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브레이어(Bréhier, 1876—1952)
- 제4권. 17세기, Le dix-septième siècle1-702
제3장, 데카르트와 데카르트주의 Descartes et le cartesianisme 41-113
8절. 물리학. La physique 76
만일 사람들이 데카르트의 물리학(la physique)을 과학사에서 효과적인 그의 기여의 관점에서 제시한다면, [자연학을] 형이상학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형이상학 속에서 그는 얼마간의 발견들을 포함하기를 원했다. 그 발견들은 그것들의 기원에서 형이상학과 완전히 독립적이다. 왜냐하면 발견들은 1627년에, 말하자면 그가 형이상학에서 자신의 물리학의 지지점을 찾았던 시기에 앞서기 때문이다. 1619년부터 베커만에게 제시했던 물체들의 낙하 운동속도의 법칙은 관성의 법칙을 가정하는 수학적 탐구이며(체득된 운동의 운동체 속에서 보존). 그리고 이 수학적 탐구는 그가 보다 나중에 제시할 중력의 원인과 더불어 보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입사각 사인각과 렌즈의 제작 규칙들의 출발점이었던 굴절각의 사인각의 동등 법칙은 그가 묘사했던 경험에 의해 1626년부터 그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며, 그리고 1637년에 그가 굴절광학에서 그것에 대해 부여한 소위 말하는 증명과는 아주 독립적으로 발견되었다. 1637년 10월 달에 그는 호이겐스를 위하여 “기계장치들의 설명”과 “그 장치들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적은 힘으로 매우 무거운 짐들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글로 쓴다. 기계들에 관한 이 작은 논문에서, 그는 힘이 통일된 덩어리 속에서 운동의 속도를 고려함이 없이, 생산하는 이동에 의해서 오로지 힘의 결과(행위 또는 작업)를 정의한다. 이 작은 논문은 자기의 물리학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던 일반적 용어들을 개입하게 한다. (76)
이런 류의 탐구들은, 케플러(1571-1630)와 갈릴레이(Galilei, 1564-1642)의 전형과 동일한 전형으로부터수학적 형식에 맞는 자연적 법칙들에 도달했다. 한번의 경험과 한번의 수학적 기술에 의해 인도되어(데카르트는 1619년에 무거운 물체들의 낙하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하여, 기하학자인 카발리에리의 나눌수 없는 것들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물질의 구성에 관하여 어떠한 가설도 포함하지 않았다. 자연의 법칙들의 수학적 표현을 향한 이런 방향정립은 데카르트의 결정적인 물리학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원리들의 마지막 두 권에서 수학적인 어떠한 정식도 발견하지 못하지만, 경험에 의하여 확정된 효과들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적인 조합들(combinaisons)의 서술을 발견한다. 데카르트는, 원인들의 굉장한 복잡함은 단순한 정식들로 표현되는 결과들에 이르는 것을 막는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무거운 것들의 낙하의 법칙에 관한 탐구들을 계속 추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진자의 왕복운동의 등시성(l’isochronisme)의 법칙을 오류라고 딱지를 부쳤다. 여기서부터 낯선 별종(anomalie étange)이 나온다: 데카르트는 분석 기하학의 발명가이며, 이 분석기하학은 보다 나중에 나올 물리학자들의 도구와는 독립적이 될 것이며, 그의 물리학에서 그 도국의 최소한의 사용도 발견할 수 없다. (77)
삐에르 부뜨루(Pierre Boutroux, 1880-1922)에 의해 매우 잘 알려진 대조를 주목하자. 케플러는 보편적 관망(vision, 통찰)에서 미학적[감성적] 고찰들을 개입하게 했으며, 갈릴레에서는 관성의 원리에 관한 사유가 미해결로 남아있었는데, 이 둘은 정확한 법칙들을 발견했다. 이 법칙들은 현상들에 대해 엄밀한 예견을 허락해주었다. 데카르트의 노력 전체는 원리들의 엄밀함과 정확함에 근거하였으며, 그 원리들이 철학의 원리들의 둘째 권에서 신술했던 대로, 그는 셋째와 넷째 권에서 메카니즘들을 서술하기에 이른다. 이 메카니즘들은 사물들을 대체로 설명하고 있으나 어떠한 예견도 허락해주지 못한다. 우리가 이제 진술해야할 것은 이 원리들이다. (77)
