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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신청자 정보 | ||||
신청단체명 | 녹색평론 대구읽기모임 | |||
신청단체 구성원 연령대 | ( )10대 ( )20대 ( √ )30대 ( √ )40대 ( √ )50대 ( √ )60대 ( )70대 이상 | |||
연락처 | 성별 |
| 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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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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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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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상상시나리오 계획안 | ||||
상상 시나리오명 | 기본소득 도입 십년 후 우리는... | |||
매달 70만원이 들어온다면? | 1. 대한민국 장남 해방 만세! 2. 반일제, 격일제도 정규직! 직장인도 공동체와 소통하며 살고 싶다. 3. 노년기 삶의 질이 극적으로 향상된다. 4. 바라고 바라던 교육과정 개혁이 온다. 5. 시민단체 활동 소신껏 할 수 있다. 6. 육아는 부모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7. 학문을 탐구 하려는가? 대안대학으로! 8. 꿈을 이루려는 자에게 도움을! 재산은 상속하기보다 기부하는 것이다. 9. 청소년 또래문화가 달라진다. 폭력이나 왕따라니? 10. 경기 활성화는 이렇게 하는 것! 내수 경기와 서민 경제가 살아나다. 11. 그냥 좋아서 하는 찻집! 텃밭 채소나 밑반찬 들고 와서 차 마시고 가세요. | |||
발표 방식 | 인터뷰 영상 (경우에 따라 연극으로 대체 가능) | |||
Ⅲ. 추가 정보 | ||||
단체 소개 | 녹색평론 대구읽기모임(이하 대구녹평)은 2012년 2월 28일에 대구녹색당 당원 몇 명이 처음 시작하여 현재까지 2년 6개월 동안 활동하고 있는 대구지역 녹색평론 독자모임입니다. 총 인원은 22명으로 지금은 녹색당원이 아닌 일반회원이 훨씬 많으며,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 가지는 정기모임에는 10~15명 정도가 참석합니다. 대구녹평은 녹색평론의 기사 중에서 기본소득의 취지에 특별히 공감하여 올해 들어 두 차례 ‘기본소득 대시민 거리홍보’ 활동을 하였습니다. 4월 7일에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에서 처음으로, 7월 12일에는 남구 대명동 앞산 등산로 입구에서 두 번째로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단지를 나눠주고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시민을 상대로 기본소득에 관한 책과 <녹색평론>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또 회원들 스스로가 기본소득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자 6월 정기모임부터는 <녹색평론> 외에 최광은의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을 매월 조금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구녹평은 앞으로도 대시민 홍보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며 기금이 모이면 기본소득을 소개하는 단행본 책들과 기본소득 기사가 실린 <녹색평론> 과월호를 많이 구입하여 거리홍보 때 시민들에게 부담 없는 가격(5000원 정도)으로 보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구녹평 http://cafe.daum.net/greendgr) | |||
위와 같이 ‘2014 기본소득 상상 시나리오 공모 지원사업’에 신청합니다.
2014년 월 일
신청자명 : |
1. 상상 시나리오명
❍ 기본소득 도입 십년 후 우리는..
2. 상상 시나리오
기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대구 시민이 뽑은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된 대구녹평마을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 기본소득이 전격 도입된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대구 시민들은 기본소득이 도입된 후 10년 동안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좋은 변화들이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대구녹평마을에서 들어보겠습니다.
시민 1 (남, 59세): 대한민국 장남 해방 만세죠! 저는 촌으로 들어가서 농사지으며 혼자 살고 있어요. 오늘은 집에 다니러 왔고요. 아내는 아직 도시생활을 접고 싶어 하지 않고, 연로하신 어머니도 경로당 친구 분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걸 더 좋아하시네요. 그래서 저만 독립했죠. 내 인생에 이런 홀가분한 시절은 처음인거 같습니다. 비로소 장남, 아버지, 남편을 떠나서 개인으로서 ‘나’를 살아보게 되었지요. 대학졸업 후 바로 취직하고부터 동생들 학비 대면서 빨리 자립하기를 기다렸는데 동생들은 IMF 무렵에 졸업한 학번들이라 제대로 자리를 못잡았죠. 이후 집안의 경제적 부담은 혼자서 떠맡다보니 장남이 죄인가 한탄스럽더군요. 그런데 살다보니 기본소득이 나에게 해방을 안겨주었죠. 그래서 평생 다니던 직장 서서히 정리하고 풍광 좋은 이 곳 찾아서 온돌에 흙부대집 짓고 살면서 농사를 조금씩 시작했지요. 차차 고혈압이던 몸은 저절로 건강해져 병원에 갈 일도 없고, 마을에 심심한 사람들 모아서 중간기술개발 놀이도 하고 그래 살지요. 가축똥으로 메탄가스 만들어서 마을에 사용할 연료나 전기도 생산하고, 앞개울에 가뭄 때 양수기 돌릴 전기 만들려고 발전기도 놓고요. 요새는 도시에 있는 심심한 사람들과 작당하여 도농 간에 할 일이 없겠는가 찾아보고 있는 중이지요.
