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 25탄 “스펙터”가 나온 지 4년이 되어간다. 후속작이 없는 건지 궁금하다. 경쟁이 될 만한 오락작품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신작을 만드는 일이 쉽진 않다. 그동안 본드 팬들이 우열을 가리는 선택을 여러 번 시도하였다. 우수작, 본드 배역의 연기, 악당의 수준에서 본드 걸까지 점수를 매기곤 하였다. 내가 선정한 최고작은 여섯 번째 “007과 여왕”이다. 대중의 평점은 최하이지만. 처음으로 접한 작품이어서 정들었나 보다.
이전에는 편집을 맡았던 피터 헌트가 메가폰을 잡았다. 다른 작품에도 손을 댔는지 모르지만, 좋은 화면을 만들어냈다. 주제가는 루이 암스트롱으로,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를 기용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영화 곳곳에 정통 시리즈를 계승한다는 암시가 숨어 있다. 본드 역은 호주 출신으로 영국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조지 라젠비가 단 한 번 첩보원으로 활약한다. 스키 선수라는 경력이 스토리와도 맞았다. 숀 코너리의 스키 실력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출연료 협상에서 절충에 실패했는지 여러 소문이 있었다. 코너리가 복귀하면서 라젠비는 실직 첩보원이 되었다. 홍콩에서 영화를 만들기로 했지만, 브루스 리가 사망하였다. “스카이 하이”에서 왕유와 함께 나오지만 평범한 액션물이었다.
여주인공으로는 다이아나 리그가 기용되었다. 흔히 본드걸이라 부르는 배역과는 조금 다르다. 극중에서 본드와 결혼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바로 피격 사망하는 새드 앤딩이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사망한 아내의 묘지에 헌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리즈가 좋아하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007과 여왕”이라는 제명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여왕의 비밀 작전이며,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벌이는 작전이니 더욱 비공식으로 진행되고, 진행과정에서 나만의 여신을 만난다는 뜻이 동시에 들어 있다.
다이아나 리그는 1938년 7월 20생이다. 사생활과 커리어를 단정하게 관리한 배우로 인정받아 데임의 작위를 얻었다. 1982년 작품으로 “검찰측의 증인”에 나온다. 1957년 빌리 와일더의 영상을 완벽하게 흉내낸 영화다. 찰스 로톤의 역할은 랄프 리차드슨이 맡고, 마를렌 디트리히는 다이아나 리그였다. 데보라 카의 조연 배역이 올드팬들에게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