물질의 본질은 너비이다. 이런 귀결에 이르는데, 너비는 큼에서처럼 작음에도 무한하고(말하자면 데모크리토스의 불가분적(insécable) 원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 유한한 세계를 동시에 거부해야만 한다.), 너비는 하나(une)이다 (말하자면 천구의 사물들의 물질과 요소들의 물질 사이에 모든 구별을 거부해야만 한다). 물체는 너비의 제한된 몫[부분]일 뿐이다.그리고 두 물체는 그것들의 도형과 그것들의 위치에 의해서만 그들 자체들 사이에 구별될 수 있을 뿐이다. 둘 중의 하나가 정지해 있다고 가정할 때, 첫째와 연관된 둘째의 위치는 다른 순간들에서도 결코 동일할 수 없을 때, 그것은 운동 중이라고들 말한다. 물체들의 각각은 게다가 불가침투적이며, 그것은 두 물체가 동일한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 한다. (77)
물리학적 문제는 물체들의 모든 결과들과 모든 성질들을 환원하는데 있으며, 경험은 우리에게 이러한 환원을 알게 해주는데, 그 경험은 도형으로 상대적 위치로 주어지는, 또한 몇 가지 운동들로 활성화되는 물체의 조합에 속하는 경험이다. 여기서 조합이란 인간에 의해 발명된 역학적[기계적] 인공물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조합과 같은 그러한 조합이다. 이런 인공물들의 모델에 근거하여, 데카르트는 자연적 물체들의 내밀한 구성을 상상한다. 그가 말하기를 “그것[물체]의 역학적 설명들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인공물에 의해 조성된 여러 물체들의 예[표본]는 나에게 많이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공예가가 만든 기계들과 자연 혼자서 조성한 다양한 물체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들의 결과들은 효과는 도관들, 태엽들, 다른 도구들의 배치에만 의존한다. 이 도구들은 이것들을 만든 자들의 양손과 더불어 어떤 비례를 갖기에 앞서서, 항상 크기가 매우 커서 이것들의 도형들과 운동이 잘 볼수 있는데, 이에 비해 자연적 물체들의 결과를 일으키는 도관들과 태엽들이 일상적으로 너무 작아서 우리의 감관들에게 지각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역학의 모든 규칙들은 형이상학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인공적인 모든 사물들도 이것과 더불어[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이다.” (규칙들, IV, 203.)(78)
역학(la mécanique)은 고대인들에게서는 인간에게 “격렬한” 운동을 생산하게 허락하는, 예를 들어 지렛대 또는 압착기를 수단으로 무게를 들어 올리게 하는, 절차들의 일체처럼 인식되었다. 따라서 역학은 인간적 척도(l’échelle)에만 현존한다. 반대로 자연학은 “자연적” 운동의 연구였다. 마치 낙하, 말하자면 자발적 운동과 같은 낙하는, 만일 장애물이 없다면, 무거운 것을 그것의 자연적 장소로, 즉 세계의 중심으로 인도한다. 그런떼 무한한 세계에서 중심은 더 이상 없고, 자연적 장소도 없으며, 따라서 자연적 운동들과 격렬한[폭력적] 운동들 사이에 구별할 어떠한 수단도 없다. 이리하여 이때부터 사람들은 관성의 법칙의 필연성을 이해한다. 한 물체는 그 자체로부터 그것의 정지의 또는 운동의 상태로 변하게 할 수 없다.만일 물체가 정지이라면, 물체는 무한정하게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고, 만일 물체가 운동이라면, 물체는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운동으로 움직이기를, 적어도 이 상태가 외적 물체의 충격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면, 무한정하게 계속할 것이다. 충격은 상태 변화의 유일한 원인이다. 이 원인은 근본적으로 역학적이다. 따라서 이 역학적 구조는 완전히 크기의 척도(l’échelle)로부터 독립적이다. 그리고 우리가볼 수 있는척도로 실험하는 기계주의와 유비적으로, 볼 수 없는 것(l’invisible) 속에서 구조를 우리 스스로 재현해야 한다. (78)
이런 유비가 데카르트의 동시대인들에 눈에는 그의 물리학의 진실한 난점을 만들었다. 모랭(Morin)이 데카르트에게 보낸 편지 “자연 속에서 닮지 않은 많은 결과[효과]들이 발견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마치 많은 다른 것들 가운데 자석의 결과[효과]들과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만일 내가 당신에게, 내가 천구의 영향들로부터 알았던 것을, 말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사정이다. 마치 천상의 영향들은 신 자체와 다른 비교들로 작동하는 영향들의 방식으로만 받아들여진다.” (AT, II, 411.) 데카르트가 이런 정신의 물리학자들을 생각했으며, 그 당시 1628년에 규칙들 속에서 그는, “그들에게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새로운 종류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 그들 각자에게 새로운 효과가 속하는 - 물리학자들에 대해, 말했다. (79)
