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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현의 노래’
1. 작가의 변
김훈은 소설가라는 명칭보다 자전거 레이서로 불리기를 원하는 작가다. 자전거 여행에서 건져 올린 것들을 책으로 써내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신문기자로 일하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단편소설 「화장」으로 2004년 이상 문학상을, 「언니의 폐경」으로 2005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국조(國祖) 단군이 이 땅에 도읍한 이래 임금이 이민족의 발아래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최고의 국치인 '삼전도'의 상황중 남한산성의 기록을 엮은 『남한산성』등의 작품이 있다. ‘삶의 허무와 비애를 풀어낸 탁월한 문장가’, ‘폭력속에서 아름다움을 꿈꾸는 반항의 영웅’이라는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03년 1월부터 10월까지 김훈 선생은 가끔 서초동 국립국악원 안의 악기 박물관을 기웃거리면서 오랫동안 악기를 들여다보다가 혼자서 밥을 사먹으며 소일한 후 그해 겨울 악기들의 맹렬한 적막에 관해 쓰기로 작정. 그해 겨울 내내 일본 교토(京都)에 머물며 ‘현의 노래’를 마무리지었다.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교토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저녁이면 불을 밝히고 ‘현의 노래’를 썼다.
작가는 겁의 세월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시간을 찾아 추리와 공상과 망상과 상상의 바위벽을 맨몸으로 부딪치고, 주먹으로 두들기며 우륵이 살았던 고대 가야국의 대숲까지 가서 오동나무 널빤지 들을 만난다.
2. 줄거리
이 소설의 무대는 가야가 망하면서 삼국시대로 재편되는 전란의 시대다. 가야 멸망 직전 여러 고을의 소리를 담아 가야금을 만드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는 일, 망국의 소리를 담은 금(琴)의 노래, 곧 현의 노래다.
소설은 늙어 죽어가는 가실왕의 죽음으로 왕의 측근과 백성들을 생매장시키는 순장제의 비인격과 잔인함으로 시작된다. 가야에 많은 제도가 있었으련만 작가가 순장으로 소설을 풀어가는 것으로 첫 단추를 낀다. 우륵이 사는 대숲에서 애장장이 야로의 쇠터로 옮기면서 당대 최고의 악사와 쇳덩이와 평생을 보낸 대장장이의 만남은 '칼의 길'과 '악기의 길'을 대표하는 두 인물 비슷한 행보를 다루면서 묘한 이질감과 반향을 일으킨다.
둘 다 처음에는 가야를 위해서 공헌하지만 신라를 위해서도 공헌한다. 신라에 귀순하는 것도 똑같다. 또한 그 둘이 다루는 소리와 쇠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흐르는 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의 최후는 다르다. 가야와 신라 양측을 오가며 병장기를 만든 야로는 가야의 몰락으로 아들과 함께 신라로 귀순하지만 신라의 이사부장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우륵도 신라로 귀순하고 신라의 진흥왕 앞에서 노래와 춤을 한 후에 신라의 소리를 만들라는 명을 받는다. 우륵은 살고, 야로는 죽었다.
가야는 가장 늦게까지 순장의 풍습이 남아있었고 왕이 죽은 날 순장예정인 궁녀 '아라'의 도망으로 가야 궁궐은 어수선해지고 후일 도망친 아라를 만난 우륵은 제자인 니문과 맺어준다. 그러나 후일 새로운 왕도 죽게 되고 아라는 잡혀서 순장을 당하게 된다. 신라로 귀순한 우륵은 왕 앞에서 12현의 가야금을 연주한다. 신라왕의 명에 의해 신라의 악사에게 가야금을 가르치고 음악을 전수한 우륵은 이국의 땅에서 숨을 거두지만 가야의 금은 신라인에 의해 전수된다. 가야가 망하고 쇠(무기)는 죽었지만 소리는 살아가고 있다.
3. 등장인물
소설의 주인공은 우륵과 신라장군 이사부,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 이 세 사내들이 벌이는 팽팽한 긴장을 대비시키며 흘러간다.
