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구수성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때신중현을 만나 〈기다려주오〉, 〈안개 속의 여인〉 등을 발표하며1970년11월 데뷔를 했다. 이후 중저음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미련〉, 〈나는 너를〉, 〈마른 잎〉 등을 부르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활동을 그만두고, 신중현과 인연도 끊었다.[2]
1994년 위암4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과 사업을 병행하다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무대에 서기도 했으나, 암이 폐로 전이되어 2008년 11월 30일 새벽, 폐암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서울 원자력 병원에서 62세 나이로 별세하였다.[3]
장현(본명/장준기)은 신중현 사단 내에서 남자 가수로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가수다. 중저음의 보이스 컬러는 청취자로 하여금 안정감을 제공해 준다. 그의 보컬은 신중현의 슬프고도 느릿느릿한 화성과 잘 어울리며 대중들에게 미련, 석양, 등의 노래들을 통해 감정을 너무 격하지 않게, 그리고 적당히 어려움을 생략해 부르는 것 같은 노래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그 여백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절제된 표현력이 한껏 돋보였던 가수다. 장현의 히트 넘버들은 얼핏 듣기에 쉽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불러보자면 의외로 여려운 노래이기도 하다.
장현은 고 3때 부친이 타계하자 진로를 수정해 일찌감치 무대로 진출한다. 대구에서 모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하던 아마츄어 시절, 그의 노래 실력은 서울에서까지 유명했을 정도였다고 한다.이 무렵 대구에 놀러왔던 신중현이 그의 노래를 듣고 음반 취입을 권유, 아예 일주일간 호텔에 머물면서 그를 위해 노래를 만든다. 이때 만든 곡들이 '기다려주오'를 비롯해 '안개속의 여인' 등 무려 다섯 곡. 이 노래 취입을 시작으로 장현은 이내 신중현 사단의 중심에 자리한다. 70년 정식으로 데뷔한 장현이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한 시기는 불과 4년 정도.
신중현 사단의 핵심 멤버였지만 특이하게도 당시 신중현 음악의 주류를 이루던 변화무쌍한 락과는 사뭇 다른 느린 박자의 곡들을 비교적 스탠더드한 창법으로 불렀던 가수다. '신중현 식 락'을 '장현 식'으로 소화해낸 독특한 케이스다. 한창 고공행진 중이던 그 역시 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가수활동을 접고 이후 사업가로 변신한다.
이후 말년에는 간간이 TV에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2008년 11월에 유명을 달리한다. 그때 나이 63세였다.
가수 장현은 2008년 11월 30일 새벽, 서울원자력 병원에서 향년 63세 나이로 사망한다.병명은 폐암 투병 후유증으로 알려졌다 .장현은 1994년 폐암으로 수술, 완치 됐었으나 지난10월, 폐암 투병 후유증인 방사선 폐렴으로 사망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한바 있다.
고인의딸 장희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008년 7월 말 기침 감기가 심해 병원을 찾았고 우연히 폐가 안 좋은 것을 발견한다. 이후 항암치료를 잘 받아 암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치료 과정에서 방사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90년대에도 위암판정을 받은 뒤 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병력이 있다.
장현은 대구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하다 신중현에게 발탁된 신중현사단 가수로 '미련', '나는 너를', '마른 잎', '석양' 등을 발표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특히 고인은 생전에 나직하게 읊조리는듯한 독특한 창법으로 인기를 모았다.
1970년 ‘기다려주오’로 데뷔한 장현은 이른바 ‘신중현 사단’의 핵심멤버로 활동하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활동을 접은 이후 사업가로 변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체를 운영해왔다. 최근에는 KBS ‘가요무대’에 출연하는 등 가수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었다. 장현의 유족은 아내 김영주씨와 1남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