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1:19-20. 거듭난 자의 삶.
오늘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앙은 행위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믿음과 행위는 함께 가야 하는데 그 세 번째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이스테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너희가 알거니와 라는 명령형, 직설법입니다. 직설법으로 보면 18절에서“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과 연계해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자신이 새롭게 중생된 자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령법으로 받는다면 중생된 자임을 알라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듣기는 속히 하라...‘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라’약1:19.
막4:23-24,에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반대로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눅8:18,에서는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무엇을 듣던지 삼가서 들어야 하고 또 이것저것 다 듣지 말고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세상정보에 민감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잘 경청해서 순종하고 가르칠 때에는 신중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참으로 많이 듣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면 1년에 52번의 설교를 듣습니다. 주일 오후예배까지 합치면 104회의 말씀을 듣습니다. 수요예배까지 합친다면 156회 금요기도회까지 한다면 208회 이것은 엄청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눅12:48,에서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만큼 나는 변화되었는가? 말씀에 얼마나 순종했는가? 행10:33절에서 고넬료는 베드로를 청해서 설교를 들을 때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삼상3:10절에 “여호와께서 임하여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도 사무엘처럼 이런 자세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속히 듣고 조심해서 듣고 또 들은 대로 행하는 믿음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19절에서 말하기는 더디하라(말하기는 더디하며)약1: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7:27)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란에서 보존하느니라”(잠21:23)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 우리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과묵해야 할때가 꼭 필요합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 귀는 항상 열려 있어 입보다 배나 들어야 하고 입은 두 번 들은 것을 한 번 말하라고, 혀는 늘 이빨 사이에 있음을 기억하고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마12:3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던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내 말에 대해서 심문을 받는다는 생각을 우리는 의식하고 말할까요? 말에 조심을 경고하시는 메시지입니다.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은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속에서 언어생활을 잘해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숙된 그리스도인은 내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자입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후에 살리는 말 힘을 실어 주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기를 죽이고 의지를 꺾고 절망하게 된다면 이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대인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3:1의 원칙을 지키라고 합니다. 즉 3번 듣고 1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 기도에서도 필요합니다. 쏘아 올리는 화살기도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깊이 묵상하는 일이 참으로 좋습니다. 최고의 손님 대접은 그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17:27,에는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했습니다. 빌2:3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자기 자랑은 금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기 PR시대라고 하여 스스로 자기를 알리려고 아우성을 치는데 성경은 반대로 자신을 자랑치 말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자랑치 말아야 할까요? 롬3:27절에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구원받은 공덕이라면 죄를 토해낸 일밖엔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에는 주님을 자랑할 뿐이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고전4:7절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가진 것이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즉 모든 소유권이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신 재능도, 물질도, 능력도 신령한 은사도 건강도, 다 주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에 나 된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세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아오니 주께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셋째,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해도 혹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해도 그 일을 하도록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자랑을 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약3:10절에서 한 입에서 쓴 물과 단 물이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생각없이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은 우리에게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잠6:16-19절을 보면 “여호와가 미워하는 것 육칠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거짓된 혀, 이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말로 죄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주의 일꾼들은 말의 신중하라고 하십니다. 잠26:20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특히 나를 높이기 위해 상대방을 비난할 때 하나님은 보고 계시며 그것을 악하게 보시고 그 뒤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출20:7, “너는 너희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하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리라”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진실하라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20절에 성내기도 더디하라 하십니다.
약1: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엡4: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분, 혈기는 자제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자제력이 상실되면 결국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혈기가 생기면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 분을 이길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분을 삭힐수 있다 하여도 결국 안으로 쌓일 때 그것은 화병으로 우리의 몸을 망가뜨립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일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래야 죄악 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비난, 폭력도, 혈기도 그리스도인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