따라서 데카르트의 기계주의(le mécanisme)는 충격의 메카니즘이다. 그 충격은 물체들의 상태에 대해 변모하는 유일한 작용이다. 보태야할 것이 있는데, 충격의 작용은 순간적이며, 말하자면 그 작용은, 그 작용이 일어나는 동일한 순간에 충격 받은 물체의 상태를 변모하게 한다.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순간적인 것과는 다른 작용을 만을 인식한다. 그리고 방법적 의심이 무매개적으로 지각된 명증성의 확실성과는 다른 모든 확실성을 제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물리학도 모든 힘을 제거하고, 그 힘의 작용은 그것의 결과들을 펼치기 위하여 지속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빛의 작용자체는 순간적이다. 그리고 그 작용은 빛나는 물체로부터 눈으로 이동되었는데, 충력이 단단한 막대기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이동되는 방식과 마찬가지이다. 이점은 데카르트에서 매우 중요하여, 그가 이렇게 말하기에 이른다. “만일 감각적 경험이 어떤 지체(retard, 지연)을 보여준다면, 그의 모든 철학은 근본에서부터 파괴될 것이다.”(AT, I, 308.) (사람들은, 빛의 퍼지는 속도가 뢰머(Roemer, 1644–1710)에 의해서 1675년에 증명했다는 것을안다.) 이 결과로 최소한의 지체는 빛과 눈 사이에 간격에서 불연속성과 빈 것을 가정할 수 있으리라.
어떻게 이 순간들이, 서로 서로 연속하기 위하여 어떠한 힘이 없이도, 서로 서로 묶여질 수 있는가? 물리학에서 신의 비변질성과 항상성에 근거한 영속성의 법칙은, 인식이론 속에서 명증성의 신적 보증이라는 것에 상응한다. 이것이 유명한 운동 양의 보존의 법칙이다. 시간의 모든 순간들마다, 첫 순간에 신에 의해 우주에 새겨진 운동의 양은 동일하다. 물체의 운동의 양은 속도에 의해서 덩어리의 생산물(물체의 기하학적 크기에 따라 평가된)이다. 따라서 한 순간에 우주의 상태는 다른 어떤 순간에 우주의 상태에 균등하다. 변화에 내속하는 모든 난점들은 제거되었다. (80)
순간적으로 충돌에 기인하여 이루어진 변모들 그 자체와 다른 변모들이 남는다. 충격의 일곱 법칙들은, 운동의 양이 충격 전후에도 동일하기를 바라는 규칙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 규칙들은, 어떻게 운동량이 충돌 후에 서로 나누어지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방향이 변하는지를 가르쳐준다. (80)
만일 두 물체(완전히 딱딱하다고 가정되어 있는)는 동등하며 동등한 속도로 활성화된다면, 각각은 충돌 후에 동일한 속도로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온다. 만일둘 중의 하나가 더 크다면, 그리고 둘 다 동일한 속도이라면, 더 큰 것은 동일한 방향과 동일한 속도를 계속하고, 더 작은 물체는 동일한 속도를 간직하며 반대 방향을 취한다. 만일이것들이 동일하다면, 또한 이들 중의 하나가 보다 빠르다면, 덜 빠를 쪽이 튕겨 나오고, 더 빠른 것은 자기 방향을 유지한다. 게다가 이것들이 동등한 속도룰 유지하고, 보다 빠른 쪽이 덜 빠르 쪽에게 자기 속도의 나머지 절반을 양보한다. 만일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크다면, 또한 만일 더 큰 쪽이 정지해 있다면, 보다 작은 쪽이 자기 운동을 보존하면서 튕겨나오고, 더 큰쪽은 움직이지 않은 채 있다. 만일동일한 조건들에서 정지하고 있는 것이 더 작은 쪽이라면, 더 큰 쪽은 계석에서 동일한 방향으로, 큰쪽이 작은 쪽에게 자기 운동의 일부를 전하하여 작은 쪽을 끌면서, 자기 운동을 계속한다. 만일 이것들이 동등하다면, 그리고 만일 하나가 정지하고 다른 하나가 운동중이라면, 운동 중인 물체는 튕기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른 것에게 양보한 자기 운동의 1/4의 운동량을 상실한다. 만일두 물체가 동일한 방향으로 간다면 또한 만일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많을 속도를 가졌다면, 빠른 쪽이 자기 운동을 간직하면서 튕겨나간다. 반대의 경우에서 빠른 쪽이 느린 쪽을 끌면서, 자기 운동의 일부를 느린 쪽에서 전달한다. (80) [만일로 시작하는 문장들 7 규칙(법칙)을 설명한 것이다.]