시민 2 (여, 56세): 제일 좋은 건 재작년부터 완전고용이 실현됐다는 거죠. 저는 기본소득 도입 후에 그만둔 지 10년이 넘은 직장을 다시 다니게 됐지요. 하루 4시간 근무하는 반일제인데도 요즘은 정규직이라서 임금이나 연금, 사회보장, 승급에서 차등대우가 없으니 할 만 하지요. 기본소득이 도입되자 월급이야 줄겠지만 그래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직장에 매이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자연히 반일제, 격일제 형태의 정규직이 많아지기 시작했지요. 사회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난거죠. 덕분에 저도 좋아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고요. 지역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인데 지역 현안이나 생활, 관광 정보도 제공하고 민원도 처리하고... 보람 있고 재밌거든요. 하지만 예전엔 짧아도 출퇴근 포함해서 하루 11시간, 길면 15시간을 직장에 바쳐야 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서 그만 뒀거든요. 개인 생활은 물론이고 아이와 함께 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직장생활 하면서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네요. 가족과 여유로운 저녁시간도 가지고, 동네 사람들이랑 책읽기 모임, 도보여행 모임도 하고, 지역의 정당 활동도 하고... 저 같은 평범한 시민이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서 지지하는 정당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자 군소정당이 다시 살아났잖아요. 사실 초기에 기본소득 개념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당시 신생의 미니정당이었잖아요. 한때 미국처럼 거대 양당제로 고착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었는데 다행이지 뭐예요.
시민 3 (남, 81세): 기본소득 받고부터는 보수단체 시위에 가서 점심 얻어먹고 차비 받아서 쓰는 일을 그만뒀지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한 푼이 절실해서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자기 형편이 좀 펴야 생각도 바르게 하고 살 수 있는 모양이요. 요새는 사람을 동원할 수가 없으니 그런 집회도 씨가 말랐지요. 나는 기본소득 받게 되면서 우선 가깝게 지내오던 여자친구와 살림부터 합쳤지요. 생활비 있으니 자식들 눈치보며 외롭게 살 이유가 없지. 그라고는 둘이 같이 마을 노인회에 들어가서 마을환경가꾸기 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거리 청소도 하고 빈병과 박스 주워서 노인회 기금으로 적립해서 재미있게 노는 일에도 쓰고 좋은 일도 하고 그래요. 아! 그리고 저소득계층 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사라진 대신 동네마다 있던 경로당을 개조해서 무료급식도 하고 심하지 않은 노인성 질병도 보살펴주는 건 정부에서 정말 잘 한 일입니다. 들어보니 사람들이 여유 시간이 늘어나서 자원 봉사자가 많아진 덕분에 그리 운영할 수 있다더만요. 그 바쁘던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도 요즘은 자원봉사를 많이 온다네. 세상 참 좋아졌지요! 노인들이 멀리 있는 낯선 요양원까지 가지 않고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젠 노인 자살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잖우.
