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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제 소개 먼저 할게요
2023년 현재
전 43살
당뇨 32년차
허리디스크 29년차
혈압 23년차
만성신부전 20년차
백내장 19년차
간 질환 18년차
제 프로필만 봐서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 조차 기적이죠ㅎㅎㅎ
이렇게 지병을 갖고있어도 동창친구, 고향친구, 직장에서도
지금까지 숨겨왔고 주위에서는 그냥 저를 건강한 남자로만 알고있습니다.
저만의 관리비법은
나는 주말이 없다!
"당뇨는 게을러지면 관리가 안되기 때문에
한번 게을러지면 계속 게을러지니 남들보다 부지런만 하면 관리하기가 쉬워진다."
저만의 긍정적인 관리비법을 글로 써보겠습니다.
어릴적 앨범을 보면 유치원때부터 태권도를 했었기에 유치원사진들은 온통 태권도 도복입고 찍은 사진밖에
없었고 유치원을 태권도장에서 졸업을 했습니다.
유치원시절 집에가는 골목에서 동네애들이 大자로 길을 막으면 골목 한바퀴 돌아가서 집을 갔어야만 한
겁이 많던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태권도를 배운후 자신감이 붙어 그 후 동네 애들은 저에게 덤비지를 못했습니다.
오른쪽이 접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태권도말고 합기도를 배울려고 체육관을 옮겼고
합기도 초보치고는 태권도를 배워서 그런지 빨리 운동을 배우고 적응도 잘했고
유치원때 부터 덤블링을 잘해었기에 낙법 하나는 최고로 잘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에서 소변검사를 했는데 그때는 소변에 아무이상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방과후 운동끝나면 한참 배고플 나이라서 체육관앞에 리어카에 파는 야끼만두가 있었고
그 당시에 만두 하나가 50원 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형들하고 운동끝나면 항상 만두를 사먹었습니다.
사건의 발생은 여기서부터인거 같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운동끝나고 형들하고 만두를 사먹었습니다.
형들은 만두2개 먹고 물한잔...나는 만두1개 먹고 물두잔!!..
그래서 형들은 "넌 우리보다 만두도 적게 먹는데 물은 우리보다 많이먹냐" 라고 했던말이 기억합니다
그리고 얼마후 1991년...
집에서 우연히 소변검사 스틱이 있어서 우연치않게 검사하게 됐는데 색깔이 검정색으로 변했기에
당연히 집에서도 놀래고 다음날 동네병원 가서 혈당재니 400대가 나왔고 의사는 큰병원으로
가라했지만 집에서는 어린애가 당뇨라는것이 깊게 생각을 안해서 그냥 약국에서 당뇨약만 사먹었습니다.
(당시 처방전없이 약국에서 당뇨약을 쉽게 구입할수 있었습니다.)
한참 먹을때라 학교끝나고 친구들하고 군것질하고 집에와서는
아무것도 안먹은척 저녁밥도 다먹고 그래서 관리자체가 안됐습니다.
그래도 어린나이에 당뇨가 왔다는 것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아니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였고
당뇨에 대해 깊게 알지도 못했고 당뇨라는 것 자체도 몰랐기에
그냥 당뇨라하면 아무것도 먹으면 안되는 병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도 항상 운동은 꾸준히 다녔습니다.
집에서는 혈당기도 없었기에 소변으로 항상 체크를 했고 부모님 몰래 화장실에서
소변대신 물로 체크를 해서 색은 변하지 않아서
부모님들은 경사났다며 좋아하시고 당뇨가 완치 됐다면서 기적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항상 부모님 몰래 먹고 소변대신 물로 체크하고...
1년 넘게 이렇게 생활해 왔어도 변함없이 제 몸은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
항상 좋았기에 매일 군것질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시절엔 하루도 안빠지고 체육관에 꼭가서 1~2시간씩 운동을 했습니다.
중1시절 매점에서 매일 중독같이 먹었던 식품은 초코파이에 우유...
아마 하루에 초코파이 5개씩은 먹은거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후...
학교끝나고 운동끝나고 집에오면 항상 다리에 쥐가 났습니다.
매일매일 다리에 쥐가나서 힘겹게 살았고
그리고 매일매일 살이빠지고 피곤하고 매일 잠만 쏟아졌습니다.
수업시간에 항상 엎드려있고 그렇게 운동 좋아하던 내가 체육관도 못갔습니다.
당뇨약만 먹은게 효과가 없어 누적이되서 그만 혼수상태로 응급실로 가게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건 응급실에서 혈당이 945 나왔고
중학교 2학년 당시 키172cm 몸무게 37kg까지 살이 빠져 팔뚝이 손에 잡혔습니다.
이렇게 당뇨로인해 입원은 시작되었고
인슐린 주사라는 것을 평생맞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한마디..
입원기간에 자고 일어나 눈을뜨니 앞이 하나도 안보였고 사물자체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내앞에 사람형태는 보여도 내앞에 누가 있는지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모를정도로 앞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눈앞이 하나도 안보일때 부모님이 병실에 안계셔서 간호사 몰래 매점에 가서
당시 제일 먹고 싶었던 두유를 한봉지 사고 병실에 올라오니 간호사가 안과 가보라고 하는겁니다.
사온 두유 한봉지를 숨겨야해서 숨길때가 없어 화장실 변기통 뒤에다 숨기고
안보이는 눈으로 안과를 찾아다니는데 보이지가 않아 헤메고 있는데 주치의를 우연히 만나 주치의가
안과실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안과선생님은 제눈을 보고 백내장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안약을 넣고 낫지않으면 수술하자 하고 5일정도 안약을 꾸준히 넣었고
5일정도 됐을까 아침에 눈을뜨니 신기하게도 앞이 환하게 잘보였습니다.
