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과 소록도 그리고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
아들아, 아빠가 시 한 수로 읊어줄테니 들어보거라.
이 시(詩)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아빠가 읽어준 이 시는 한하운(韓何雲,1920~1975) 시인의 전라도 길, 부제는
소록도 가는 길이란 제목의 시(詩)란다.
소록대교( 고흥군 도양읍~소록도)
소록도(小鹿島)는 고흥군 도양읍과 거금도 사이의 작은 섬으로 아름다운 섬이지.
하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어린 비극의 역사를 가진 섬이기도 해.
소록도는 우리가 말하는 문둥병,나병(癩病)이란 이름으로 말하는 한센병(Hansen病)을
앓았던 환자들의 한이 어린 곳이란다.
한센병은 나균 또는 나종균에 의해 발병하는 만성감염병으로 오랜 잠복기를 거쳐서
증상이 발현되면, 신경계, 기도, 피부, 눈 등에 염증이 발생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신체 말단부터 썩고 문드러지면서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신체부분을 잃게되는 무서운 병이지.
한센병은 치료받지 않은 증상이 심한 환자와의 직접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추측 되는데, 그 전염력은 강하지 않다고 하는구나. 치료받고 있거나 회복된 환자에게서
전염되진 않는다는 말이지. 그리고 한센병은 신체면역력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전염이
잘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저항력이 있어 전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단다.
물론 지금은 한센병은 치료 가능한 병이 되었다.
아들아, 한센병은 옛날부터 왜 발병하는지 알지 못했고, 치유할수도 없었으며 발병하면
겉으로 발현되는 그 증상이 너무나 참혹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어왔단다. 오죽했으면 하늘의 형벌이라 해서 천형(天刑)이라고까지 했을까.
그래서 한센병 환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었고, 쫓겨나 따로 살거나
숨어 살거나..그러다 외로움에 지치고 굶어죽기도 하고, 병마로 죽어가야 했다.
차별과 학대의 대상이 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단다.
한센병 이야기를 하면서 소록도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지.
소록도는 일제시대인 1916년부터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고 치료하는 병원과
시설이 세워지면서 한센병 환자들의 섬이 되었단다. 한센병 환자들을 치유하는 곳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가 그러했는지라..이들에 대한 온갖 차별과 억압이
가해졌단다.
강제 노역부터 감금, 폭행에 낙태와 단종수술까지 온갖 인권침해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으며, 소록도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그때의
진실을 전하고 있단다. 물론 광복 후에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
차별과 인권침해는 여전했으니까..물론 지금은 그래도 많이 인식 개선이 되면서
나아졌다지만 한센병 환자들의 오랜 한을 생각한다면 이곳 소록도를 찾는다면 정말로
마음가짐 바로하고 그 아픔을 공감하려는 자세부터 가지고 봐야할 것이다.
고흥군 도양읍 인공섬에서 본 소록도
아들아, 왜 한하운 시인을 얘기했고, 또 그의 시를 소개했는지.
왜 그 제목이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인지..알 것 같으냐?
한하운 시인이 바로 그 한센병 환자였고, 그래서 소록도에서
보내야 했던 세월이 있었단다.
그가 한센병이 발병해서 소록도로 수용되어 가면서 그 험난하고 멀었던 길을
얘기하고 있는 시이니 만큼..그 슬픔과 한의 무게도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빠가 이번에 직장동료들과 함께..연수차 방문했던 전남 고흥군에서 도양읍을 찾아서
소록대교를 보고, 또 바로 눈 앞에 가까이 있는 소록도를 보니 자연스럽게 한센병과
한하운 시인이 떠오르더구나.
아들아, 하지만 그 소록도를 보고 또 아름다운 이야기도 떠올리게 되었다.
고흥에 가보니..마침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두분의 노벨평화상 추천서명을
받고 있더구나.
아빠도 신문이나 TV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접했던 기억이 있고, 그 자격이 충분한..
아니 넘치고도 남을 분들이라 기쁜 마음으로 서명했지.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의 젊은 시절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은 뭐랄까..
인도 콜카타에 그곳의 빈민들에게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1910~1997)
그분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엔 그리고 소록도와 그곳의 한센병 환자들에겐 두분 수녀님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은 저멀리 오스트리아에서 버려진 곳,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는 소록도를 찾아오셨지. 그때가 두분 모두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젊은 나이였단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봉사를 위해 찾아온 그들은 원래 5년간 봉사하기로 했는데..
두분은 겨우 3평 남짓 작은 방에 장농 하나..그렇게 무소유로 지내면서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헌신적인 애정과 봉사로 40여년을 함께 했단다.
소록도 주민들에게 두분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와도 같았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봉사
그런데 2005년 11월 두 분이 편지 한장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가셨단다.
사랑하는 동무, 은인들에게’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소록도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부족한 외국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셨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우리의 잘못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 마가렛 올림-
마리안느 수녀, 마가렛 수녀
나이가 많아져서, 아파서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짐이 된다고 생각했던 두분이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편지 한장만 남기고 가셨는데..그 사연을 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맙고 또 미안하고..아쉬워 했는지.
감사인사나 언론 인터뷰도 사양하던 두분은 10년이 지나 2015년에 한 청년이
찾아가 방문하면서 뒷 이야기를 전해주었어.
사실 그때 마리안느 수녀님이 대장암 판정을 받고 짐이 되기 싫어 떠나야 했다고
하셨더구나. 지금도 두분 수녀님 모두 나이 80이 넘은 고령에 마리안느 수녀님은
암 투병으로, 마가렛 수녀님은 치매 투병으로 요양원에서 어렵게 살고 계신다니
또 그분들의 봉사와 헌신에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지는 것 같다.
마가렛 수녀님은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소록도와 한국말을 기억하신대.
잊을 수 없다고..너무 행복하셨다고 하셨지.
그 말씀이, 그 마음이 참..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오스트리아의 상징, 에델바이스를 품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지금 고흥군에서도 그렇고..우리나라 각계에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을 노벨평화상 추천하려는 것은, 물론 두분이 그것을
원하셔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마더 테레사에게 그녀가 인도의 빈민들을 대상으로 평생에 걸친 봉사와 헌신을
기려 노벨평화상을 주어 그 행적을 기리고 알렸듯이..
이 두분도 천형이라는 그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에 걸친 봉사와 헌신을 기리고
세계에 알리고 기억해 달라는 바람이고,
또 우리나라가 그 두분의 봉사와 헌신에 대해 진 마음의 빚을 이렇게라도 갚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아빠도 그래서 기꺼이 두분의 노벨평화상 추천에 서명했단다. 수상여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들아..그것과는 상관없이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 두분의 평생에 걸친
봉사와 헌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들아, 그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거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