시민 4 (남, 60세): 우리 교육의 변화가 가장 감동이지요. 늦둥이로 낳은 둘째가 올해 고등시민학교에 입학했어요. 십여 년 전 첫째 때 겪어보니 문제풀이 대학입시 준비 말고는 하는 게 없는 인문계도 실망스럽고, 산업예비군 만든다는 명목으로 실상은 방치되는 실업계 아이들도 안타깝고 그렇더군요. 기본소득 후 대학진학에 의미를 두지 않는 부모와 아이가 많아지면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니 결국 공교육이 이런 좋은 시민 학교 과정을 내놓고 확대하네요. 이미 그전부터 대안학교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었으니 공교육에서 이를 수용하는 거야 정부의 의지에 달렸던 거죠. 성인 시민이 되기 전, 청소년들이 정말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즐겁게 배우는 학교네요. 시민으로서 기본 소양 쌓기 교육, 인문학 공부, 악기 연주, 미술활동, 건강 지키기, 텃밭 농사, 목공, 집짓기, 요리, 바느질,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이해, 공동체 가꾸기... 공교육이 담당해야 할 당연한 것을 하는데 왜 이렇게 감동스럽지요? 게다가 이제는 고등시민학교마다 성인 과정도 일부 개설하고 있어서 저는 요새 야간에 요리강좌를 수강하고 있어요. 기타연주반도 한 학기 정도는 해보고 싶은데 좀 멀어서 생각 중입니다. 기다리면 곧 이쪽 학교에도 개설할 것 같아서요.
시민 5 (여, 50): 기본소득 실시 전에 저는 30대 중반부터 열정을 불태우던 지역주민 인터넷 방송국의 자원봉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었죠. 6년 넘게 다양한 주민들...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상인, 노인, 학생, 탈학교청소년, 탈북자, 아줌마, 아저씨와의 방송을 통해 그들의 애환과 기쁨을 나누고,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한 소식을 알리고, 지역 어른들께 조언을 구하고, 지역의원을 초대해 주민들의 고충을 알리고... 참 수많은 소통을 했죠. 하지만 저도 딸을 키우며 살림하는 엄마고 아내로서 어느 날 문득 당장 내 생활이 쪼들리고 빡빡한데 언제까지 돈도 안되는 이 일만 붙들고 있을 건가라는 회의가 들었었죠. 사실 시민단체 활동가들 중엔 정말 열악하게 사는 분들 많았어요. 보통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 해서 생활비에 보태고 그랬지요. 겨울에 난방도, 온수도 사용할 형편이 안되어 아침에 세수할 더운물 찾는 자녀를 꾸중해서 학교 보냈다고 가슴 아파하는 분도 계셨고요. 그때 그만두던 날, 마지막 방송을 내보내고는 참 씁쓸하고 허전했었는데... 그렇게 아쉽게 그만둔 일을 기본소득 덕분에 5년 만에 다시 시작했지 뭐예요! 아 그때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네요. 기본소득 후에는 방송할 때 더 안정적으로 몰입하니까 동네 구석구석 이야깃거릴 더 찾아내게 되고 더 많은 분들을 방송으로 끌어들여 공감을 얻을 수 있죠. 작은 인터넷방송국이지만 방송의 질은 어떤 지상파보다 높고 깊다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며 소통하는 일을 내가 하다니... 즐겁고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늙어서까지 안심하고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 노년을 상상해도 걱정이 안됩니다. 엄마가, 아내가 즐겁게 일에 몰입하니 가족도 행복해하던데요! 기본소득이 나와 내 가족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다니,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한참 운동하신 많은 분들께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민 6 (여, 39세): 저는 아이가 넷이예요. 십여 년 전만 해도 거의 없던 일인데 제가 둘째를 낳을까말까 고민하던 무렵에 기본소득이 실시되면서 아이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안심하고 많이 낳기로 결정했죠. 애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갈 때는 남편하고 저, 둘 다 일을 쉬면서 그야말로 육아의 즐거움을 오롯이 누렸어요. 아이의 정서안정과 발달을 위해서도 참 감사한 일이죠. 그러고 보니 요즘은 3세 이전엔 거의 부모가 직접 양육하는 추세고 교육경쟁도 덜 심해져서 그런지 소아청소년 신경정신 클리닉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요. 대신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눈에 띄게 늘었고요. 전에는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 출생률은 꼴찌였는데 격세지감이네요. 또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으니 해외로 입양 보낼 일도 없어서 홀트아동복지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그러고요. 요새는 비혼모들도 당당하게 입적해서 양육하는 것이 자연스럽잖아요. 참! 오히려 지나친 인구증가를 염려해서 정부는 내년부터 세 자녀를 초과할 경우에는 부모의 기본소득을 줄이는 법안을 내놓으려고 한다면서요? 하긴 요즘은 결혼 기피하는 경향도 사라지고 결혼 연령도 낮아져서 인구증가에 대비하긴 해야겠지요.
