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 주일- “깨어 기도하여라!”
찬미 예수님!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이자 구세주의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한 ‘대림(待臨) 시기’(Tempus Adventus)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의 4주간을 가리키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 시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다시 올 구세주를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제대 앞 대림환(待臨環)에는 네 개의 대림초가 있습니다. 오늘 대림 제1주일인 오늘은 네 초 가운데 가장 어두운 초에 먼저 불을 밝혔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촛불을 하나씩 켜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대림초를 켜는 것은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 역시 마음의 촛불을 밝혀 이 어두운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 참조)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소명을 알려줍니다.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ㄴ)
대림 시기의 의미와 우리의 삶에 대해: 본당 카페의 PPT 참조.
오늘 말씀 전례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재림)과 이를 맞이하기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깨어 기다림’과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1테살 3,12)
베르나르도 성인은 대림절 강론에서 주님의 오심이 세 번에 걸쳐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은 육신으로 오셨을 때이고(강생ㆍ육화: incarnatio), 마지막으로 오심은 세상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서의 재림(再臨: ‘παρουσία’, ‘adventus’)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오심과 마지막 오심 사이에 주님은 또 다른 모습으로 오시는데, 그것은 지금 여기(hic et nunc)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오시는 것입니다. 이 오심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already’) 와 있는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 머무는 일이요, 지금 ‘우리 여기’(‘hic et nunc’) ‘우리 가운데’ 와 계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르나르도 성인은 “믿는 이들이여, 우리는 이 땅 위에 살지만 천국을 그리워합시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마태 21,28)
속량(贖良: ‘ἀπολύτρωσις’)은 몸값[속전(贖錢: ‘ἀπολύτρον)’]을 지불하고, 노예나 포로에게 자유를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사람이 신분상 구속받는 경우가 생길 때 그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그를 속박에서 해방시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무를 지는 사람을 유다인들은 ‘고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속량’이라는 말은 ‘구원’ 또는 ‘해방’이라는 말로 대치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냉혹함에 대하여 오늘 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예고하십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루카 21,26) 하지만 구원을 희망하며 충실하게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은 그날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루카 21,28) 될 겁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再臨)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종교인이 아닌 참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참 신앙인의 첫 번째 생활방식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루카 21,34)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젊은 시절 마니교라는 이단(異端)에 빠져 방황하던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바오로 사도의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3-14)라는 말씀을 읽고 회개하여 참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참 신앙인의 두 번째 생활방식은 “늘 깨어 기도하는 것”(루카 21,36)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대화입니다. 영성적으로 ‘깨어 있음’은 ‘이미(already)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의 현존(現存) 안에 머무는 일이면서(대림의 첫 번째 의미: 12월 17일에서 24일의 여정), 동시에 ‘앞으로 우리에게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일입니다(but not yet): 대림의 두 번째 의미: 대림 1 주일부터 12월 16일의 여정).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기도 시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 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 되게 하소서.
위선보다는 진실을 위해
나를 다듬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으로 살지라도
한 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쓰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 앞에서는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님이여 그리 살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서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한 내가 되게 하소서.
첫댓글 우리에일상은 3번째대림을 맞지하기위에
준비하는2째마중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