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고기 나누어 먹었던 이야기》
한의에서 밀려오는 찬바람은 월강의 건질메를 달려 아릿동네 삼거리까지 휘몰아치는 정월의 한가한 날들!
아배들은 동네에 모여 윷놀이 하거나 동락 계원들은 텁텁한 농주 들이켜고 육자배기 가락에 취하고 엄매들은 자식들 학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달새를 베러가러 갔었다. 아이들은 딱 지치기 연날리기 팽이치기를 하였고 청소년들은 종종 장작 나무하기 위해 산에 갔었다.
그 때 나는 중학생이어서 아이들과 정작 나무하러 많이 다녔다. 장작 나무는 주로 소나무 베고 남은 등걸과 낙엽송 밑둥인 물걸이 그리고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나무를 토막토막 내서 가마니에 넣어 지게에 지고 집으로 가져왔다. 우리의 무대는 주로 조합한 안산 돌땅메 지수꿀재였고 종종 대보 넘어 분토리 작은 떡절까지 가기도 했었다.
그날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훈훈한 바람마저 불어대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아침밥 먹고 삼거리를 나갔더니 아이들이 작은 떡절에 도추 나무하러 가자고 하였다. 함께 가기로 뜻을 모으고 지게지고 도추 들고 삼거리에 모였다. 작은 떡절은 월강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양지바른 산으로 분토리와 가깝고 산을 넘으면 덕병리가 있는데 덕병리 옛 이름이 떡절인 것을 생각하면 덕병리와 인연이 있는 듯하다.
삼거리에 모인 우리는 방천을 넘어 이씨보 대보징검다리를 건너 작은 떡절 야산에 도착했다.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본격 적으로 장작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좌우로 돌아다니면서 땔감이 될 만한 나무들을 도추로 찍어 잘게 만들고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나무 등걸은 적당한 길이로 잘라 가마니에 담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가지고간 가마니에 장작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위로 조금 올라가 땀 흘리며 장작 될 만한 나무를 찾고 있는데 뭔가 눈앞에 커다란 물체가 아물거렸다. 처음에는 섬찟하니 무서워 지근거리까지 가지 못하였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켜 가까이 가서보니 커다란 송아지인지 멧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짐승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니 노루 어미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는 철사 줄 덧에 목이 걸려 몸부림치다 쓰러져 있었다.
나는 노루를 집에 빨리 가지고 갈 욕심에 가마니에 담긴 장작 나무를 다 비우고 함께 간 막내 동생에게 가마니를 벌리라고 하여 간신히 노루를 집어넣어 지게에 지고 끙끙대며 산에서 내려와 대보를 건너고 방천을 넘어 되돌아 왔다.
집에 가지고 와서 아랫집 아저씨에게 노루 고기 해체하는 것을 맡겼다. 솜씨 좋은 아저씨는 내장은 버리고 앞다리 뒷다리 머리 5등분하여 아릿동네 가까이 사는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월강에서 대대로 나려오는 금기시하는 풍속 중에 야산에서 주워온 짐승은 나누어 먹어야지 혼자 먹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멧돼지나 노루 등을 산에서 가져오거나 심지어는 집에서 돼지를 잡으면 커다란 가마솥에다 고기 일부를 푹 삶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즐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었다.
옛것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최고만을 추구하여 인정이 메말라 가고 있는 오늘날 나는 그 시절 노루를 주워 고기를 나누어 먹었던 일을 떠오르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모내기 논매기 벼 베기와 탈곡하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밥과 술을 베풀던 모습들이 희미한 기억 저편의 영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믿고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인간적인 정이 넘쳐흘렀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서구 문물이 밀물처럼 밀려와 우리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변하여 조상 대대로 이어온 서로를 도와주는 미풍양속이 사라지는 현실은 어떻게 보면 시대적 흐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
첫댓글 김재일 선생님! 지금도 시골 일부에서는 산짐승이나 가축을 잡으면 동네 분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곳도 있습니다. 추억을 일깨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날 되십시요.
시골은 아직도 많아 남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도시인들도 마음은 있지만 여의치 않아 그러겠지요! 그렇지만 어릴 때 받았던 인상은 요즈음 하고는 비교할 수 없겠지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