“자연의 법칙들”은 게다가 부정확하지만 이상적인 경우에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이법칙들은 고찰된 두 물체가 완전하게 딱딱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인정했듯이 이것은 허구이다. 이 허구(fiction)는, 사물들이 수학적 검토의 수중에 떨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에서만 인정된다. 다른 허구가 있다. 즉 물체들이, 자기들과 이웃하는 물체들의 할당량의 어떠한 영향을 감당하는데, 이것은 가득 찬 것(le plein)에서는 불가능하다. 뉴턴(Newton, 1643-1727)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18세기에 자연의 법칙의 전형처럼 고려될 것이고,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또한 현상들의 예견과 발견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한다면, 이와 달리 이법에 의해 알려진 충돌의 법칙들은 연역적인 모든 능력을 박탈당했다. 어떠한 인간의 오성도, 한 물체가 주어진 순간에 이웃하는 물체들의 할당으로부터 감당하는 모든 충돌들을 예견할 수 없고, 그 귀결로서 다음 순간에 그것의 속도와 방향을 예견할 수 없다. 인간의 기예(l’art)가 자연적 메카니즘들을 그것들의 복잡성 때문에 재생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공중에서 지탱하는 하나의 기계를 만들 수 있다. 자연학적으로 또는 도덕론적으로 말하자는(physiceou moraliter loquendo) 것이 아니라 형이상적으로 말하자면(metaphysice loquendo) 마치 새와 같이 (그 새들 자체도 적어도 나에 따르면 그러한 기계들이다), 그 기계들이 한 인간에 의해 제작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매우 미묘하고 매우 강한 일체의 동기들이 거기에 있어야만 한다.”(AT, III, 163)
물질의 자연(la nature)은, 데카르트가 이것을 생각했던 대로, 소용돌이의 필연성을 끌어낸다. 그래서 가득한 것(충만) 속에서, 유일한 가능한 운동은 소용돌이치는 운동이다. 한 물체가 자기를 몰아내려는 다른 물체에게 자기 자리를 넘겨줄 때, 둘째 물체는 다른 물체의 자리를 차지해야만하고, 이것은 셋째 물체의 자리를,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마지막 물체에 이른다. 마지막 물체는 첫째 물체에 의해 비어있는 체 있는 자리를 그 순간에 차지해야 할 것이다. 데카르트는 소용돌이의 물체들의 중의 한 물체의 원 운동을 투척에서 돌의 운동에 비교한다. 돌은, 운동궤적에서 접선(탄젠트)에 따라서, 직선 운동으로부터 각 순간에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다. 만일 그 돌이, 그것(돌)을 포함하는 가방(주머니)에 의해 유지된다면 말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소용돌이 속에 있는 물체가 이웃하는 물체들에 의해, - 접선에 따라 직선운동에 대립되어 있는 물체들에 의해 - 끊임없이 중심을 향하여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데카르트는 태양계의 발생(la genèse, 창조)을 이야기 한다. 만일 사람들이 소용돌이의 물질이 거의 동등한 것에 가까운 물체들로 형성된다고 가정한다면, 이 물체들은 스스로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자기들의 운동들에 대립을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물체들의 각도들이 점점 둥글어지고, 그 물체들은 구슬들이 될 것이다. 구슬드로부터 나온 부스러기들은 미묘한 물질로 또는 제일(첫째)요소(le premier élément)로생성될 것이고, 그 물질의 미세함과 요동침에 의해 구슬들의 사이에 모든 틈들을 채울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모든 형태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구슬 자체들은 둘째 요소(le second élément)를 구성한다. 이리하여 미묘한 물질은 구슬들을 가로질러 둘째 요소로 미끄러져가며, 항상 소용돌이의 중심으로부터 자기 주변을 향하여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빛은 미묘한 물질의 이러한 노력일 뿐이며, 빛이 우리 눈에 압박할 때, 우리는 이런 노력을 느낀다. 가능한 빈 것이 없는 것처럼, 더군다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된 제일 요소는 제일 요소의 다른 소립자들(les corpuscules)에 의해 무매개적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첫째 요소가 빛을 생산하고, 둘째 요소는 천체들의 물질을 생산한다. (82)