입원기간동안 식이요법,운동요법등,약물요법등 1달동안 당뇨교육을 받고 퇴원을 했는데
인슐린을 맞으니 운동하는게 싫어져서 체육관에 안나가게 되었습니다..
1994년 중3시절
어제까지 멀쩡했던 허리가 하루자고 일어나니 허리가 45도도 숙이지도 못하고
한걸음도 걷지도 못할만큼 허리가 아팠습니다.
약국가서 허리아프다하면 약하나 먹으면 멀쩡해지고 시간지나면 다시 고통스러운 만큼
통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부모님한테도 말을 하지않은채
혼자 끙끙 앓면서 아픈허리가 익숙해졌고 아픈허리로 그냥 이대로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간 소아당뇨캠프
내 나이에 소아당뇨는 나만있는줄 알았는데 내또래 친구들이 왜이리 많았는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같은 또래들이 있었기에 자신감과 용기를 얻어 체육관가서 다시 운동을 하고
인슐린맞은후부터 어디나가서 자본적이 없다가 중3 졸업여행 간다고..
담임선생님한테 안간다 말하니 담임샘은 가자 나는 안간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은 어머니한테 가야된다고 말을 해서
끝내 인슐린갖고 처음으로 집이 아닌 밖에서 단체생활에서 잠을 잤습니다.
화장실에서 몰래 혈당검사와 인슐린주사 맞고..
(지금도 이렇습니다)
졸업여행에서 처음으로 내 첫무대가 열렸습니다.
장기자랑..
브레이크댄스(지금은 비보이)로 무대를 장악해서 1등의 상도 받았지요
졸업여행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하는말
너 졸업여행 안갔으면 어떡할뻔 했냐고ㅎㅎ
그 첫무대의 자신감으로 고딩 축제때도 비보이와 태권도시범등등
그 첫 자신감이 지금까지 자부심 하나로 걸어갔습니다.
축제때 제가 태권도시범했던 모습을 보고 체육선생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용인대 태권도부로 밀어주겠다고...
저는 운동을 좋아했어도 대학교가서 운동하는건 자신이 없었기에
바로 거절을 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선택을 했네요)
20여년전 사진이라 화질이 안좋습니다
학창시절에는 B-boy를 추고 다녔습니다.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녀었기에 그 당시 유행은 힙합패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힙합과 브레이크댄스(지금은 업그레이드 되면서 비보이) 춤도추고..
당시 인기그룹 듀스, 터보등등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타곤했습니다.
방가후 친구들과 공원가서 음악켜놓고 비보이로 함께 몸을 흔들었던 시절도...
한번은 춤추다가 교복바지가 찢어진 웃픈사건도 있었네요
고등학교시절 소아당뇨캠프 가서도 비보이를 췄던걸요
지금에야 흔히 갖고 다니는게 디카 아님 핸드폰카메라가 있으니 쉽게 사진을 찍을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카메라가 없으니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 없네요
댄서의 꿈도 있었지만
나는 댄서가 아닌 무도인의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10대 사진은 없고 30대 찍은 사진밖에 없네요
고1때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당뇨가 있다고 진지하게 얘기를 하니 그친구도 내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어느날 체육시간이였습니다.
그 날은 체육시간이 운동장수업이 아닌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고
수업내용은 당뇨에 대한 이야기여서 교과서에 나온 그림은 남자아이가 소변을 보는데
개미들이 한줄로 서있는 그림이였습니다.
그 때 그친구가 수업시간에 큰소리로 나를 보며 "나도 소변보면 개미들이 줄을서ㅋㅋㅋ"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쉬는시간에 바로 뒤돌려차기 한방으로 그 친구하고는 인연을 끊었고
이 후 다른 친구들한테도 당뇨있다고 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친구들은 제가 당뇨있는거 모릅니다.
고2 수업시간에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수업은 과학시간이였습니다.(담임 시간은 아니였습니다)
제 자리가 뒷자리라서 수업시간에 떠드니 선생님께서는 조용하라 했지만
저는 계속 떠들었고 선생님은 여러번 조용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떠드니 여러학생이 있는데 큰소리로 "야 당뇨병 조용해"
이 한소리로 과학시간에만 조용히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소리듣고도 가만히 있던 제가 한심할 뿐입니다.
고등학교시절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학교 가기전 새벽에 일어나서
뒷산 한바퀴 뛰고 씻고 아침밥먹고 학교가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컨디션은 좋은건 아니지만 컨디션 좋은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뒷산가서 뛰었지만
컨디션 안좋은날은 새벽에 일어나고 뒷산가서 그냥 앉아있다가 시간떼우고 그랬습니다.
한번은 이런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이 토요일로 기억이납니다
늦잠 아닌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씻고 뒷산안가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버지하고 아침을 먹는데 밥상에서 엄청 혼났습니다. 늦게 일어나서 산에 안갔다고...
그래서 밥먹다말고 뒷산가고 학교를 갔지만 지각도 안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오니 아침에 일어났던 일때문인지 부모님이 한바탕한 흔적이 보였고
그 흔적은 20년이 지나도 없어지질 않고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고등학교때 뒷산 뛴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뜀박질은 잘하는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저에게는 매우 무서운 분이셔서
생전 아버지한테 말댓구도 해본적도 없었고
아버지외 무서운 사람이 없을정도였지만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멀리 가셨기에 지금은 안계십니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도 운동은 저에게 놓칠수 없는 사항이였고
매일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운동을 했습니다.
20살 21살때 까지는 나보다 운동(태권도 합기도) 잘하는 사람이 없을거라는
나만의 착각을 들정도로 그렇게 운동을 했는데
같이 운동하던 친구가 저에게 경호원 면접보라고 명함을 줬습니다...
