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everyday01.com 제로원(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이상한 포의(布衣)환향>의 줄거리:
포의란 왕이나 고관 대작들이 입는 비단옷인 금의와는 다르게 일반백성이나 평민들이 입는 베옷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가르침과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너무 낯익은 얼굴들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상히여겨 배척합니다. 예수님도 이들의 반응이 전혀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이십니다. 대체 예수님과 고향사람들은 왜 이토록 서로 이상히 여기는 것일까요?
이상한 포의(布衣) 환향
(막6:1~6a)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이상한 포의(布衣)환향>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포의(布衣)환향이라는 말은 그렇게 사람들이 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은 여러분 잘 아시지요,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실질적인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아니라도 뭐 허세라도 부려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외지에 나가서 내가 잘 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들고 가야, 이 고향에 내려가는 맛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친구차를 빌려서라도 (친구차가 좋은 게 있다면) 좀 빌려서 타고 내려가야 되지요.
고향으로 내려갈 때는 이게 참 중요하지요.
심리적으로 볼 때 참 중요한 얘기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금의(錦衣)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출세를 상징하는 비단옷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포의(布衣)라는 게 있어요.
금의(錦衣)와는 대조적으로, 일반 평민들이나 별 볼일 없던 백성들이 입던 베옷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금의환향(錦衣還鄕)에 비추어서 포의(布衣)환향으로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까지 가서 전도활동을 다 하시다가 처음으로 고향 나사렛으로 귀향을 하십니다.
그래서 거기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데,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면서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자! 이 이야기를 통해서, 도대체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인가?
특별히 그것이 천국과의 연관 하에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다는 이 사실은 아주 유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이 말씀이, 예수님의 이 사건과 어울려 가지고 아주 유명한 말씀이 되지 않았습니까?
자! 이것이 어떤 내용을 말하는 것인가 한번 우리가 살펴봅니다.
여러분, 혹시 ‘마리안 스퇴거’라고 하는 수녀님과 ‘마가렛트 피사렉’이라고 하는 그 수녀님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각각 1959년과 1962년에, 고향 땅 오스트리아, 그 베토벤과 요한 시트라우스,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가가 배출된 음악의 나라 그 오스트리아 고향을 버리고, 우리나라 저쪽 전라남도 끝에 있는 소록도로 오신 분들입니다.
1959년 1962년에 들어오셨는데, 그 당시는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를 비교하면 천국과 지옥 정도의 차이가 날 것이에요.
그리고 그 당시에 한센시병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냐 하면, 한센시병 걸린 사람들이 동네에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잡아다가 그 아이들의 생간을 먹는다, 이런 이야기가 돌 때입니다.
아직도 한센시병이 치명적인 저주처럼 여겨지고 있던 그런 시대에, 한국 땅 소록도로 들어가셔서, 43년 동안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장갑도 한번 끼지 않고 그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본국에서 지원비로 오는 모든 신수비를 다 그들을 위하여 사용하고, 그들이 소록도를 떠날 때면 생활지원금으로 모았던 돈을 주면서 살다가, 2005년 11월 어느 새벽에 이제 70살이 돼서 본국에서 소환 명령이 떨어지면서, 낡은 가방하나 들고 공식적인 환송예식 하나 없이 소록도 주민들이 다 잠자고 있는 새벽에 몰래 빠져 나와 본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 가슴이 뭉클한 이야기이지요.
근데 이 이야기를 만약에 이런 관점으로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소록도에 가신 그 수녀님들을 그 소록도 주민들이 바라볼 때에, 오스트리아의 발전된 문명과 문화생활을 가지고 온 자로 본다든지, 그래서 그 소록도 주민들로서는 1960년대 한국, 그 당시의 한국 땅에서 살고 있고 더군다나 소록도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로서는, 너무너무 선망의 대상인 오스트리아의 문화를 그대로 가져와서, 집도 그분들이 사는 집은 주민들과 다르게 오스트리아에서 살았던, 그런 아주 잘 꾸며진 서구문명이 잘 배어들어 있는 그런 집을 지어놓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주민들로 하여금 저런 문명, 발전된 문명을 꿈꾸게 했다!