1) 우륵과 니문
가야의 악사이지만 나라를 생각하기보다는 소리를 생각하는 장인이다. 제자 니문과 함께 가야의 소리를 만들라는 가야 왕의 명령과 신라의 소리를 만들라는 신라왕의 명령에 대해서 거역하지는 않는다. 소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흔들릴 때에만 존재할 뿐이지 누구의 소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소리 자체에 심혈을 기울인다.
2) 대장장이 야로와 그의 아들
가야왕의 신임을 받는 가야의 백성이나 쇠는 주인이 없이 흐르며 잡는자가 주인이라며 적국인 신라에도 은밀히 무기를 제공한다. 후일 가야가 망하자 신라에 귀순하기를 원하나 이중으로 무기를 제공한 것을 안 이사부 장군에 의해 아들과 함께 참형을 당한다.
3) 신라의 장군 이사부
신라가 가야를 함락하는 일의 선봉에서 공을 세운 신라 장군
4) 가야왕의 시중드는 하녀 아라, 군사, 순장당하는 사람 등의 등장인물과 전개되는 이야기가 많다.
4. 작가가 하고자하는 말은 무엇일까?
우륵과 야로의 대비, 우륵이 추구하는 소리의 세계 등이 주제와 연관이 되는 듯하다. 책의 두 줄기는 전쟁과 평화의 공존이다. 전쟁의 대표적인 것은 무기다. 대장장이들은 더 강한 쇠를 만들기 농장기를 만드는 것보다 칼과 창과 방패, 활촉을 만드는 일을 중요시했다. '병장기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 병장기는 소유한 자의 것이다.'고 말하는 야로에게는 오직 병장기 만드는 기술만 있을 뿐, 병장기에 가야의 혼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염두에 없었다. 정복하기 위해 힘을 기르지만 생명을 부여받지 못하고 과거라는 이름아래 사그라졌다.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왕의 죽음 앞에서 금(琴)을 타고 노래하면서 죽은 자의 넋을 달래는 악사 우륵도 가야의 멸망과 함께 귀부하지만 목숨을 연명하자는 비열함이 아니라 망해가는 가야의 혼을 12줄 가야금 소리에 담아 역사의 승자로 남은 신라를 통해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소리는 살아있는 동안의 일이다. 살아야 소리를 낸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망해버린 가야의 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가야 각 지방의 서로 다른 소리를 담은 12줄 가야금의 소리가 소리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역시 살아남은 신라를 통해서 일뿐이다.
가야의 멸망을 두고 신라를 택한 우륵은 신라의 세 악사에게 가야금의 소리를 가르쳐준 뒤 칠십 평생의 생을 마감한다.
우륵이 만든 가야금은 신라를 통해 후세에 전해지며 우륵의 가르침을 받은 신라 관원들이 뜯는 금에서 망해버린 옛 가야 지방인 물혜, 달기, 다로, 알터, 바람터의 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결국, 현의 노래는 곧 가야금의 노래이며 그것은 망해버린 가야의 노래가 아니겠는가?
중요한 등장인물로 두 가야인 야로와 우륵의 의미는 정반대다. 야로가 만든 무기에는 가야의 혼이 없고 우륵의 가야금에는 가야의 넋이 살아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야로의 대장장이직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생계수단이라면 우륵의 악사 직은 자신의 삶이었고 천직이었다고나 할까 반면에 평화의 상징인 음악은 전쟁의 시대에 현실적인 힘은 아니나 민심을 아우르는 중요한 도구였다. 쇠와 소리의 대비를 통하여 끝까지 남는 것은 칼이 아니라 국가를 뛰어넘어서도 이어지는 예술혼이라는 것이다.
궁궐의 시녀로서 순장될 운명이었던 아라, 하지만 그녀는 운명을 거슬렀다. 그녀의 삶을 도망으로 이끈 것은 소리였다. 또 가야의 소리를 담겠다는 염원으로 살아갔던 우륵, 니문의 삶은 나약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상에 소리를 퍼뜨렸다. 아라, 우륵, 니문, 이들 역시 결국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우려냈던 소리는 생명을 부여받아 우리시대에 까지 이어가고 있다. 소리라는 것은 한없이 약하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은 곧 삶의 소리라고 <현의 노래>가 말한다.
