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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없는 자들
(신25:1-19)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25장 말씀 근거로 해서 <발자국이 없는 자들>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발자국이 없는 자들.
옛날에 무사들이 축지법을 써서 긴 거리를 발이 땅에서 떠서 걷는 그런 축지법도 있고 또 지면에서 부상해서 걸어가는 눈 위로 걸어가도 발자국이 없는 그런 도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서 그래 네가 살아온 이력서를 한번 내봐라 이렇게 말하실 때 내 이력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에요. 천국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그런 이력이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삶에 흔적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발자국이 없는 자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신 벗김 받는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10절)
신 벗김 받은 자.
우리가 이력서(履歷書) 할 때 신 이(리)자를 씁니다. 밟을 이(리)자라고도 말하는데 그러니까 신발을 신고 발을 밟아온 흔적이 이력이라는 것이에요.
근데 그 발자국이 없는 사람들. 신 벗김을 받은 자.
어떤 사람이 발자국이 없는 자들이고 이력이 없는 자들이겠는가 라는 거 함께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에 계대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한번 나옵니다.
형님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일찍 죽게 됩니다. 형님이 자식이 없어요. 이럴 경우에 그 형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그 형님의 대가 끊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남동생이 그러니까 형수한테는 시동생이죠? 형수를 맞이해서 동침을 하고 형의 이름으로 아이를 낳아야 됩니다. 그래서 형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가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에요.
근데 이거 참 황당한 법 아닙니까? 형수님이 예쁘게 생기셨고 마음에 들었으면 뭐 그나마 다행이려니와 아니 이거 어떻게 억지로 합니까? 형수님이 내 타입이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면 이거 어떻게 형수님하고 같이 그렇게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가 있겠어요? 힘든 일 아닙니까?
아니나 다를까 성경에 보니까 내 스타일이 있고 내 기호가 있고 내 취향이 있는데 또 사랑이 안 생기는데 아니 사랑이 없는데 동침을 해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 무슨 아이 낳는 기계도 아니고. 근데 아닌 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이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더라는 겁니다. 나쁘다고 할 수 있겠어요?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얼마나 혹독한 벌이 주어지느냐 하면 형수가 장로들에게 일러버려요. 연장자들, 지도자들에게 일러버리면 그 시동생을 끌어다가 사람들 앞에서 형수가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모욕을 주고 그리고 그 사람한테 마치 주홍글씨와 같은 타이틀이 평생을 붙어 다니는데 ‘신 벗김 받은 자’라는 이름이 붙어 다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심하지 않아요?
신 벗김 받은 자 라고 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통하는 말이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그게 뭐냐? 결국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아무리 열심히 살고 아무리 성실하게 살고 아무리 세상적으로 대단한 일을 했어도 아무 것도 없는 삶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기시는 이력이라 게 없는 그런 삶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억울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여러분, 이 계대결혼에 대한 입장 이 입장이 도대체 영적으로 어떤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에요.
형님의 가문에 생명줄이 계속 이어가도록 그렇게 돕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형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력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뭘 의미하겠습니까?
진짜로 형수님을 맞이해서 결혼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현실로 돌아오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 마가복음 3:35절에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냐 이렇게 말씀하실 때 「누구든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한 가문의 혈통을 신약시대에 오시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바꾸어 주시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바꾸어 버리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사는 자들. 내가 오늘 당장 장사를 해도 그 장사 현장에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누구냐 하면 정말 영적으로 한 가문의 사람들이고 그 가문의 씨를 이어가는 생명의 현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이렇게 볼 때 계대결혼의 의미가 어디에 있느냐?
내가 내 자식을 본다. 그러면 그 자식에게 있어서 계대결혼의 풍습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어떻게 나타나느냐?
자식에게서 그 영적인 그 가문의 씨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겁니다. 형님뿐만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 가문의 씨가 끊어지지 않게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내 자식 안으로 하나님의 의도가 표현되고 들어오고 실현되고 꽃처럼 피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에요.
만약에 그것을 의도하지 않으면 내 자식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꽃 피어지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소원하는 대로 기른다. 그러면 자식과의 관계 모든 것이 아무 흔적이 없는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천국에서 받아들일만한 마치 회사에서 사람을 받아들일 때 이력을 보고 합당한 이력이 될 때 받아들이는 것처럼 천국에서 하나님이 받아들이실 때 아무런 천국에 합당한 이력이 없는 자의 삶이 된다는 겁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가게하고 아주 훌륭한 며느리를 얻어서 세상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잘 되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표현될 수 있도록 마음을 갖고 돕고 그렇게 양육하고 인도하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 자식과 나의 삶의 모든 흔적이 아무 것도 없는 ‘신을 벗기운 자의 삶’이 되어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우리가 읽은 부분에 보면 두 남자가 싸우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때 한 남자의 아내가 현장을 목격하고 다가와서 남편을 때리니까 그 남편을 때리는 그 남자로부터 남편을 구하기 위해 그 남편을 때리는 남자의 급소 음낭을 손으로 확 쥡니다. 확 손으로 쥘 때 이것을 본 사람들이 이 여자를 데려다가 손목을 자르라 하는 얘기가 나와요.(11,12절)
아, 무섭잖아요? 저도 저희 집사람이 제가 다른 남자하고 싸워 제가 당할 때는 후라이팬을 갖고 와서라도 머리를 딱 치면 좋겠어요.
