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와 선생님
박 용 덕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이른 봄의 전령사 산수유 꽃. 매화꽃이 피면 늦을세라 서둘러 벚꽃이 핀다. 그럴 즈음 북쪽의 임을 향해 핀다는 목련꽃의 뒤를 이어 맑고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하는 복사꽃이 핀다. 봄의 향기가 가득하고 고향의 봄을 상징하는 복사꽃을 싫어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꽃이 군락을 이루면 휘황찬란한 석양의 뭉게구름인 듯 화려하기까지 하여 그 아름다운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꽃말처럼 꽃의 매력에 유혹당해서인지 꽃길을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정년퇴직 후 고향인 지리산 골짜기에 오래된 시골집을 사들여 손수 수리하였다.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심고, 작은 연못도 만들어 수련도 심었으며, 담장을 따라 과실수도 심었다. 좋아하는 복숭아나무는 10여 그루 심으려 했으나, 집 안에 심는 것이 아니라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세 그루를 심었다. 고집스레 심은 것은 좋아하는 과일이기도 하지만 복숭아에 얽힌 사연이 있어서 그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지금부터 55년 전, 원촌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남학생과 여학생 두 반이 있었는데, 남학생 교실 앞 화단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당시는 끼니걱정을 하던 때인지라,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학생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먹었다. 복숭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꽃이 떨어진 뒤 열매가 밤톨만 하고 물렁물렁한 하얀 씨가 생길 즈음에도 따 먹었다. 맛도 들기 전이라 풋내가 나고 시금털털해도 잘도 따 먹어 몇 개 안 남았을 때였다. 그런데 종례시간에 호랑이 선생님이신 담임선생님이 몹시 화가 나서 “복숭아 따 먹은 사람 일어나!” 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우리 반 아이들은 21명이 일어섰다. 물론 나도 일어났다. 교무실 복도로 21명을 데리고 가서 한 줄로 세워 놓고 일장 훈시를 하시는 것이었다.
“너희는 도둑놈들이다. 거지와 같다. 맛도 안 든 풋것을 먹고 탈이 나면 어떻게 할 거야? 지금부터 남아있는 복숭아를 너희가 지키고 매일 반성문을 써서 제출할 것. 그리고 체벌로 뺨 한 대씩 맞아라.”
나는 가운데쯤 서 있는데 한 대씩 때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너는 급장이란 놈이 따지 말라고 제지해야 할 텐데도 같이 행동했으니 두 대를 맞아라.”
내가 말린다고 듣지도 않았을 텐데 공매를 한 대 더 맞았다.
다음 날부터 날마다 반성문을 모아서 선생님 책상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기를 3개월 이상이나 계속했다. 그 사이 복숭아는 잘 익어 주먹만 하게 자랐다. 그 복숭아나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이 여름방학을 하는 날이어서 내일부터는 반성문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고 있는데, 반성문을 쓴 어린이 21명을 복숭아나무 밑으로 모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복숭아를 따라고 하셨다. 다 따니 86개였다.
“그동안 지키고 반성문을 쓰느라고 고생했다. 풋내 나는 복숭아였지만 때를 기다리면 이렇게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지 않으냐? 앞으로도 성급해 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라. 그리고 급장이 이 복숭아를 똑같이 나누어줘라.”
라고 말씀하시고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셨다.
나는 반성문 쓴 친구들과 상의하여 1인당 두 개씩 42개를 나누어주고, 42개는 교무실로 보냈다. 그리고 두 개를 깎아서 담임선생님께 드렸다.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뺨 두 대를 맞은 것이 억울하냐? 그건 너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차별화 한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 복숭아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졸업이 며칠 남지 않을 때 담임선생님이 수모를 당한 일이 있었다. 김 모 교장 선생님의 부인이 아들 시험점수가 모두 백점인데 왜 일등을 안 주느냐고 멱살을 잡은 사건이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김 군과 박 군이 모두 백 점인데 실습과 체육 실기가 떨어져서 1등이 안 된다고 애초대로 처리한 것이다. 항상 옷차림이 단정하셨고 구두가 반짝반짝 빛났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배려·용서·베풂 등의 깊은 뜻과 강직성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성장기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시기에 지금도 아니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이평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봉직하실 때 찾아뵙고 옛날 복숭아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나보다 더 소상히 기억하시면서 그 복숭아사건 이후 어느 학교에 가든지 유휴지에 옥수수를 심어 방학하는 날 뻥튀기를 만들어 한 움큼씩 준다고 하셨다. 복숭아와 이런 깊은 인연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복숭아이기에 집안에 그 나무를 심은 것이다.
꽃도 좋지만, 열매인 복숭아 맛 또한 좋아한다. 복숭아 맛이 다 같은 맛이 아니라는 것은 장호원에서 여름 과일의 여왕이라는 복숭아 맛을 보고서야 알았다. 특히 장호원 황도는 질감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풍부한 과즙과 당도가 높고 향이 짙다. 맛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으리라. 이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과 봄 냄새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꽃 그리고 나무·잎· 열매·씨 등 버릴 것이 없는 것이기에 나는 복숭아를 좋아한다.
오늘도 나는 익을수록 향기가 나는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린 복숭아나무 아래서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옛 추억에 젖는다.
(2014.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