말도 안 되지마는 이런 각도로 바라본다면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지요.
미군들은 그랬어요.
그 당시의 미군들이 대한민국 땅에 있었지마는 똑같이 발전된 문명을 버리고 이 땅에 왔지만 그들은 서울 용산의 노른자위 땅에다가 철조망을 굳건하게 치고, ‘넘어오는 사람은 발포한다’라는 경고문까지 붙여놓고, 모든 음식과 물까지 다 미국에서 공수해서 그 안에는 대한민국 땅과 비교해 볼 때, 천국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발전된 미국 문명을 그대로 다 옮겨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비교가 되지요.
자, 이 두 가지 비교되는 그림을 갖고 오늘 본문을 이해해야 이해가 바르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주님이 고향 땅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늘 그랬듯이 가르치시고 능력을 행하십니다.
반응은 뻔합니다, 놀라 자빠집니다, 고향 사람들이, 나사렛 사람들이.
이 사람들의 놀람 속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어요.
왜냐 하면 30년 동안 예수님께서 태어나서 목수 일을 하시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그 부모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던 모습을 다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예수님의 그 지혜와 그 능력의 출처를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자기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는 한, 그 예수님의 출생과 배경을 다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 능력과 이 지혜는 어디에서 생겼느냐?
잠깐 고향 땅을 떠나서 밖에 외지에 나가 있다가 돌아왔는데, 지금 그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고 기절하는 겁니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 지혜와 능력을 봤으면 칭찬을 하거나 놀라도 긍정적으로 놀라야지, 왜 예수님을 배척합니까?
이 배척한다는 말의 뜻은 ‘스칸달론’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거예요.
‘스칸달론’이라는 단어는 아시는 대로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왜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지혜를 보고 마음에 걸리고 넘어지고 그 예수님을 배척을 합니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배척하는 이 사람들의 행동을 예수님도 똑같이 이상히 여기는 겁니다.
‘그거 참 이상하다 왜 나를 배척할까? 참 이해가 안 간다’
자~ 어떤 비밀이 여기 들어있을까요?
만약에 예수님께서 돌아오셨을 때, 유대사회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출세하셨다는 것이 분명한 증거들을 갖고 돌아오셨다 그러면 태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능력과 지혜가 보였을 때 출세하신 예수님, 출세했다고 인정 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면, 금의환향하셨다 그러면 그 능력과 지혜는 마땅히 칭송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오신 모습은, 나사렛 시골구석에서 날마다 농사나 짓고 목수일이나 하고 고기나 잡고 있던 자기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능력과 지혜가 나타납니다, 이거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그렇다고 사람이 왜 꼭 그걸 배척해야 될까?
배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남녀가 부부가 되어서 살고 있어요.
근데 남편이 결혼해서 20년 동안 날마다 문제만 치고 제대로 된 월급봉투하나 가져다 준적이 없어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살아 본적이 없습니다.
늘~ 자질구레한 문제만 일으키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나 사 갖고 들어왔습니다.
‘당신 껴’ 남편은 기대를 합니다. (얼마나 놀래 자빠질까 좋아서)
근데 부인이 딱 열어보고 ‘이거 뭐야? 장난이야 이거?’ ‘진짜 다이아몬드야!’
진짜 다이아몬드라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남편 얼굴을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아내 얼굴이 굳어집니다, 새파랗게 질려버립니다.
그리고 뭐라 그럽니까, 여러분?
다이아몬드 반지 들고 기뻐하기는커녕, 마땅히 기뻐해야 될 다이아몬드 반지인데 그걸 손에 쥐고 뭐라 그러냐 하면, ‘당신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어디서 또 무슨 짓을 했길래 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들어온 거야! 도둑질이라도 했어, 이번에는?’ 이렇게 나오게 되는 거라는 거예요.
‘도둑질이라도 했어? 아이고 귀신들은 다 어디서 뭐하고 놀고 있나, 저 화상 잡아가지 않고. 빨리 갖다 돌려줘!’