근데 왜 하필 음낭을 잡는 것을 이야기하고 계시느냐 이겁니다.
이게 생명과 연관된 것이에요. 뭐 후라이팬 갖고 와서 머리통을 쳐라. 그 친 여자에게서 손목을 자르라 이런 얘기 없이 음낭을 잡으면 손목을 쳐내라.
그거 왜 그렇습니까?
계대결혼 때 형수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생명의 줄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내 남편을 때리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생명줄이 끊어지게 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음낭이 성해야 자식을 낳을게 아닙니까? 생명줄이 어어져 가야 돼요.
이거 영적으로 보면 무슨 말이냐? 아무리 내 마음에 안 들고 내게 해를 끼치고 내 정말 갖고 있는 기준에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어때야 되느냐?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의 이력이 내 마음에 안 맞는 그 사람 망해버려라.
유대인이 그랬어요. 이방인을 향해서 메시아가 오시면 이방인들은 다 멸절되고 심판받아 죽어버려라 그렇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들이 망했지요.
왜? 유대인으로서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천국에 합당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이력이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선민이라는 증거가 없는 겁니다. 살아온 그 흔적이. 아무리 뒤져봐도..
뭐가 선민이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이 뭐냐?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내려와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표현되는 거 그게 생명인데 그 사람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건 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없이 사람을 다 대하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대했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대했건 마음은 하나라 이겁니다.
내 남편에게 해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서 생명이 이어져 내려가도록 해야 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과 싸우는 현장에 동참했다면 그게 이력이 되는데 하나님이 좋아하는 이력이 된다는 겁니다.
네 남편이 얻어 맞을 때 네 남편을 때린 그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 이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마음으로 그 현장을 맞이했구나 그 현장이 이력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력서의 한 페이지가 된다는 겁니다.
내 자식을 맞이해도 그래요.
대학을 떨어졌습니다.l 그러면 대학 떨어진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가 있느냐 옆집은 다 붙었는데 끌탕을 하고 난리를 치면 이력이 없는 거예요. 이력이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안 드는 이력이 생긴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이력을 사는 신발을 신고 산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세가 여러분, 소명을 받을 때 신을 벗으라고 그러잖아요. 똑같이.
모세도 이력이 없어요. 없는 삶을 살게 돼요.
왜? 하나님의 발자국이 이제 모세의 이력이 될 테니까.
둘 다 신을 벗는 건데 완전히 다르지요.
우리도 신을 벗는 사람들이에요.
베드로에게 그러지 않습니까? ‘젊었을 때는 네가 원하는 데로 다녔으나 이제는 원치 않는 곳으로 갈 것이다.’
신발을 벗는 건 똑같은데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주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발자국이 되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경우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내 주체성을 살리고 있는 사람들 내 주관적인 기호 내 주관적인 취향을 살리는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사는 모든 삶이 다 꽝이 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아주 서글픈 이야기를 하나 들은 기억이 나요.
뭐냐 하면 독일로 와서 의학공부를 하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전문의가 되어서 한 분야에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냅니다. 그래서 배드 숫자를 말하잖아요? 그 병원의 크기를 베드 숫자로 말하는데 그렇게 칠 때 꽤 큰 병원에 원장으로 초빙을 받게 됩니다. 한국 분이신데. 원장으로 초빙을 받아서 일을 하는데 이 독일의사 독일 간호사들이 오리엔탈 노랭이 아저씨가 와서 병원장으로 앉아서 자기들을 거느리는 게 못마땅했어요. 아무 이유가 없어. 일을 잘못하신 것도 아니고 원장으로서의 직책을 잘못 수행한 것도 아니고 뭐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워낙이 의사로서의 이력이 탄탄하니까. 그래서 독일 의사와 간호사들이 사보타지를 하게 됐습니다. 병원이 돌아가질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병원의 재단 측에서 이사회를 열어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달래 봤어요. 달래봤는데 안 돼요. 이 독일 간호사와 의사들이 그냥 계속 사보타지를 하는 겁니다. 결국은 한국 분 이 병원장님을 모셔다가 이사회에서 부탁을 한 거예요. 죄송하다 우리가 월급을 다 주고 거기에 패널티까지 얹어서 계약 기간이 3년이라고 그러면 3년 계약 기간 동안에 병원장으로서 모든 물질적인 혜택을 다 누릴 수 있게 월급 주고 거기다 패널티까지 주고 다 주겠다. 좀 양해해라.
