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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공의의 하나님=6.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
● 기 억 절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 연구 범위 시 33:5, 시 85:10, 신 32:4, 약 1:17, 딛 1:2, 출 32:14, 마 5:43-48
고대 근동에서 열방의 ‘신들’은 변덕스럽고 부도덕하며 예측할 수 없었 을 뿐만 아니라 아동 인신제사 같은 잔혹한 행위를 명령했다. 그런 모든 패역한 명령을 따르더라도 은총이 보장되지 않기에 사람들은 감히 자기 부족의 “신들”을 거스르지 못했다. 신명기 32:17에 따르면, 그러한 “신들” 뒤에는 “마귀”가 있었다(고전 10:20, 21 참조). 그들의 숭배 형태는 착취당하기 쉬웠고 사람들은 심각한 영적, 도덕적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성경의 하나님은 단순히 마귀의 무리보다 조금 더 나은 그런 신이 아니 다. 여호와는 지극히 선하시고 그분의 선하심은 변함이 없다. 그분의 변함 없는 선하심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고대 세계의 거짓 신들, 심지어 오늘날 현대의 신들과 극명히 대조적으 로 여호와는 악, 고통, 불의, 억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여호 와는 이 모든 것을 지속적이고 분명하게 정죄하시며 그날이 이르면 그분 께서 이 모든 것을 근절하실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깨닫기 : 하나님은 원수마저 사랑하시지만 공의를 어기 지 않으시며 사랑을 이루신다.
느끼기 :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며 그 사랑은 변함없다.
행하기 :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굳게 잡고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정의를 따른다.
토의
사랑의 하나님과 심판의 하나님은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렘 9:24)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을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십니까?(습 3:5)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까? 그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말 3:6)
하나님께서 후회하십니까? 그분이 후회하신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민 23:19)
원수마저 사랑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까?(호 12:6)
우리가 하나님을 무섭고 노하시는 하나님으로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 첫째 날 사랑과 공의
성경 전체에서 사랑과 공의는 함께 나타난다. 진정한 사랑은 공의를 요구하며, 진 정한 공의는 사랑을 통해서 다스리고 실현된다. 우리는 이 두 개념을 연결지어 생각 하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그것은 사랑과 공의가 사람에 의해 크게 왜곡되었기 때문 일 뿐이다. 시편 33:5, 이사야 61:8, 예레미야 9:24, 시편 85:10, 시편 89:14를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공의를 어떻게 생각하신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공의를 사랑하신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시 33:5, 사 61:8). 성경에서 사랑과 공의의 개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는 함께 가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의와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원하신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불의한 법, 속이는 저울, 가난한 자와 과부 또는 약자에 대한 불의와 압제 등 모든 종류의 불의를 일관되게 비난한다. 사람은 많은 악과 불의를 행 하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렘 9:24) 분이시다. 따라서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은 악을 행하는 자와 압제하는 자를 벌하고 불의와 압제로 신음하는 자에게 정의와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심판 을 매우 좋은 일로 열렬히 기대한다. 실제로 의와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기초이다. 반듯한 하나님의 사랑의 정부는 정의롭고 의로우며, 개인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불의를 빈번히 저지르는 이 세상의 부 패한 정부와 전혀 다르다. 하나님 안에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시 85:10)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사람아 주 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 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야 한다면, 사랑과 그로부터 나오는 정의와 자 비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진정한 사랑은 공의를 요구하며, 공의는 사랑을 통해서 다스리고 실현된다. 하나 님은 세상에서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원하시며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영감의 교훈
공의에 나타나는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 비에 못지않게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 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다. 사 탄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 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 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 도께서 보여주셨다”(시대의 소망, 762).
기도 : 하나님, 저희는 죄인이기에 이기적으로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있노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참사랑을 저희 마음에 부어 주셔서 마음이 새롭게 되도록 은혜 를 주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사랑하며, 세상에 나타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묵상 : 사람의 기준으로는 정의롭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왜곡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적용 :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완전한 정의를 바라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 합당하겠습니까? 0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 둘째 날 전적으로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말로만 공의를 사랑하신다는 주장하며 사람에게 정의를 사랑하고 행하 라고 요청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온전하게, 주저함 없이 그 특성을 실천 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거룩하시고, 신실하시며, 의로우시고, 사랑이시 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오직 사랑, 의로움, 공의를 행하신다. 그분은 결코 어떤 잘못도 행하지 않으신다. 신명기 32:4과 시편 92:15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 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분 안에는 불의가 전혀 없”(시 92:15, 시 25:8, 시 129:4 비교, 흠정역)으며 하나 님은 의롭고 사랑으로 가득하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습 3:5) 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성품과 불의를 사랑하는 자의 성품을 직접 대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모든 사람에게 최선의 유익을 바라시며, 모든 이에게 최상의 결과를 주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 시편 9:7, 8과 시편 145:9-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가르 쳐 주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시 7:11)이시며, 악은 그분과 함께 하지 못한 다(시 5:4). 요한일서 1:5이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현대어)다. 실제로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악에 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약 1:13, 합 1:13 비교)하신다.