소설의 외형적 줄거리는 알려진 역사대로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키는 것, 즉 칼의 승리를 그리고 있지만, 정작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칼을 넘어서는 예술, 악기가 가진 힘에 대해서다. 악기의 힘에 대해 우륵은 “소리는 울리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덧없는 것이지만 칼과 달리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세상을 연다”고 말한다. 우륵은 새로운 시간을 여는 소리의 힘을 알기 때문에 소리를 지키기 위해 조국을 버리는 모멸과 치욕을 감당하며 신라로 들어간다. 그리고 숨을 거두면서 자신의 제자 니문에게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더 거친 아수라 세계 속에서 가라고 말한다. 아수라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열 영원한 소리의 힘을 기대하면서. “덧없는 것의 힘, 덧없는 소리가 영원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했다”는 작가의 설명은, 곧바로 지금 한국에서의 문학의 운명, 바스러져감에도 여기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한 문학주의자의 의지로 바뀌어 다가온다. “이런 의지와 허무의 양면적 모습은 모진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소리와 허무한 인간 존재의 비교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악기를 통해 세상을 품으려했던 우륵, 무기의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려했던 이사부, 가야와 신라에 동시에 무기를 제공하며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야로 부자 등은 비참하고 처연하게 세상을 떠난다. 결국 세상은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없으며 세상의 바탕이 폭력이며 하물며 우리의 역사, 아니 인류의 역사란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며 쇠(무기)의 역사이며 폭력과 유혈의 역사임을 작가는 몽유병자처럼 낭독하고 있다.” 특히 작가는 죽은 시체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통해 삶의 한계와 비루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천하를 호령하던 왕의 백골은 시뻘건 녹물에 잠기고, 이사부 시체는 똥물에 엉키고 아름답던 비화의 문드러진 허벅지 살은 닭에게 쪼인다. 삶이란 곧바로 똥물이며 비루함이라고 파악하는 작가의 현실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5. 감상과 평
줄거리는 손안에 쥘 듯 한줌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줄거리의 전후를 포장하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묵시를 담고 있다.
김훈 소설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빠뜨리지 않고 논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생각의 똬리를 틀어대는 서슬퍼런 문장력을 들 수 있다.
김훈의 '현의 노래'도 '칼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속도감 있는 문체다. 야생마를 몰 듯 독자를 몰아간다. 곁눈질 할 겨를도, 한눈을 팔 새도 없다. 그러나 '칼의 노래'만큼 문체가 짤막하지는 않다.
"음악을 모르고, 현을 모르고, 악사를 모르는 작가가 의욕을 앞세워 이야기를 쓴 것처럼 보인다."는 평을 한 이도 있다.
현의 노래는 오히려 '쇠의 노래'요 '칼의 노래'이다. 작가는 우륵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신라 장군 이사부를 이야기하고 말았다. '현의 노래'에 불려나온 우륵과 가야는 이사부의 생각을 펼치고 좁히고, 이사부 군대의 진퇴를 끌어가기 위한 장치로 전락한 느낌이다. 작가는 장군 이사부의 독백을 통해 '칼과 현은 다르지 않다'고 밝히고 있지만 어쩐지 '칼'로 기울고 만 '현'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전장의 이순신을 이야기하듯, '현의 노래'에서 전장의 이사부를 이야기한다. 우륵의 죽음과 가야금의 전승을 담은 마지막의 짤막한 몇 장들은 기실 제목 '현의 노래'에 대한 예의로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전략가요 고위공직자였던 이사부에 견주기에 우륵의 자료는 너무나 빈약했던 모양이다.
작가는 어쩌면 역사 속에 묻히고 만 민초의 삶을 빈약한 자료를 들이밀며 비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칼의 노래'에서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삶과 죽음을 노래했다. 민족과 국가, 저항할 수 없는 힘(임진왜란) 앞에 무너져야했던 개인의 삶과 죽음을 철저하게 개별적으로 노래했다.
'현의 노래'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에 걸맞지 않게, 도망친 아라가 다시 잡히는 대목에선 웃음이 나올 뻔했다. 다행히 작가 김훈은, 아마 작가도 그걸 의식했던 모양이지만, 아라가 잡혀가는 장면을 따로 묘사하지 않았다. 아라와 니문의 이별에 따로 이야기를 할애하지도 않았다. 그랬더라면 '현의 노래'는 정말 가여운 이야기가 될 뻔했다.