나한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경호원의 꿈을 안고 다음날 바로
"대한경호"사무실에 찾아갔습니다...
대한경호 사무실에서는 키도 크고 몸도 좋아서 나를 아주 좋게 봤습니다.
하지만 면접을 보고 집에서는 반대를 했습니다.
이유는....말안해도 알겠죠??(당뇨외)
그래서 운동으로는 포기를 했고 내가 엿태까지 운동하고 배웠다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운동의 꿈은 버리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동모습입니다
2000년 합병증의 뭐든 원인이 이시기부터인거 같습니다.
하루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일시작하기전 병원에 데려가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엑스레이,혈압,혈액검사,소변검사등 건강검진받고 공사판에서 일을 한참하고 있는데
소장인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오더니
젊은사람이 혈압도 높고 몸상태가 왜이러냐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했습니다.
혈압 높다는 이 한마디가 걱정해야 했을텐데 대수롭지않게 그냥 남일이냥 흘러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혈압이 높은채 병원도 안가고 살았고 제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2002년 내나이 23살때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화물자격증을 취득을하고
5톤화물차을 사고 화물기사로 일을 했습니다.
2002년 12월..
소변을 보는데 혈뇨가 나온것이였습니다.
혈뇨를 보고나서야 무섭다는것을 알고 약국가서 약사먹었는데도
혈뇨는 멈추지가 않아 동네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선생님한테 혈뇨얘기 말하고 혈압을재니 190이 나와
병원에서도 혈압이 높다고 큰병원으로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주셨습니다.
2년전인 2000년 공사판 건강검진에서 혈압높다는 얘기만 들었지 2년이 지나도록
단 한번도 혈압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혈압이 높을줄은 몰랐습니다.
병원에서 나오고 괜찮아지겠지 하고 병원도 안가고 신경도 안썼더니
얼마후 혈뇨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3년 2월..
5톤화물차에 물건을 실다가 큰박스가 왼쪽다리로 떨어져 왼쪽다리는 펴지지도 못할만큼 코끼리다리만큼 부웠고
걷지도 못할정도로 심한부상을 당했기에
회사도 출근못하고 일주일동안 동네병원가서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물리치료 받아도 나아지는 기세는 보이지가 않아 동네병원에서도 안되겠다하고 큰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당시 집이 시골이라 시내에 있는 큰병원으로 갔고 큰병원에서는 수술해야 한다하고 수술준비 다하고
수술실 바로 앞에서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내가 당뇨도 있고,혈압도 높고 다리가 심하게 부웠다고
우리병원에서는 수술못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앰블란스타고 당뇨로 다니던병원(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이 환자가 많아 받아주지를 않아
내가 서울대병원 오래다녔고 사정사정했기에 부상도 심해서 받아줬습니다.
진찰을 받고 서울대병원에서는 뜻밖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뇨있고 혈압있고 다리가 심한부상이라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들으면 다른사람 이였으면 울고 우울했을텐데
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기에 식구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리절단 얘기듣고 지난 내 과거들이 떠올랐습니다.
잘할걸..후회했던 내과거들..
병원에서는 약물요법 해보고 약물요법으로 안되면 최후의수단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병실에 올라가 링겔꽂고 약먹고 시간이 지나니 다리가 회복이 서서히 되었지만
한편 병원에서 종합검진 결과에 신장이 안좋다고 나왔습니다.
병원에 입원당시 혈압이 200, 210까지 나오곤 했습니다.
2000년 그 당시때 혈압높다는 얘기듣고 병원에만 갔었어도 신장까지 이상이 안왔을텐데라는 후회감...
그렇게 다리가 회복이 되고 퇴원을 했는데도 걷지를 못했기에 한순간에 백수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다리가 다쳐 입원했던게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입원 안했다면 혈압과 신장으로 몸이 더나빠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백수가 되도 긍정적으로 받아줬기에
몇주가 지나니 두다리로 걸을수 있었기에 다시 5톤화물차로 일할수가 있었습니다.
화물운전하면서 추억돋는 일들은
과적 2번 (과적은 적발시 경찰서가서 진술해야하고 벌금도 엄청 쌥니다)
면허정지 2번 (차는 움직여야해서 제 월급으로 알바고용으로 차는 움직이게 했지요)
서울톨게이트, 서서울톨게이트에서 높이제한에 진입해서 높이제한 박살내버렸던...
빗길에서 브레이크 밟다가 90도로 차가 돌아간 일(다행히 옆에 차가 없었음)
시골 비탈길 내리막길에서 저혈당와서 낭떨어지에 떨어질 뻔 한 일등등
화물운전하면서도
퇴근하고 오후에는 태권도장 합기도장가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매년 내분비내과와 안과진료를 꾸준히 잘받다가
2004년에 백내장진단을 받고 황반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황반검사..정말 개인적으로 죽다살아났고
지금까지 황반검사 3번 해왔지만 3번 모두 죽다살아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남들은 이 정도로 힘들지 않다고들 하는데
제가 백내장이 심해서 인지 빛보기가 정말 힘이 들정도로 저한테는 황반검사 두려운 검사입니다
망막검사 자체도 받기 힘듭니다.(빛때문에)
저는 당뇨를 앓고 있었지만 거의 7년 가까이 혈당검사를 한번도 해본적도 없었고
저한테 혈당기 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냥 인슐린만 잘맞고 병원에만 잘다녔고...
주치의는 당화혈색소 좋다 나쁘다라는 소리만 듣고 뒤돌아서면
먹고 놀고 마시고.....
그러다 어느날 어머니가 이젠 관리하라고 혈당기를 하나 사주셨습니다.
