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암 투병 소고 (2012- 81)
나는 은행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퇴직 후에는 무엇을 하며 제 2의 인생을 멋지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모 은행 지점장이 현직을 수행하면서 전수학교에 한 달에 한 번씩 특강을 하며 재미있게 지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참 가치 있고 멋지게 산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그런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 나름대로 은행 업무에 관련된 책이나 신간서적을 읽거나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는 지점장을 하더라도 은행 경험만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부족할 것 같아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1997년 초임 지점장을 지방 옥천으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어떤 인연이 게기가 되어 나는 1999년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결심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주간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야간에는 학교에 다니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그러던 차에 서울로 인사 발령이 되어 영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가서 수업을 받고,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가 되기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도 힘들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이는 꿈을 이룬다는 신념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세월이 흘러 2001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청운의 꿈을 안고 공부를 또 시작했다.
서울에서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또는 주말에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수업을 받으러 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정말 마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인가?
일 년에 한번 받는 건강 검진에서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럿다. 가족들은 먼저 이 내용을 알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안절부절 못하였다.
나는 수술을 받기 위해 딸이 근무하는 아주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수술결과 위암 2기라서 관리만 잘 하면 5년 이상 생존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따라서 나는 긍정적인 생각과 낳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하루하루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2학기 개강일이 닥쳤다. 학교를 다녀야 하냐 마냐 하는 고민이 생겼다. 암에 걸리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날 보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삶을 쉽게 포기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을 바꿨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즉 인명은 재천이지 않는가?
따라서 나는 학교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공부를 하는 것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병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등록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고 결석도 하지 않은 모범생 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논문을 쓰는 시간이 되었다. 건강은 수술 전에 비하면 많이 허약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논문을 써야 할 시간은 바짝 바짝 닥아 와 나를 압박하였다. 논문을 쓰지 않으면 박사수료고, 논문을 써야 박사로 인정을 받고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동기처럼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엿한 박사로 소개를 하고 실력을 인정받을 것 아닌가.
남들은 암 수술 받으면 죽을지 살지 모르는 판에 공부를 해서 뭐하겠느냐고 말들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결심했다.
논문 쓰다 죽으면 2세들에게 아버지는 평생을 노력하며 땀 흘리며 자기계발 하다가 죽었노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값진 유산이 어디 있겠나 하는 것이다. 자식농사가 최고 어렵다고 하는데 몸으로 행동으로 삶의 가치를 보여 주었으니까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논문을 쓰는 동안 몇 가지 마음의 다짐을 했다.
첫째, 시간을 철저히 아끼자
남들은 3~4년 걸쳐 논문을 쓰는데 나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지금 꼭 당장 해야 하는 일만 하며 시간을 아끼고 논문을 쓰자는 것이다. 거의 2년 동안 두문불출할 정도로 식사와 논문, 잠, 운동 등이 하루 삶이었다.
둘째, 자료준비를 철저히 하자
인터넷이나 국회도서관에 다니면서 자료를 검색하고 수집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준비가 부족하면 좋은 논문을 쓸 수 없으니까?
논문을 쓰다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수없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찌 하겠는가?
셋째, 연속적으로 논문을 쓰자 였다.
논문을 쓸 때 리듬이 깨지면 논문의 앞뒤가 잘 맞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을 하는 것도 뒤로 미뤗다.
이렇게 하여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논문이 완성되어 2005년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서는 대전대학교 겸임교수, 한남대학교, 충청 대학교, 대덕 대학교, 순천향 대학교에 시간강사로 활동 하고 있다.
또한 학교 수업 말고도 결혼 주례참석으로 바쁘기도 하다.
나는 직장에 다닐 때 제 2의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보고자 노력한 결과 그리고 삶의 위기가 닥쳤어도 잘 헤쳐 나온 결과 시간 소비도 좋고, 용돈도 생기고, 노는 상대가 학생들이다 보니 젊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계발은 나의 브랜드 즉 상품가치를 높게 하고, 자기만족으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자아실현으로 엔돌핀이 팍팍 솟아 나오는 것 같다.
위암 수술하고 12년이 경과되어 요즈음 건강은 좋다. 매사에 욕심 부리지 않고 긍정적이고 단순한 생활이 오늘에 나를 있게 해 준 것 같다.
첫댓글 대단하신 의지 이십니다.
하기야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결과는.........
교수님의 열정과 긍정적 마인드에 박수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어제 늦게 오셨지요. 시 공부하랴 효 공부하랴 청소하랴 멋지신 시인님이세요 언제 만나 막걸리 한잔 해요
그리고 항상 격려 감사하구요
흥산 최응열 교수님의 열정에 존경스럽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장님은 더 대단하신데요. 저는 부끄럽습니다 우리 문학공부 열심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