'현의 노래'는 '칼의 노래'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칼의 노래'의 말미에서 받았던 습관적 말솜씨와 사유의 장난이라는 의혹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현의 노래'에도 장점은 많다.
칼의 세계에 울려퍼진 현의 소리!
가야금의 예인 우륵의 생애를 다룬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 작가가 <칼의 노래> 집필 이전부터 기획했다는 이 소설은 작가 특유의 유려하고 밀도 높은 언어로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가야국의 현실과 악사 우륵의 노래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모여 있거나 흩어져 있으며, 물결을 이루거나 장애물을 찢고 나아가는 소리. 작가는 삶과 죽음이 ‘소리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라 말하며, 그 과정에서 소리가 머무는 울림판으로 쇠를 논한다. 쇠의 흐름과 쇠의 내막, 쇠의 세상은 소리의 길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와 예술, 권력과 욕망, 제도와 풍경, 국가와 개인, 언어와 자연의 대비 역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의 노래’가 압도적으로 펼쳐 보이는 비장미 가득한 분위기와 허무주의적인 주제는 김씨의 전작들이 전개했던 문제의식의 연장선 위에 서있다. 패배가 예정된 삶, 폭력과 상처의 전장, 그 헛됨의 현실 속에서,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못하고 끝끝내 생의 의지를 밀고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쓸쓸하고, 장엄하고, 비장하고 또 아름답다.
“칼, 그 대척점에 있는 악기, 칼과 악기의 중간에 있는 연장, 이들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축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을 개조하려는 꿈을 꾼다. 현의 노래는 이 셋 중에서 악기가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악기는 홀로 아름답거나, 홀로 위대할 수 없다. 칼이 있기에 위대한 것이다. 그렇다고 칼은 추악하고, 악기는 아름답다거나 악기는 강력하고 칼은 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반대도 아니다. 다만 이들이 세상을 지탱하는 축임을, 그런 세상을 그려내려 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다른 측면에서 평한 글들의 예 입니다. 참고 할 만함)
이런 의지와 허무의 양면적 모습은 모진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소리와 허무한 인간 존재의 비교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악기를 통해 세상을 품으려했던 우륵, 무기의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려했던 이사부, 가야와 신라에 동시에 무기를 제공하며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야로 부자 등은 비참하고 처연하게 세상을 떠난다.
참고 가능한 자료라고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몇 단락과 구전설화의 몇 줄이 전부인 상황에서 이를 풍성한 이야기로 옮겨낸 상상력을 따라가는 것도 소설의 또다른 재미. 작가 특유의 미문과 감각적 언어들은 소설을 찬찬히 자근자근 읽어가게 하는 장치다.
‘쌀밥위에 번진 완두콩의 초록색’처럼 선명한 색깔은 눈을 자극하고 악기소리, 짐승의 소리, 인간의 소리, 물소리, 별소리,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귀를 두드리고 ‘들숨을 들이쉴 때 창자의 먼 끝쪽이 바람의 가루들과 비벼지면서 서늘했다’는 등의 문장은 달려가는 소설을 잠시 멈추고 생각의 바다로 빠지게 한다.
특히 강의 비린내, 여성의 젖 냄새, 바싹 마른 말똥가루 냄새, 수컷의 냄새와 전쟁의 냄새에 이르기까지 온갖 냄새에 대한 묘사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장치로 다가온다.
이상 문학상 심사를 하며 문학평론가 이어령씨가 얹었던 말,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의 통합적 감동을 준다’란 문장은 이번 장편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5. 인상 깊은 구절
* “ 수많은 경이로운 악기들이 거기에 널려 있었다. 악기는 인간의 생명의 모습과 질감을 닮아 있었다. 모든 악기는 끌어당기거나 두들기거나 입술을 대기에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악기는 인간의 몸의 연장이었으며 꿈의 도구였다. 악기는 스스로 자족한 세계 안에서 꿈꾸는 듯했으나 악기는 몸이 지닌 보완물로써 불우해 보였다“
* “ 물가에서 철마다 바뀌는 물소리며 바람소리를 듣고 자란 오동나무이니 나무라도 아주 벙어리는 아닐게다” 고 우륵은 오동나무 널판을 망치로 차례로 두드리며 소리의 집이 될 만한 재료인가를 가늠했다. 나무가 소리를 먹는다. 널판의 속이 습하면 소리가 울려서 퍼지지 못하고 안으로 스며든다. 금은 줄의 소리고, 통은 다만 울림일 뿐 , 금의 소리는 줄이다. 북은 가죽의 소리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다. 징은 쇠의 소리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다.
