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11] 용왕의 사신 '바다거북'에게 쓰레기를 대접하다니
작성: 조약골
2013년 7월에 제주 앞바다에서 나이가 무려 200~300살로 추정되는 암컷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가 정치망 그물에 걸렸다가 구조되어 곧바로 다시 야생으로 방류된 일이 있었다. 이 거북은 다행히 별다른 상처가 없었고 건강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에 해양동물 구조치료기관으로 이송할 필요가 없이 그물에서 빼낸 뒤 바로 바다로 돌려보내면 되었던 것이다. 이 바다거북을 돌려보낼 때 등딱지에 위성추적장치를 단다든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류 이후 거북이가 어느 바다로 이동했는지, 또는 지금도 잘 살아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많은 네티즌들은 거북의 나이가 무려 300살로 추정된 것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표현했다.

필자 역시 당시 소식을 듣고 나이가 최대 300살이라면 조선시대부터 제주 앞바다에서 살아왔을 테니 이 바다거북을 바다의 터줏대감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제주도민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은 바다거북을 용왕님이 보낸 사신으로 모신다. 제주에서는 지금도 정치망 그물에 바다거북이 걸리기라도 하면 어민들이 나서서 정성껏 예를 올리고 막걸리를 마시게 한 뒤 바다로 돌려보낸다. 정치망은 함정처럼 만들어진 그물로서 위가 뚫려 있어 우연히 걸리더라도 돌고래나 거북이 수면에서 숨을 쉬면서 일정 기간 생존할 수 있다.
어민들은 우연히 인간 세상에 잘못 잡혀온 바다거북을 송환하며 바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그런데 바다거북이 실제로 해양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는 연구도 있어서 흥미를 더한다. 바다에서 거머리말(잘피) 같은 해초가 풍부하면 연안 수질이 정화되고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살아가는 서식처가 마련된다. 바다거북은 이빨이 없는 대신 날카로운 주둥이로 수중 바위나 산호에 붙어자라는 해조류를 갉아먹거나 해초의 잎 끝부분을 똑똑 잘라먹는데, 끝이 잘린 해초는 더욱 건강하고 길게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산호 역시 바다거북에 의해 조류의 과도 번식이 억제된다. 바다식물과 거북이 일방적으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공생을 이루고 사는 셈이다.
초식동물? 다양한 식성을 가진 바다거북

바다거북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푸른바다거북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해초를 비롯해 미역이나 다시마 등만을 먹는 초식동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체가 되기 전 유년기와 청년기의 푸른바다거북은 먼 바다에서 살아가며 해조류를 비롯해 조개나 해면, 해파리, 물고기 알 등을 모두 먹는 잡식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성적인 성숙기에 이르고 번식을 위해 주로 연안에서 멀지 않은 바다로 돌아와 머물게 되면서 완전히 채식주의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해양동물 가운데 이처럼 극적으로 식단을 바꾸는 경우는 아마도 푸른바다거북이 유일할 것이다.

물론 바다거북도 종류에 따라 식성이 다르다. 해파리를 주식으로 하는 장수거북은 종종 수면에 떠있는 비닐봉지를 먹이로 착각하여 먹다가 죽기도 한다. 늘어나는 바다쓰레기의 최대 피해자인 셈이다. 대모거북이라고도 하는 매부리바다거북은 해면만 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붉은바다거북은 힘센 턱으로 게와 소라, 고둥 등을 잡아먹는 잡식성이다.

식성은 다르지만 바다거북은 대부분 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아직도 바다거북의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보통 바다거북은 80년 정도를 산다고 알려져 있는데, 앞서 제주 바다에서 발견된 푸른바다거북의 경우처럼 나이가 2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개체도 발견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보통 바다거북 등껍질의 상태나 색깔, 상처, 흉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노화정도를 추정하는데, 이것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나무는 나이테가 있어서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있고, 돌고래 역시 이빨에 나는 나이테를 통해 비교적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있지만 바다거북은 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역시 용왕님이 보낸 사신이라 할 만하다.
쓰레기를 먹는 귀한 손님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신화와 전설 그리고 속담을 통해 용궁에서 온 귀한 손님으로 바다거북을 대해왔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섬들에서 바다거북과 관련된 비슷한 전설을 들을 수 있다. 중국과 필리핀의 섬들에서 바다거북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하와이에서도 바다거북은 수많은 전설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바다거북은 모래해변 등 서식처가 파괴되고 해양오염과 무분별한 바다쓰레기 배출로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서 주로 사는 바다거북은 변온동물이긴 하지만 겨울철 해수온도가 섭씨 10도 이상이면 체온이 유지되어 살아갈 수 있다. 제주 바다에서 연중 바다거북이 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 전인 2017년 9월 해양수산부는 인공 부화한 83마리의 바다거북 새끼를 제주 중문해변에서 일제히 바다로 방류했다.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성체가 된다면 20년 정도가 지난 후 이곳으로 돌아올 텐데 문제는 거북이 돌아와도 조용히 알을 낳을 자연 모래해변이 이미 지나친 난개발로 파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우리는 앞으로 한국 바다 해변에서 여름 어느 날 한밤중에 일제히 알을 깨고 나와 본능적으로 바다로 기어가는 새끼 바다거북의 무리를 볼 수 있게 될까?