시민 7 (남, 68세): 3년 전에 병원에서 퇴직하고 여기로 와서 양·한방협진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거기서 주 12시간 근무해요. 또 오래 방치되어있던 마을 양조장을 살려서 전통막걸리도 만들고, 아내가 운영하는 전통 된장과 효소 만드는 작업장에 일손도 돕지요. 며칠 후에는 최근에 더욱 심해진 기후변화와 핵발전소 문제, 석유가격의 폭등, 동북아 긴장이 심해져서 아시아평화센터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평화포럼에 참석할거고요. 내년에는 버스를 빌려서 중국여행을 하려고 여행모임 사람들과 계획 중입니다. 기본소득 지급 후 요즘은 예전처럼 대기업 직장 잡으려고 대학을 진학하는 비율이 줄어서 폐교하는 대학교가 생기고 있는데요. 대신에 대안적인 삶과 적정기술, 미래의 환경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공부를 하는 대안대학은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고등시민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의 학구적인 요구도 있고요. 그래서 더 공부하려는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협동조합으로 대안대학을 열기로 했습니다.
시민 8 (여, 27세): 저는 현재는 영국에서 미술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유학생인데 기본소득은 제 꿈을 이뤄준 은인이에요. 경비가 많이 드는 미술 유학은 우리나라에서 중간계층이라 해도 엄두내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온 가족의 기본소득 덕분에 이룰 수 있었어요. 제가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부모님 뿐 아니라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하나뿐인 손주라고 당신들의 기본소득을 매달 기꺼이 저에게 투자하시겠다고 하셨지요. 당신들은 그 동안도 기본소득 없이 생활하셨으니 괜찮다고 하시면서요. 와서 보니 한국 유학생 중엔 저보다 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많았어요. 요즘은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거나 젊은이들을 직접 후원하려는 어르신들이 많대요. 정말 감사드려요. 저도 많은 분들의 지지로 이룬 꿈이니까 그 보답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가서 지역사람들과 지역사회를 위해서 제 재능을 기부할 거예요. 동네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자주 친교의 장을 펼치며 이웃 간에 우애를 쌓을 수 있도록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을 마을마다 많이 배치하고 싶어요.
시민 9 (여, 28세): 제가 막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 기본소득이 실시되었어요. 오늘 고등학교 시절 일기를 뒤적이다 3학년 때 쓴 이런 글을 발견했어요. 이 일기를 읽는 것으로 인터뷰를 대신하겠습니다.
“기본소득은 참 신비롭다. 학교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1학년 때만 해도 친구문제, 이성문제, 진로문제로 답답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반 아이들은 정규수업, 자율학습, 보충수업, 과외수업에 지쳐서 쉬는 시간이면 엎드려 자기에 바빴었다. 혹여 여유가 좀 생겨도 항상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었기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며 당장의 고민거리도 미뤄놓아야 한다고 여겨서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를 않았다. 소통과 공감은 대학만이 인생의 최종목표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부재한지 오래였다. 사십 명이 함께 있어도 고독하고 외로웠다. 일등급만이 중요한 학교시스템에 경쟁 말고 더불어서 함께 하기란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기본소득 실시 후 입시에 대한 의미가 바뀌면서 경쟁이 누그러지고 학교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모든 활동이 대입을 위한 스펙 쌓기가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활동들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다. 아이들은 적극적이고 생동감 있게 하고 싶은 것들 중에 잘 할 수 있는 걸 발견하며 스스로 꿈을 만들어낸다. 학교폭력, 왕따, 교권붕괴 현상도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수업 커리큘럼에도 변화가 생겼다. 국영수 중심의 주입식 문제풀이가 아닌 창의적 미술 음악 체육활동이 확대되어 진정한 의미의 예술을 느끼고 표현 할 기회가 된다. 예술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으니 참 풍요롭다. 학교 가는 일이 즐겁다. 내내 앉아서만 수업하는 일이 줄어들어 변비에서도 탈출이고 편두통도 사라졌다. 처음엔 부모님이 고등학교 생활이 이렇게 한가로워져도 되냐고 불안해하시더니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점점 그렇게 되니까 같이 행복해하신다. 이제 고등학생도 좀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시민 10 (남, 61세): 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사람인데 사실은 기본소득 반대론자였어요. 그것도 보통 반대론자가 아니었지요. 옛날에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미친 빨갱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열렬한 예찬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경제를 공부했다는 사람인데 우리나라가 수출에 의지하지 않고도 이렇게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니 내수경기가 살아나고 사회가 모든 면에서 활기를 띠고 있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과거 수출주도산업은 대기업만 배불리는 일이더니만, 지금은 동네 상권이 살아나고 그야말로 서민 경제가 살아나잖습니까? 유아용품, 관광, 레저, 취미, 학교 건설 쪽 산업도 활발하고요. 그래서 저도 내친 김에 몇 해 전 이 동네로 이사 왔지요. 기본소득 운동에 초창기부터 참여하던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서 왔지요. 저도 이제 주민들과 공부모임을 하면서 현실 생활에 기반을 두고 경제를 예측하고 미래의 사회 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계속 하고 있어요.
