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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목문학,나무와 시인 원문보기 글쓴이: 청아 서이선
아카시아꽃을 사랑한 그녀
청아 서이선
그녀가 우리 집 근처 사선으로 빗대어 마주 보는 곳으로 이사 온 건 초등학교 삼학년 무렵이다.
그녀는 할아버지처럼 하얀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다니시는 아버지와
세살 어린 여동생을 돌봐야하는 당찬 소녀였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여럿 있었지만 일찍 객지로
다 나가고, 병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돌아 가신 후 학교 근처였던 면소재지에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녀 집 바로 아래 양지 바른 공터에는 고무줄뛰기. 자치기, 딱지놀이 등 온갖 놀이들로
아이들의 웃음 소리, 때로는 다투는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녀와 나도 한데 어울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낮은 산너머로 해가 기울어 서쪽하늘이 발갛게 물들고 어둠이 어슴프레 내리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나는 종종 그녀집에서 놀기도 하고 손 안에 잘 쥐어지지도 않는 걸레로 마루를 훔치기도 했다
그녀가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밥을 지을 때면 도와 준다는 핑게로 부엌을 들락거리며 아궁이에
불도 지피기도 하고,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보리쌀을 빡박 문질러 씻을 땐 바가지로 물을
퍼주기도 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그때 처음으로 나왔던 신기하고 맛있는 라면에다 국수를
뚝뚝 잘라 넣고 끓여서 먹곤 했는데, 아마 어린 생각에도 어머니가 안 계시는 그녀가 안스럽고
걱정스러워었던 모양이다.
푹푹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엔 밤이 되면 우리는, 들판을 끼고 흐르는 작은
개울로 두레박과 대야를 챙겨 들고 목욕을 갔다. 그땐 식수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터이라
물도 귀했지만 집에는 목욕을 할 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었다. 아버지께서 워낙 엄하셔서 밤외출은 꿈도 못꾸었지만 아버지가 안계시거나 뭔가 다른 일을 보실 때 틈을 타서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 고요한 적막을 깨며 살랑이는 밤바람 속으로 흐르고, 사람소리에 놀란 개구리들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면, 그 물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우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 짙은 어둠이 물속에 시커멓게 투영되어
사방이 검은 늪처럼 어두웠지만, 어느 새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는 다리 아래로 두레박을 풍덩풍덩 내려서 물을 퍼올렸다. 한낮에 뜨거운 햇빛을 받은 물은 목욕하기에 아주 적당한 온도였다.
어느 해수욕장에 물놀이를 간 것처럼 우리는 한바탕 물잔치를 벌이며 목욕도 하고 빨래도 했다.
시원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재잘대던 우리는 신작로 큰 다리에 이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리 난간에 차례로 쭈욱 앉아서는 묵찌파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노래자랑을
하곤 했다. 막 유행가에 눈을 뜰 쯤이라 또래 중에서도 트로트를 구성지게 꽤 감칠맛 나게 부르는
애가 있어 한판 신나게 노래 부르고 웃고 떠들다 밤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도 중학교 갈 무렵엔 학교로 외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나름대로 공부에 열중했던 나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점점 뜸해졌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러 낙동강 철교를 지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며 요란하게 기적을 울리던 기차로 통학을 하며 삼년의 여학교시절을 보낸 후, 자주 편찮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 가시자, 허전하고 무거운 맘을 안고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고향 친구들과는 소식이 자연히 끊어져 버렸다.
애들이 자라고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고향의 아련한 풍경들이 그리워졌다.