* 소리는 몸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몸이 아니면 소리를 빌려올 수가 없다. 잠시 빌려오는 것이다. 빌려서 쓰고 곧 돌려주는 것이다. 소리는 곧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자리는 바로 적막이다. 그 짧은 동안 흔들리고 구르고 굽이치는 것이다. 소리는 거스를 수 없다.
* 우륵이 오른손으로 맨 윗줄을 튕겼다. 소리는 아득히 깊었고, 더 깊고 더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우륵의 왼손이 사라져가는 소리를 들어올렸다. 소리는 흔들리면서 돌아섰고, 돌아서면서 휘어졌다. 우륵의 오른손이 다음 줄을 튕겼다. 소리는 넓고 둥글었다. 우륵의 왼손이 둥근 파문으로 벌어져가는 소리를 눌렀다. 소리는 잔무늬로 번지면서 내려앉았고, 내려앉는 소리의 끝이 감겼다. 다시 우륵이 세 번째 줄을 튕겼다. 소리는 방울지면서 솟았다. 솟는 소리를 우륵의 왼손이 다시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더운 눌렀다. 소리의 방울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잔 방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다시 우륵의 오른손이 맨 윗줄을 튕겼다. 깊고 아득한 소리가 솟았다. 솟아서 내려앉는 소리를 우륵의 왼손이 지웠다. 지우면서 다시 우륵의 오른손이 세번째 줄을 당겼다. 당기면서, 다시 우륵의 왼손이 소리를 들어올렸다. 올려진 소리는 넘실대며 다가왔다. 다가오는 소리를, 다시, 우륵의 왼손이 눌렀다. 우륵의 몸이 소리 속으로 퍼져나갔고 소리가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몸은 소리에 실려, 없었던 새로운 시간 속으로 흘러나갔고, 흘러나간 몸이 다시 돌아와 줄을 당겼다. 열두 줄은 우륵의 손바닥에 가득 찼다. 손바닥 안에서 열두 줄은 넉넉했다. 우륵의 손가락은 열두 줄을 바쁘게 넘나들었다. 손가락들은 바빴으나, 가벼워서 한가해 보였다.
* 나무가 소리를 먹는다.* 제 몸이 바싹 말라야만 남의 소리를 울려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금(琴)은 줄의 소리고 통은 그 울림이다.* 듣는 자가 여럿이면 한 소리가 여러소리가 되어 소리는 정처없는 것입니까?- 창은 하나의 점을 공격하는 무기다. 점과 점 사이에는 지옥이 있다.- 소리는 사는 일과 같다. 목숨이란 곧 흔들리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리는 동안만 사는 것* 어째서 새 울음소리는 곱게 들리고 말 울음소리는 추하게 들리는 것입니까?- 사람은 그 덧없는 떨림에 마음을 의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떨림과 소리의 떨림이
- 울림에는 주객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物)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 들리지 않는 먼 별들의 소리가 우륵의 귀에는 귀에 들리는 듯했으나, 그 소리는 맹렬한다.
- 나무의 안쪽에서 소리는 젖어 있었다. 소리는 재료에 들러붙어서 재료를 뚧고 나오지 못했다. 소리는 재료의 안쪽으로 끌려들었다. 널판이 제 몸의 소리에 잠겨 있으니, 남의 소리를 울려 내지 못한다.
- 소리는 본래 살아 있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인 것이다.
- 소리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다. 마르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 소리는 덧없다.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소리의 본래 그러함이다.
* 들리지 않는 소리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소리는 사는 일과 같다.
