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회스님께
실상사 금강경 결제에 동참 하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마음은 있어도 갈 형편이 못되어 이렇게 인터넷만 뒤지고 있읍니다.
잠깐, 제 의견을 말씀 드려 보겠읍니다.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스님의 생각과 저는 조금 다른데 우선 믿음은 철저히 주관적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네가 출가할 때 누가 등 떼밀어 절에 보냈다면 아마 벌써 다른데 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 무언가를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에 예서 아직도 중노릇을 하고 있듯 말입니다. 해서, 믿음이라는 것은 바른 믿음, 그른 믿음을 따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 자체만큼은 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동,서로 갈리고, 남북으로 아직도 갈라져 있질 않습니까?
그 다음으로 생각 할 것이 우리네 불법 안에서의 믿음인데 말 그대로 부처님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에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을 듯 합니다.
우리는 불법에 기초한 믿음인만큼 확실하게 믿지 않는다면 바른신심 즉,팔정도에 이미 어긋난 문제가 될테니까요.
스님께서, '믿음이라는 일반적 논의 외에 불법에 있어서의 믿음을 논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왜 믿어야만 하는가? 그목적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중 하략)'
'왜?'라고 하셔서 우스갯소리 하던 때가 기억나는데, 우리네 '왜?'字붙이지 말라는 말 잘 하잖습니까, 무유정법이라구요.
거창하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하곤 있지만, 저야말로'공덕쌓기','복짓기'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읍니다. 그것이 진정 상(산냐)없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면 바른 믿음의 결과일텐데요.
마지막으로 한국불교의 기복적 성향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우선 종교는 처음부터 '기복'을 바탕으로 출발했으니만큼 그것을 기초로해서 바른 신심을 가지는게 순서일 듯 합니다.
문제는 다만, 불자들이 상,하단의 구분을 갖고 어떤 '다른 의미'로써 절을 하는 것이 문제이지, 어디에 절을 하던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절이라면 참으로 좋은 일이지요.
이 부분에서 우리 스님네게 책임이 있을 듯 합니다.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불상이라고 하셨죠?)께 절을 하는게 아니듯,-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니지만- 이미 절을 하겠다는 마음 일었을 때 해답은 나왔듯이요. 불상이던, 산신탱화던 절을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기복인 것이지요. 춘성스님께서도 아마 탱화 불 사른다고 사람들이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탱화나 산신각등은 그런 마음들이 만들어 낸 것일테니까요. 앞으로 바른 포교가 자리 잡는다면 산신각이던, 칠성각이던 보기좋은 모습이겠지요.
혹, 스님께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읍니다.
추운 날 감기 조심하시고, 건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