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연변시인협회]시향만리 해외문학상 수상소감
홍승우 (한국시인)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35년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광복 70주년의 해입니다. 제가 소속된 대구문인협회에서 지난 4월 독립유공자의 흔적을 찾아서 경북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일원을 문학기행 하였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이륙만리 만주벌판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투쟁을 한 애국지사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여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 등의 저항시인들과 문인들도 국내와 나라 밖에서 일제에 항거해 조국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저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고향의 바람과 물과 돌과 새와 나무와 풀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 뒤 대구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지방입니다. 어쩌다 눈이 한번 내리면 그것은 경이와 신비로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추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겨울과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이 몇 편 있습니다. 제 시는 겨울과 눈, 숲과 꽃, 새와 바람 등 서정시의 특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꿈과 사랑의 주제로 맑고 순정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서정시의 본령이 ‘감동과 진솔한 삶의 체험’이 근간이라면 전통적 가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져가는 우리문화를 작품으로 승화 시켜 현대인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촉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번에 수상작이 된 [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는 “우리들 사랑의 나라 / 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 / 가난한 언어는 빛나고 / 식빵 위에 사랑의 버터를 바른다”에서 ‘식빵’ (지상적 존재)에 ‘눈보라’ (천상적 가치)가 내려 단지 육신의 음식에 불과한 식빵, 그러나 그 위에 천상의 카리스마(사랑의 은총)가 “사랑의 버터”처럼 묻어질 때, 그 빵은 이제 단순한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라 참된 사랑의 가치가 구현된 ‘일용한 양식’으로 본질의 변화를 이룹니다. 성(聖)을 통한 속(俗)의 가치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고향의 바람과 물과 꽃과 풀과 함께 사랑하고, 머나먼 타향에서 모국어를 잃지 않고, 작품을 쓰시는 조선족 문인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이룬 조선족 동포 문인들이 굳건히 버티어오며 문학적, 경제적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상을 마련해 주신 [시향만리]를 발행하는 연변시인협회 관계자 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언어 표현에 더욱 정진하며, 중국 조선족 문단을 향해 지평을 넓히며 뚜벅뚜벅 한걸음씩 걸어가겠습니다. 뜻 깊은 해에 의미 있는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2015년 8월 28일 현림 홍 승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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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우시인 약력】
▲1955년, 경북 경주시 안강 출생. 본명 홍성백.
▲1995년, 김원일작가 주간『동서문학』신인작품상에 시 <새>외 4편이 문학평론가인 오생 근 서울대 교수 심사에 의해 당선되어 등단.
▲2007년, 시집『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나남) 간행.
▲2006년, 시 <서신> <희망사항> 시노래로 작곡, 발표.
▲2007년, 시 <내가 사는 세상> 오카리나 연주곡으로 작곡, 발표.
▲2009년, 시 <내가 사는 세상> 가곡으로 작곡, 발표.
▲2013년, 대구 도동시비동산에 시비 <내가 사는 세상>이 세워짐.
▲2014년, 한민족작가상 본상 수상.
▲2015년, 중국 연변 제3회 [시향만리] 해외문학상 수상.
▲김세웅 서지월 한상권 강해림 박이화시인 등과 <낭만시> 동인으로 활동.
▲송앤포엠시인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대구시인협회 편집홍보국장 역임.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문학풍류 편집위원. 미당문학회 이사.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상임위원장 겸 수석 편집위원장.
*휴대폰번호:019-514-0351 *메일:hyunlim7@hanmail.net
길
홍승우
가는 걸까 저기 저 강물 따라 불빛 따라
우리 마음 한데 모으고
눈물나는 모국어 찾으러 숨죽여
세월 따라 가는 걸까. 가다가
바람은 멍석을 펴고 꿈을 말린다.
가는 길 멀지만 흙을 털며 터벅터벅
가야 한다. 목화밭 앞까지, 어둠의 저 끝까지
불을 밝히면 아직은 쓸쓸한 낙도여,
그대 꿈 반짝여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가야 한다. 저 산 너머 바다 건너
구름 위 하늘까지 사랑은
구름을 타고 선반 위를 갈무리하느니
저기 저 꽃 좀 봐, 이 소리에
누구더라, 고개 숙여 감추는 얼굴
햇볕도 숨죽여 돌을 쓰다듬고 있나니
흩어진 말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의 찌꺼기를 찾으러 가야 한다.
