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 성의 외곽 니그로다 숲에 붓다와 천 이백 오십 인의 제자들이 계셨다. 백조의 무리가 비취빛 호수를 찾아오듯, 우아한 날개 짓을 멈추고 순백의 깃을 접어 호수위로 내린 것이다. 그러나 백조의 아름다움을 아지 못하는 범부의 눈에는 먼지를 덮어쓴 털 빠진 닭 떼처럼 보였으리라. 아침 해가 고요하게 비추자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이 운다. 붓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갖춰 입고 발우를 들고 숲을 나선다. 그 뒤를 비구들이 따른다. 걸음걸음마다 평화가 있다. 침묵의 행진이다. 열반의 평화를 뭇사람들의 눈앞에 실현한다. 보라, 살아있는 다르마(Dharma)의 증거를! 그러나 볼 눈이 없는 자는 보지 못하고, 들을 귀가 없는 자는 듣지 못 한다. 붓다의 일행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걸식을 한다.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성안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실 분, 남에게 밥을 얻어먹어본 적이 없으신 분, 부족함이 없으신 분께서 밥을 빌러 다니시다니. 성안의 귀족들과 백성들은 경악한다.
“왕세자 싯다르타가 이집 저집 밥을 얻으러 다닌다.”싯다르타가 도를 통해 깨달았다고 하더니 겨우 밥을 빌러다니는 걸인 떼를 이끌고 다닌다니. 달리는 말 보다 빠른 소문이 야소다라의 귀를 스치자 야소다라는 쓰러지면서 읊조린다.
“황금수레를 타고 위용을 자랑하며 거리를 누비던 분이 맨발로 다니는구나. 금 쟁반에 은수저로 산해진미를 즐기시던 분이 흙으로 만든 그릇으로 문전걸식을 하고 계시는구나. 금의환향을 하셔야 할 분이 빈천한 걸식이라니...그러나 지혜가 비상하신 분께서 저러시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겠지.”
붓다의 아버지 되는 슛도다나왕은 원망어린 슬픔으로 탄식한다.
“아비에게 이런 창피를 주다니, 왕국이 모두 나의 것인데 문전걸식이 왠 말이냐, 내가 네 제자들에게 대접할만한 여유도 없어 보인다더냐, 크샤트리아 계급의 석가족은 예로부터 밥을 얻으러 다닌 자가 없느니라.”
“크샤트리아는 당신의 종족입니다. 저희는 붓다의 종족(佛種性/Buddha Family)입니다. 과거에 출현하셨던 높고도 거룩하신 부처님들도 한결같이 걸식으로 생명을 이어가셨습니다.”
슛도다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의 아들,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 종족이 다르다고 하다니, 내 아들은 진정 나를 버리고, 나의 왕국도 버리고, 나의 종족까지도 버린 것인가, 너는 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있구나, 내 정신이 가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구나, 너는 더 이상 나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구나.
그렇다. 붓다는 더 이상 슛도다나의 아들 싯다르타가 아니다. 사람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환골탈태(換骨奪胎/태로 받아난 골격이 바뀌다/범부중생의 태를 벗고 성인의 경지를 이루다)를 한 것이다. 몸은 그대로 일지언정 정신의 질은 완전히 변하여 성자가 된 것이다. 위대하여라, 붓다여. 당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행동을 하시는 초인간이십니다. 한 발은 진흙을 밟고 한 발은 연꽃을 밟으시며 걸어가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이 세상 속에서 세상 밖의 경지를 살고 계십니다. 당신은 절대무한이시면서 상대유한이십니다. 당신은 무시공(無時空)이면서 지금 현재이십니다.
당신은 설산을 자유로 넘나드는 독수리이시면서도 일부러 닭장 속으로 들어와 닭들과 어울리면서 닭장 밖의 소식을 전하고 계십니다.‘카필라 성(Kapilavattu)'이라는 닭장의 주인인 슛도다나에게 붓다는 설법한다.
일어나 방일치 말고 선행을 닦으십시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지 말고 알아차림을 일깨우세요.