이렇게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거라는 겁니다.
자기들도 세상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기들이 선망하고 있는 출세한 모습으로 금의환향하셨다 그러면 그 지혜와 능력이 칭송받아 마땅한데, 지금 자기들의 꼴과 똑같은 꼴을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셨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능력과 지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꼴 같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제가 밴쿠버 가서, 독일 가서 제일 이상했던 게 뭔지 아십니까, 제일 먼저?
하수도 구멍에서 공사하다 나오는 그 독일 아저씨가, TV 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장 동건 만큼 잘생긴 거예요.
깜짝 놀란 거예요, 아니 저 얼굴을 하고 왜 하수도에 들어가서 일을 하느냐 이겁니다.
잘~ 생긴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괜히 더 못나 보이는 거예요, 사람이.
근데 정말 초라하고 못생긴 사람이, 세상적으로 출세한 지위에 올라 가면은 그 사람이 달리 보여요, ‘아! 사람 겉보기와는 다르네!’
잘생긴 사람이 별 볼일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네!’
이렇게 되거든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데 돌아온 모양이 그렇다는 거예요.
도대체 그 능력과 그 지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배척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람들보고 또 이상하게 여겨요.
이렇게 설명하다 보면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잖아요,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잘생긴 사람이 너무 이상한 일을 할 때,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도 있는데 예수님이 이상하게 여기는 거예요.
뭘 이상하게 여기실까요?
자!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선지자라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선지자는 보냄을 받은 자에요.
그러니까 그의 배경, 그의 출신은 하늘나라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그 고향 사람들은,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옆집에 있던 총각이었기 때문에, 그 총각이 선지자라고 나타날 때, 그 총각의 배경인 천국을 보지 않고, 선지자로서의 배경인 천국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난 가정을 배경으로 봐 버립니다.
자! 이 얘기를 하신 거예요. 이 얘기를 왜 하셨느냐?
지금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천국에서 보냄을 받았고, 지금 현재 여기서 말로만 듣던 천국이 예수님과 직통으로 연결되어서, 천국에 계신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주어지는 말씀과 능력을 가지고 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스트리아에 있는 수녀님들이, 이 마리안 스퇴거나 마가렛 피사렉 수녀님이, 1960년대 한국 땅 그것도 소록도로 오셨어요.
소록도에 있는 주민은 그 누구도 이 수녀님들에게 앞서가는 문명의 오스트리아를 소록도에서 재현시키기를 원하지를 않아요.
그렇게 원한다 그러면 다 이상한 사람들이죠.
오히려 이 두 수녀님께서 소록도의 수준에 맞추어서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상하신 것은 천국에서 지금 오신 분이에요, 천국이 지금 연결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출세를 다 모아도 천국의 좋은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천국에서 왔거든요?
천국에서 와서 천국과 연결되어 있어서 능력과 지혜가 나타나고, 그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는 이유는 뭐냐 하면, 너희도 그 천국을 가지라는 얘기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하면, 그 천국을 가질 생각을 하지 않고 이 땅에서 천국과 연결되어서 나타나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 출세하라는 얘깁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지요, 이 땅에서 출세를 하라는 거예요.
천국과 연결돼서 능력과 지혜를 받았다 그러면, 마땅히 그 지혜와 능력에 맞게 이 땅이 정한 기준을 따라서 출세하고 성공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능력을 받는 이유가 뭡니까?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왜 그렇게 성령의 권능을 간구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이 세상이 정한 기준대로 대형교회 목사님 한번 해보겠다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은 되~게 이상한 겁니다, 되게 이상한 거예요.
천국을 소유하게 된 자의 입장에서 천국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온 겁니다.
그러면 자기가 보내어진 오스트리아와 같은 천국에서 누리던 것을 이 땅에서 누릴 수가 없어요.