7년만에 혈당검사를 하자니 무섭고 두렵고 HI나올거만 같고..
저녁먹고 운동하고 7년만에 혈당검사를 해봤습니다.
혈당수치는 200대가 나왔고 생각보다 적게 나온거에 혼자 감탄하고 200대의 수치의 희망을 얻고
이 때부터 지금까지 혈당검사는 꾸준히 잘하고 있습니다ㅎㅎㅎㅎ
백내장 진단받은지도 벌써 13년이 됐지만 안과주치의도 항상 의아해 하십니다
이정도 백내장이면 심하게 진행이 됐고
이정도면 시력도 나오지 않을텐데 시력도 좋고..
그리고 지금 만성신부전 년차와 크레아틴수치(신장수치)에 비해
망막도 깨끗하다 하시고 매번 안과방문시 항시 듣는 말입니다
안과주치의는 매번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방심할수 없는 일!!
매년 이번 년도엔 수술하겠지라는 생각은 매년갖고 있습니다.
백내장도 진행안되고 그냥 여기까지만...여기까지만...바라고만 있습니다.
2005년도 간수치가 높다는 주치의 말....
대수롭지 않게 약만 잘먹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뒤돌아서면
먹고 마시고 놀고....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소화기내과, 안과등을 다녔지만
수치에 관해서 관심도 없었고 주치의가 말하면 그냥 "네"라는 한마디만
하고 진료실에서 나오기만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어떤 수준인지도 모른채 모르게 살았습니다.
저한테는 관리 자체가 없었고
인슐린과 복용약만 잘먹는게 관리였습니다.
2006년 2월 어느덧 내 나이는 27살.....
퇴근후 운동하다보니 다시 한번 운동의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운동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 뚜렷한 직장도 있고 지금 27살 이 나이에 운동의 길은 더이상 없고
한숨만 쉬고 있을 때....
내 머리속에 스쳐지나간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경호원의 꿈을.....
집에가서 네이버검색으로 찾아낸 "국제경호협회"
협회 사이트에 제 얘기를 썼습니다.
소아당뇨가 있는데 가능하냐고...
답변이 왔습니다. 경호교육기간동안 문제만 없으면 괜찮다는 답변의 힘을 얻고
다시한번 용기를 얻고 경호훈련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경호훈련 동영상을 보고 제 자신이 기가 죽었습니다.
교육과정이 만만치가 않았고 지금까지 제가 했던 운동은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동영상으로본 교육중에 23km달리기를 보고 충격받았습니다...
과연 내가...저걸...어떻해..
그래서 그후로 매일 뛰었습니다...
일끝나고 운동 끝나고도 뛰었고
학교운동장가서 1시간 2시간씩 뛰고 뛰고 또 뛰고 매일 뛰었습니다.
(23km달리기가 시험과목입니다)
한 편 제 주위에서는 경호원이 된다니깐 좋은반응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너가? 그걸? 넌못해.. 그건 운동을 잘해야해..머리가좋아야해..만만치 않을걸..
기타등등으로 부정적인 대답만 들렸습니다.
"좋다 어디한번 두고봐라 꼭 해내고 만다" 라는 생각을 갖고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일하고 퇴근하고 운동을하니 나름데로 힘들고 피곤했는지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토요일은 오전7시에 기상을 하지만
그 날은 금요일이였고 일이 일찍끝나 집에오니 오후 4시가 쫌넘었습니다.
오후 5시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한참 잠을 자고있는데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먹으라고 께우는 것입니다.
시계를 보니 6시였습니다.
토요일 기상시간은 7시인데 아직 한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께우나하고 그냥 다시 잤습니다.
부엌에서 어머니는 계속 밥먹으라고해서 어머니가 이상하다싶어
자다말고 부엌으로 나가보니 시간은 토요일 오전6시가 아닌 금요일 오후6시였습니다.
1시간잔게 하루잔거처럼 깊게 잠든것이였습니다.
한편 어머니는 걱정만 하셨습니다. 힘든거 할수있겠냐고..
다들 부정적으로 대답할 때 어머니만은 용기의 힘을 주셨습니다.그렇게 저녁을먹고 또 체육관가서 운동을했습니다
하루는 이런 저혈당경험을 겪었습니다.
그 날도 평사시보다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마땅히 할것도 없고 갈곳도 없던터라 친구한테 전화를 하니 뒷산에 올라간다고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같이 산에올라 가자 하고 산에 올라가기전에 차에서 혈당을 재보니 70이 나와
차에있는 ABC초코렛 3~4개 먹고 친구를 만나서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 날 찍은사진이라 이 사진만 보면 당시때가 떠오릅니다.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젊어서인지 산에서 뛰기도 하고 운동한답시고 오리발로 걸어가기도 하고...
거의 1시간정도 되서야 정상에 올라와서 친구가 싸온 삶은계란 하나와 두유 하나를 먹었습니다.
산정상이라 운동기구도 몇개있어서 친구하고 같이 운동도하고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하산하러
산에서 내려가는 순간!!!
저혈당이 온것입니다.
그 땐 정말 앞이 하나도 안보였고 눈촛점도 없었고 다리는 힘이 빠져 풀렸고
온몸은 제몸이 아닌 딴몸이 된것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당뇨인것을 몰랐고 주머니에는 먹을것이 하나도 없었고 산에는 사람도 아예 없었고
내려갈려면 1시간 정도 걸릴것이고 여기서 쓰러지면 죽는일 밖에 없는일이였습니다.
도저히 그 친구한테 나 당뇨있다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였고 그 친구는 내사정도 모른채 나한테 말걸면 나는 엉뚱한 대답만 하고..