첫째 요소의 입자들(les particules)은 둘째 요소의 구슬들의 틈들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오목형 또는 홈파인 모양을 지닌 곡선 삼각형의 형태를 취한다. 만일 입자들이 스스로 멈추어여만 한다면, 입자들은 그것들의 홈파임들에 의해 서로서로 접합되고, 이리하여 조금 씩 조잡한 물질들로, 즉 일종의 얇은 껍질들로 형성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그것을 태양의 얼룩들처럼 또한 단단한 행성들을 지구처럼 소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셋째 요소이며, 매우 다양한 형태의 입자들로 형성되었고, 어떤 입자들은 가지들을 지니고, 다른 입자들은 길이들을, 또 다른 입자들은 약간 둥글게 되어 있어서, 입자들의 총합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들만큼이나 많은 차이들을 지니고, 게다가 입자들은 원자들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데카르트가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보는 다양한 물체들을 설명하는 것은 규정된 형태의 입자들의 연결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형태들에게 그가 부여할 수 있는 부분들에게 섬세한 물질, 액체적인 천구들, 고체적인 물질을 가지고, 데카르트는 지상의 모든 현상들을 설명하는 메카가니즘들을, 즉 무게, 빛, 열, 조수운동, 물체의 화학적 구성, 자석 등을 구축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우리는 이런 설명의 세부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82)
마치 반대자들이 말하듯이, 이런 “소용돌이들의 소설”로부터, 우리는 정신을 파악해야만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 우리 우주의 현실적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기하학자들이 가정들로서 선택했던 것만큼이나 임의적으로 그가 선택한 사물의 상태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82)
그가 말하기를 “이 주제에 어떤 방식으로, 물질이 최초에 배치되었는지를 내가 가정하는 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법칙들에 의해서만 증거 할 수 있을 뿐인 그것의 어떤 경우를 겨우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은 연속적으로 스스로 변하여 그것이 결국에서 여기-이곳에 전적으로 맞는 그럴듯한 세계를 구성하기까지 이르렀다…이런 법칙들은 물질이 계속적으로 모든 형상들을 이루어야 하는 원인이었다.”(원리들, III, 항목 45.) (83)
따라서 데카르트는 고대 그리스의 우주(cosmos)에 대한 강박관념의 시달림으로부터 물리학을 분간해 냈다.말하자면 우리의 감성적 필요[상식, 오관]에 만족하는 또한 지성의 작용 덕분에만 유지되고 생산될 수 있는, 사물들의 어떤 특권적 상태의 이미지로부터 분간해 냈다. 이 시달림은 케플러(1571-1630)와 갈릴레이(1564-1642)와 같은 물리학자들에게서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특권적 상태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상태들은 등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학[물리학]에서 최종 원인들을 탐구하기 위한, 또한 최상의 조건의 고찰을 위한, 어떠한 자리도 없다. “우리가 시인들의 혼돈을 가정하리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연 법칙들을 수단으로 해서 뒤섞임은 세계 속에 현재로 있는 질서로 조금씩 되돌아와야 한다고 항상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83)
물리학자는, 말하자면 경험에 비해서 너무나 거대한 이론일지 모를 이론을 또한 자료의 설명을 넘어설지도 모를 이론을 상상하면서, 우주(cosmos)의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원리들로부터 현실화되었던 결과들과는 아주 다른 무한한 결과들을 연역할 수 있다. 마치 시계공이 동일한 수단들을 이용하여, 그가 효과적으로 상상했던 운동들과 매우 구별된 운동들을 조합할 수 있는 것과 거의 가까운 결과들을 연역해낼 수 있다. (83)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과 더불어 조정(l’ajustement)하는데 결함이 있으며, 이 결함은 데카르트적 물리학 속에서 경험이 다루는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동일한] 경험에게 부여한다. 사람들은, 우주(univers, 보편)가 하나이며 불가분적이고, 순환운동으로 활성화된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그리고 그 운동이 보존된다고, 선천적으로(a priori) 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물질로부터 나누어진 부분들이 얼마나 큰지도, 부분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어떤 속도인지도, 부분들이 그리는 원들이 어떤 원인지도, 동일한 방식으로 규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사물들은 무한한 방식으로 신에 의해 정돈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방식들 중에 어떤 방식을 신이 선택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유일한 경험에 의해서이지 추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다.”(원리들, III, 46.) 물리학자는 자신의 원리를 가지고 현실적으로 실현된 조합에 떨어질 어떠한 기회도 가지지 못할 것이고(왜냐하면 거의 무한한 조합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결과들에 의해 원인들을 마중 나가야만 한다. (83)