마당에 하얗게 떨어진 감꽃은 긴 목걸이가 되어 눈앞에 아른거렸고, 오월이면 하얗게 피어 진한
향기를 지천으로 뿌리는 산언덕 아카시아꽃에 주렁주렁 추억이 매달려 주마등처럼 스쳤고,
하얗게 누부신 햇빛 아래 흙먼지 보풀대던 신작로가에서부터 긴 둑을 따라 철길까지 끝없이 펼쳐진 짙은 초록 물결이 넘실대던 연밭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막대기에다 실을 메달아 그 실 끝에 발을 묶은 왕잠자리로 또 다른 잠자리를 잡을려고 물가를 맴돌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우산을 만들어 준 넓고 둥근 커다란 연잎과, 그 옆 둑을 따라 보라빛 융단을 펼쳐 놓은 듯한 자운영 꽃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과 텅 비어가는 가을 들판을 보는 날이면 온 몸과 맘으로 스물대는 그리움이
되어 뿌연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그저 바라만 보던 세월의 강을 가만히 돌아본다.
이제 그 강 언저리에서 거친 숨을 고르며 나는 스쳐온 강을 더듬어 본다.
그 강물위에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며 수없이 떠올랐다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진정 그리우면 보고파지고 보고프면 만나는 길도 열리는 것인가.
강산이 바뀌어도 몇번 바뀌었을 즈음
초등학교 총동문회가 처음으로 열리는 날나는 누구보다 그녀가 보고 싶어 달려갔다. 그녀는 말했다. 자기집 마당에서 고개만 들면
우리 집 마당이 보였고, 우리 집 뒤 언덕을 가득 메우며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과 그 향이 너무
좋았었다고. 그래서 청도에서 맞선을 보게 된 그녀는 청도 산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꽃의
하얀 출렁거림이 너무나 좋고 마음에 들어, 그곳으로 시집을 가서 이제는 완전히 청도 사람이
다 되었다고 내 두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유난히 정이 많은 그녀는 그 유명한 청도소싸움이 열릴 때. 아카시아꽃 향기가 코끝에
싸아하게 스며들 때, 한여름 무성한 초록이파리 사이로 단아한 연분홍빛 연꽃이 환하게 필 때.
나뭇가지마다 빨갛게 반시가 주렁주렁 달렸을 때에 청도에 놀러 오라고 나를 불렀다.
기차를 타고 청도로 향하면 밀양 근처만 오면 가을엔 가지마다 열린 빨간 감들이, 언덕배기 하얀
억새꽃과 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루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청도는 늘 봐도 변함이 없는
곳이다. 변함없이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어 더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겼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갈 때마다 청도 읍내를 조금 벗어나면 커다란 연밭이 있는데 그 곳으로 데려 갔다.
이곳은 청도에서 알려진 유원지인 모양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어린 시절의 우리들,
찰랑대는 머릿결을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단발머리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물오리들이
연잎 사이로 줄달음치는 평화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전망 좋은 찻집에서 그림 감상도 하고,
옛 얘기에 푹 젖어들어 들로 산으로 강으로 뛰어 다니는 동심을 만나 실컷 웃곤 했다.
가을이면 그녀는 동창회 모임에 반시 몇 박스를 가저와 함께 나누어 먹었고, 청도에 감이 많이
나기 때문에 손수 감물들인 길색빛 손수건을 친구들한테 한장씩 선물하며 따스한 맘을 나누었고,
구정이 지나 입맛을 잃어갈 때 쯤이면, 화악산 아래 한재미나리밭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가파르고 험한 화악산 산행을 한 후 아삭아삭한 한재 미나리에 삼겹살 한점 올려 쌈 싸서,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맘과 몸이 저절로 여유로워졌다. 그녀가 알뜰살뜰 준비한 들깨기루 풀어 끓인
고디탕과. 팥넣어 간간하게 지은 찰밥과.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감말랭이 맛을 어디에다 비기랴.