가위로 허전함을 잘라내고
누구더라, 무딘 칼날로 갈참나무 잎사귀를
따내는 자는. 발 머문 곳 취기는 묻어나고
빈손을 흔들며 풀잎 앞뒤에 묻힌 생애를 닦아낸다.
꽃 1
홍승우
풀 속에서 잠든 영혼들을
푸른 목청으로 부르면
아득히 그쪽에서 피어나는 꽃.
손 잡아다오.
눈 내리는 마을
홍승우
겨울 숲 가, 작은 새의 날개는 깃털을 잠재우고
눈 내리는 마을에 들어가
도처에 눈뜨고 있는 잠을 감싸고 있다.
한 점의 불씨 사랑을 녹이지 못하고
낮은 지붕 위로 서성이는 바람 한 줄기,
연기 한 줌 날려보낸다. 눈밭에서
젖은 노래 부르는 자여, 마른 가슴에 눈꽃 맞으며
맨몸을 털며 몸살 앓는 눈.
누운 자리 뒤켠에 와 머무는 웃음소리
천 근의 무게로 누르면
언덕 아래로 꿈은 부서져 내리고 있다.
오후 한때, 식솔 데리고
젖은 꿈 한 삽 퍼 말리면
공허한 가슴 가장자리에 떨어져 쌓이는 선율
눈 내리는 마을에 뿌리를 묻는다.
새
홍승우
눈더미 속에 감추어 둔 비밀을 쪼고 있는
새의 상처입은 깃털에는
따스한 체온이 목숨의 뜨거움을 빚고 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으며
비린내나는 첫눈을 쪼고 있는 새여,
새벽마다 빠져 달아나는 눈썹을 보라.
안개 속에 감춰진 상처를 보라.
어둠 끝 어디에서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까.
깊고 아늑한 갈비뼈 속에 묻어나는 암향
밤늦게 부리를 닦고 꽁지를 털며
그의 희고 가느다란 발가락이 움직인다.
파스테르나크의 가슴에도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도시 가까이, 잠에서 깨어난 새떼들이 모여들어
목소리 풀리며 노래 부르는 소리.
-꽃을 피우세요.
마른 가지에다 꽃을 피우세요.
서신
홍승우
친구여, 상처는 풀잎에서 새어나와
어둠 속을 행진하며 휘파람을 긋고, 아비의 아들 되어
머리칼 새로 빠지는 사랑의 말들을 낳는다.
신문지 위로 떨어지고, 술잔 위로 떨어지는 사랑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버린 사랑
친구여, 오늘은 하던 일 모두 제쳐놓고
우체국에 가서, 구겨진 사랑의 말들을 주워
다리미로 깨끗하고 반짝이게 다리고 싶다.
엽서에다 그 말들을 정갈하게 적어 넣고 싶다.
친구여, 완행열차 뒤꽁무니에 싣고 달리는
피곤한 삶에 햇볕 비추어
너의 그 꽃 속에 깊이 잠들고 싶다.
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
홍승우
우리들 사랑의 나라
식빵 위에 내리는 축복의 눈보라
가난한 언어는 빛나고
식빵 위에 사랑의 버터를 바른다.
어둠이 마을로 내려올 때
우리는 양식을 걱정하며 물러앉는다.
마음을 태우는 햇볕은
바람을 불러낸다.
길 잃은 숲으로 강으로
겨울을 떠메고 떠나는 아들아
숲은 고요를 감추고 강은 잠잠하니
무너진 흙벽 더미에서
마른 입술 부비며 피어라 꽃아,
우리들 사랑의 나라
식빵 위에 내리는 축복의 눈보라
마을에 낮게 내려앉은 햇볕은
어디에나 살아서 떠돌고
어둠 속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따뜻한 마음에는 양식이 쌓인다.
별에 묻혀 지낸 오늘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얼굴, 어디에도
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멀고도 먼 나라의 입김과 가까운 나라의
꽃의 비밀을 새기면서
우리들 마을의 물레는 돌고 있다.
첫댓글 반갑고 기쁜 소식 접했습니다.
우리 텃밭시인학교 3대 교장이신 홍승우시인께서 해외문학상 수상을 하셨습니다.
감축드립니다.
교장선생님 수상소식 우리 텃밭의 경사입니다.
시작품도 그러하거니와 수상소감에 나타나있는 나라와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모국어를 갈고 다듬는 시인의 사명감에 경의를 표하면서 수상에 축하의 기립박수 올립니다
2015'시향만리 해외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늘 텃밭시학을 사랑해 주시고 지도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