이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많 은 신이 그들의 힘을 따르고 숭배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면서도 오직 공의 와 사랑으로만 당신의 권능을 행사하신다. 모세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 여 달라고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 (출 33:18, 19)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훈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악과 연관이 없다. 세상 신은 그들의 힘 을 따르고 숭배하게 하지만, 그분은 오직 공의와 사랑으로 권능을 행사하신다.
성
영감의 교훈
의롭고 선한 율법 -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구현되어있는 의의 큰 원칙이 사람에게 알려진 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며, 완전 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내므로 그 율법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품성도 거룩하여진다. 그리스도는 그런 품 성의 완전한 모본이다. 그분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요 15:10, 8:29)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469).
기도 : 온전히 선하신 모습으로 우 리에게 오시는 영광의 주 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악과 허물이 많은 죄인이 잘못을 주님 앞에 겸손히 고백하 며 간구하오니 부족한 종일 지라도 주님의 영광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옵소서.
묵상 : 모세에게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당신의 영광과 권능이 함께 연결되 어 있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우리는 힘과 능력을 행사할 때, 어떤 모습으로 그것을 사용합니까? 그것을 행 사할 때 어떻게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 셋째 날 변함없으신 하나님
말라기 3:6과 야고보서 1: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하나님은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라고 선언하신다. 어떤 사람들 은 이 구절을 읽고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다. 하지만, 이 구절의 전후 문맥을 보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변함없다고 확증하신 것 은 당신의 변함없는 성품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절의 뒷부 분은 하나님이 관계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 지 아니하느니라.“ 그다음 구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그 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 3:7)라고 선포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과 상호적인 관계 가운데 있지만, 그러한 모든 상호 작용과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함없으시다. 야고보도 이에 대해 모든 선 하고 온전한 선물이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약 1:17)고 확인한다. 악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 외의 여러 구절에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을 반복해서 가르친 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변하지 않으심을 일관되게 가르친다. 동 시에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과 친밀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실제로 우 리와 관계를 맺으시되 항상 사랑과 공의로 대하신다. 디모데후서 2:13, 디도서 1:2, 히브리서 6:17, 1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 의 약속은 깨질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기꺼 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의심 없이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예수 그리스 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교훈 : 하나님이 변함없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이 변함없음을 말하며 관계적으로는 변 하기도 한다. 그분은 항상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기에 언제나 신뢰할 수 있다.
영감의 교훈
영원한 본성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그분 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 러하였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의 행하심 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며,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 시는 분은 변치 않으신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 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합 3:6; 사 57:15; 약 1:17). 창조력의 현현 하나하나는 모두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 다. 하나님의 통치권에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완전한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부조와 선지자, 33).
기도 : 모든 것이 바뀌는 시간 속 에서도 변함없으신 하나님 을 신뢰합니다. 이 세상의 사랑과 관계, 그 모든 것이 유한하지만 언제나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공의에 감사 합니다. 변하는 세상 속에 서 주님을 굳게 의지하오니 믿음을 붙잡아 주옵소서.
묵상 :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당신이 어떤 분이심을 나타내셨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그런 모습이 변함없으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적용 어떻게 하면 인생의 상황이 정말 나쁘게 변할 때도 하나님이 선하신 것을 신뢰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넷째 날 :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다니
하나님이 뉘우치실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하 나님의 성품이 결코 변하지 않음을 보았다. 그러나 어떤 성경 구절은 하나님이 “뉘우 치”거나 “후회”하신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뉘우침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음 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뉘우치”신다고 말하는 것 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출애굽기 32:14을 읽고 예레미야 18:4-10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이 “돌이키”신다 는 표현은 어떤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회개나 중보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심판을 돌 이키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악에서 돌이키면 당신이 계획하신 심 판을 돌이키겠다고 약속하신다. 인간의 회개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 리지 않는 것은 성경 전반에 등장하는 익숙한 주제이다. 민수기 23:19과 사무엘상 15:2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이 “후회하”시거나 “돌이키”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삼상 15:29)으시며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 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결코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며 다른 구절과 전후 맥락을 살 피며 읽으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후회”나 “돌이키심”은 사람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항상 약속을 지키시며, 인간의 회개에 대한 응답으로 행사를 바꾸실 때는 항상 당신의 선하심과 말씀을 따라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이 회개에 대 한 응답으로 심판을 돌이키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 선하고 의로우며 사랑 하시고 자비하시기 때문이다. 적용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하나님과 맺는 상호작용에 따라 움직이시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교훈 하나님은 사람 같이 돌이키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회개할 때 그분이 심판을 돌이키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과 사랑하시고 자비하신 성품 때문이다.