그 친구한테 도와달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말은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여기서 쓰러지면 어떻해될까" "응급구조는 할수있을까"
"구조대원들이 여기까지 올수있을까" "쓰러지면 일어날수 있을까"
온갖 상상을 하면서 정말 정신력으로 1시간 이라는 시간동안 겨우 하산하게 되었습니다.
내려와서 친구는 헤어지기 아쉽다고 밥먹고 가자고 하는데 나는 됐다고하고 친구하고 헤어지고
차에서 혈당을 재니 LO(혈당 40이하)가 나온것입니다.
동네가 시골이라 가게도 없는 훨훨벌판이라 저혈당 상태에서 5톤화물차로 운전까지하고 구멍가게 갔는데
가는날이 장날 이라고 구멍가게는 그 날 문까지 닫았습니다.
정말 미쳐버린줄만 알았지요
그 큰 5톤차끌고 시골동네 훨훨벌판에서 가게찾는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5톤화물차로 운전하면서 가게찾다가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정차를 하고 신호대기 하고있는데
잠깐 제가 정신을 잃었나봅니다.
파란불이 바뀌고 제가 출발안하니 뒷차들은 난리가 났고
뒤에서 클락션 울리고 그때서야 제가 정신을 차렸나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런 저의 모습을 봤는지 저에게와서 한마디하고 가더군요
"젊은사람이 왜 그러냐고 쯧쯧"
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저혈당상태에서 가게를 찾는다는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무서운 도전이였습니다.
그렇게 고생끝에 가게를 찾고...
먹으면 먹을수록 더 어지럽고 더 죽을맛이였고 혀는 마비가 와서 뭔맛인지도 모르고...
누가 먹는모습을 봤다면 미친놈 소리는 들었을겁니다.
그렇게 먹고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와서
한 숨쉬고 저녁먹고 합기도장가서 또 운동하러 나갔습니다.
합기도장에서...
그렇게 나름 운동과 체력을 키우고 모든 준비가 다됐다고 생각을 하고
4년동안 정들었던 5톤화물차도 팔고 회사도 퇴직을 하고
내꿈을위해 모든 각오를 하고 서울까지 상경해서 찾아간 곳은
"국제경호협회"
운동하나는 남들보다 잘한다는 자부심이 있던 나였었는데
태권도,합기도,유도,복싱등등 유단자,운동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인지라
뒤쳐지지 않기위해서 남들보다 더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하루일과는 이렇습니다.
오후12시부터 오후4시까지 체육관에서 경호무술...
오후4시 이후에는 23km달리기 연습
태권도 합기도는 나를 위한 방어운동이라면
경호무술은 내 몸 던져가면서 경호대상자를 보호해주는 운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호무술 분위기
쉬는시간마다 저혈당 대비위해 사이다 초코릿등 매번 간식섭취만 했습니다.
고혈당에서 운동을하면 혈당이 더올라가고.. 제일 힘들었던 것은 고혈당에 운동을해서
입에 침이 마르고 목은 항상 목마르고 그래도 운동을 해야한다는 것에 더 힘들었습니다
당뇨친구들은 "그렇게 운동을 하니 혈당 조절을 잘되겠네" 라고 하지만
혈당조절은 더욱 안됐습니다.. 매일 고혈당상태로 유지해야만 운동을 할수가 있었으니깐요..
매일 그렇게 운동끝나고 인슐린을 맞으면 마약 맞은거처럼 내가 다시 살아난거처럼 컨디션이 좋아졌습니다.
매일같이 5시간 6시간 운동을해서 다리에는 항상 알베기고 집에 가는길에 사우나 들려서
뜨거운 물에 몸담그고...정말 고생 많이했습니다..
12시부터 4시까지는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4시 이후에는 망우동에있는 망우산에가서 뛰었습니다.
사이트에서 봤던 그 23km 달리기... 제가 제일 겁먹었던 그 달리기 입니다.
1차시험이 23km 달리기가 망우산에서 시험을 보니 미리 연습삼아 매일 뛰었습니다..
망우산 한바퀴가 4.7km 5바퀴이면 정확히 말하자면 23.5km입니다..
말이 23.5km지 한두번은 뛰다가 다리에 쥐가나고...그렇게 운동끝나고 겨우겨우 집에 들어가고..
그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와이프)가 매일 간식 사들고 망우동까지 와서 장어먹이고
몸부신 시켜줘서 전 그래서 힘을 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잊지못할 교육이 있었다면
전기충격기, 화생방, 교관한테 삼단봉으로 맞고 교관한테
호신술당해서 우리 교육생들 인대 늘어나고 매일 멍들고...지금은 추억입니다...
간혹 운동이 힘들어 기절하는 교육생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전기충격기는 16만볼트로 몸에 갖다되면 살이 찢어지듯이 따갑도 고통이였고
화생방은 화생방스프레이로 얼굴에 직접 뿌려 그 고통 잊을수가 없네요
두번다시 하기싫은 교육중에 전기충격기와 화생방입니다.
전기충격기 저렇게 몸에 갖다댑니다.
한팀이 안고있는데 한명이라도 손놓으면 바로 삼단봉으로 맞고
(중간에 서있는 사람은 경호대상자..대상자를 보호하는거죠)
얼굴에 빨간게 화생방스프레이
항상 운동한 탓에 몸에는 상처투성으로 조용한 날들이 없었습니다.
넘어지고 다치고 찢어지고 당뇨가 있어서 상처는 쉽게 아물지가 않더군요
일부만 보여준겁니다.
이렇게 3개월 교육과정은 끝나고 자격증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1차시험..23.5km달리기..2시간5분을 완주해야 합격...미친듯이 뛰었습니다..
고딩시절 새벽에 뒷산에서 뛰었던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그래서인지 아버지생각이 더 났습니다.