시민 11 (여, 37세): 저는 이 마을에서 '그냥 좋아서 하는 찻집'을 8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기본소득이 도입되던 해에 저는 스물일곱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한지 3년이 지나도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고,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못찾고 있었죠. 그러다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서 의욕이랄까, 희망이 생겨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2년 동안 알뜰히 모아서 종자돈을 만들었고, 찻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좋아서 이 일을 직접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서 차를 하는 지인에게 꽃차, 녹차, 귤차 등을 구입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배워서 직접 만들고 있어요. 여긴, 상호에서도 느끼겠지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죠. 힘들고 외로울 때 잠시 쉬어가는 공간도 되고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그래요. 매달 받는 기본소득으로 최소한의 현금 지출은 충당할 수 있으니까 찻값을 공산품이나 농산물로도 받아요. 손님들도 이 방식을 더 좋아하셔서 채소나 과일, 곡식은 물론이고 밑반찬, 간식거리, 생필품과 옷도 넘쳐나서 살 일이 없어요. 이젠 서로의 필요를 합리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서 매주 제가 필요로 하는 물품 목록을 찻집에 게시해둬요. 물론 목록에 없어도 받고요. 한 번은 이웃 할머니께서 손수 뜨개질한 겨울 조끼를 가지고 오셔서 너무 기뻐서 한 달 이용권을 드리기도 했어요!
기자: 이상 대구녹평마을 시민들에게 기본소득 전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 외에도 경찰공무원 내부의 민주화, 상명하복 직장문화의 청산, 권위주의 완화, 소비지향성 감소, 유흥문화 쇄신 등을 이야기 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희 대구시민방송 역시 기본소득 도입 후에 바른 언론을 꿈꾸는 전직 방송인 3명과 일반 시민들이 뜻을 모아서 협동조합으로 시작하였습니다. 7년 만인 현재는 대구 시민이 가장 신뢰하는 방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동안 대구시민방송조합을 후원하고 지켜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대구시민방송은 앞으로도 바른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현장에 늘 시민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꼼꼼히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요~ 오탈자나 글자가 반복되거나 빠져서 잘못 편집한 부분 등등 뭐라도 발견해주세요
접고싶어 --> 접고 싶어
친구분들과 --> 친구 분들과
아래아 한글에다가 붙여 넣기를 해서 맞춤법 검사를 하시지요
F8을 누르면 맞춤법 검사가 시작 되는데 그냥 넘길것은 넘기고 고칠것은 고치시고......
오케이~
고치고 싶은 것만 고쳤어요~
못 잡았죠, 가축 똥으로, 늘어난 거죠.....
이런 것들이 제겐 어색해서 안띄우고 그냥 놔뒀는데 어때요? 어찌 생각하시는지?
여러사람이 생각과 에너지를 모아 차곡차곡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확드네요..(물론 영님의 다듬질솜씨 덕분^^)
붙이고 다듬고 보태고...
요대로 좋아요~ 마춤법이나 문장들이 읽을때 입에 붙으니
따로 더 손볼필요도 없을듯 하고요..
근사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짝짝짝. ..
본문은 아래 공모전에 참가하여 최종 다섯 작품 중에 선정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