각 경우에서 경험은, 원리들이 해결할 수단을 마땅히 제공하는 개별적 문제를 지적한다. 만일 사람들이 우선 천문학자들과 더불어 천제의 겉보기들을 서술하기 시작하는 우주론의 문제든지, 그리고 길버트(W. Gilbert, 1544-1603)와 같은 실험가들에 의해 발견된 자석의 성질들을 세부적으로 서술하기에 앞서 자석 이론의 문제든지, 경험은 문제를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론은 정확하게 경험과 나란히 진행한다. 데카르트는 규칙들에서 말끔하게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자는 이런 문제에 즉 자석은 무엇인가? 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길버트에 의해 행해진 실험들이 제공했던 자석은 무엇인가? 라는 이런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
경험들이 가능한 만큼이나 수가 많고 또는 정확하다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데카르트는 항상 추론과 연합된 경험의 취향을 가졌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는 응용 수학들의 문제들에, 즉 음악, 중력학(barologie) 굴절광학에 의해 시작했다. 그는 베이컨(Bacon)을 중요하게 평가했고, 그가 유용한 실험들을 행하는 방식에서 제공했던 규칙들 이후에 “말할 것이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1632년에 그가 쓰기를 “천구의 겉보기들의 이야기는 베루라미우스(Verulamius: Francis Bacon, 1561-1626)의 방법에 따르면, 거기에는 어떤 이법도 가설도 없지 않지만‥…우선은 아마도 공중에게, 그리고 나에게 많은 수고를 가볍게 해주는 보다 유용한 작품일 것이다.” 데카르트는 항상 이렇게 실험자들을 부추겼다. 방법서설의 마지막에, 데카르트는 군주들에게, 과학의 진보를 위하여 경험들에게 필수적으로 마땅한 많은 원조[경비]를 댈(subvenir)것을 요구한다. 데카르트 그 자신은 에그몽드 도시로 은거하여 해부학적 탐구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리고 그는 해부들을 실행했다. 결국 이 합리주의자는 규칙들에서 천문학자들이 그에게 불어넣었던 경멸들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 이 천문학자들은 천구들의 운동들을 관찰함이 없이 천구들을 자연을 연구했고, 자연학[물리학]의 바깥에서 역학들을 연구했고, 그리고 경험들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두뇌의 진리를 끌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구별해야할 것이 있다. 정확한 경험들과 이야기하는 경험들이다. 전자들은 측정과 계산을 동반하며, 천문학자가 오랫동안 경험들 실행하는 것과 같은, 또한 갈릴레이와 파스칼이 그것의 표본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경험들이다. 후자들 감관들이 무매개적으로 지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경험들이고, 그리고 하나의 세계가 있고, 질적인 정확성만을 갖는 경험들이다. 첫째 종류의 경험들은 법칙들이 연구한 정확한 현상에 관하여 수적인 법칙들을 암시하며, 그 법칙들은 새로운 경험에 의해 확정하거나 또는 파기될 수 있는 예견들을 허락한다. 둘째 종류의 경험들은 서술적이며, 그 자체들로서 서술적인 이론들에만 끌려갈 수 있다. 그 경험들은 수학적 형식을 취하지 않고, 출발에서부터 예견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자신의 자연학에서, 적어도 원리들에서, 이용한 것은 둘째 종류의 경험들뿐이다. 하늘에 대한 그의 서술, 조수 운동의 서술, 자석의 서술은 어떠한 정확한 수적인 자료를 포함하지 않는다.그러나 또한 그가 다양한 현상들을 고려하기 위하여 상상한 역학적 구조들은 단순히 서술적이며, 빠스깔의 표현으로 “대략”이며, 수학적 연역을 허락하는 차원들과 연관들에 관한 세부적인 것에서 서술적이지는 않다. 달의 압력에 의해 조수운동들을 설명하는 것은 현상의 간략한 방식을 지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은 데카르트가 탐구한 것이 아니다. 간략한 측정들을 동반하는 경험들에 대한 그의 무시에는, 수학적 형식에 맞는 법칙들로부터 탐구를 분리하는 것과 동일한 깊은 이유들이 있다. 