(발바닥에 그렇게 큰 물집은 처음이였습니다.)
2차시험..필기시험..이렇게 공부한적은 처음이였던거 같습니다
학창시절때 이렇게라도 공부만 했었어도....
(공부하는 컨셉이 강하죠ㅎㅎ)
3차시험..
실기시험은 모든것들을 실전처럼 해야하기위해 정장입고 넥타이매고
발차기, 낙법, 호신술, 응급법, 응대법, 체력단련등...실기시험만 3시간넘게 시험봤습니다.
실전처럼 도복이 아닌 정장입고 시험을 봐서 낙법, 발차기등 매우 어려운 난이도였습니다.
실기시험에 하이라이트 체력단련은
팔굽혀펴기50회
윗몸일으키기50회
앉아서발바꾸기50회
무릎가슴닫기50회
엎드려있다가 50cm 점프해서만세 50회
이것을 6분안에 다해야하는것입니다..
하고나면 정말 쓰러집니다.
(실기시험 분위기)
이렇게 시험을 3번봐야 합격하는건데 저는 떨어지고 떨어져서 5번만에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경호원이 되는길은 멀고도 험한길이였습니다.
정말 힘들다는 경호전문교육을 마치고 따기 힘들다는 경호원자격증을 땃습니다
그렇게 하고싶었던 운동을 해낸것이 저로써는 운동으로 "성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나서 검은양복에 검은선글라스에 옆엔 가스총에 수행경호,연예인경호,행사경호
기타등등으로 폼생폼사로 살았습니다...
한편 병원에서는 경호일을 그만 두라고하는 것입니다..매일 피로에 쌓이니깐 신장,간수치가 높아졌다고...
신장,간은 잠 많이 자야하고 뛰면안되고,피곤하면 안되고...
이런식으로 계속하면 신장투석을 해야한다고해서 할수없이 그만뒀습니다.
너무나 아쉬웠습니다..이제 시작인데...하고싶었던일은 이제 시작한건데....
그래도 후회는 안합니다. 자격증하나 딴거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2006년 12월 결혼식을 앞둔.............
와이프가 간때문에 걱정이 되서인지 저를 보건소에 데려가서 간검사를 시켰습니다.
보건소의사가 제 간수치를 보고 놀랬고....
처음하는 소리가...괜찮아요?? 이수치면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해요...
이수치로 어떻해 생활을 하셨어요????
2005년도에 간질환 판정받은지 1년넘게 알게된 제 간수치는
30이하가 정상인데 296이 나왔습니다.
보건소의사한테는 지금 간때문에 서울대병원 다니니깐 거기서
진료보겠다고 보건소에서 나왔습니다.
그 때서야 저의 뒤늦은 심각성을 알고나서야
간관리도 시작이 되었습니다.
금주!! 수면!! 피로X
신장과 간
관리방법은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관리가 되는거지요
그래서 관리차원에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집,회사,집,회사...
만나더래도 술은 한두잔 그리고 무조건 휴식휴식 또 휴식...
2006년 12월31일 다니던 직장(경호업체)에서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신장,간수치가 올랐다고 경호일말고 다른일을 하라고 강조를 했고
일반회사 입사해서 몸조리 하라고 당부의 말을 했기에
경호업체에서 나오고나서 운동의 미련을 못버린채 또 한번 제 꿈은 사라졌습니다.
당뇨외 지병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힘들게 운동하면서
저혈당,고혈당을 이겨내면서 경호원자격증까지 땃건만..
현실이 현실인만큼 받아줬습니다.
너가? 그걸? 넌못해..
머리가 좋아야해, 운동잘해야해
그냥 포기해, 꿈도 꾸지마
모두가 나한테 내뱉은 말들이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이 당신은 해내지 못할 거라
한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고향친구들 한테는 경호원 한다고 큰소리치고 서울로 왔건만
차마 고향친구들한테는 경호원 그만 뒀다는 말을 할수없어서
친구들한테는 경호한다고 속이고 살았습니다.
고향내려가면 친구들은 큰 소리로 제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내 친구가 서울에서 경호원을 해"
"내 친구중에 경호원하는 친구가 있어"
"나도 경호 해줘라"
"누구 경호해봤냐" 등등
이런 소리를 들을때마다 그만 뒀다는 말은 더 못했습니다.
저도 이런 소릴 들으면 제 자신이 뿌듯하니깐요^^
2007년 2월 새직장을 구하고
제 몸 관리를 위해
매일 집,회사,집,회사 밥먹고 누워있고 주말에도 먹고 누워서 잠만자니
체력도 바닥나고 항상 누워만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활한지도 3년째...
한번 게을러진게 3년동안 지속이 되니 움직이고 운동하는 자체가 싫었습니다.
운동한 사람이 운동안하면 살찐다는 얘기...
한순간에 몸무게도 100kg 가까이의 숫자를 찍고 살은 살데로 찌고..
누가보면 전혀 운동했던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을만큼
몸이 많이 부풀었기에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내생에 최고의 비만때 사진)
안되겠다싶어 운동을 해야겠는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운동을 할까 생각끝에
등산으로 결정을 하고 인터넷으로 등산장비 구입하고
2010년 2월에 나홀로 청계산으로 시작을 해서
지금 2017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달에 세 번은 어김없이 산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7년이 지났지만 나하고의 약속은 지켰기에 바닥난 체력도 다시 살아나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 백록담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높다는 지리산 천왕봉
그 외 여러산들 다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정상 천왕봉
1박2일 산행였기에 새벽6시에 찍은사진이라 어둡게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높다는 한라산 백록담
이렇게 산을 열심히 다닌 결과
몸무게도 20kg가까이 빠졌고 이젠 주위에서도 그만 살빼라는 말을 해서
지금은 몸무게유지하고 있습니다.
