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부 설계
한 달여 전인 2020년 12월 31일.
나는 4년간의 ‘보결수업 전담 교사' 업무를 마감하였다.
같은 방의 젊은 교과전담 교사들은 나의 교직생활을 정리하는 송별식을 마련해주었다.
그 자리에는 학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수석교사 등의 중장년층과 20대 의 젊은 교사들도 여럿이 함께 했다.
꽃다발과 케이크를 전달 받고, 간단한 식을 진행했는데, 그 중에는 신참내기 교사들이 묻는 질문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인상적인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선생님은 인생 2막에 들어서는데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질문은 나를 몹시 당황스럽게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까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 보렵니다.”
라고 대답을 얼버무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정작 아무런 계획도 없이 노후를 보내려 하는 것은 아닌가?’
그 뒤에 한 달여를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의 삶을 3단계로 나누면 어떻게 될까?
요즘은 수명이 많이 늘어나서 인생 90년이라고 하며, 30+30+30=90이라는 공식으로 표현한다.
전반부 30년은 학업과 성장의 시기, 중반부 30년은 취업하여 일과 소득을 얻는 시기, 후반부 30년은 은퇴 후 노년의 시기이다.
전반부 30년은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유아기를 거쳐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기, 대학에 다니는 청년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시기 까지 약 30살에 이르는 나이까지를 포함한다.
이 시기는 스스로 자립하기 어려워 부모가 보살펴 준다.
중반부 30년은 취업을 하여 직업을 통해 소득을 얻는 시기이다.
30세에 취업하여 30년 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60세에 퇴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자녀를 낳고 교육시키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시기이다.
후반부 30년은 60세부터 죽음에 이르는 나이까지를 가리키는 데, 자신의 수명이 90세라면 약 30년 정도에 해당한다.
이 시기를 사는 세대를 ‘노후 세대’라 일컫는 데, 이는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버려 힘도 쇠약해지고, 머리도 녹슬어가는 상태의 중고 자동차와 같은 시기이다. 언제 폐차장으로 실려 갈지 모르는---
나는 인생 전반부를 일찍 마쳤다.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나이가 23세였으니까 나의 전반부 인생은 22년 정도에 불과했다.
요즘 같으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하다보면 20대 후반이나 30세가 넘도록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십상인데, 나의 청년기에는 일찍 취업하여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부모의 짐을 덜어드리는 효행이기도 했었다.
더구나 우리 집처럼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경우일수록 조기 취업은 다른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나의 조기 취업은 부모님의 어깨를 억누르는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직업으로써 교사의 길을 가게 된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받던 경제적 지원은 끝나고, 오히려 내가 월급봉투를 집으로 가져가 드리는 역지원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을 매달 받는 월급봉투의 두툼함에 만족하며 살았다.
도중에 5년 가까이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당하는 아픔을 겪으며 빈곤과 싸우기도 했었다.
50대 초반에 강진군 월출산 자락에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하였다. 수려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집안 한 켠에 차밭을 가꾸고 손수 차를 만드는 일, 젊은 시절부터 해온 테라코타 작업을 위해 중대 결심을 하였다.
정년을 3년 정도 앞둔 나이 60이 되자 명예퇴임을 신청하여 교직을 떠났다.
연금을 받으면 생활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퇴직하고 집에서 생활한 지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출근을 하는 일을 찾아 나선 것이다.
4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이 몸이 베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도 여전하고, 출근하던 일을 멈추니 몸이 적응을 하지 못해 불안 정서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간제 교사’라는 몇 개월짜리 일자리를 구해 다시 출근을 하게된 것이다.
그 ‘기간제 교사’라는 계약직 일자리는 2-3개월 근무를 하고 끝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 다니는 떠돌이 같은 신세라서 학교 근무에 정을 붙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출근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소득이 보장된다는 안정감은 그 일을 계속하도록 만들었고, 5년 반 동안이나 연속되었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은 2020년을 마지막으로 나는 직장생활은 마감하였다.
내 나이 66세까지 나는 직업적인 일을 하며 소득을 얻었던 것이다.
계산해 보니 43년을 중반부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2021년은 명실상부한 후반부 삶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제 나이도 67세.
내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90세 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앞으로 24년의 노후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미래의 24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중반부 생애에서는 목표나 꿈을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매진한 시기였다면, 후반부 생애는 구체적 목표 보다는 방침을 정하여 다소 느슨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첫째, 건강한 육신을 유지하는 생활을 한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식생활이나 음주에 신경을 쓰고, 적당한 운동으로 고혈압과 비만을 관리한다.
골골거리며 장수하는 노년이 목표가 아닌 건강한 노년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둘째, 할 일을 만들어서 무료한 일상을 벗어난다.
테라코타 작업이나 글 쓰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출근할 일이 없으니 대신에 집안일이나 차밭 관리하는 일에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셋째, 친구나 지인들과 즐거운 만남 시간을 늘려야겠다.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거나, 가까운 곳에 여행하는 일도 자주 할 것이며,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내 삶을 보여주는 전원생활 전도사 역할을 하겠다.
이 세 가지만 지켜낼 수 있다면 나의 노년은 행복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