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 하순(10수)
하루시조 264
09 21
낙양동촌 이화정의
무명씨(無名氏) 지음
낙양(洛陽) 동촌(東村) 이화정(梨花亭)의 마고선녀(麻姑仙女) 집에 술 익단 말 반겨듣고
청려(靑驢)에 안장(鞍裝) 지워 금돈 싣고 들어가서
아해야(兒孩也) 숙낭자(淑娘子) 계시냐 문(門) 밖에 이랑(李郞) 왔다 살와라
이화정(梨花亭) - 마고선녀가 숙향을 데리고 살고 있는 집.
청려(靑驢) - 털빛이 검푸른 당나귀.
금돈 – 금화(金貨). 금으로 만든 돈.
살와라 – 사뢰어라. 아뢰어라. 알려라.
고전소설 <숙향전(淑香傳)>을 빌어다가 숙향(淑香)을 찾아온 듯 꾸몄습니다.
누구네가 되었든지 술이 익었다는 소식을 그냥 넘기기엔 아깝죠. 종장의 이랑(李郞) 대신에 저는 최랑을 집어넣고 싶군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5
09 22
벽상에 그린 까치
무명씨(無名氏) 지음
벽상(壁上)에 그린 까치 너 날은지 몇 천년(千年)고
우리의 사랑(思郞)을 아는다 모르는다
아마도 너 날아갈 제면 함께 갈까 하노라
님에 대한 사랑을 벽 위에 그려진 까치 그림을 데려와 노래했습니다. 사랑을 思郞이라고 적었군요. 우리말 어휘인 ‘사랑’의 한자 표기가 따로 있습니다만, 한자 표기가 더 쉬운 시절의 전체적 오류(誤謬)라고 해야겠습니다. 벽화가 몇 천년이나 되었을 리 없고, 그 까치가 언제 날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유야 그럴싸할는지 몰라도 허풍(虛風)이요 과장(誇張)일진대,
지난번 하느님과 바둑둔다는 작품보다는 덜하군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6
09 23
청풍과 명월을
무명씨(無名氏) 지음
청풍(淸風)과 명월(明月)을 값 주고 살작시면
일간(一間) 초옥(草屋)에 내 힘으로 들여오랴
세상(世上)에 공도(公道)의 것은 이 두 가지뿐인가 하노라
청풍(淸風) - 부드럽고 맑게 부는 바람.
명월(明月) - 밝은 달.
살작시면 – 산다고 치면.
들여오랴 – 들여 놓을 수 있으랴.
공도(公道) - 떳떳하고 당연한 이치. 공변된 길. 함께 누리는 가치.
청풍과 명월, 한칸 초가집에 사는 이에게 이마져도 들일 수 없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겠죠마는, 다행이 이 둘은 무료(無料)요 무한 리필이니 구름이 훼방 놓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초장과 중장의 가정(假定)과 결론(結論)이 자못 비장하거늘, 종장의 상황이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 좋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7
09 24
산두에 달 떠 오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산두(山斗)에 달 떠 오고 계변(溪邊)에 게 내린다
어망(漁網)에 술병 걸고 시문(柴門)을 나서 가니
해 있어 먼저 간 아이들은 더디 온다 하더라
산두(山斗) -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준말. 여기서는 산두(山頭)라 해야 할 듯. 산꼭대기.
계변(溪邊) - 시냇가.
시문(柴門) - 사립문.
해 있어 – 해가 떠 있을 무렵에.
전원생활(田園生活)의 여유로움이 그림처럼 자세(仔細)합니다. 재미가 풍성합니다. 저녁에 달밤에 시내로 가서 고기도 잡고 게도 잡는 데, 어린 동무들은 미리 가서 여러 가지 채비를 마쳐 놓았습니다. 지은이는 이런 저런 준비를 거쳐 시내에 다다르니 아이들은 ‘왜 이리 늦었소’ 하며 야단이랍니다. 시를 읽고, 그리기 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8
09 25
삼남게 그네 매어
무명씨(無名氏) 지음
삼남게 그네 매어 님과 둘이 어울뛰니
사랑(思郞)이 줄로 올라 가지마다 맺혔어라
저 님아 구르지 마라 떨어질까 하노라
삼나무에 그네를 매었다네요. 그 그네에 님과 함께 마주보고 서서 어울뛰기를 한다네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뛸 것 같습니다. 유선희(遊仙戱), 그네뛰기의 한자어입니다. 신선놀음 유희라는 뜻이지요. 추천(鞦韆)도 그네를 칭하는 말이지요.
마주 선 님아 구르지 마라, 행여나 이 가지마다 맺힌 사랑이 떨어질까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그럴싸 싶습니다. 그러나 그네란 구르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구를 것 빤히 알면서도 구르지 말라고 적이 거짓부렁을 하나 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9
09 26
삼오 이십세를
무명씨(無名氏) 지음
삼오(三五) 이십세(二十歲)를 매양(每樣)으로 알았더니
삼사(三四) 오륙십(五六十)이 어언간(於焉間)에 되단말가
지금(至今)에 내 청춘(靑春) 남을 주고 남의 백발(白髮)
삼오(三五) - 여기서는 15세.
매양(每樣) - 지금은 순 우리말 어휘로 사전에 올라 있습니다. 매 때마다. 번번이.