2012년
신장카페 동호회모임을 나갔습니다.
모임나가서야 충격요법을 받은채 그 때 부터 신장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당뇨인들도 만성신부전 판정을 받고 대부분들이 5년 안에 투석을 한다는 거!!
지금까지 내가 생활해왔던 생활들이 자살행위였다는 것을 뒤늦개 알았습니다.
당뇨와 신장은 극과극....
당뇨에 좋은건 신장에 안좋고 신장에 좋은건 당뇨에 안좋고....
근육도 있으면 안되고 심한운동도 금지라는거....
지금까지 근력운동과 심한운동으로 살아왔건만....
신장에는 한약이 독약이라는 거
(혈뇨 나왔을 때 한약한방약국에서 약탄먹은 기억이..ㅎㄷㄷ)
신장모임에서의 충격요법 이 후 만성신부전 9년차때부터 관리 시작했습니다.
저염식으로 식이요법...
주치의도 그렇고 신장환우들도 심하게 운동하지마라 근력운동 하지마라 등등
하지만 운동은 멈출가가 없었습니다.
2012년도에 알았던 저와 같은 시기에 만성신부전 이였던 환우들은
지금 다 투석을 합니다.
저도 지금 하루하루 긴장을 하면서 살지만
당뇨26년차 만성신부전 14년차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주치의도 매번 의아해 하십니다.
2013년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입원기간에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엑스레이 결과가.....허리디스크가 있다고....
내가 중3때부터 아팠던 이유가 허리디스크?????????
허리디스크 검색해보니 지금 제 증상하고 일치하는 것입니다.
허리아프고 아팠고 풀편했던 이유가 허리디스크였다는게 미련하게 20년만에 알게되었고
중3때 약국에서 먹었던 약이 진통제였다는 것도 20년만에 알게되었습니다.
참 제가 미련한 놈이였습니다..
2015년...
산을 다니다보니 또 한번 욕심이 생겼습니다.
10년전 경호원자격증에 도전은 했었지만 실천에는 못미쳤고
운동의 미련은 아직도 못버린채
다시한번 운동으로 자격증을 따고 싶어 설마 등산에도 자격증이 있나싶어
네이버검색을 하니 등산자격증이 있는겁니다.
바로 등산연합회에 문의하고 등산학교에서의 등산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론교육,실습교육...
등산하면서 몰랐던 상식, 안전산행, 즐거운산행 등등
배웠습니다.
산에서 부상자 만났을 때 업고 내려오는 방법
베낭이 무거워도 어깨에 힘을 안줘도 가볍게 매는 방법등등
1차교육... 1일 교육
2차교육... 1박2일 교육
3차교육... 2박3일 교육
이렇게 교육을 받고 등산자격증 시험을 봤습니다.
1차 2차 3차교육에서 강사들의 강의중에서 토대로 1차시험 필기시험 60문제가 나왔습니다
(객관식, 주관식)
2차시험
응급처치법(삼각법, 심폐소생술 그외 등등)
참고로 삼각건 잘했다고 칭찬받음 (전 경호시험에도 응급처치법 시험경험있음)
3차시험
50여명 앞에서 구술시험
( 베낭매는법, 스틱사용법,그 외 등등 50여명 앞에서 말로 대답하는거)
시험관님이 저한테 하는말 히말라야 타야할 체격이라는 칭찬사례도 받았습니다.ㅎㅎ
이렇게 교육과 시험으로 당당히 등산지도자자격증에도 취득을 하였습니다.
주치의는 등산도 왠만하면 가지말고 그냥 둘레길정도만 하라는..피곤하면 안된다고...
피곤하면 간,신장수치 오른다고....
서울둘레길 스템프투어 거리 총157km
이런게 있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만만한 코스가 아니였기에 망설이다 망설이다 여러번 생각을 접기도 했고
완주를 못할거면 차라리 시작도 안하는게 나을거 같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습니다.
거의 6개월 이상은 할까말까 생각만 했던거 같습니다.
도전! 이라는 생각을 해보고 2016년 1월부터 하기로 결정하고
체력을 키우기위해 등산도 열심히 다녔고
2016년 1월부터 저의 도전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기본 20km 7시간 8시간 걷고.....
그래도 6년동안의 등산경력이 있는지 체력은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개월동안 포기하지 않고 고생끝에 157km를 다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둘레길 완주증
종이한장이 제가 하고싶은 말들을 전해주네요
어느 산악회에 가면 꼭항상 있는 것은 하산후 뒤풀이..
운동하러 가는 것인지 먹으러 가는것이 아니기에 항상 후회만 남기고 오기에
당뇨인들을 위한 산악회가 어디하나 찾아봐도 없기에
제가 한번 당뇨산악회를 결성해봤습니다.
산악회 이름은 "말벅지산악회"
(밴드에서 "말벅지산악회" 검색해보세요)
당뇨인이 아니더래도 허벅지는 튼실해야하죠
그리고 당뇨인은 허벅지에서 인슐린 생성이 많이 된다해서
허벅지 근육을 키워야하기에 말벅지산악회라고 지워봤습니다.
역시 같은 당뇨인들과 산행을 하기에 뒤풀이도 없고 있다해도 하산후 간단한 식사와 후식 정도..
산행시 수시로 혈당체크 간단한 산행에서의 식사..
다들 너무나 만족을 하였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준 말벅회(말벅지산악회)회원들을 위해
대장의 사명감을 갖고 말벅회 안전을 위해
안전교육에 관한 공부를 하고
안전교육지도사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나를위해 동료를위해 내 주위사람들을 위해!!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히말라야!