선법(善法)은 증장시키고 불선법(不善法)은 막으십시오.
마음을 맑히면 지혜가 생깁니다.
지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슛도다나왕은 붓다와 제자들을 궁중으로 공양청을 하였다. 궁중의 여인네들이 능숙한 솜씨로 음식과 과일을 올리며 부지런히 시중을 들었다. 부처님이 공양을 하는 내내 어머니 빠자빠티가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내 아들로 키운 나의 사랑스런 아들이 돌아왔다, 어미를 잊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남들은 다 네가 왕이 되기를 바라지만 이 에미는 너의 성정을 알기에 네가 출가하여 수행자로 나간 것을 이해한단다, 그리고 너는 마침내 부처님이 되어 돌아왔지 않느냐, 너는 승리자다, 너는 슛도다나의 왕국을 물려받은 것보다 더 영광스런 다르마를 물려받은 것이다, 너는 너희 길을 찾은 것이다, 그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될지도 모르기에, 어미가 아들의 마음을 모를 수가 있겠느냐, 나도 너를 따를 것이다, 너의 길, 부처님의 길을. 훗날 빠자빠티와 며느리 야소다라는 석가족의 귀족집안 여인네들, 서민여인네들과 함께 부처님의 승단으로 출가를 하게 된다. 먼지 날리는 몇 천리 길을 걸어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다.
백조로 태어난 자는 닭장 속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창공을 날아오르게 태어난 백조는 닭처럼 살 수 없는 것이다. 사자새끼가 아무리 오랫동안 양떼 속에 묻혀 살아도 어느 날 때가 되면 사자후를 하게 된다. 그러면 양들을 놀라서 모두 도망가고 홀로 남겨진 사자는 광야를 달리게 된다. 백수의 왕이란 자리를 다시 찾게 된다. 자기가 본래 사자인 것을 잊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당신은 도둑이 들어와 한 마리씩 훔쳐가도 두려움에 심장이 쪼그라들어 침묵을 지키는 양(양들의 침묵)이 될 것인가, 천지를 울리는 포효로 도둑을 혼비백산 시킬 사자가 될것인가?
홀로 살면서 방일하지 않는 성자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나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이끄는 이
현명한 이들은 그를 성자로 압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붓다의 종족(Buddha-gotra/Buddha Family)이다. 그들은 이미 범부중생의 종자가 아니다. 그들은 종자가 달라졌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것이다(入流/豫流/sotopanna/stream enterer). 그들은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법을 듣고 있는 당신은 아리야 족이다. 열반의 성에 들어가기로 예약되어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난 절대의 영역을 살고 있다. 당신은 붓다의 종족이다. 종성이 다르다. 이제 붓다의 종성, 불종성에 들어왔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물러설 수 없다. 당신은 이제 곧 불퇴전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칠 것이다.
보았노라, 길을
걸어왔노라, 팔정도를
닦았노라, 해탈도를
이겼노라, 윤회를
얻었노라, 열반을
이생으로서 삶은 족하다, 더 이상의 생을 받지 않을 것을 내가 안다.
잘 살았다, 그리고 그만이다. 안녕, 모두 안녕, 모두 평안하시게.
부디 삶이 주는 환상에 빠지지 말게, 자기가 지어낸 생각이 도리어 자기를 구속하지 않기를.
첫댓글 보았습니다 ㅡ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ㅡ 팔정도를!
닦겠습니다 ㅡ 해탈도를!
이겨내겠습니다 ㅡ 윤회를!
얻겠습니다 ㅡ 열반을!
붓다의 종족 된것에 기쁨의 삼배를
원담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의 삼배를!
합장_()_
부처님을 길러주신 불모 빠자빠띠의 심정을 읽고서 가슴이 뭉클합니다 거지중 상거지가 되어서 돌아오신 아들을 슛도다나와 다르게 인정하고 믿고 귀의하는 큰 마음을 내시는 어머니 빠자빠띠를 감히 공경예배합니다 ...()...
영광스런 담마를 물려받았으니
양떼 속에 묻혀 살아도 광야를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