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의 ‘언브레이커블’
지난해 가을 ‘식스 센스’로 일약 스타급 감독으로 떠오른 M나이트 샤말란의 후속작이다.
열 살 때 영화를 찍기 시작해 수십편의 단편영화로 기본기를 다진 그의 면모가 엿보인다. 작품 내내 그럴듯한 에피소드를 연결해 제법 짜임새 있는 심리 스릴러를 내놓았다.
작품 막바지의 충격적 반전으로 성가를 높인 ‘식스 센스’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이번 영화에서도 샤말란의 교묘한 뒤집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재연된다. 그래서 영화의 진미를 맛보려면 1백여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하지만 워낙 급작스레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약간은 허망하기도 하다. 관객의 예상을 1백 80도 돌려놓는 감독의 남다른 기량은 인정하지만 극중 갈등이 별다른 설명없이 일순간 해소돼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영화는 천양지차의 운명을 타고 난 두 남자의 애기다. ‘식스 센스’에서 샤말론 감독과 손발을 맞췄던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다시 나온다. 그는 여기서 1백 31명이 사망한 대형 열차사고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초인적 인간 데이비드를 연기했다. 그 어떤 사고에서도 부상하지 않는 괴력의 소유자다.
상대편은 선천적으로 뼈가 약하게 태어난 엘리야(새뮤얼 잭슨). 어머니의 자궁에서 온 몸의 골절이 부러진 상태로 태어난 그는 경미한 사고로도 중상을 입는 비운의 사나이다.
‘펄프 픽션’에서 살인 청부업자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던 잭슨은 여기에서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화의 갈등은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심취해 현재 만화전문 화랑을 운영하는 엘리야가 데이비드의 열차사고 소식을 듣고 데이비드에게 쪽지를 남기면서 시작한다.
데이비드를 세상의 구원자로 생각하는 엘리야와, 자신이 단지 범인(凡人)이라고 믿는 데이비드 사이의 밀고 당김이 영하를 이끌고 간다.
서양문화의 큰 줄기인 선악의 구분을 차용한 것도 특징. 데이비드와 엘리야는 각각 선과 악을 대변한다. 세상을 구원하고 저주하는 이분법에 의존해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식스 센스’에서 정신과 의사로 잠시 얼굴을 비쳤던 샤말란은 이번에도 마약 밀매상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9일 개봉 (박정호 기자)
노트- ‘식스 센스’의 충격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똑같은 전략이 두 번 통하긴 어려울 것 같다. 엘리야처럼 만화를 너무 많이 보면 이렇게 되나. 외곬은 행복하지 않다. 자칮하면 샤말란이 부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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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공식 따라한 ‘영웅 만들기’
‘언브레이커블’의 미국 만화
인도계인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언브레이커블’은 미국적 영웅의 탄생기를 담는다. 영화에서 강조하듯, 이 미국적 영웅은 전형적인 미국 만화(코믹스)의 영웅이다.
초반엔 ‘수퍼맨’ 보는 듯
만화 전문 출판사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로 대표되는 미국 만화는 전형적이고 유사한 영웅 설화를 재생산한다. 영웅은 태생적으로 초인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어떤 계기로 자신의 능력과 임무를 깨닫게 된다. 유니폼 안에 진짜 모습을 숨긴 영웅에게는 강력한 악의 세력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언브레이커블’은 ‘수퍼맨’의 초반 10분을 영화로 만든 것 같은 작품이지만 묘사는 독특하다. ‘낯설게 하기’라는 브레히트식 기교를 충실히 따르며, 영웅을 아이와 부인이 있는 중년 남자(브루스 위리스)로, 붉은 망토와 쫄바지, 바지 밖으로 입은 팬티를 축축한 판초 비옷과 모자로 바꾸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최후까지 이 영화가 ‘○○맨’ 계열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는 영화적 기교에 속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만화영웅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저런 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언브레이커블’은 미국 만화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새뮤얼 잭슨이 연기한 앨리야는 만화 원화를 전시·판매하는 갤러리를 운영한다. 실제로, 최근 미국 만화는 보고 즐긴다기보다 수집품의 성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 앨리야가 ‘이건 예술품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미국 만화계 역시, 만화는 어린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 만화매장 직원이 ‘일본만화를 보며 자위하지 마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일본 만화의 미국시장 침투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도 일본 만화가 점차 입지를 넓히고 있는 데다, 아예 일본 스타일로 그리는 미국 만화가도 늘고 있다.
일본만화 침투 거세져
영화 초반에 샤말란 감독은 미국의 연간 만화 출판량이 7500만권에 달한다고 말한다. 과연 대단한 양이다. 그러나 한국의 연간 만화 출판량이 3500만권과 비교해보면 그리 감동적인 숫자가 아니다. 거기 더해 미국 만화책은 한권 30~50쪽 정도로, 200쪽 안팎인 한국 만화와 비교하면 (단순계산으로) 한국인이 읽는 만화 분량은 미국인의 15배가 넘는다. (박무직·만화가) 2001년 5월 2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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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번의 충격적 반전
‘식스 센스’ 샤말란 감독의 ‘언브레이커블’ 주말 개봉
충격적 반전으로 영하 역사상 흥행 10위를 기록한 ‘식스 센스’(1999년)가 그랬듯,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차기작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도 결말을 미리 알게 되면 영화를 즐기기 어렵다.
반전의 강도는 ‘식스 센스’보다 약해도 나이트 샤말란이 ‘식스 센스’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본다면, ‘언브레이커블’도 얽힌 매듭을 한 번에 풀어내는 반전의 묘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릴러 영화다.
승객 131명이 사망한 열차 사고에서 미식축구 경기장 경비원인 데이비드(브루스 윌리스)는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난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만화 갤러리를 운영하는 앨리야(새뮤얼 잭슨)가 보낸 초대장을 받고 자신의 생존에 의문을 품게 된다.
데이비드와 달리 앨리야는 툭하면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 환자로 아픈 현실을 잊기 위해 영웅을 그린 만화에 빠져 살아왔다. “만화에서처럼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평생 다치지 않고 우리를 보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앨리야는 데이비드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고, 그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이야기를 질질 끄는 감이 없지 않지만, 샤말란 감독의 가장 빼어난 능력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절묘하게 뒤섞고 비현실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현실적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 구성력이다.
초반부 열차 사고에서 살아난 데이비드가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는 모습을 꿈결처럼 느리고 길게 잡은 장면은, 화면에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믿게끔 한다. 데이비드의 우울한 일상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수도 없이 자문할 평범한 사람들의 번민을 반영한다. 지친 표정의 브루스 윌리스는 영웅의 슬픈 운명을 서서히 자각하는 데이비드에 적역이다. 새뮤얼 잭슨과의 연기 호흡도 좋다.
뒤통수를 치는 반전의 놀라움만을 바란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감각적 연출 없이도 보는 이를 이만큼 몰입하게 하는 매력적인 이야기꾼이 드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9일 개봉. 12세 이상 (김희경 기자) 2000년 12월 5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