그러니까 이분도 병원이 돌아가지 않고 그런데다 심리적으로 얼마나 낙담을 하겠습니까? 평생을 독일에서 의사로 돼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올라와서 좋아 했는데 독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마음의 심적인 타격이 컸겠습니까? 그래 뭐 돈을 받고 나왔죠.
그런데 그 분의 얘기가, 간접적으로 들은 거예요. 직접적으로는 못 만났거든요? 또 다른 한국 의사분한테 들었는데 지금 자기 나이에 서울대 출신이었어요. 서울대 출신으로 가서 다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이렇게 했는데 자기 동기들은 서울대도 지금 이 나이에 병원장이 되기도 하고 병원장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자들이 있고 너무나 정말 그 자리가 확고하게 생겼다는 거예요. 나이가 이제 60이 다 됐으니까 얼마나 제자들도 많고 사회적으로 자기 위치가 생겼겠습니까?
근데 돈은 많아요. 병원장에다 패널티까지 얹어서 줬으니까 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돈은 많은데 당신이 살아온 흔적이 아무 것도 없다 이거에요.
독일의 의하계 안에서 나름 열심히 살았고 인정도 받았는데 돌아보니까 제자도 하나 없고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더라는 겁니다. 돈은 있어요. 돈은 많아요. 그러나 뭐하겠습니까? 너무너무 쓸쓸해하시면서 부부가 사시다가 결국은 호주라든가 뉴질랜드라든가 어디로 재이민을 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아, 참 남의 얘기 같지가 않죠? 여러분?
그래요. 이 구원이라는 것도 예를 들어 주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렸다가 구원받은 자가 있지 않습니까? 살아온 이력이 아무 것도 없고 그 자리에서 구원받았어요. 이건 월급만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올라가도 무슨 상급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다가 구원을 어떻게 어떻게 받아. 뭐 목회하다보면 그런 일이 많은데 장로님 권사님으로 사시다가도 믿음이 하나도 없이 사시다가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주 고통스러운 병을 앓으시면서 그때서야 마음에서 이 세상에 대해 쥐고 있던 모든 집착이 다 떨어지고 주님만 바라보게 되고 그때서야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는 분이 계세요. 실제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했는데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선민의 써클 안에만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분들이 마지막에 그렇게 고통 가운데서 지내다가 아, 내가 정말 세상에 붙잡을 것이 아닌 걸 붙잡고 있었구나.. 주님의 십자가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었어요. 올라갔는데 월급만 받은 거야. 살아온 아무런 흔적이 없는 거예요. 살아온 흔적이 없어.
그런 삶이 된다는 겁니다.
어떤 삶?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제일 좋은 거다.
대학 못 들어간 게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지 않은 게 실패다. 돈 못 버는 게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직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게 실패다.
이런 생각으로 살지 않은 모든 삶이 아무 흔적도 없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삶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러셨어요. 십자가 지시고 가니까 이스라엘 유대 여자들이 울어요. 그러니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어라. 나 외롭지 않아.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 살았어. 너희가 보기에는 지금 최악의 경우를 걷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불쌍해서 울지만 나 외롭지 않아. 고통은 있을지언정 이제 봐라.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인류를 떠안는데요. 지구 전체의 마지막까지를 다 떠안는데요.
이 성경의 역사, 예수님의 역사가 지구 전체를 떠안을 거 아니겠습니까?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발자국의 흔적이 인류를 책임집니다.
왜? 모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하여 당신 스스로가 하나의 공식이 되시고 하나의 원리가 되시기 위하여 하나님 뜻만 가지고 사시다 돌아가시고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생명이 이어져 내려가는 삶을 살게 해주신 것 아니냐 이겁니다.
오늘도 하루 살아갑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맞건 안 맞건 형수가 내 마음에 맞건 안 맞건 내 남편에게 해를 끼치는 그 남자 너무 너무 밉지만 그러나 바랄 것은 그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아내에게도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동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건 좋아하는 사람이건 그들에게서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에 맞게 행동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뜻이 꽃 피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살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의 흔적은 아무 것도 없고 발자국이 없는 이상한 귀신같은 사람들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성경이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발자국이 없는 사람들.
이건 귀신들 아니에요? 지옥에 갈 귀신들? 그렇지요.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의 뜻이 저 사람에게 이루지면 좋겠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이 일에서 내가 갖고 있는 기준으로 성공해라 실패하면 안 된다 이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게 생명 아니냐? 그게 생명줄이다. 생명이 이어져 내려가야 되지 않냐? 이런 마음으로 사셔서 내가 살아온 뒤의 흔적마다 하늘의 결실이 주렁주렁 맺혀지는 정말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 않은 풍성한 결실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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