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맑은 햇살에 번뜩인다.
나는 싸한 바람을 맞으며 등줄기에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배낭에 넣어두었던 바람 재킷을 꺼내 입었다."
등산로에 커다란 돌들이 박혀있어서 자칫 하다가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것만 같았다. 계곡엔 습한 안개가 가득했고, 몇몇 등산객들이 나처럼 홀로 조용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혹 해발고도와 거리를 표시해주는 이정표가 나타나면 나는 머릿속에 그려진 등산로의 한 지점에 좌표를 찍고 조금씩 안도했다.
단양 천동탐방 안내소로 올라, 어의곡 탐방 안내소로 내려가는 소백산 등산코스는 가장 짧고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오전 아홉 시에 천동탐방 안내소에서 출발하면 3시간 반 만에 정상에 오르고, 정상에서 삼십 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하산 길 두 시간 삼십 분 도합 6시간 반이다. 서울에서 당일 코스로 다녀올 만하다.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영주시 속한 백두대간 상의 산으로 높이는 1,439m이다. 천동 탐방 안내소의 해발고도는 400m 정도이고, 이곳에서 약 1,000m를 오르는 코스다. 천동 주차장에서 비로봉까지 약 7km이며 정상에서 어의곡 주차장까지 하산길은 약 6km 거리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동해안을 따라 내리다가 태백산에서 안쪽으로 휘어지며 두툼한 소백산을 이루고, 아래로 흐르며 속리산에서 지리산으로 연결된다. 인체에 비교한다면 소백산은 골반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위다.비로봉에 올라 시간을 보니 12시 25분, 정오의 태양이 흰 뭉게구름 사이로 비추고, 멀리 경북 영주 땅과 안쪽으로 충북 단양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로봉 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이번 등산을 만류하던 아내에게 카톡을 날렸다.
“지루하고 별난 이번 여름도 이제 마침내 끝나 가는가 보다.
산들은 10월이 왔음을 알리듯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너무도 분명한 자태를 보이며 수줍게 나를 바라본다.
정상에 오르니 천근만근 무겁던 두 다리에 갑자기 힘이 붙고
내 몸은 새처럼 가볍다.“
돌부리에 차이며 오르막길에서 보았던 바위틈에 난 이름 모르는 조그마한 난쟁이 꽃도, 물살이 흐르는 바위에 초록의 이끼까지 다시 떠올리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먼 산이 옅은 구름에 가려지고, 힘들게 오르던 어둡고 습한 계곡들은 거대한 능선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젊은 시절 한때 여행을 자주 다니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시간을 앞에 두고 있었다. 다람쥐처럼 바위를 뛰어넘으면서 몸을 다치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고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지 여행이 더 이상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고 두려워졌다. 그 많은 시간은 과거에 소진되었고, 이제는 여분의 시간이 부족하다. 몸을 다치면 상처가 아물 시간이 남아 있지 않으니, 걱정이 된다. 그러려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매사에 조심스럽다. 여행이지만 사실 나는 자연을 보는 것 보다. 내 몸을 걱정하며 올랐다.
어둡고 습한 계곡 길을 ‘두 시간 동안 나는 힘겹게 숨을 헐떡거리며, 기어오르고 미끄러지다보니 숨이 턱 끝에 찬다. 그러다가 산장 모양의 건물을 보고 약간은 안도감이 들었다. 천동 쉼터, 실상은 화장실이다. 주변에 휴식을 취할 벤치가 몇 개 있고, 먼저 올라온 중년의 사내가 혼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도 준비해 간 김밥을 하나 꺼내 먹고 곧바로 떠났다.
이제부터 그동안 어둡고 물소리만 들리던 계곡 길은 시야가 열리고, 숲에 햇살이 들어와 환하게 밝아졌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길도 조금은 좋아졌고,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오르며 보았을 자연의 모습이지만 그때마다 변화무쌍한 자연이 주는 감흥은 다르다. 사람들은 이렇게 쉴 새 없이 변하는 자연에서 삶에서 보여주는 온갖 기쁨과 슬픔을 생각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렬한 느낌이 있다면 숲에 들어온 빛과 그늘이다. 새벽에 일어나 확인한 소백산 일기예보로는 오후부터 가랑비가 내릴 확률은 60%였는데, 이처럼 맑은 햇살이 !
다시 1시간쯤 지나 나는 잔잔한 구릉이 이어지는 비로봉의 능선 위에 도착했다. 지도상에는 ‘천동삼거리’, ‘주목 군락지’로 표시된 곳이다. 죽령에서 연화봉을 거쳐 오르는 길과 내가 올라온 천동계곡 코스가 만나는 장소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이고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별명처럼 나무가 단단해서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산 전체에 현재는 1,500그루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하는 데 실제로 주목 군락지에서는 몇그루뿐이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시계는 1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천동 쉼터에서 1시간을 올랐고, 정상인 비로봉까지는 20분 정도 남아있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맑은 햇살에 번뜩인다. 나는 싸한 바람을 맞으며 등줄기에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배낭에 넣어두었던 바람 재킷을 꺼내 입었다. 몸은 무겁지만 발은 가벼웠다. 그동안 망설이며 기다리던 장소가 눈앞에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젊은이들이라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지만 이번 산행이 나에게는 하나의 모험이다. 12시 24분 비로봉 정상에 올라 나는 풍경을 볼 사이도 없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혼이 자신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은 놀랍게도 너무나 짧다. 감각과 정신으로 지배되는 삶이 뒤로 물러서고 기억과 양심의 거울 앞에 영혼이 숨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시간은 너무나 짧다.” 홀로 하는 여행은 그런 순간을 기대하며 떠난다.
[산행 참고]
• 청량리에서 아침 7시 7분 KTX
• 단양 도착 8시 20분
• 역전에서 택시 승차. 천둥 주차장까지 약 30분(요금 17,000원)
• 등산 시작 09시
• 천동 쉼터 11시
• 비로봉 12시 20 도착
• 하산 13시
• 어의곡 주차장 15시 30분
• 버스 승차 16시 05분
• 단양 출발 19시 22분 무궁화호
• 청량리 도착 21시 30분
[기타 참고]
• 단양역에서 등산로(천동 주차장, 어의곡 주차장)까지 가는 버스는 각 1일 7회 정도 운행하지만, 단양 시내에서 갈아타야 하며 시간이 꽤 걸립니다.
• 천동계곡으로 오르고 어의곡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입니다. 어의곡 코스는 길이 가파르고 더 험하며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