출세의 관점으로 보자면 오스트리아에서 이곳으로 와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지금 내가 천국을 알고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이 땅에서 기준을 갖고 측정돼서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게서 천국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능력과 지혜가 나타나더라도, 그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이제부터 이 세상에서 출세한 자의 위치에 서고, 성공한 자의 위치에 서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나는 이 땅에서의 출세와 성공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아무런 interest! 아무런 흥미가 없을 정도로 천국에서 이미 출세했고, 천국에 내 이름이 등록된 것이 내 형통이고 성공이고, 더 이상은 출세와 성공을 바랄 필요도 없는 이 세상에 와서는 보내어져서 살고 있는 것인데…
‘아니, 이 사람들은 지금 천국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내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천국을 알고 있는 나한테 왜 이 세상에서 출세하지 않고 성공하지 않고 있느냐고 나를 배척하다니 참! 기이하다 참 !기이하다.’
‘아니 내가 그들에게 그 좋은 천국을, 이 세상의 출세와 성공을 다~ 모아 놔도, 감당도 안 되고 비교도 안될 만큼 좋은, 그 천국을 갖고 있는 자요 주인으로서, 그곳에서 이곳으로 와서 그 천국을 알려 주겠다는데, 그 천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잘난 소록도에서 이 소록도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라고 얘기하니 이 참 기가 막힌 노릇 아니냐?’
그러니까 소록도 주민들이 두 수녀님께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을 따를 테니까, 당신이 소록도에서 면장도 하고 이장도 하고 소록도에서 대통령이 한번 돼 봐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똑같다는 얘깁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죠. 수녀님들은 대통령 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이 소록도 안에서 면장하고 이장 하시려고 온 게 아니에요.
소록도 주민들을 거느리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들을 봉사하려고 온 거에요, 섬기려고 온 거에요.
미군이 용산을 차지한 것은 이유가 뭡니까?
우리나라를 거점으로 이 동북아에 자기들의 세력을 확장 시키고 보존하려고 온 거에요.
이유가 달라요, 이유가 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내 것으로 현실화해서 갖게 된 뒤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뭡니까?
천국과 연결되어진 상태에서 주어지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출세하려고 사는 게 아니에요.
우리 출세는 끝났어요.
천국을 갖게 된 것보다 더 큰 출세는 없고, 천국을 현실화해서 사는 것보다 더 큰 성공과 형통이라는 것은 존재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안 된다는 얘기에요.
박근혜 씨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나 봐요.
과반수가 넘었대요 박 근혜 씨의 새누리 당이.
그거가 천국을 갖는 것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에요.
온~ 대한민국의 매스컴이 다 난리를 치지만, 아~무도 몰라주는 나 혼자 천국을 내 것으로 삼은 자의 성공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다~ 지난 다음에 마지막에 ‘이거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될 게 천국이라는 겁니다.
근데 그 천국을, 박근혜 씨가 대통령도 되고, 뭐도 되고 다~된 뒤에야 깨닫고 붙잡아야 될 그 천국을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서 주어지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출세하겠다는 겁니까?
성령의 능력이 하늘에서 주어지면 그 능력으로 큰~목회에서 성공한 목사 되겠다는 겁니까?
이게 정말 넌센스 중에 넌센스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기이 여기셨더라, 이상하게 여기셨더라, 아니 천국을 가졌으면 성공한 거고, 더 이상의 성공이 있을 수가 없는데, 그 천국을 가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혜를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다시 이 세상에서 출세하라는 얘기냐? 성공하라는 얘기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주러 왔는데 도대체,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나를 배척하고 있느냐?’
이상한 포의(布衣) 환향!
나사렛 고향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지요.
여러분! 아직도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이 세상에서 내가 출세하고 싶으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보시면서,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왜 주려는 천국을 갖지 않고, 천국을 현실화 하려 하지 않고, 그 천국의 힘으로 그 잘난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려 하느냐, 정말 이상하기, 이상하기 그지없다’ 말씀하실 것이에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천국에 있는 하나님아버지와 주님과 성령님과 천사들이 볼 때, 정말 이상하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한 삶을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어찌 천국의 힘을 빌어서 세상에서 출세를 하려 했습니까?
이제 이 모든 잘못된 괴상함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중단되게 해 주셔서,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 천국에 대해서 산 자로 살며 천국으로부터 보냄 받아 산 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