이 경험들은 그 자신의 세상(le monde)과는 같은 세상에서 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수학적 법칙들의 단순성은 우주(un univers) 속에서만 가능한데, 그 우주 속에서 원인들은, 마치 보편적 무게와 중력 작용과 같은 원인들과 마찬가지로, 적은 수에서 또한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측정이 동반된 경험은, 수학적 형식에 맞는 법칙들, 중심적 힘들의 물리학은 함께 조화를 이룬다. 충돌의 메카니즘은 그것은 무한한 복잡성과 더불어 자연의 수학화의 모든 시도를 덧없는 것으로 만든다. (85)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가 원리들의 이론가가 아니라고 할 때, 사람들은 이런 경우들에 따라서 인데, 로베르발(Roberval, 1602-1675), 빠스깔, 호이겐스, 뉴턴까지에 의해서, 몇몇 결과를 숫적으로 결정하기 위하여 계산을 사용하는 전통에 따르는 경우, 그리고 예를 들어 그와 교신한 메르센과 케벤디쉬(William Cavendish, 1593–1676)에게서 조성된 진자와 동시적이고, 단순한 진자의 발견에 관하여 계산의 결과를 조정하기 위해 경험에 호소하는 전통에 따르는 경우에 이론가가 아니다. 수학적으로 단순한 진자의 길이를 규정하고 난 이후에(게다가 기하학 속에서 진자가 할당되었던 한계[극한]을 넘어서는 적분의 방법을 사용하면서), 그는, 케벤디쉬 부정확한 결과로 제시될지 모를 경험들로부터 끌어낸 반대들에게 그래도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이런 경험들이 정확한 측량이기를 요구하고, 이런 이유로 그는 진실한 경험자의 규칙이라는 다음 규칙을 부여한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솜씨[재능]은, 경험들의 검토에서, 다양한 원인들 중에 가장 적게 의존하는 경험들을 선택하는데 있으며, 그 경험들로부터 사람들은 가장 쉽게 진실한 이법들을 발견할 수 있다.”(AT, IV, 392) 매우 정당한 규칙 그러나 마치 자신의 규칙처럼 우주(un univers 보편)에 엄격히 적용할 수 없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그 규칙에서, 무한한 원인들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86)
따라서 데카르트에게서 과학자란 끊임없이 이론가를 넘쳐난다. 그러나 공중인에게 쓰여진 작품들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다. 그 작품들에서는 경험은 항상 우리가 표시했던 역할을 간직하고 있다. (86) (56WKI)
9절. 생리학. La physiologie 86
세계론은 1629년에서 1632년 사이에 쓰여졌는데, 심장의 운동들에 관하여 인간에 관한 장(章)들로서 끝난다. 이것으로부터 방법서설은 이 책의 제5부에서 기준표로 삼았다. 1648년에(AT. XI, 221)에서 그는 인간의 신체에 대해 서술했다. 이런 서술은 1664년에 끌레르슬리에(Claude Clerselier, 1614-1684)에 의해 태아의 형성론(Traité de la formation du fœtus)으로 출판되었다. 데카르트는 거기서 인간 메카니즘을 인간 신체의 기능들의, 즉 “고기의 소화, 심장의 박동, 5관의 분배”의 설명으로 확장하였다. 그는 메르센에게 편지를 썼는데, “나는 이제 상상과 기억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동물들을 해부한다.”(AT, I, 263.)동물들과 인간들의 신체들이 기계들 또는 자동인형들과 닮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거기서는 그리스 철학에서 자주 만나는, 심지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그리고 중세 전 기간 동안에도 흔적들로 남아있는, 용어이다. 그럼에도 신체가 하나의 기계이라는 생각은 전통적으로 다른 생각에 연결되어 있다. 그 다른 생각이란, 신체[물체]는 기계기술자가 만들었던 것처럼 그것을 사용하는 영혼을 위한 하나의 기구(l’instrument)이라는 생각이다.데카르트에게서 그러한 것은 없다. 그에게서 사람들은 자연의 보편적 법칙들 덕분에, 말하자면 특별한 기계기술자의 필요 없이도, 기계가 구축되고 기능 작용하는 것을 본다. 이로부터 그 유명한 기계-동물론(théorie des animaux-machines)의 가능성이 나온다. 이 이론은 동물에게서 방향잡는(지도하는) 영혼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은 보편 메카니즘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는데, 더욱이 신체로부터 구별된 사유하는 실체로서 다룬 그의 영혼의 개념작업으로부터 나온다. 영혼에게 생명적이고 동물적인 모든 기능을 추출해내고, 그리고 영혼을 가지고 자기에 관해 반성할 수 있는 순수한 사유를 만들면서, 결국에는 데카르트가 영혼에게 동물적인 것을 부여하기에 이르는 모든 동기들을 제거했다. (87)
