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1:12-2:4절, 346.474.513장.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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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죄악을 인해 오랫동안 탄원했던 하박국은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박국이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전혀 뜻밖의 응답이었습니다.
그 응답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섭리에 대해 고민했던 하박국에게 오히려 더 큰 당혹감과 새로운 의혹을 불러일으킬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 악한 나라를 사용하시어 자기 백성을 벌하실 수 있는가?”입니다.
1.하박국의 질문은 유다보다 악한 바벨론이 어떻게 심판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입니다.
(12-17절), 악이 횡행하는 유다의 현실을 탄원한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징계하시겠다는 응답을 주시자 그는 더욱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의문은 하나님의 응답으로 해결이 된 것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에 하박국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악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그분의 의로우신 성품과 섭리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됩니다.
12절에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박국의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하박국의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박국은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박국은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셨나이다.
그들을 세우셨나이다”라는 표현에서 그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는 그의 절대적인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셋째. 하박국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환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은 자기 백성을 환난에서 건지실 분, 구원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근거로 하박국은 하나님께 항변하듯 타원합니다.
13절에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가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2.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2;1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지 못해 다시 하나님께 질문했던 선지자는 이제 또 인내로써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박국은 응답을 듣기 위해 파수하는 곳, 성루에 올라가 기다립니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적군이나 전령으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듯이 선지자는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선지자의 간절한 태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태도를 통해 세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박국의 책임의식입니다. 그가 파수꾼의 성루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자신의 사명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하박국의 확신입니다. 셋째. 하박국의 인내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서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3.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입니다.(2:2-4절). 2-3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며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 지시. 곧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기록하라는 것과 기다리라는 내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하박국이 받은 계시는 영원히 보존되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었기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이 질문한 것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하박국 개인이나 이스라엘에게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세대의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박국이 받은 계시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하신 말씀은 “인내하라. 나의 때에 내 계획을 실행하리라”와 같은 의미입니다.
4.“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2:4절),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죄악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곧 그분의 공의를 보려면 믿음으로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불신앙의 길이 두가지 특징으로 언급됩니다. 첫째는 교만입니다. “교만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팔”은 이곳에서만 사용되었는데.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무시하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인간들 앞에서 신실치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모든 인간 관계에서도 성실치 못합니다.
이들은 사악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거짓되고 잔혹한 방법으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이어서 바벨론의 죄악 그들의 불신앙과는 대조되는 의인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신약에서 세 번이나 인용되었는데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생할할 것인가 (갈3:11절)와 관련하여 로마서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의로울 수 있는가 (롬1:17절)와 관련하여,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히10:38절),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를 밝혀 주는 이 말씀은 세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의인”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말합니까? 여기서 의인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만큼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임을 지적합니다.(롬3:9-10절), 모두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선물을 통해서입니다.
의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으로.의로워지기를 멈추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의를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입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을 믿음으로써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얻는 기초는 구원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창15: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롬1:16-17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니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말미암아‘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은 어떻게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신뢰에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실상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이러한 자의 믿음이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지적 동의를 기초로 그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19:21-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약2:14-17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살리라”는 무슨 뜻입니까? 이는 믿는 자의 삶의 원리를 말합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꾾임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삶에서 일관되게 드러나야 하는 평생의 원리입니다. 결국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 불신앙을 대표하는 바벨론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나 의로운 사람, 하나님의 의를 바라는 자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살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되어서 간구하는 기도 제목마다 응답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