영감의 교훈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 -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후 회와 같지 아니하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 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인간의 후회는 마음의 변 화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후회는 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에 응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또 자신의 행위로써 자신을 은총 받을 수 없는 곳에 둘 수도 있다”(부조와 선지자, 630).
기도 : 돌아보면 후회스럽고 안타 까운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 도 감사한 것은 서투른 걸 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 심으로 오늘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간구하오니 부족한 종을 주님의 자비와 사랑 앞에 두시고, 영원한 소망으로 채워주옵소서.
묵상 :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돌이키’심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하나님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다섯째 날 : 사랑과 정의를 굳게 붙잡고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 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 시”(신 7:9)는 분이라고 일관되게 가르친다.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은 십자가에서 예 수님에 의해 가장 잘 나타났다(롬 3:25, 26, 롬 5:8 참조).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5, 시 89:2 비 교).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며, 그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선물로 주신다(약 1:17, 눅 11:11-13 비교). 사실, 그분은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좋은 것으 로 주신다. 마태복음 5:43-4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마태복음 5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한 사랑으로 묘사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 람, 심지어 당신을 대적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완전하고, 따라 서 완벽하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인간의 어떤 합리적인 기대도 뛰어넘지만, 결코 정의를 무시하거나 어기지 않으며 오히려 사랑과 정의를 함께 가져온다(시 85:10). 성경도 이같이 우리에게 권고한다.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호 12:6). 다른 번역본은 “사랑과 정의를 굳게 붙잡으”(호 12:6, ESV)라고 표현한다 (눅 11:42 비교). 결국 하나님께서 완전한 정의를 이루실 것이다. 로마서 2:5은 말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날 것이며 마침내 구속받은 자들이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 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 15:3, 4, 계 19:1, 2 비교)라고 노래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 사랑과 자비는 완전하며 어떤 합리적 기대도 훌쩍 뛰어넘어 원수마저도 사랑하지만, 정의를 무시하거나 어기지 않으며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가져온다.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구주 의 교훈과 완전히 일치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유익 을 위하여 또한 당신의 심판을 받는 대상의 유익을 위 하여 악인에게 벌을 내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정 부의 율법과 당신의 품성과 공의로움에 일치되게 그렇 게 하실 수 있으시다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실 것 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증거들을 사람들 주위에 두르시고 당신의 율법을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로 그들을 따라오게 하신다”(각 시대의 대쟁투, 541).
기도 : 자비하고 공의로운 하나님 이 우리의 소망과 구원되심 을 감사합니다. 때로 어려 운 시기를 지나기도 하지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손 을 굳게 잡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의 중심을 잡아 주셔서 세상의 어떤 유혹도 흔들지 못하게 하옵소서.
묵상 : 성경 기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살펴 보십시오. 어려운 시기에도 하 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습니까?
적용 : 내가 관계있는 영역에서 어떻게 정의를 실행함으로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정로의 계단 1장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성품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의 무한하신 사 랑과 긍휼을 반포하셨다.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하고 기도하였을 때에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나의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출 33:19) 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곧 주의 영광이다. 주께서 모세의 앞을 지나시며 반포하셨다. ‘여 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 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출 34:6, 7). 그가 ‘노하기 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욘 4:2)신 것은 그가 ‘인애를 기뻐하’(미 7:18)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무수한 증거로써 우리의 마음을 당신에게 붙들어 매 셨다. 천연계의 사물을 통하여 또는 사람이 그 마음으로 체험해 알 수 있는 그윽하고 부 드러운 인간적 결연(結緣)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나타내려 하셨다. 그러 나 이러한 것도 그 사랑을 나타내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이러한 모든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善)의 대적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포 심으로 대하고 또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하지 않는 이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탄은 사 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엄혹하게 처단하시는 자 - 엄격한 법관이나 각박하고 인색한 고리 대금업자 - 와 같은 분으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사탄은 조물주는 사람들의 허물 과 잘못을 찾아내어 저들에게 벌을 주려고 질투하는 눈으로 항상 주목하는 자처럼 보 여준다. 예수께서 인류 가운데 거하시려고 오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심으로써 이같은 어두움을 걷어 내기 위함이었다”(정로의 계단, 10).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의 영광이 그분의 선하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 식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이 아닌, 순전히 권능만을 강조하는 영광의 신학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
➋ 당신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을 따른 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세상의 악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질문을 어떻게 해결했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문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다음 주 교과를 참조하라.
➌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악을 그대로 허용하시는지 생각해 보라. 대쟁 투의 실체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악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결론 하나님은 악과 연관이 없으시며, 온전히 선하시고 정의를 사랑하시기에 불의와 악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 그분은 원수마저 사랑하시지만 공의를 어기지 않으시고 세상에서 정 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며 요구하신다. 그분은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말씀을 돌이키시지만 이는 오직 사랑이며 자비하신 그분의 성품 때문이다. 그의 사랑과 공의는 언제나 변함없으며 오직 공의와 사랑으로 권능을 행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