데카르트의 생리학전체는 하비가 피의 순환으로 이제 막 만들었던 실험적 발견물에 근거한다. 고기의 체액은 간에서 피로 변형되면서, 정맥(la veine cave)에 의해 심장의 우심방(la cavité droit)에 옮겨지고, 이로부터 허파정맥(la veine artérieuse)에 의해 허파로, 그러고 나서 허파동맥(l’artère veineuse)에 의해 심장의 좌심방에, 결국에는 대동맥과 그 모든 핏줄 가지들에 의해 신체의 모든 부분들에 분배된다. 그러나 만일 데카르트가 피의 순환 운동의 사실에 관해 하비와 일치한다하더라도, 데카르트는 운동의 원인에 관하여 하비와 전체적으로 다르다. 하비는 심장을 마치 추진기관(propulseur)처럼 생각했는데, 그것은 스스로 졸아 들면서, 심장 속에서 동맥으로 피를 내보내고, 반면에 스스로 부풀면서 심장은 정맥 속에 있는 피를 끌어당긴다. 이것이 피의 운동을 일으키는 심장 운동, 심장의 수축과 팽창(systole et diastole)운동이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개념작업에 머물면서, 심장 속에서 심방 속에 들어가는 피를 덥힐 수 있는 열의 화덕(un foyer)을 보았다. 피가 이렇게 부풀려지면, 이번에서 피가 있는 심장의 심방을 부풀게 하는데, 피가 우심방에 있을 때는 허파정맥에 의해 출구가 발견하는 데까지, 그리고 피가 좌심방에 있을 때는 대동맥에 의해 출구가 발견되는 데까지 부풀게 한다. 따라서 심장의 운동은 피의 운동의 원리가 더 이상 아니고, 그 운동은 피의 부풀림으로부터 수동적으로 감당한 결과이다. 그 운동은 팽창을 피의 열기에 의해 생산하였다. 그 결과로 데카르트는 하비와 반대로 또한 사실과 반대로, 심장의 운동들의 실재적 질서를 뒤집었다. 그리고 심장이 수축 속에서 부풀어지고(피가 대정맥에서 벗어나게 되는 찰나에), 심장이 팽창 속에서 압축된다(피가 정맥에 의해 심장에 도달할 때). (87)
이런 오류는 우발적이 아니다. 오류는 데카르트의 모든 생리학적 체계에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하비를 비판한 후에 결국에는 덧붙였다. “심장 운동의 진실한 원인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것 없이 의학 이론을 다룰 줄 안다는 어떠한 것도 불가능하다.” (AT, XI, 245.) 이런 이유로 전통적인 동물 정령들의 이론이 다시 살게 되는 것은 이런 오류 덕분이며, 또한 이와 더불어 오늘날 관계의 기능들이라 불리는 모든 기능들이 피의 순환의 현상에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런 오류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장 활동적이고 가장 생생한 피의 일부분들이 전체부분들 중에 가장 직선에 있는, 심장으로부터 오는, 동맥들에 의해 두뇌에 옮겨지며, 그 일부분들이 마치 매우 섬세한 공기 또는 바람처럼, 사람들이 동물 정령들(les esprits animaux)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조성[구성]한다. 이것들이 두뇌를 부풀리면서 두뇌를 외적 대상들의 인상들과 또한 영혼의 인상들을 받아들이게 알맞게 하고, 말하자면 기관이 되기에 또는 오관[상식], 상상, 기억의 자리가 되기에 알맞게 한다. 그러고 나서, 동일한 공기 또는 동일한 정령들이 두뇌로부터 신경들에 의해 모든 근육들 속에 흐른다. 이 근육들 수단으로 해서 정령들은 신경들을 외부 감관들에 맞는 기관들을 사용하는데 배치한다. 그리고 이 정령들은 다양하게 근육들을 늘이면서, 운동을 모든 가지[사지]들에게 제공한다.” (AT. XI, 227.)이 모든 노력들은 심장의 열기에 의존한다. 열기는 “심장은 마치 큰 용수철[동기] 같고” 신체의 “모든 운동들의 원리와 같다”
데카르트에게서 결정적으로 신체는 피가 흐르는 홈들[심방들]과 운하들 같은 체계로 조성되어 있으며, 덥혀지는데 많고 적음에 따라서 달리 변모되는 체계와 같다. 이 관들과 홈들은 인공적 기계에서 그러한 기관들이 가질 수 있는 역할보다 더 활동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단순한 용기들[그릇들]이며, 수동적으로 피 또는 정령들의 부풀림의 결과들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용기들이다. 심장의 열기는 그 자체로 이런 결과들의 최종 원리[원인]이다.
이런 영역에서 경험의 결함은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약간 나중에 [덴마크 주교이며] 해부학자인 스테노(lat. Nicolas Steno, dan. Niels Steensen, fr. Nicolas Sténon, 1638-1686)가 쓰기를 “데카르트는 우리가 인간에 대해 갖는 이야기의 결함들을 너무나 잘 알아서 인간에 대한 진실한 조성[구성]작업을 설명할 기획을 할 수 없었다. 또한 그는 그의 인간론 속에 그것을 기획하지 못하였고, 우리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행하는 기계를 설명하기를 기획하였다.” 그리고 스테노는 그 스승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간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말걸면서, 덧붙였다. “데카르트의 인간은 다른 인간들처럼 만들어졌다고 증명하기를 기획하는 자들을 위하여, 해부학의 경험은 그들에게 이러한 기획이 그들에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해 줄 것이다.” (88) [임시, 10:35, 56W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