지금(至今) - 지우금(至于今),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어휘 풀이만으로 의미 전달이 됩니다만, 쉬이 늙었다는 회한이 숫자를 내세워 잘 구성된 작품입니다.
종장 끝구절의 생략은 ‘샀구나’ 정도로 ‘아뿔싸 바보 같은 바꿈을’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70
09 27
술 두고 날 안 주는 첩과
무명씨(無名氏) 지음
술 두고 날 안 주는 첩(妾)과 첩(妾)한다고 새우는 아내
둘 다 잡아 내어 보내고자 제주(濟州) 귀양
일년(一年)에 열두 사(赦) 내린들 풀릴 줄이 있으랴
첩(妾)한다고 – 첩과 지낸다고, 첩과 논다고. 요즘말로는 ‘첩질 한다고’ 정도가 되겠습니다.
제주(濟州) 귀양 – 한양에서 가장 멀기도 하거니와 험한 물길을 생각하면 끔찍하게도 먼 길입니다.
열두 사(赦) - 열두 번의 사면 조치.
첩과 아내, 둘 다 제주로 유배(流配)를 명하고서 절대 사면(赦免) 불가랍니다. 그 이유가 첩은 술 두고서 저를 안 준다는 것이고, 아내는 자기를 놔두고 첩질을 한다고 시새움을 한다는 것이로군요. 첩한테는 적절한 사유가 있을 것이고, 아내의 시새움이야 당연지사(當然之事) 아닌가요.
시대적 상황이 요즘과는 전혀 다른 옛날이니 첩이며 아내를 귀양보낼 수 있다고 칩시다만, 그리 해놓고는 또 첩을 얻든지 새 장가를 들 것인가 사뭇 궁금해지는군요. 그런데 중장에 ‘보내고자’이니 희망사항일 뿐임을 알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71
09 28
술 먹어 병 없는 약과
무명씨(無名氏) 지음
술 먹어 병(病) 없는 약(藥)과 색(色)하여 장생(長生)할 약(藥)을
값 주고 살작시면 참 맹세(盟誓)하지 아무 만인들 관계(關係)하랴
값 주고 못 살 약(藥)이니 눈치 알아 소로소로하여 백년(百年)까지 하리라
살작시면 -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아무 만인들 – 수(數) 만(萬) 냥(兩)인들.
눈치 알아 - 눈치껏 알아차리고.
소로소로 – 소(少)로소(少)로. 조금씩조금씩.
글자 수에 무관하게 하고 싶은 말을 조곤조곤 다 했습니다.
‘음란(淫亂)하다’라는 말의 ‘음(淫)’을 2,500년 전의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지나치다’로 풀었습니다. 지금은 결과론적으로 ‘음란할 음’이라고 풉니다. 이 작품의 내용인 즉, 술과 색을 낫게 하는 약은 아무 데도 없으니 소로소로, 곧 조금씩조금씩 즐겨가며 해야 백년 동안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방(祕方)인 술약과 색약은 이 세상에 아예 없다고 단언(斷言)하는데, 수만금인들 관계하지 않고 살 것이라는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색하다, 맹세하다. 관계하다. 그냥 하다 등 할 위(爲)의 다양한 쓰임이 돋보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최시인 덕에 淫에 대해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는구만.
정치나 마음씀에 대해서는 善淫
행동,성격에 있어서는 善惡,順激
논리,사건을 말할때는 順逆,順亂
탕왕이 하나라를 범하면서 淫을 썼구만..
진광근
하루시조 272
09 29
술은 언제 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술은 언제 나고 시름은 언제 난지
술 나고 시름 난지 시름 난 후(後) 술이 난지
아마도 시름 풀기는 술 만한 게 없어라
옛사람의 술에 대한 생각이 오늘을 사는 우리네와 판박이로 맞닿고 있음에 놀랍니다. 술과 시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왔군요. 닭이 먼저냐 닭알(달걀)이 먼저냐 묻는다지만 그건 생래적(生來的)인 물음이기도 한데, 술과 시름은 원인과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 역행(逆行)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시름을 술로 달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장에서 술이 먼저 생겨 시름에 겨우면 술의 힘을 비는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73
09 30
시름이 없을선정
무명씨(無名氏) 지음
시름이 없을선정 부귀공명(富貴功名) 관계(關係)하며
마음이 평할선정 남이 웃다 어이하리
진실(眞實)로 수졸안분(守拙安分)을 나는 좋아하노라
없을선정 – 없고 보니.
부귀공명(富貴功名) -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수졸안분(守拙安分) -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직한 태도를 고집하여 본성을 고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킴.
두 개의 한자성어가 버리고 취할 것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름이 없는 것은 걱정거리의 있고 없음으로 구별하기 쉬운 일이고,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은 조금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되며, 그 그릇을 채운 물의 표면이 얼마나 잔잔해야 되는지가 가늠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튼 작자는 걱정거리가 없고, 마음도 평안하니 수졸과 안빈을 추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직 부러울 따름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경째니 완째니 내포째니 하여 지역적 특색이 있기는 해도 시본이 되는 시조창의 가락은 한정적입니다. 문제는 요즘 작가는 작품 창작만 하고, 가객은 부르기만 한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