* 소리가 곱지도 추하지도 않다면 금(琴)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 그 덧없는 떨림을 엮어내는 틀이다. 그래서 금은 사람의 몸과 같고 소리는 마음과 같은데, 소리를 빚어낼 때 몸과 마음은 같다.
- 소리는 몸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몸이 아니면 소리를 빌려 올 수가 없다.
-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 니문은 줄을 뜯었다. 소리는 굵고 무거웠다. 줄과 줄 사이에서 소리의 낭떠러지는 가팔랐다. 소리가 소리의 꼬리를 물지 못했고, 널판이 소리를 맞지 않았다. 어떠냐? -소리가 무겁고, 축축하옵니다. -사이가 거칠고 끊겨서 흐르지 못하옵니다. -달아나는 소리를 붙잡아서 데리고 놀 수가 없습니다. * 소리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다. 마르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 소리는 덧없다.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소리의 본래 그러함이다. 다시 한줄 뜯어보아라. 니문은 넘지도 한 줄을 튕겨 올렸다. 소리가 솟구치더니 긴 떨림을 이끌고 잦아들었다. -이제 들리느냐? -들리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소리는 사는 일과 같다. 목숨이란 곧 흔들리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리는 동안만이 사는 것이다. 금수나 초목이 다 그와 같다. -하오면 어째서 새 울음소리는 곱게 들리고 말 울음소리는 추하게 들리는 것입니까? -사람이 그 덧없는 떨림에 마음을 의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떨림과 소리의 떨림이 서로 스며서 함께 떨리기 때문이다. 소리는 곱거나 추하지 않다. -소리가 곱지도 추하지도 않다면 금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 덧없는 떨림을 엮어내는 틀이다. 그래서 금은 사람의 몸과 같고 소리는 마음과 같은데, 소리를 빚어낼 때 몸과 마음은 같다. 몸이 아니면 소리를 끌어낼 수 없고 마음이 아니면 소리와 함께 떨릴 수가 없는데, 몸과 마음은 함께 떨리는 것이다. -그 떨림의 끝은 어디옵니까? -그 대답은 인간세(人間世)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떨림의 끝은 알 수 없되, 떨림은 시간과 목숨이 어우러지는 흔들림이다. 그래서 목숨은 늘 새롭고 새로워서 부대끼는 것이며 시간도 그러하다. 소리는 물러설 자리가 없고 머뭇거릴 자리가 없다. 저무는 해가 빗겨 우륵과 니문의 그림자가 흙벽 위에 길게 늘어졌다. 저녁의 빛들이 성글어지면서 어둠이 배어들어, 어둠은 빛 속에서 스며 나오는 듯했다. 니문은 등잔에 기름불을 켰다.
* 겨울에 강은 옥빛으로 얼어붙어 고요했다. 강은 산맥들이 만나고 갈라지는 오지에서부터 바다에 걸쳐 굽이쳤으나 흐리면서 닿았고 이르러서 또 떠났으며, 얼고 또 녹아서, 국원에서 강은 시작도 없었고 끝도 없었는데 흐르는 것들은 모두 그러하였다.
* 숲의 성긴 틈새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숲속으로 들어온 바람은 여러갈래로 흩어져 나무사이를 스쳤다. 숲이 흔들릴 때마다 빛줄기들은 흩어지고 모였다. 젖은 댓잎들이 바람에 떨리면서 빛을 팅겨냈고 빛들은 깨어진 자리에서 다시 태어났다. 빛과 어둠은 꼬리를 붙잡고 놀면서 깔깔대는듯 했는데 빛들은 태어나면서 어둠에 녹아들었고 빛이 녹아드는 어둠의 안쪽이 다시 빛나서 , 빛들은 너무나 사람을 찌를듯이 달려들지 않았고 대숲에서는 나무도 사람도 그림자도 없었다.
고전의 담담함과 현대의 화려한 감각적 문체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 특히 작가는 죽은 시체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통해 삶의 한계와 비루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천하를 호령하던 왕의 백골은 시뻘건 녹물에 잠기고, 이사부 시체는 똥물에 엉키고 아름답던 비화의 문드러진 허벅지 살은 닭에게 쪼인다. 삶이란 곧바로 똥물이며 비루함이라고 파악하는 작가의 현실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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