나도 언젠가는 꼭 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암벽등반, 빙벽등반을 하고있습니다.
그깟 당뇨있다고 못하고 못가고 저한테는 안통하니
언젠가의 저의 꿈을 안고 열심히 도전해 보겠습니다.
훗날 히말라야 정상에서 태극기휘날리는 사진 한 장 찍고 인증해 보겠습니다^^
2017년 1월...
지금까지 걸었다면 이젠 뛰어야겠지요
그래서 마라톤에 도전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운동은 중간중간 간식먹으면서 운동은 했지만
마라톤은 쉬는 타임이 없기에 저혈당만 오면 끝나는 것입니다.
아니 마라톤대회도중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그게 다행이겠죠
저만의 마라톤 노하우는
마라톤대회 당일 아침은 인슐린 3/1만 맞고 식사하고 간식먹고 일부러 혈당을 높이는 것입니다.
뛴다해도 혈당은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혈당만 올라갈 뿐입니다.
이 방법은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30여년을 운동한 탓인지 10년전에 경호1차시험 탓인지
첫 마라톤대회 출전을 겁도없이 마라톤하프 21.0975km를 완주를 하였습니다.
하프는 3개월이상 훈련받고 출전하는 것을 저는 연습이여야받자 마라톤대회전
4km, 8km 뛴게 다였습니다.
이젠 또 마라톤의 매력을 느껴 달달이 마라톤대회 참가신청 다해났습니다.
2년후에는 마라톤풀 42.195km 도전할 생각입니다^^
매일 뛰고 걷고....
발바닥에는 굳은살로 걷기에도 아프고...
발톱은 항상 멍이 들고...
아름다운 상처들
당뇨가 있으면 근육이 안나오는 말!
당뇨가 있는사람은 비당뇨인보다 근력운동을 많이해야만 근육이 나올수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비당뇨인이 3시간만에 운동해서 근육이 나온다면
당뇨인은 10시간이상 운동해야 근육이 나옵니다.
그만큼 근육나오기가 비당뇨인들보다 힘이 듭니다.
근육이 생기고 운동을 안하면 당연히 근육은 들어갑니다.
이거또한 비당뇨인들보다 근육이 빨리 들어갑니다
예를들면 비당뇨인이 10일만에 근육이 없어진다면
당뇨인은 3일전에 근육이 없어집니다.
제가 당뇨가 있으니 비당뇨인들 보다 더 많이 근력운동을 오랫동안 많이 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당뇨가 왔지만 아령을 꾸준히 들고다닌 탓인지
일반 건강한 남자들보다 더 건강한 팔뚝을 갖고있습니다.
학창시절때 부터 아령을 들기시작했었죠
아마 펜들은 시간보다 아령을 든 시간이 많을정도로요ㅎㅎㅎ
저는 헬스장에서 운동한적도 없고 트레이너 붙어서 운동한적 없이 저혼자 조용히 집에서 근력운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주치의는 더이상 근육을 키우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신장과 당뇨는 극과극입니다.
당뇨에 좋은것은 신장에 안좋고 신장에 좋은것은 당뇨에 안좋고...
근육이 있을수록 신장수치가 오른다고 주치의는 가볍게 유산소운동만 하라하네요
가끔 아령들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어쩌겠어요
술NO! 담배NO!
좋은 일이 있어도 아령들고
기쁜 일이 있어도 아령들고
나쁜 일, 안좋은 일이 생겨도 아령들고
스트레스 쌓일 때도 역시 아령을 들었습니다.
전 팔굽혀펴기도 남들하고 다르게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합니다.
지금은 워워워
나만의 관리비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모르는게 약이라고 저는 저에 대한 수치도 관심없었고 항상 긍정적으로 대처했기에
만성신부전 20년이 지나도록 투석을 시작도 안했고
백내장은 19년이 지났는데도 백내장수술도 안했고
간수치도 주치의 말들 다 무시하고 웃으면서 운동을 해왔고
디스크도 29년이 지나도록 치료없이 남들보더 더 격한 운동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주치의들 말만 들었으면
누워 만 있다가 살만 찌고 장기들은 하나씩 망가졌겠지요??
저는 운동 하나로 웃음과 긍정적 마인드로 주치의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느 누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알아주지도 않은 운동을 힘들게 하냐고...
그러면 제 대답은...
사람은 애기 때부터 칭찬을 받고 살아옵니다.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들으면 더 잘 할려고 노력이 생깁니다.
나이 먹었어도 잘한다는 소리 들으면 거기에 용기와 힘을 얻고 더 잘할려고 합니다.
저도 더 잘할려고 노력한게 지금 여기까지 온 거 같아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움직일 것입니다.
왜냐면...내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움직여야지요...
나는 하나에 꽂히면 성과를 이룰때까지 물발 안가리고
세상에 무서운 것도 별로 없고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나로서 사는거 뿐
나 다운게 따로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내가 살다보면 그게 나다운 거니깐...
세상엔 변하지 않는게 없습니다
계절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변화는 있어도 변함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남을 이기면 일등이되고
나를 이기면 일류가 되다
챔피온이 따로 있나
내가 바로 챔피온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잘난척은 했지만
잘난적은 없었네..
(하상욱의 단편시집 중)
첫댓글 파이팅~~^^
영원히☆
어짜피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 후회없이!!! 사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행복하게~~^^
모든이가 노력한다고 다 같을수는 없지만 나름 자신이 지닌 조건에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항상 우철씨를 응원하며 나 자신에게 화이팅을 외쳐 봅니다.
응원들이 있었기에 이겨낼수 있었던거 깉으니 앞으로도 응원바랍니다^^
운동 열심히 할께요.ㅠ.ㅠ
네 같이 운동으로 이겨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