언젠가 그녀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무인 찻집으로 나를 데려 갔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열고 들어
갈 수가 있었는데, 넓지는 않았지만 아늑하고 편안해 보였다. 통나무를 다듬어 만든 찻상이
가지런히 네개 놓여 있었고, 그 위앤 앙증맞고 우아한 다기와 감물들인 보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한 쪽 벽면엔 피아노와 기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애잔한 연주곡이나 컨츄리 올드 팝
한곡 쯤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래 잔잔한 음악만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달그락거리는 문소리가 나고, 여자 한 분과 남자 한 분이 들어섰다. 두 분 다 중년의 나이였는데
여자 분은 가끔 들러 이곳을 관리하는 분이고, 남자 분은 이곳을 차 한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사비를 들여 마련하신 분이라고 했다. 청도의 유지인지 그분 성함을 듣자
그녀는 아는 듯 인사를 했다. 그렇게 잠시 얘기를 나누던 그분은 피아노에 가서 앉으시더니
이미자의 "울어라열풍아"와 나훈의의 "해변의 여인"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주 보며
눈웃음으로 환호를 질렀다. 좀처럼 연주하지 않으시는데 오늘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하는 그분에게 우리는 분위기 아늑한 이곳에 딱 맞는 생음악을 듣게 해주셔서 마치
라이브 카페에 온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와 박수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모르는 사람 누군가를 위하여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아는 사람과도 맘 안에
덧문을 내려두고 선하나 그어 놓고 건성으로 대하는 세상 아닌가. 낯선 사람을 향해 활짝 열린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맘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삶의 행복이란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분명 우연이라는 너울을 쓰고 스르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 줄까, 내가 바라는 꿈을 성취하면 얻을 수 있을까. 행복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해복해지는 길은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왜나하면 행복이나 불행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일 만큼 가슴 속을 찌릿하게 관통하는 그 무엇,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한 줄기 빛 같은 진한 감동을 느낄 때 가 있다, 그 감동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져서 온돌방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돌 때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진실한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며 맘속 깊은 곳에서 잔잔히 우러나는 정을 나누는게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 역시 언제나 따뜻하다. 그녀를 만나면 마치 고향을 찾은 것처럼 편안하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준비하고 베푸는 거 정말 쉽지 않다.
베풀면서 양보하면서 머리속으로 먼저 계산부터 하게 되고 나 역시 그럴 때가 많다.
머리로는 수없이 양보하고 희생도 하지만 뭔가 손해보거나 희생하는 느낌이 들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주위를 한번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늘 몸에 베어 있는 행동으로 가르쳐주는 그녀.
느리게 걸으며 잊혀져 가는 동심과 추억속으로 나를 여행하게끔 해주는 그녀.
좀처럼 변하지않는 청도의 순박한 풍경속에서 상큼한 아카시아 향기로 다시 피어나는 그녀,
빨간 청도 반시처럼 달콤한 맛으로 늘 감칠맛 나고, 늘 자잘한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는
이제 청도를 사랑하는 순박한 청도 아지매가 되었지만 그 눈웃음엔 해맑은 어린 소녀가 머물러 있다
첫댓글 청도에 가면 아카시아 추억의 그녀를 만날 수 있군요. 자연을 향해 하늘을 향해 두 친구에게 연주해주는 신사분 그림도 좋았습니다. 불현듯 해당도 어린시절 책상 위 금을 그어놓고 자주 못살게 굴던 여 짝지를 기억해봅니다. 늘 온유한 표정으로 항거하지 않던 인상깊은 친구라 매 해에 더 잊혀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하나 둘씩 자연으로 하늘로 돌아가는 사람들, 벗이 있어 더욱 아름다워지는 세상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광경 이군요 .이글을 읽자니 저도 해당님 처럼 불현듯 어린시절로 젖어 봅니다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오니 사투리 쓴다고 놀리던 친구 말투가 이쁘다며 말을 자꾸 시키던 친구 등등. 길가에 코스모스 한들한들 춤추는 풍경 !!벌을 잡아 내 뒷목에 넣구도망간 친구 .쏘여서 혼났던 생각이 납니다 .. 생명을 다해 온유함을 찾는날이 행복한 거겠지요~~!!잘 읽었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