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경주남산
박 완 규
천년고도 경주는 가볼만한 곳이 참 많다. 오늘은 세계문화유산 경주남산에 오르기로 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기 전이다. 사월의 꽃샘바람이 시샘이라도 하듯 아직은 찬 공기가 전신을 감쌌다. 맞은편 선도산 옥녀봉엔 그믐달이 쪽배처럼 걸려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삼릉 솔 숲길을 걷는다. 솔숲을 감싸고 있는 안개로 아직은 냉기가 옷깃을 여민다. 어느새 날은 밝아져서 푸른 하늘이 안개 낀 솔숲 사이로 얼굴을 비춘다. 그 푸르른 가장자리에 닿기라도 할 듯 발걸음을 재빨리 옮긴다.
올라가는 길 주변에는 문화유적들이 꽤 많다. 삼릉 솔 숲지나 계곡 길 오르니 목 없는 석조여래좌상이 정좌해 계신다. 조금 더 오르니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도 나타난다. 샛길로 조금만 드나들면 이런 신라문화유적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지천에 널려있는 문화재들이다. 등산길을 벗어나 바짓가랑이에 이슬 묻혀가면서 산허리를 휘감아 안내판 노란글씨를 따라 들어가 보니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이 있었다. 6개의 불상이 2개 바위에 선각되어있다. 왼쪽바위 불상은 잘 보이는데 오른쪽 바위는 희미하다. 촛불에 거슬린 자욱이 선명하다. 오래된 석조문화재가 많다보니 이런 곳에서 재를 올리거나 촛불을 켜는 사람들이 많나보다. 능선 따라 옆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몇 해 전 얼굴부분이 훼손되어 흉하게 보였던 석조여래좌상이 말끔하게 복원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연화대좌에 결과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표정에서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남성상과 단호함이 느껴지는 불상이다.
오늘은 유적답사가 목적이 아닌 만큼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오르막 등산길을 걷는다. 어느새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얼마쯤 갔을까, 안내판 너머로 바위언덕의 작은 절 상선암(上禪庵)이 나타난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어가는 암자로 통한다. 마침 상선암 좁은 마당 낭떠러지에 오래된 벚꽃이 만발하여 처진 가지가 절을 휘덮고 계곡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와 더불어 운치가 한층 더 멋지다. 암자 뒤편에는 깎아지른 바위군상과 틈새 멋진 소나무들이 조화를 이뤄 동양화 한 폭처럼 아름다운 산 풍경을 만들고 있다.
상선암 에서 가파르게 층계 돌을 밟고 힘들게 오르면 큰 바위 면에 조각된 대좌불이 계곡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남산 불상 중 가장 크고 조각이 우수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미소를 머금은 채 하화중생(下化衆生)을 기원하며 하늘에 떠 있듯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랜만에 자연의 산뜻함과 불상이 빚어내는 온화함이 느껴진다. 누군가 놓아둔 돗자리에 신발을 벗고 불상 앞에 서서 합장을 했다. 불심이라기보다는 무념상태이다.
이 불상뒤편 가파른 산등성이에는 널찍하게 자리 잡은 바둑바위가 있다. 신선이 내려와 신라의 산천경계를 구경하며 바둑을 두었다는 곳이다. 바위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니 사방으로 펼쳐진 경주남산 줄기와 경주시내로 이어지는 풍경이 정말 절경이다. 경주서 살아온 오십 여년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펑퍼짐한 바닥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요염한 여인내의 몸 냄새가 어디선가 풍긴다. 코끝을 세우고 곁눈질을 하여보니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었다. 골골이 바람이 일고 그 바람에 진달래향이 일렁거려 온통 산을 뒤덮었다. 산 매화도 어울렸다. 연분홍색 진달래와 하얀 산 벚꽃, 그리고 푸른 소나무가 겹겹이 어우러져 산자락을 덮었다. 소나무를 껴안고 살아가는 담쟁이도 보인다. 참 예쁘게 자리 잡고 있다. 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공간과 시간이 참으로 기이한 인연으로 느껴진다.
돌계단을 타고 뒤쪽으로 내려가니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운집한 상사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에서서 다시한번 맞은편 대좌 불을 관망하고 합장 배례한다. 경주남산 정상인 금오봉이 이마위에 놓였다. 10여분 안팎이면 내 발 아래 남산등줄기가 엎드린다. 골짜기마다 석불과 석탑이 있고 봉우리마다 절터가 있다. 이런 석조문화재가 700여점이 산재해 있으니 가히 노천박물관이라 이름 부쳐졌는가보다.
정상 오르는 오르막길에는 나무계단을 멋지게 설치해 놓았다. 한 계단 한 계단 가쁜 숨 몰아쉬며 또 오른다. 마지막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지만 세계문화유산 경주남산의 정상에 발을 밟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쯤이야!
아! 이곳이 하늘과 신라의 땅이 맞닿은 해발 467미터 경주남산의 주봉 금오봉 꼭대기다. 세계문화유산이 태양빛으로 넘실댄다. 발아래 삼화령 어디선가 월명사의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금오봉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유적들과 부드러운 산세는 참으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그동안 옹졸하리만큼 범사에 짓눌리며 살아왔지만 오늘만큼은 신선이 된 것처럼 구름타고 둥둥 나는 것 같다. 능선타고 내려오는 길 발걸음도 가볍다. 산새 한 마리가 바람 따라 북쪽으로 날아간다. 벌써 남풍이 불어오는 모양이다. 이달이 지나면 녹음이 산을 덮고 남산위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골골마다 차겠지!
첫댓글 저도.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문화유산들의 보고라 생각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신경주역사안에도 철도를만들기위해땅을파니유물들이쏟아져나와신경주역사안에 전시해둔걸몇일전다녀왔습니다천마총 왕관을복사해크게볼수있고 문화해설사분의설명도있고해잘다녀왔네요
통일신라철기문물들입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