하나를 버렸다. 혼자 살아가는 일상에서 말이 필요 없기에 애써 지껄이지 않으니 스스로 잃었다. 혼잣소리도 필요치 않은 일상이 흘렀다. 종래는 부쩍 꿈이 많아지고 놀라 깨어났다가 다시 누우면, 그 터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온갖 모습으로 꿈속을 휘저어가곤 했다. 애틋한 감정이 깊어 박은실 얘기를 노트에 남겼다.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유류품이 될 거다.
입맛이 없을뿐더러 적은 식사량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곡기마저 끊은 지 열흘째 되는 날, 늦가을 태풍으로 퍼붓듯 빗줄기가 연이틀 쏟아져 내렸다. 연밭이 늪에서 못으로 보일 만큼 다시 물이 가득 차올라 넉넉해 보였다. 류창현은 널빤지 두 쪽으로 엮은 뗏목을 타고 수심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이곳에 와서 살펴 아는 게 있다면 늪 깊은 곳이 어디쯤이란 걸 예측할 수 있다는 능력이다. 하늘로 향하여 치켜든 얼굴 위로 빗줄기가 세수나 시키듯 연이어 지나갔다. 몸에서 씻어낼 만큼 씻어내도 때는 남았다. 눈물과 함께 얼굴을 타 내린 그것이 가슴께까지 넉넉히 적셨다. 여한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그막 길이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밀어내면서, 몸을 움직여서 뗏목을 기울게 한 다음, 짐짓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버지 유류품이 있던 그 자리였다. [‘사랑하기가 나만 한 이가 몇이나 될까’ 전편 개작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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